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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췌장암(증상부터 마지막끼지)
게시물ID : medical_191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을유문화사
추천 : 11
조회수 : 295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5/08 03:09:45
이 글은 특별한 정보를 제공하는 글도 아니며 대체의학이나
 민간 요법에 대한 글도 아닙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췌장암 진단을 받은 이후부터 사망시까지 특별한 의료지식을 갖지 못한 사람으로서 너무 답답했던 점이 많아 인터넷에서도 여러 정보를 찾았었지만  대부분이 병원이나 식품종류 광고글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아버님의 사례를 정리하여 혹여라도 검색하시는분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만 같은 병이라도 사람마다 증상이나 진행속도가 다른것이 분명하니 꼭 감안하시길 당부합니다. 

1월 8일.  어머니와 다른 지역의 병원에 다녀오신 아버지께서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시며  쉬어가자는 말을 하셨다. 

1월 9일. 아무래도 이상하여 어머니와 간호사 출신의 지인께서 같이 병원에 가셨고,  필요없다는 아버지와 의사의 이야기를   저 두분이서 고집을 피워 ct를 찍었다.   Ct 결과 췌장쪽에 무엇인가 보인다는 의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지역의 대학병원에 갈 것인지 서울의 병원으로 가볼 것인지 고민한 끝에  진료예약이 1월13일로 잡힌 서울의 한 큰 병원으로 결정되었다.  

1월 13일.  아버지께서 직접 차를 몰고 서울병원에 가셔서 mri 펫씨티 등을 촬영하였다.  결과는 일주일뒤 1월 20일에 확인하기로 약속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내가 운전대른 잡았다.  행담도 휴게소에 들러 식사를 했고 아버지께서는 국밥을  몇 수저 드셨다. 

1월 14일.  새벽 3시경 어머니께서 거실로 달려나왔고,  소리를 지르며 집안의 가족을 불러모으셨다.  급히 나가보니 아버지께서 화장실 변기에 앉아계시다 앞으로 풀썩 쓰러지셨고,  변기를 확인하니 혈변이 보였다.   급하게 119를 불러 한 병원의 응급실로 아버지를 모셨고,  아버지는 자꾸 변의를 느낀다며 화장실을 가시겠다고 여러번 이야기 하셨다.   급하케 진행된 몇몆 검사를 통해 내부에서 출혈이 있는 것 같다고 했으며,  내시경을 통해 겨우 출혈부위까지 확인할수 있었다.   내시경을 통해 본 아버지의 위장쪽은 이미 피가 차 있고,  내시경에서 물인지 소독액인지 나가는 물로 피덩이들을 밀어내야만 겨우 내장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혈관을 막는 시술도 불가능한 부위이라고 하며  출혈이 멈추지 않을 경우 최악윽 사태를 준비하라고 했다.  그래도 포기할수는 없어 구급차른 타고 광주의 대학병원으로 이송을 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담당의가 검사기록지 등과 아버지의 상태를 보더니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변의를 느끼신다머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하셨지만 담당의사가 아닌 다른 의사는 아버지가 위치한 병상자리는 절대 그럴수 없는 환자들 자리라며 화장실 이동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수차례 완강하게 호소했고,  담당의사가 한동안 고민하다가 그냥 보내라는 허락을 내렸다.  휠체어로 아버지를 모시고 화장실로 갔더니 아버지는 진한 와인색의 혈변을 수차례보셨고  폰인 스스로 혀를 차셨다.  내시경실로 가셔서 출혈부워를 살펴본지 수십분,  또 의사가  별다른 방법이 없으며 혈관을 막는 시술 또한 별 의미가 없다하면서 의식이 있을 때 가족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그 와중에도 수혈은 계속되었으며 피 수치?는 7 정도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수십분째 기다림끝에 여러 수치가 다행히도 다시 호전되었다. 응급실  위쪽의 병동으로  옮겨지셨다.  그리고 이날부터 기나긴 금식이 시작된다.

