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단편] 소도둑
게시물ID : readers_286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상연
추천 : 3
조회수 : 50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6/09 08:53:08
옵션
  • 창작글
몸통 세 개, 다리가 여섯개 달려있고 두 더듬이를 가진 까만 것. 부스러기를 찾으면 동료를 불러모아 조각조각 뜯어가는 땅바닥의 사채업자. 나는 이것을 "게미"라 썼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어느 여선생님이 웃는다. 틀린 건가? 나는 엄마를 바라봤다. 표정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여선생은 "집 전화번호가 뭐야?"라고 물었다. "016 9164 8801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또 세사람만 웃는다. 다시 엄마 얼굴을 봤다. 맞는 건지 틀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후 생애 처음으로 교실에 들어갔다. 책상과 의자, 칠판 따위밖에 없는 암울한 공간은 장난감이 쌓여있던 유치원과 대비되었다. 암갈색 마룻바닥에서 냉기가 흘렀다. 발가락이 시렵다. 여선생님은 교실이 어떠냐고 물었다. "꼬랐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말했다. "나 학교 다니기 싫어!". 여수시 소라면에 있는 소라 초등학교는 내가 처음으로 다닌 학교였다.

 포크레인 사업으로 졸부의 길을 걷던 아빠는 IMF 국가부도로 망했다. 그래도 여전히 포크레인 한 대와 스타렉스 한 대, 티코 한 대와 휴대폰을 들고 다녔다. 그러나 이제 그마저도 모조리 팔아야 했다.

 새로 이사온 시골집은 이상했다. 방이 8개 정도 있는 일본식 주택에 거친 돌로 다듬어진 이상한 수영장과 연못이 하나씩 있었다. 사방이 대나무로 빼곡히 둘러 쌓였다. 토토로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첫날 동안 집으로 돌아가자고 때를 썼다.

 마당에서 1~2분 정도 걸으면 페인트 칠이 벗겨진 녹슨 철문이 나온다. 그게 대문이었다. 문 옆에는 닭장 같은 커다란 개집이 있었다. 아빠는 커다란 일본 사냥개를 데려와 그곳에 묶어 길렀다. 이 개를 큰껌둥이라 불렀다. 기왕 개 키우는 거 작은껌둥이, 해피, 짱, 다롱이, 딸랑, 작은 강아지까지 모조리 대려다 풀어 놓고 길렀다. 이것들은 사방천지에 똥과 오줌을 싸지르며 꼬리를 흔들어 댔다.

 아침이면 엄마가 나를 깨웠다. 억지로 일으켜 세워 빤스를 입혔다. 네모난 빤스는 할아버지가 입는 빤스 같았다. 가운데는 오줌 구멍, 속에는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이 촌스러운 빤스는 할머니가 만든 것이다. 엄마는 양말도 신겨주고 바지도 입혀주고 셔츠도 입힌 다음에 밥까지 떠먹여 주었다. 그 다음 아빠가 나를 업고 차까지 갔다.

 티코를 타고 등교를 했다. 하교 때는 혼자서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버스에 내리고도 집까지 15분은 걸어야 했다. 가는 도중에 바닥에 있는 돌을 유심히 봤다. 그러다가 수정같이 투명하거나, 빨갛게 빛나는 것이 있으면 모조리 주웠다. 천으로 내려가 콩가루처럼 묻어있는 모래를 씻어냈다. 돌멩이가 반질반질해졌다. 투명한 것은 다이아몬드이고 빨간 것은 루비다. 이것을 팔면 부자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 돌멩이를 주워서 마당에 쟁겨놓았다. 팔면 수백억 정도 될 것이다. 보석을 주물럭 거렸다. 아, 든든하다. 우리 아파트로 돌아갈 날이 멀지 않았다. 

 새알만한 핑크 다이아몬드를 주워온 나는 아빠를 찾았다. 티코 앞에 서있던 아빠는 88라이트 한 까치를 꼬나물고 있었다. 방금 주운 핑크 다이아몬드를 보여주었다. 아빠가 꼬나문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한 쪽 무릎을 굽혔다. 땅바닥을 훑어보더니 비슷한 돌멩이 하나를 주섰다. 내 눈높이 만큼 고개를 든 아빠가 말했다. "상연아, 이건 차돌이란 거야. 차돌. 다이아몬드가 아니야".

