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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에 대한 증언
게시물ID : military2_14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emonade
추천 : 12
조회수 : 1767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7/04/17 20: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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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마에다 병조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어느 날 마에다 병조 일행이 남쪽 산에 식량 채집에 갔다가 몇명의 육군의 집단과 함께하게 됐다. 그들과 잡담하다 그들은 자기 쪽에서 다음과 같은 무서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것은 그들은 일본군을 죽이고 인육을 먹는 것을 상습으로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른 부대의 병사를 죽였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부대의 병사를 죽이게 됐다.

그러나 역시 자신의 부대의 병사를 사살할 때는 눈을 감고 방아쇠를 당기는 식으로 했다고 한다. 즉 강도, 살인, 식인죄를 저지른 범인 그룹에서 그 대담한 마에다 병조도 '군의관, 오늘은 참으로 무서운 놈을 만났어요. '라고 하여, 상기의 이야기를 하고, '눈빛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고 어쩐지 기분 나쁜 인상이었습니다. 나중에 저놈들을 모두 죽이고 올 걸, 그냥 헤어지게 되서 정말 유감입니다.'이라고 덧붙였다.

이로써 집단적인 흉악한 그룹의 존재가 분명했다. 부대는 해체하고 군율은 소멸한 상태에서 소집된 군사들 속에는 흉악한 전과자도 있었으므로 이들 악당이 흉기를 들고 허기 속에 살아가려면 이런 지상 최악의 행위를 한 것이다.

살인에다 인육을 먹던 현장을 발견하고 사살된 예를 나는 몇몇 예를 들어왔다. 당연한 조치로 이런 인간은 일본에 돌아가도 나쁜 짓을 하고, 옥살이를 할 것이다.

한 예로 마에다 병조 일행이 두번째 물소를 사살한 바 있다. 해군의 병사에게 그 고기를 들게 해, 마에다 병조는 한발 먼저 가 있었는데,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수색을 했으나 시신도 나오지 않는다. 역시 일본 게릴라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P183)


이전에 73~74쪽에서 해군 병조와 세명 단위로, 망고를 캐러 가다, 게릴라에 당해 그 때 카와구치 병조가 죽은 이야기를 했다. 다음날 마에다 병조 일행은 삽을 들고, 카와구치 병조의 시체를 묻으러 갔다.

저녁이 되기 전 그들은 돌아와서 '군의관, 육지의 놈들은 심한 짓을 하던데요. 카와구치를 묻어 주겠다고 생각하고, 시체에 걸린 셔츠를 내보니 뼈만 남아 있었습니다. 육지의 놈들이 하룻밤 만에 카와구치를 먹어 버렸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자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마침내 그 수준까지 떨어졌냐고 생각했다.(P185)


-모리야 마사, 필리핀 전선의 인간군상 


7월 어느 날 저희 부대의 한 상사의 허벅지 상해 치료를 했다. 그 부상 부위가 보통 볼 수 없는 물건이니까 그 상사에 그 까닭을 들은 결과 다음과 같은 놀라운 사실을 귀띔했다.

그는 숲 속의 길가에서 쉬고 있었다. 거기에 다른 부대의 소장이 왔으니까 그리고 다정다감하게 얘기를 하다가 그가 갑자기 베겠다고 달려든 것이다. 그는 허벅지를 찔려서 놀랐고, 결과적으로 둘이서 격투로 그 소장을 제압했다.(P182-P183)

"사실 나는 일병으로 소장은 아니다. 상사의 시신에서 배지를 취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잘못했으니 이해해 달라."

라고 애원해서 도움을 주었다 한다.

그는 나에게 "저는 그 녀석을 돕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나쁜 놈은 분명 또 밖에서 나쁜 짓을 하고 있겠죠"라고 말했다.

이것이 내가 실제로 '일본 게릴라'의 존재를 알게 된 첫 이야기이다.(P183)


-모리야 마사, 필리핀 전선의 인간군상


(중략)

그런 가난하지만 평온한 나날이 일변한 것이 1945년 10월 10일이었다.