1월 15일.  병실 담당의 젊은 의사가 출혈은 일단 멈춘것으로 보이며, 여러검사 결과 췌장암은 분명하며 그  정도는 3기정도로 추정된다고 이야기 하였다.  말로만 들었던 췌장암,  걸리면 죽는다는 그 암이란다.  그 의사는 아버지의 여명을 대략 10개월 정도로 보았다.   그리고 급한불은 꺼진것 같으니 
이미 검사를 진행한 서울의 병원에서 정확한 검사결과른 보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1월 16일.  대학병원에서 의대교수로 일하시는 아버지의 친척분께서 방문하셨다.  서울에서 수술을 받을수 있으면 꼭 받으시라 이야기 하셨고,  여러 궁금한 이야기에  답을 해주셨다.  그리고 나를 따로 불러 말씀하실 때,  조용히 아버지의 여명을 물을  때,  췌장암 그 자체로는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있겠지만,  출혈이 분명히 또 있을것이며,  그로 인한 패혈증이 걱정된다 하셨다.  그리고  그 기간은 3개월로 이야기 하셨다

1월 19일.  대학병원 병실에서 집 근처의 병원으로 이동하였다.  식사를 못하시니 병원에서 허연 영양제로 버티셔야한다. 
간간히 통증을 호소하신다.  

1월 20일.  서울의 병원으로 가서 담당교수를 만났고,  췌장암 선고를 또다시 들어야했다.  우리는 한주간 있었던 이야기를 했고,  사정하며 입원할수 있었다. 

1월21~ 27일.  아버지는 종종 진통제를 요구하셨고,  여전히 금식이다보니 체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변비증상이 시작되고,  힘들게 보신 변은 아직 꺼먼색이었다.

수술은 불가능하며 항암이야기를 들었다.  지방의 대학병원에서 함암치료를 받으나 서울병원서 받으나 함암은 비슷하다고 하였고 선택은 우리의 몫이 되었다.  

1월 28일.  미음부터 시작하여 보름정도만에 다시 음식물을 입에 넣으실 수 있었다.  커피맛이 나는 유동식도 드시기 시작했다. 식사 이후 진통을  조금 더 자주 이야기 하시는 것 같다.  

1월 29~ 2월 1일.  미음이 계속 나왔지만 얼마 드시지 못하고,  변비 증상은 계속되었다.  내시경을 위해 장을 비우는 약을 드셨다.  퇴원을 며칠 앞두고 또 다시 혈변이 나왔다.  다시 금식상태가 되었다.  

2월 3일.  출혈이 좀 멈춘듯 보이자 항암치료를 위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계속 금식이기 때문에 지역병원에 입원하여 영양제를 계속 맞으셨다.  설하정이라는 진통제와 붙이는 패치 등을 처방받고 사용하였다. 

2월 6일.  암전문 대학병원으로 이동하였고,  입원을 별로 원하지 않는 담당교수에게 사정하여 입원을 하였다.  수술은  글렀고 항암은  식사를 어느정도  하고 체력이 되어야  한단다. 

2월 7일~ 12일.  미음으로 시작하여 12일부터는 죽을 드셨다.  진통제를 찾는 횟수가 느셨다.  

13일 오후 2시경,  안색이 창백해지시더니 화장실을 찾으셨다.  그리고 변을 보시려 한참을 앉아계시다가 일어나시려고 할때 눈이 위로 치켜떠지며   손도 경직된 상태가 되었다.   급하게 쓰러지는 아버지를 잡아 세우며 의료진을 호출했고,  침대에서 누워계시니 안정이  취해지는듯 싶었다.  오후 9시경 엄청난 혈변을 보셨고 입으로도 꺼먼 피를 여러차례 뱉어 내셨다.  의사는 짜장색과 같은 혈변이 나올것이라 이야기 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새까만,  냄새도 나지 않는 타르같은 변이 나왔다.  담당의사는 올것이 왔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최악의 경우를 준비하라 하였고,  중환자실로의 이동을 이야기했다.  이번에 중환자실로 가면 다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못볼것을 예측했기에  고집을 피우며 새벽 2시경까지 혈변과 토혈을 받아냈다.   그래도 각종 수치가 안좋아지고 더이상 병실에서 감당할수 있는 상태가 아닌것을 알고,  의사가 설명해준 서류에 서명을 하고,  의미없는 연명 처치등은 바라지 않는다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답을 또다시 나의 서명으로 문서화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중환자실로 들어가셨다. 