 하지만 분명히 책에서 나온 그림과 똑같은 것도 있었다. 이 많은 돌멩이 가운데 보석이 없을리가 없다. 주워온 돌멩이를 아빠에게 모조리 보여줬다. 아빠는 하나하나 살펴 봤다. 길쭉한 잿기둥이 툭 끊어졌다. 불씨가 아슬아슬하게 남은 꽁초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꽁초는 불꽃을 튀기며 화단 속으로 들어갔다. 쓰읍. 하아~ 한 숨 같은 담배연기를 내 뱉으며 아빠는 모두 차돌이라고 했다.

 그동안 주워온 돌은 흔하고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즉 부자가 될 수 없었고 아파트로 돌아갈 수 없었다. 풍족했던 마음이 빈곤해 졌다. 다음 날 집으로 돌아오자 마당에 쟁겨놓은 차돌이 싸그리 사라져 있었다. 치워버린 것이다. 나는 다익은 벼보다 무기력하게 고개를 숙였다. 발 아래 따라붙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었다. 강아지를 멍하게 바라봤다.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는다. 그리고 집에가면 개빼고 아무도 없었다. 땅 위의 무인도가 여기에 실존했다. 가끔 비행기 소리가 들리면 마당으로 뛰쳐나가 하늘을 봤다. 우웅 거리는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섰다. 혹은 자동차 소리가 들리면 대문까지 달렸다. 문 틈으로 지나치는 자동차를 바라봤다. 과장해서 10km밖에 사람 냄새가 나면 개보다 먼저 반응했다.

 고요속에 커져가는 내 존재감에 공포를 느꼈다. 내 숨소리가 커질 수록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나만이 존재했다. 내면에 끌어오는 고양감을 느꼈다. 세상이 조용해지면 마음이 시끄러워진다.  

 학교가 끝났다. 버스비로 달랑 300원을 갖고 문방구 앞에 섰다. 아이들이 문방구 앞에서 생소한 게임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동전을 넣어 버튼을 누르면 메달이 나왔다. 하나, 세개, 일곱개, 최대 스무개까지 나왔다. 스무개는 곧 2천원 정도로 가치를 지녔다. 혹은 메달 2개를 100원으로 바꿀 수 있었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버튼. 자세히 보니 짱깨뽀, 가위 바위 보 게임이었다.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하루사리 같은 300원을 조물락 거렸다. 동전을 굴리는 촉감을 느껴가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돈을 꼴은 아이. 메달을 딴 아이. 옆에서 유심히 바라봤다. 그리고 몇 가지 규칙을 알아냈다.

 동전을 넣고 게임을 하면 가위바위보 기회가 두 번 주어진다. 메달을 넣으면 한 번만 기회가 있다. 메달을 얻기 위해서는 동전을 넣는 것이 유리했다. 또 동전을 넣고 하는 게 메달을 넣고 하는 것보다 자주 승리했다. 문제는 아이들이 멈출 줄 모르고 게임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100원으로 메달을 많이 따더라도 다시 게임기에 처넣어 모조리 잃을 때까지 했다. 멈출 때 멈추지 않으면 결국엔 모두 잃는 게임이다.

 누군가 한 판을 진 다음에 게임을 하면 메달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두 번 연속 패배하면 세 번째에 메달이 나오고 세번째에 지더라도 한번더 도전해서 네 번째에 도전하면 메달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한 아이가 게임에서 돈을 꼴았다. 나는 곧 바로 동전을 넣었다. 그리고 메달 일곱개를 따냈다. 따낸 메달은 게임하는데 쓰지 않았다. 동전으로 교환했다. 500원 하고 메달 한 개가 남았다. 게임을 더 하려고 갔는데, 때마침 하교하는 2학년 무리가 다가왔다. 감히 차례를 기다리기도 힘들었다. 싸움 잘 해보이는 놈이 먼저했다. 혹은 돈을 먼저 올려 놓은 놈이 했다. 나는 옆에서 구경했다. 2학년은 게임하는 방식이 달랐다. 게임기 전원을 끄고 다시 키고 했다. 또는 동전을 넣기도 전에 버튼 3개를 꾹 누르는 놈도 있었다. 나 처럼 누가 패배한 다음에만 돈을 넣는 하이에나 같은 놈도 있었다.

 평소보다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버스를 타고왔다. 그런데도 내 수중에 십백원이 남아 있었다. 300원으로 십백원을 따낸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양말을 벗고 마루에 앉았다. 개들이 다가와 발을 핥았다. 아 기분 좋다. 그날 저녁 이불 속에 들어가 눈을 감았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심장 뛰는 힘이 얼마나 쌘지 몸통이 흔들렸다.