그날 정오 무렵 집으로 가지던 카모테(고구마)와 바나나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돌연 세명의 일본군이 나타났다. 아버지 아우구스티온 씨는 집 밖에 있던 비둘기 집에서 비둘기를 돌보고 있었다. 아빠는 "조심해라. 우리가 두려워하는 놈들이 왔어"집 안에 있던 자매에게 말했다.

벌써 두 일본군이 뒤늦게 찾아오고, 아버지의 양팔을 잡았다. 아버지에 뭐라고 말한 듯했지만 아버지가 대답할 틈도 없이 갑자기 군도로 아버지의 목을 떨어뜨렸다. 일본군은 집 안에 있던 호비타 씨와 크리센시아 씨의 손을 밧줄로 묶고 집의 대나무의 바닥에 묶었다.

일본군은 그들의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해체했다. 한명은 보고 나머지 두 사람은 단검을 썼다. 처음에 허벅지의 관절에서 다리와 몸통을 분리, 무릎, 발목별로 절단했다. 이어 팔을 어깨에서 분리, 팔꿈치, 손목과 절단했다. 그리고 각 부분에서 고기를 발라서 4장의 바나나잎 위에 내려놓았다. 심지어 부러진 뼈를 3~4㎝길이로 갈았다.(P52-P53)

몸은 중앙에서 가르고, 폐, 심장, 간 등을 꺼내고 바나나잎 위에 내려놓았다. 대장은 먹지 않을 것인지 찾아서 집어던졌다. 머리에는 손대지 않았다. 점이 있는 긴 턱수염을 기른 병사가 중심에 서서 뒤의 두 사람이 도왔다. 자매는 그저 울며 지켜보기만 했다. 해체가 끝날 때까지 한시간 가량 걸렸다.

그 뒤 한 병사가 집으로 들어가고 냄비를 들고 나왔다. 그 냄비에 뼈와 살과 물을 넣었다. 다른 병사들이 자매의 가족이 점심 카모테를 가지는 데에 쓴 불의 잔불을 가지에 붙이고 마른 풀에 불을 붙이고 냄비를 불 위에 올렸디. 원숭이를 익힐 때와 같은 냄새가 났다.

30분 정도 끓이면 일본군들은 다섯명 전원이 모닥불 옆에 돌라앉고 바나나를 한 손에 들고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냄비 옆에 2장의 바나나 잎을 깔고 고기를 내서는 각 손으로 집어 먹었다. 일본군은 극단적으러 마르지 않았고, 굶주려 먹을 것에 집착하는 표정도 없이 평범하게 담소하면서 먹고 있었다.

긴 턱수염의 튼튼한 체격의 병사들이 자매에게 아버지의 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했다. 아버지를 죽인 그 병사는 손으로 두 사람의 입을 열어 고기를 집어넣었다. 두 사람은 고기를 입에 넣었는데 토했다. 그것을 보던 다른 병사는 웃었다.

한시간 정도 먹고 나자 이번엔 한 병사가 언니 호비타 씨의 어깨를 밀어붙이고 상대방이 다리를 벌리고 누르고는, 아까 아버지의 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한 병사가 강간했다. 그녀가 저항했을 때 오른발의 무릎 위를 단도로 찔렀다. 그 후 두 일본군이 번갈아 호비타 씨를 강간했다. 호비타 씨의 다음으로 크리센시아 씨도 강간당할 뻔 했지만 거세게 저항했기 때문에 면할 수 있었다.(P53-P54)

(생략)

이"시암 사건"은 49년 마닐라 군사 법정에서 심리되고 있다(기소 항목 제4~6항). 자매도 증인으로서 출정했다. 재판관의 요구로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일본군들 속에서 그녀들의 아버지를 죽이고 먹고 호비타 씨를 강간한 병사들을 가리켰다. 두 사람이 공범 격으로 가리킨 것은 보병 제74연대 벳쇼 류타로 하사였다.(P55-P56)

보병 제74연대 벳쇼 류타로 상병은 1949년에 마닐라 군사 법정에서 기소된 24건의 사건의 대부분에 이름이 거론되었다.(P56)


49년 마닐라 전범 재판에서 증거로 제출된 진술 조서 중 25명의 병사들의 진술 증서를 입수했지만 그 중 16명이 명백히 이런 식인의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단 16명 중 3명은 일본군의 인육을 먹었던 사실만을 진술).