2월 14일.  중환자실은 보호자도 단 두번만 들어갈 수 있었다.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중환자실 옆의 의자에서 어떤 자세로 있어도 불편한 마음과 몸을 구겨넣은채 면회 시간만 기다렸다.  아버지가 누워있는곳은 중환자실 내에서도 격리되어 있는 방.  아버지가 의사들이 포기했는지 별다른 조치가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신다. 그리고 시간을 알수 없어  너무나 힘들다고 하셨다. 오후에 들어갔을 땐 몸에서 열이 나는걸 떨어뜨리기 위함인지 얼음팩이 아버지 등쪽에 있었는데,  창백해진 입술과 턱을 덜덜 떠시며 춥다는 말을 여러차례 하셨다.  이  날이 마지막 날일것 같아 면회시간 이후에 너무도 많이 울었다. 

2월 15일.  오전 면회시간의 아버지의 모습이 어제보다 한결 나아진 모습이셨다.  피 수치도 1  올랐다고 했다.  
오후에는 별도의 방에서 일반 중환자실로 옮겼다.  

2월 16일.  아버지 양옆의 중환자 두분이 밤사이 먼길을 떠나셨다.  그런데 아버지의 상태는 많이 호전되어  직접 면도까지 하셨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너무나 기뻤지만 주변의 사경을 헤매시는 분들의 모습에 곧 침울해졌다. 

2월 18일.  너무도 무서웠던 중환자실을 떠나 다시 병실로 올라왔다.  그런데 75킬로의 아버지 체중이 50킬로대로 줄어들었다.  앙상한 팔뚝과 다리가 보였다.   

2월 20일.  병실 담당 의사가 방사선 치료에 관하여 이야기를 했다. 경험적으로 아버지같이 출혈을 동반한 암의 경우 방사선 치료시  출혈이 줄어들거나 멎는 경우를 종종 본다고 하였다.  출혈만 멈춘다면 그래도 몇개월의 기간은 더 허락되지 않을까?

2월21일 26일.  미음드시는것도 두려워 하시는 아버지를 설득하고 설득해서 다시 미음식사를 시작하시게 하였다.  몇숟갈 못 뜨신다.  그래도 출혈 증상이 한동안 안나타났다.  

2월 27일 방사선 치료 10회 목표로 치료가 시작됐다. 
아버지 배에 표적같은 그림이 그려졌고,  방사선 치료 자체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2월 28일 ~ 3월 3일
평일 저녁마다 방사선 치료를 받으셨다.  출혈은 없었고 통증의 빈도도 조금은 덜하신 것 같았다.  아버지께서 과거에 잘 안하시던 옛날 이야기늘 가끔 해주셨다.  드시는 미음의 양을 점점 늘리려 노력하셨다.  3월 2일 저녁 담당의사가 퇴원을 이야기했다.  3 1 절  휴일관계로 방사선 1회른 못했는데,   출혈은 어느정도 잡힌것으로 보고 나머지 1회 방사선은 통원치료로 받자고 이야기했다.  이제 우리 가족이 기대하는 것은 출혈만 없다면 아버지 식사 등으로 체력을 회복하고 항암 치료를 받는 것. 

이쯤에서 아버지에 관한 소개를 조금 하고자 한다.  약주를 좋아하셔서 맥주1.5 페트병을 2통씩 꾸준히 날마다 드셨다.  병원 가시기 싫어하셨으며,  췌장암 진단초기에도 항암치료는 절대 안하시겠다고 장담하셨었다.  그러나 진단 이후 약 2개월,  그 기간동안 의사에게서 준비하란 말을 들은것만 3번.  수차례의ㅣ 혈변과 토혈,  그리고 남은 가족에 대한 걱정은 아버지로 하여금 가능한 모든 방법을 사정해서라도 시도하고 싶게 만들었나보다.  그렇게 완강히 거부하시던 항암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3월 4일 대학병원에서 퇴원했다. 

3월 5~7일.  드디어 집으로 오셨다.  집이 좋다라고 이야기하시며 평상시 본인의 자리에 누으셨다.  그런데 이제는 진통이 아버지를 괴롭히나 보다.  패치는 갑자기 찾아보는 급성 통증을 잘 못막는것 같았다.  혀 밑에 녹여먹는 진통제는 쓰기 무서웠다. 주말과 월요일 삼일정도만 집에서 머무시다가 결국 집 근처의 병원에 입원하셨다.    