 해가 떴다. 일찍 일어나 스스로 책가방을 챙기고 티코를 탔다. 교문 앞에서 내렸다. 평소처럼 교문을 지나쳤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봤다. 멀어져 가는 아빠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기도 전에 교문을 도로 빠져나갔다. 문구점으로 뛰었다. 그리고 게임기에 동전을 넣고 무작정 버튼을 눌러댔다. 이 아침을 기다리느라 너무 괴로웠다. 패턴이고 뭐고 다 잊어버리고 돈을 퍼부었다. 메달이 쏟아진다. 이성보다는 직감에 맡겼다. 메달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동전이든 메달이든 모조리 처넣었다. 결국 모두 잃었다.

 버스비 조차 써버렸다. 허탈함을 지고 교실로 들어갔다.수업시간 내내 집으로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걱정했다. 집까지 걸어갈 수 있을까? 혹은 찾아갈 수 있을까? 얼마나 걸릴까? 다리를 달달 떨었다. 공책 끄트머리를 찢고 또 찢고 가루로 만들었다.

 4교시가 되었다. 조금 자라난 갈색 손톱에 끼인 때를 볼펜으로 긁어팠다.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빠에게 전화 걸 돈도 없다. 망했다. 심이 빠진 몽땅연필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애들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앞 자리에 앉은 아이가 필통 속에 천원을 집어 넣는 모습을 보게 됐다. 천원을 넣은 필통은 가방속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되자 전속력으로 달렸다. 식판 한 가운데 놓은 간식만 낼름 챙겨먹고 남은 음식은 모조리 버렸다. 빠르게 식당을 빠져나갔다. 교실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었다. 천원이 담긴 가방으로 갔다. 위가 쓰렸다. 몸통은 부들거렸다.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손에 힘이 쭉 빠진 동시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인기척이 없는 복도를 바라봤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벌벌 떨면서 가방에 달린 지퍼를 열었다. 그리고 필통 속에 천원을 꺼내서 호주머니에 처넣었다. 바로 교실을 벗어났다.

 학교가 끝났다. 300원을 남겨두고 700원으로 게임을 했다. 다 꼴았다. 그래도 300원이 남아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 양말을 벗고 마루에 반쯤 걸쳐 누웠다. 개들이 다가와 발을 핥는다. 다시 조용해진 세상. 고요함 속에 들리지도 않는 심장만 시끄럽다. 멋대로 멈출 없는 심장처럼 그 이후 행동도 멈출 수 없었다.

 "요즘 돈 사라지는 일이 많으니까, 돈은 단단히 챙겨라." 선생님이 말했다. 몇 가닥 남은 앞 머리카락이 솜사탕처럼 휘감겨진 담임 선생님. 들리지도 않는 벙어리처럼 창밖을 멍청히 바라봤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존재로서. 그러나 똑똑히 들었다.

 그 후로 가방에 돈을 넣고 다니는 아이는 없었다. 점심 시간이면 자물쇠로 교실 문을 철저히 닫았다. 아침마다 게임에 돈을 꼴아박았다. 더는 수입이 없어서 매일 집까지 걸어갔다. 한 번 걸어가보니 걸어갈만 했다. 1시간 반 밖에 걸리지 않았다. 나홀로 집에 있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대신 가는 길에 인도가 없어서 위험했다. 커다란 화물차가 쌔앵~ 지나가면 후끈한 먼지 바람을 뒤집어썼다.

 허탈한 나날이 계속 되었다. 책상에 앉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나다. 지우개로 교과서 제목을 쓱쓱 문대서 지운다. 그리고 국어는 굶어로 사회는 사기로 과학은 과자로 도덕은 돌떡으로 제목을 정교하게 바꾸는 일을 했다. 언제나 처럼 할 일이 없던 나는 음악을 으악!으로 개조시키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피아노 학원비랑, 영어 학원비  내야돼"라는 소리에 귀가 솔깃했다. 맨 뒷자리 가운데에 앉아 있는 아이는 그 손에 두툼한 봉투 두 개를 쥐고 있었다.

 지우던 손놀림이 느려졌다. 숨도 느리게 쉬었다. 초점은 창문을 향하고 있지만 의식은 봉투에 쏠려 있었다. 책상 안으로 봉투를 집어 넣은 소리를 들렸다.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수전증 환자처럼 손이 떨렸다. 몸통도 떨렸다. 한 교시가 끝났다. 국민건강체조 노래가 확성기를 통해 메아리쳤다. 제일 먼저 교실을 벗어났다. 