그들이 자신은 관여하지 않지만, 다른 병사가 인육을 먹는 것을 봤다고 진술하고 어떤 병사는 다른 병사에게 인육을 먹었다고 들은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남은 6명만이 거기에 대하 언급하지 않고 있다(다만 인육을 강하게 부정하지도 않았다).(P163)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내가 질문을 시작하면 벳쇼 전 하사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인육에 손을 댄 이유로 먹을 것이 없었다는 점 외에 인육에는 염분이 함유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습니까."

벳쇼 상병은 잠자코 생각한 후 눈을 열어 답했다.

"그런 것도 있었는지도 모르는걸. 아무튼 염분이 부족해서."

더 질문하려 하자

"다 알잖아. 좀 봐주세요"라고만 한다, 할 말을 잊었다.(P86-P87)

이 사건(주-두 쌍의 노부부를 살해하고 그 고기를 먹은"티모앙 사건")에 대해서 호카리 전 중사와 고바야카와 군의관으로부터 직접 증언을 얻어냈다.

나의 취재에 대해서 호카리 전 중사는 "두 남자를 죽인 것은 나"라고 증언했다. 다름이 아니라 군도로 각각 세번씩 휘둘러서 죽였다. 그리고 목을 쳐서"돼지의 해체의 요령"으로 고기를 떠갔다.

"그때 어떤 정신상태였는지 나도 모르겠다. "라고 한다.

그리고 해체한 인육을 처리했다. 그러나 정작 먹을 때가 되어 살을 얼굴에 갖다댄 순간 확하고 구토했다.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쓰러진 채 그날 밤은 오두막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고바야카와 군의관은 분명하게 인육을 먹은 것을 인정했다.(P118)

"그때는 양심적인 것은 억제되어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심신상실 』같은 경우였다. 전쟁이니 뭘 해도 어쩔 수 없는 줄은 몰랐지만 동료들과 함께 한 것이고, 대단한 일을 했다고는 했다고는 생각 못했다. 위 속에 들어간 것을 내뱉을 수도 없고..."(P119)


-나가오 토시히코, 버려진 일본군의 인육식 사건


나는 세번이나 넘어졌다. 노인은 한번밖에 넘어지지 않았다. 그는 항일 게릴라전 당시의 산행과 퇴역 후 농사로 사지가 단련되었다고 한다.

부인은 터프한 이 노인을 가끔 익살맞게'타이슨'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마이크 타이슨의 타이슨이다. 내가 넘어질 때마다 '타이슨'은 하하하, 하며 웃는다.

진흙 투성이인 나를 무시하고, 노인이 들판의 풀을 뽑기 시작했다.

엉겅퀴 같은 꽃을 단 풀이 도얀도얀이라는 것이란다.

'사람들(잔류 일본군)은 이 풀과 그 고기를 함께 삶고 있었어'

  하면서 도얀도얀의 꽃을 뽑고 있다. 수렁에서 피처럼 선명한 주황색 점이 흩어졌다.

나는 줄기를 뜯어 봤다.

처음에 쑥과 비슷한 옅은 향기. 다음에 강렬한 향으로, 순간 동백 나무가 떠올랐다.

냄새 없애는 데에 쓴 걸까, 나는 생각했다.(P46)

도중에 오두막집이 있었다.

'여기서도 농민이 끌려갔다'

노인이 중얼거린다.

자락인 인터버스 마을까지 나를 태우고 그대로 동행하고 온 트럭 운전수가 '행선지는 모두 인간의 냄비 속이었어'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기슭의 인터버스 마을에 도착하면, 마을 사람들이 6, 7명, 나를 둘러싸고 키탄라도 산에 왜 올라갔는지 물어왔다.

나는 이유를 말했다. 잔류 일본군의 '음식'에 조금 언급했다.

그 때 마을 사람들이 보인 반응을 어떻게 형용할 것인가. 피로의 끝에 꿈을 꾸고 있느냐고 나는 생각했다.

마을 사람들은 제각기 말한 것이다.

'어머니도 여동생도 먹었습니다'

'나의 할아버지도 일본군에게 먹히고 말았습니다'

'막대기에 돼지처럼 묶고 끌려갔고 먹어 버렸습니다'

'먹힌'. 이 피동의 동사가 내 수첩에 금세 열개나 되었다.

