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더 이상 마음의 빚은 품지 않으려 합니다
게시물ID : sisa_9166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샌들우드
추천 : 2
조회수 : 35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5/02 16:35:27
저는 94학번입니다.

제가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참 풍요로운 시절이었습니다.
그 시절엔 몰랐지만
제대를 앞두고 터진 IMF 사태를 겪으며,

X세대로 상징되는 그 또래들이
얼마나 행복한 20대를 보냈는지
새삼 돌이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세대 모두가
시대의 아픔을 외면했던 것은 아닙니다.

95년 어느 봄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두 시간 짜리 지루한 강의를 듣고 있던 도중에
같은 과 친구가 뒷자리에 들어 와 앉는 것을 보았습니다.

뭐하다 이제 들어 오나 싶어 그 친구를 봤는데,
터진 입술에 피가 말라 붙어 있었고
머리는 하얗게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더군요.
시커먼 손등에는 무엇엔가 긁힌 자국들이
멀리서 보기에도 확연했죠.

누구랑 싸웠을까?

수업이 끝나고 그 친구가 금방 사라진 탓에
그 친구에게는 아무 것도 물어 보지 못했고,

나중에 선후배들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힘 없는 철거민들을 대신해 용역들과 맞서 싸우는
동아리에서 그 친구가 활동 중이었다는 거였죠.

왜인지 저는 미안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옳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던
선배, 동기, 후배들이 경찰서에 끌려갔다더라 하는
소문을 들으며 그들과 함께할 용기가 없었던
저 자신을 창피하게 생각하기도 했었죠.

저와 삶의 결은 다르지만 용기를 내어
사회의 부조리와 맞서 싸웠던 친구들을 보면
저는 한낱 날라리에 불과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뭐라도 도울 일이 있으면 삐삐쳐라"

저는 그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했지만
정작 그들의 연락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외면해 왔던 것도 사실이었기에
그 미안함을 간직한 채 살아왔고,

저의 거의 유일한 정치활동이었던 투표에서는
나 대신 정의를 위해 싸워준 진보세력에게
꼬박꼬박 표를 던져 왔던 것이
마치 그 마음의 빚을 더는 일 같았죠.

저는 이번 대선 국면에서 정의당과
심상정 후보에게 화가난 상태이지만,
진보 세력 모두를 싸잡아 비난할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 빚을 갚기 위해 애쓴 제 마음의 곳간이
텅텅 비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세상이 바뀌고 적폐가 하나 둘씩 일소되면서
제 맘 속에 텅빈 공간이 채워지게 되면

적어도 우리 나라에 진보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이 소멸되어서야 되겠느냐 하는
생각이 다시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더 이상 마음의 빚은 품지 않으려 합니다.

적폐청산의 꿈이 현실이 되는 그 날까지...

[아래 윤갑희 님의 페이스북 글을 보고]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