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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페미니스트
게시물ID : military_699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18R
추천 : 12
조회수 : 537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7/04/17 20:50:27

서방측에서는 여성을 전투에 투입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지만, 소련군에서는 여성 조종사, 전차병, 위생병, 그리고 저격수가 많았다. 여성은 특히 체구가 작고 유연한데다 인내심이 많고 머리가 좋아 저격병으로 적격이었다. 또한 이들은 전투 스트레스에 남성보다 더 잘 견뎠고, 추위에도 더 잘 버텼다. 모스크바 근교에는 여성 저격수만을 양성하는 학교가 있었고, 교장도 스페인 내전의 경험자인 N. P. 체고데바였다.

 

소련 최고의 저격수중 상당수가 여성이었다. 마리아 이바노바 모로초바는 192명을 사살하고 11개의 훈장을 받았다. 40명 이상을 사살하면 전투용맹장이 수여되는 동시에 고급 저격병의 칭호를 받았으며, 많은 여성 저격수가 소련최고의 영예인 소연방 영웅칭호를 얻었다.

 

류드밀라 파블리첸코는 가장 대표적인 소련 여성 저격수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전쟁이 났을 때 대학에서 역사를 배우고 있었지만 이미 사격 경기에서 명사수 칭호를 받고 있었다.

루드밀라.jpg
<루드밀라 파블리첸코>

나는 아직 군에서 여성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지원했다. 처음에는 간호사 자리를 배정받았지만 거절했다.”


그녀는 19418월에 저격수 생활을 시작했고 10개월 만에 187명을 사살했다. 특히 대항저격(*1)에 소질이 있던 그녀는 토카레프 SVT40 반자동 저격총을 애용했다. 크림 전선으로 이동한 그녀는 19426월에 박격포탄에 부상할 때까지 무려 309명을 사살했고 최고의 여성 저격수로 역사에 남았다. 후방으로 후송된 그녀는 미국을 친선방문,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 비록 저격총은 아니지만 화려한 조각이 각인된 윈체스터를 선물 받았다. 소령까지 진급한 그녀는 저격 교관이 됐고 퇴역한 뒤에도 퇴역군인의 복지를 위해 활발히 일했다.

 

여성 저격수의 생존 확률도 다른 저격수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낮았고, 특히 붙잡힌 뒤의 운명을 두려워 한 이들은 항복하기보다는 자살을 택했다. 마리야 볼리바노나와 나탈랴 코쇼바 일병은 모두 300명 이상을 사살한 저격수였으나, 19428월에 아군과 떨어져 포위당했다. 탄약이 떨어질 때까지 전투를 계속한 그들은 탄약이 떨어지자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고 기다렸다. 독인군이 그들의 은신처에 들이닥치자 작별의 키스를 나눈 뒤 안전 레버를 놓았고, 두 사람을 포함한 주변의 전원이 몰살했다. 이들은 19432월에 소연방 영웅 칭호를 받았다.


여성 저격수 학교의 졸업생은 1061 명이지만, 이들이 사살한 독일군은 무려 12,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1 대항저격 : 상대 저격수의 공격을 받았을 경우, 아군 저격수를 불러 제거하는 방식.

출처 스나이퍼 : out of nowhere
마틴 페글러

121~1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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