사람들은 울부짖지는 않았다. 목소리를 돋우지도 않았다. 억누른 조용한 목소리였다. 그런데도 메모장이 '먹힌'다는 거친 말로 검게 메워지는 것이 신기했다. 노인은 당황한 나를 말 없이 쳐다보았다.(P52-P53)


49년의 전쟁 범죄 재판(마닐라)의 증언자인 농민의 칼매리노·마하야오가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았다. 46년에서 47년 초까지 이 마을과 그 주변에서만 38명이 잔류 일본군에 의해 제거되고 그 대부분이 먹혔다. 머리 등의 잔해와 식사 현장을 목격한 증언에서 사실은 명백하다. 그러나 일본 측은 한번도 조사단을 파견한 적이 없다.

마하야오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래도 잊지 마세요. 잘 전달하세요'

사실은 사건의 개요는 92년 가을, 교토 통신 마닐라 지국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47년 이후 잔류 일본군에 대한 심문 때부터 현대사에서 극히 드문 병사의 '조직적 식인 행위'로 연합군 사법 관계자를 깜짝 놀라게 만든 이 사건의 전모는, 일본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을 은닉하는 힘이 어디선가 움직인 것일까. 그렇다면 이 사건이 이루 설명할 수 없는 매우 깊은 '음식의 금기'을 저지르는 것에 대한 이루 말할 수 없는 혐오가 바탕이 되어 있었던 것 아닌가.

전쟁의 배경으로서 하나의 과오로 벌써 잊은 것은 좋다. 그런 의식도 어딘가에서 일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바로 앞에는 부모가 '먹힌'것을 어제 일처럼 말하는 유족들이 있다. '먹은'역사도 모른 채 혹은 오로지 잊고 싶어하는 일본의 까마득한 거리, 난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P53-P54)


-헨미 이사오, 그것을 먹는 사람들


주의 깊게 다가서자 4명의 군인들이 앉아, 담소하면서 뭔가 먹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적에 대해서는 거의 주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들을 놀래켜서 반사적인 공격을 받지 않도록 충분히 생각하며 노력하여 조용히"안녕하십니까……"라고 말을 걸어봤다.(P239)


그런데 그들의 놀란 모습은 상상 이상이었다. 날카로운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쏠렸다. 중 한명은 옆에 있던 총을 잡았다.(P240)


4명 모두 작고 몇개월 동안 세수조차 하지 못했던 검은 얼굴이었다. 눈만 쨍쨍 빛나며"우와, 놀랐다"라고 한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시 한번 "안녕하십니까"라고 했다.


하면 한 사람이 "안녕하십니까, 그쪽은 몇 부대입니까?"라고 되물어 왔다.


"포병대의 나카무라 부대지만 당신들은?"


"모리 부대다"(P240)



"그런데 그쪽의 식량상태는 어떤가? 우리는 다진 고구마는 두개씩밖에 없고, 따라서 거의 없다. 하지만 고기는 어찌하다 보니 남아 있지만."


고기가 있다는 것은 아예 먹는 것이 보였으므로,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 고기는 한달 전에 컬러 파오를 먹은 것이 마지막. 그 특유의 맛과 구강 내에 퍼지는 지방성 매가 혀의 주변에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야아, 우리는 너무 심하네. 비참한 거죠. 고구마가 조금만 있어서 고기 따위 보고 싶어도 없습니다"


그들의 앉아 있는 중앙에는 죽순의 껍질처럼 동그래진 컬러 파울로의 껍질과 구운 뼈가 밥통(군대에서 사용하는 쌀밥그릇)속에 넣고 있었다. 나의 시선은 격렬한한 식욕에 불타고 있었다.


" 어떻습니까, 이런 것으로 괜찮으시다면 한개 씹어보지 않겠습니까"라며 한조각의 살점을 내밀었다. 그것은 일견 껍질을 태운 것으로 새까맣게 오그라들어 있었다. 그들의 따뜻한 호의에 감사하고 당장 기꺼이 넙죽 받기로 했다.(P240)



모처럼 귀중품을 나누어 준 이상 먹지 않으면 안 된다. 무서운 것을 살짝 숨기는 듯한 표정으로 치아와 치아 사이에 도리질하려 할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은 컬러 파울로잖아요 "


"허……무엇입니까? 이것 말입니까?"