 그러나 운동장으로 가지 않았다. 밖에서 기다렸다. 아이들이 다 빠져나간 후 교실로 들어갔다. 서랍에 손을 넣어 봉투를 챙겼다. 두 봉투를 겹치니 새끼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두꺼웠다. 봉투를 들고 나갔다. 그리고 풀이 무성한 화단에 깊숙히 찔러 넣었다. 

 학교가 끝날 쯤 우는 소리가 들렸다. 학원비가 사라진 것을 알아차린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그 사실이 담임 선생님에게 알려졌다. 반아이들은 하교를 할 수 없었다. 문을 굳게 닫았다. 3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숨을 죽였다. 소지품 검사를 했다. 나는 썰렁한 가방을 자랑하듯 보여줬다. 선생님이 빈 가방을 보며 물었다."야, 교과서 어디갔어?" "다 서랍에 있어요." "환장하것네."

 사라진 학원비는 찾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너도 나도 돈이 사라진적이 있음을 증언했다. 증언을 하는 자는 범인이 아니다. 그런 의미였다. 그 사이에 끼어 "나도 돈 2000원 사라진적 있음"라고 거짓 고백을 하여 피해자 무리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사람 속에 숨는 것만큼 안전한 곳이 어디있겠는가? 양심은 화단에 던진 쓰레기가 된지 오래였다. 지금쯤 하수구를 타고 흐르고 있겠지.

 학교가 끝나고 한 참을 돌고 돌았다. 이후 화단으로 갔다. 화단에 있는 봉투를 꺼내어 돈을 셌다. 30만원이 넘는 거금이었다. 손 때 묻은 만원짜리 냄새가 진동했다. 30만원을 반으로 접자 벽돌 만큼 두꺼워졌다. 호주머니에 넣으면 볼록하게 튀어나왔다. 그래도 지폐란 나누면 한 겹의 피부 같이 숨길 수 있었다.

 15만원을 주머니가 달린 팬티에 넣었다. 그러면서 짧은 순간 상상을 했다. 돈을 다시 봉투에 집어 넣고 교과서 사이에 끼어 넣어 본래 책상에 돌려 놓는다. 다음 날 교과서를 폈다가 돈 봉투를 찾아 기뻐하는 아이에게 "멍청아, 잘 확인 했어야지"한 마디 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상상을 하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상상에 그쳤다. 화단에 버린 쓰레기를 다시 줍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적어도 나는 아니다.

 문방구에 도착하자마자 아주머니에게 만원 한 장을 건넸다. 아주머니는 잠시 묘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천원짜리와 백원짜리로 교환해 주었다. 당시에 초등학생이 설날이나 추석 이외에 만원짜리를 들고 다니는 일은 드물었다. 옆에서 그것을 보고 있던 한 녀석이 "우와! 부자다!"라고 외쳤다. “나 부자 아닌데.” 중얼거렸다.

 훔친 돈으로 게임을 했다. 메달을 모조리 뽑아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메달을 집에 가져가 쌓아두고 싶었다. 정말로 그렇게 했다. 동전을 계속 넣어 메달만 모조리 뽑아냈다. 메달을 가방에 두둑히 집어 넣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 가게 망해라!

 담배 한 갑에 600원 하던 시절. 30만원은 정말 큰 돈이었다. 집 앞에 흐르는 꼬랑물이 말라도 훔친 돈은 마르지 않았다. 씀씀이가 커졌다. 게임만 하는 게 아니라 화약총, bb탄총도 샀다. 다마고치, 미니게임기까지 샀다. 심지어 친구에게 사주기 까지 했다. 그러다 "너희 집 부자구나"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직감적으로 무언가 잘 못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논리적으로 생각 할 나이가 아니라 원인을 확실히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위험했다. 

 다음 날.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무작정 불꽃 싸다구를 날렸다. "돈 어딨어?"라고 물었다. 전두엽에 마비가 왔다. 공포가 밀려왔다. 다 안다는 목소리 앞에서 거짓말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백을 하려는데 너무 무서워서 혀가 굳었다. 결국 싸다구 몇 방 더 맞았다. 울면서 돈을 숨겨놓은 화단으로 갔다. 선생님이 화단에 숨겨 놓은 돈을 회수했다. 그 뒤에 엄마와 아빠가 학교로 찾아왔다. 선생님과 면담을 한 후 소라 초등학교를 떠났다. 

