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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과 일곱 번의 대통령 선거(feat.아버지&딸)
게시물ID : sisa_9234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술깊은숲길
추천 : 14
조회수 : 47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5/08 00:4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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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그 해 초여름. 삼수생 주제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만날 시위대 뒤꽁무니를 따라다녔다. 집권당의 실세 정치인이 개헌을 약속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줄 알았다. 그 해 겨울 검은색 두루마기를 입은 후보에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내 인생의 첫 대선 투표는 참담한 패배였다. 아버지는 집권당의 투표참관인으로 투표장을 지키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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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2, 막 제대를 하고 집에 있는데 광주에 사는 후임이 말년 휴가 나왔다고 자기 집 놀러 오란다. 그 후임의 집에서 본 대통령 취임식. 두 달 전에 있었던 대선에서 나는 87년에 찍었던 그 후보를 다시 찍었지만 또 떨어졌다. 그러나 그 때보다는 덜 아쉬웠다. 내가 찍지 않았지만 그가 잘 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얼마 후 아버지가 다락에 보관해 둔, 포장이 뜯어지지 않은 시계가 여러 개가 발견됐는데 열어 보니 숫자 03만 쓰인 신기한 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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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겨울. DJDOC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대선을 즐겼다. 대선 후보가 화장도 하고, 고운 색깔의 넥타이도 매는 것이 신기해 ~ 우리나라 정치인도 세련될 수 있네라며 친구들과 시시덕거렸다. 삼수를 해본 나는 그가 이번에는 꼭 되기를 바랐고, 결국 난 내 생애 첫 대통령을 가지는 기쁨을 누렸다. 아버지는 내가 찍은 후보를 향해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이라고 깎아 내렸고 나는 그런 아버지가 좋아하는 손녀딸을 격주로 보여드리는 패악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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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겨울. 대선 하루 전 몽니를 부리는 한 후보 때문에 함께 술을 마시던 친구놈들 넷이서 나에게 포섭을 당했다. 다음날 해장국으로 유혹해 친구들을 투표장으로 불렀고 모두 다 내 앞에서 손가락을 브이자로 펴보이고서야 개운한 해장국으로 속풀이를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이번엔 특정지역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셨다. 일관성이 없으니 이해하기도 어려웠지만, 아무튼 아버지는 내가 찍는 후보만은 찍지 않는 일관성을 유지해 주셨다. 아버지께 드리는 용돈이 6개월간 50%로 깎였다. 사실, 그 무렵 승진해서 월급도 팍 올랐을 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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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겨울. 내 생애 최악의 대선. 뭐만하면 내가 5년 전에 찍었던 그 분 탓이라던 시절. 이미 운동장은 기울었고 사람들이 지쳐있을 때, 서울을 봉헌하겠다는 기염을 보이는 분이 고소영을 등에 업고 대선 판에 나섰다. 내가 지지한 당의 후보는 연일 헛발 아니면 말실수+언론들의 추임새로 고전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결국 역대 최저 득표율로 참패. 지금은 궁물이 있는 당에 가 계신다나 뭐라나. ~! 그 때 당선 되신 분도 국밥을 좋아하신다며 아직도 배가 고프다더니 결국 나라까지 말아 드셨다. 우리 아버지도 국물을 좋아하셨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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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겨울. 다 될 줄 알았다. 나라가 썩을 대로 썩어버려서 모든 국민들이 함께 분노해 줄줄 알았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개표과정에서 석연찮은 이야기가 바람결에 들려오더니 자정이 넘기기도 전에 전혀 딴판인 결과가 나왔다. 허무하고 가슴이 무너질 것 같았다. 지나간 5년의 악몽보다도 다가올 5년이 더 끔찍했다. 내가 분노하는 모습을 지켜본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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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봄. 그럴 줄 알았다. 썩은 것은 냄새를 피우기 마련이다. 냄새가 나도 치우지 않는다면 냄새를 느끼지 못하거나 그 썩은 것과 같은 종류일 뿐이지. 지금까지 여섯 번의 선거에서 나만의 승률은 33.3%. 이번 일곱 번째 선거에서 이기면 42.8%... 아직 갈길이 멀다. 내 생애 대선 투표에서 66.6%의 승률은 넘겨야지. 열심히 영업했다. 지역의 몰표 분위기도 없어졌으니 고객들은 주변에 차고 넘친다. 선거일이 가까울수록 을 바라보고 있다. 공무원시험 준비하고 있는 손녀딸이 할아부지, 달님이 저 일자리 많이 만들어주신댔어요.’라고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말없이 이번 사전투표에서 그를 찍었다고 옆에 있던 어머니가 알려주셨다. ^^
(끝을 어떻게 하지?? 이니하고시픈거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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