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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스토리
게시물ID : readers_285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께소
추천 : 7
조회수 : 36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5/29 18: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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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당신을 그렸던 날이 있다. 우리 집 욕조 겸 샤워실 옆엔 작은 창이 하나 있는데, 투명하고 울퉁불퉁한 그것은 언제나 닫혀 있는 채다. 욕조에 누워 올려다보는 창은 내게 빛만을 보여줬다. 그래서 나는 목욕을 할 땐 욕실 불을 절대 켜지 않았다. 빛이 밝으면 날이 좋구나, 했고 빛이 어두우면 구름이 해를 잠시 가렸구나, 했다. 욕조엔 물이 발목 높이에 닿을 때부터 서둘러 들어갔고 누워서 배꼽이 가라앉을 정도가 되면 서둘러 수도를 잠갔다. 욕조에 드러누웠다가 잠시 윗몸을 일으켜 두 발을 뻗어보면 다 자란 내 발이 그리 작아 보일 수 없었다. 그러나 이내 어렸을 적에도 지금보다 한참은 작은 자신의 발을 보며 같은 생각을 했다는 걸 기억해내는 것이다.

작은 욕조 안에선 온전히 내 몸을 펼 수 없었기에 물속에 들어가지 못해 차가운 피부에 물을 끼얹고는 했다. 그게 귀찮아질 즈음이면 몸을 왼쪽으로 돌려 누웠다가 오른쪽이 차가워지면 다시 오른쪽으로 누웠다. 그리고 왼쪽이 차가워져 다시 왼쪽으로, 그러니까, 창이 있는 벽을 향해 누운 그 순간이었다. 어쩌다 한 번 듣게 된 어떤 아이와 어머니의 목소리를 또 듣고 싶어 물속으로 귀를 기울인 나는 이번엔 어느 먼바다의 목소리를 들었고 당신을 생각했다. 당신에게 이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가, 당신이라면 이미 같은 소리를 들어본 적 있으리라 싶었다.  

보이지 않는 창밖을 올려다보니 내가 참 좋아하는 날이었다. 아까까지 나를 울고 싶게 하던 하얀 욕조와 그림자가 진 내 몸과 파란 타일이 이젠 제법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나는 몸을 완전히 일으켰고 빛을 맞으며 머리를 감았다. 

그날 밤 당신이 꿈에 나왔다. 눈을 떴을 땐 방 창문을 가리고 있는 커튼이 보였다. 햇빛이 들기 시작해 커튼에 새겨진 갈색 풀잎들을 포근하게 비추었다. 눈에 들어온 그 풍경이 꿈에서 본 강아지풀과 해 질 녘과 당신과 겹쳐졌다. 나는 시를 써야만 했다.

그런 당신을 창밖으로 내려다본 날, 소리 내 울었다. 언제나 그렇듯 세상 사람이 전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내 목소리가 크다는 사실을 잊고서 말이다. 당신은 내가 언젠가 꼭 별에게 하고 싶어 했던 것처럼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타닥타닥 빛나는 불꽃놀이 스틱이 하늘을 향해 자라는 나무의 가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당신이 별 헤는 밤을 부를 때면 나도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어머니를 불렀다. 당신은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했다. 나도 그랬다. 우리는 손을 잡고 내가 별똥별을 발견한 거리를 걸었다. 당신은 오래전 이 길을 걸은 적이 있었다며 웃었다. 나는 당신이 빈 소원을 떠올리며 웃었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까만 도시의 밤하늘에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된 건 그래서이다. 

창 안에서 당신과 나란히 있다. 우리는 불을 켜지 않고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블라인드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에 아침이 왔으니 잠들자 한다. 눈을 뜬 채 꿈을 꾼다. 꿈속의 당신이 눈앞에 있다. 포근하게 안아준다. 글을 쓰고 싶다. 그렇게 꿈꾸며 글을 쓴다.



새벽에 잠이 안 와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어요. 그러다 메모장을 열어봤는데, 전에 적어뒀던 누군가의 짧은 말에 훌쩍였네요. 그리고 이 글을 썼지요.

저는 지리산에 다녀왔고요. 핸드폰도 안 터지는 산중에서, 정말 별이 많이도 빛나는 하래 아래서 따뜻한 잠을 잤어요. 계속 움켜쥐고 있던 걸 놓기 시작했고요. 책을 읽고 듣고 또 글을 쓰고 있어요. 에어컨은 아직 안 틀었고. 음.

원래 견디질 못하는 여름이지만, 잘 보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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