3월 8일 ~ 4월 4일.  입원하신 병원에서 간간히 진통제를 맞으시며   허연 정맥 영양제와 약간의 미음을 드셨다.  대학병원 진료날에는 잠깐 외출로 돌리고 대학병윈으르 갔다.  항암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담당교수는 아버지의 체력의 더 붙으면 하자는 이야기만 했다. 그리고 그간 들었던 용하다는 응식들  블락시드오일이니 차가버섯이니 연근등을 먹어봐도되냐는 물음에 드시고 싶으시면 드시는 거지요.  다만 추천하진 않습니다.  라고 이야기 하였다.   치료도 못받아봤는데 정 억울하시면 드시라 라는 이야기였다. 결국 이런 저런 곳에서 구입한 혹은 얻은 악들은 그냥 두었다. 

4월 4일.  아버지 병원을 드나들며 별다른 이상징후 없이 아버지와 저녁인사를 나누었다. 

4월 5일.  오후 4시경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급하게 달려가니 또 출혈 증상이 있었고,  중환자실로 옮기기로 했다.2번의 위기를 넘기셨으니 이번에도 잘 넘기실거라 믿었었다.  아버지의 의식도 대학병원 응급실때보다 양호했고,  본인의 스마트폰을 중환자실에 놓고 가라고 하실 정도였다.  그런더 2번 있는 면회 시간마다 아버지의 상태는 급속도로 안좋아지고 있었고,  중간중간 눈동자가 조금 돌아가며 의식을 찾지 못하셨다.  

4월 6일.  그래도 오전 면회때 찾아오신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셨다.   그리고  가족들에겐 약간의당부 말씀도 남기셨다.   저녁 면회 시간때엔 신소호흡기에 의지하신채 거친숨을 쉬셨고  의식을 찾지 못하셨다.   

4월 7일 .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중환자실 간호사가  가족을 찾는다.  아버지의 의식이 떨어졌다라는 표현을 썼다.  의식은 없는 상태로 숨만 겨우 쉬고 계셨다.  그 상태로 4시간..   아버지의 혈압 맥박이 서서히 떨어지더니  맥박이 50 이하가 되었다.   어머니께서 생수병 뚜껑에 물을 조금 담아 아버지 입에 넣어드렸다.   거짓말처럼 꿀꺽 소리를 내며 삼키셨다.
의사가 말하기로 아버지의 증상이 패혈증과 일치힌다고 했다.  다만 아버지의 몸은 열이 없이 평범했는데,  몸의 면역력이 떨어져 제기능을 못하니 패혈증임에도 열이 안나는거 같다고 설명했다.  4시 40여분경  아버지의 맥박이 0에 가까워졌다.  안타까운 마음에 소리내어 아버지를 부르면 잠시나마 맥박이 조금 더 올라갔다.   그 과정이 몇번. . .   

이것이 췌장암 진단이후 불과 3개월 안에 벌어진 일이다. 아버지의 췌장암 증상은 비교적 통증이 적었고,  출혈때문에 아무 시도도 못하였다.  이제와서 생각하면 아버지께서 위장약 갤포스 같은것을 찾으신것이 작년 9 10월경인데 이때쯤은 아버지가 등 통증을 호소하신 시기와 비슷하다.  등이 아프신것을 단순한 허리통증으로 여겼었고,  속이 안좋은것은 나이때문에 술을 못이기신것으로 생각했었다.   췌장암은 증상이 딱히 없고,  알았을때는 이미 늦은 병이라고들 한다. 또 다른 많은 병들도 그렇다. 
그래서 간곡히 권하건데 부모님이나 소중한 사람들에게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꼭 받게 하시기를. . 

그리고 병상에 계신 부모님과 많은 이야기 나누시길. .   이것이 정말 쉽지 않았다. 아버지가 당연히 회복하실것으로,  혹은 아버지 입장에서 이런말은 아버지 본인이 돌아가실 것으로 예상하고 하는 말처럼 들릴까봐 아껴뒀던 이야기들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  혹여라도 이 글 보시는 간병하시는 가족분들은 이런 후회 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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