"……"


"대만공요"


"엣, 아, 아, 그렇습니까."


나는 반사적으로 입을 열고 손을 끌렀다.


"야 아무래도, 여러가지로 죄송합니다. 드디어 밝을 때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되어서 한발 먼저 실례"


앞뒤가 맞지 않은 인사였지만 일찌감치 되돌아간다고 했다. 그러자"그렇습니까?우리도 네명은 적적하니까 함께 데려다 주시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나는 거기에 멈춰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한시도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예, 아래에서 동료들이 함께 기다리고 있으니까."라고 말하고 급히 떠났고 그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까지 와서 아까의〝 대만 출신 징용 공장원〟의 몸의 일부분인 것을 경사면을 달리면서 힘껏 멀리 던졌다.(P241)



오기와라 쵸이치, 촉루의 증언 민다니오 패주록



"사실은 20일 전에도 한 사람……. 해군 5중대의 밭(북상시 이 부대가 처음 발견하여 독점하던 낡은 밭)에서 조금 남하한 곳에서 고기가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함께 행동했던 해군의 병사를 밤에 이러이러했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던 건가. 군도로?"


"아니, 이 권총으로 했습니다. 자다가 머리에 총을 대주면, 일발로 가는 겁니다."


그러면서 뒤에 걸고 있던 14년식 권총을 가리켰다. 거기에 권총이 있다는 것을 지금 처음으로 깨달았다.


우리는 선 채로 꼼짝도 못하고, 무릎이 덜덜 떨리는 것을 참으려 해도 그 힘조차 나오지 않았다. 나는 혐오와 협박감을 제대로 느끼며 얼굴에서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는 오히려 신바람이 나, 계속했다.


"처음은 역시 팔과 허벅지를 떼어놓고, 좋은 곳을 건조 식육(훈제)에 취합니다. 우선 내장을 먹으려고 했는데, 간 같은 장도 잘라서 끓이면, 쫄깃쫄깃한 표고버섯 같은 맛이 납니다."


〝 이제 됐다, 그만둬! 네놈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나는 그렇게 고함치려고 했지만 침이 말라서 입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머리는 이 군도로 바-앙하고 쪼개어 가운데 뇌를 꽉 그러잡고, 바로 반합에 넣는데 양이 상당합니다.. 7~8할 정도의 분량은 됩니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반합에 손가락으로 선을 그어 보였다.(P232-P233)



-I상병의 증언



부대 해산 후 N분대에 소속된 군인들은 끊임없이 그들의 몸의 일부분처럼 예속되어 떠나지도 못했다. 깊은 정글을 보름 남짓 우왕좌왕하다가 식량이 바닥나고부터는 점차 환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기아 환자가 나오면 나오는 만큼 분대의 짐이 됐다. 보행 불능에 빠지면 순차적으로 이들 환자의 자고 있는 사이를 엿보다 사살했다. 사살의 담당은 거의 K병장이었지만 그 해체에는 역시 모두 손을 대지 않고 그토록 비도덕적인 일을 I는 강요당했다.


목을 절단하고 팔과 다리를 몸통에서 분리, 장기를 꺼내고 씻고 작업을 강제로 명령 받았다. 만약 이를 거부하면 아무것도 먹지 않은 뿐더러 그들의 칼날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은 분명했다.


이렇게 많은 휴대 고기를 만들어서는 먹어 그것이 끝나면 또 다음 환자가 희생되었다.(P235)


N오장이 해군 군인이라고 한 말은 새빨간 거짓말로 그들은 국내 출발 이후 처음부터 같은 자신의 분대에 배속된 자신의 부하였다. 그것을 태연하게 네명씩이나 죽이고 있었다. 그 피해자는 S상병, G상병, W일병과 O일병과 분명히 이름을 올렸다. 이야기는 끝났다.(P236)


-오기와라 쵸이치, 촉루의 증언 민다니오 패주록(荻原長一『髑髏の証言 ミンダナオ島敗走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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