 며칠이 지났다. 스타렉스를 타고 할아버지 집으로 갔다. 차를 타고 언덕을 오르는 도중에 따봉 오락실이라는 간판에 시전이 고정됐다. 고개를 돌리고도 몸까지 돌렸다. 뒷자석 창문에 얼굴을 처박고 시야에서 사라질 대까지 따봉 오락실을 바라봤다. 가슴이 뛰었다. 지나치고 오르는 길목마다 사람이 넘쳐났다. 커다란 마트도 있었고 분식점도 있었다. 세상에! 아파트 단지까지 있었다. 13층 짜리 아파트 단지가 주는 웅장함. 차가운 도시 느낌이 난다. 그곳에서 내 존재감은 작았다. 그것이 좋았다. 사람 냄새가 나는 곳으로 온 것이다.

 할아버지 집에서 살게 되서 기뻤다. 이전에 살았던 곳보단 후졌지만, 3등 시민에서 2등시민이 된 기분이었다. 귀를 기울이면 옆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티비 소리도 들렸다. 공사판의 소음도 들렸다. 콰앙~ 콰앙~ 머나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음공해가 내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었다.

 그 날 저녁 엄마가 나를 놀이터로 데려갔다. 주홍 빛 가로등 아래에 아빠가 내 눈보다 조금 높은 시선에서 앉아 있었다. 오른손에는 플라스틱 빗자루를 들고 있었다. 내 바지를 접어 올렸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종아리를 맞았다. 한 두 번 맞는 것은 버틸만 했다. 그러나 같은 자리를 계속 때리자 너무 아팠다. 반끔 허리를 구부리고 아픈 종아리를 잡았다. 쓱쓱 문질렀다. 울면서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말없이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손 치워! 어서 대!  거부 할 수 없는 명령에 손을 치웠다. 결국 할아버지가 놀이터까지 달려와 아빠를 말렸다.  훌쩍이며 할아버지 등에 업혀 돌아갔다. 그날 끅끅 거리며 할아버지 할머니 틈에서 잠을 잤다.

 날이 밝았다. 아빠는 다시 다정해졌다. 깨어나면 가물거리는 꿈처럼 어제 일은 잊은 것 처럼 언급하지 않았다. 밥을 먹고나서 할아버지가 500원을 주었다. 용돈을 받자마자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처럼 신난적은 없었다. 따봉 오락실. 어제밤 아빠한테 처맞는 도중에도 그 간판이 머리속에 9번은 아른 거렸다.

 따봉 오락실에 들어갔다. 게임기가 수십대가 놓여 있었다. 메탈슬러그, 더 킹 오브 파이터, 스노우 브라더스, 천신도 해본적 없는 게임들이다. 조작법도 모르면서 무작정 스틱을 흔들고 버튼을 눌러댔다. 아이들이 100원짜리를 넣어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고 나서야 500원 짜리를 100원 짜리로 바꾸고 동전을 넣어 게임을 했다. 아이들이 100원으로 10분을 할 때, 나는 500원으로 5분을 했다. 500원은 벽에 붙은 점을 발견하고 파리채를 찾다가 다시 벽을 봤을 땐 흔적도 없는 사리진 파리같이 사라졌다. 주머니가 가벼워졌다.

 그러나 내 팬티는 주머니보다 조금 더 무거웠다. 사타구니 속으로 손을 찔러 넣었다. 손 끝으로 쩍쩍 달라 붙는 돈 맛이 느껴졌다. 몇일 묶혀 놔서 그런지 꽤 납작해진 지폐뭉치를 조물거렸다. 넣었던 손을 빼서 코에 갖다 댔다. 쓰읍. 하아~ 돈 찌린내에 취할 것 같았다. 

 그 돈으로 게임을 했다. 공허한 마음이 채워질때까지 했다. 생수통을 모래사막에 퍼부어 오아시스가 만들고자 하는 어리석은 사람 처럼 동전을 퍼부었다. 거리에 가로등이 켜질 때까지 끝도 없이 했다. 결국 걱정하던 할아버지가 오락실까지 찾아왔다. 할아버지가 내 손을 잡아 끌었다. 게임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쭈글쭈글하고 메마른 손이 내 손을 꽉 잡았다. 그저 그런 손이다. 짜증났다. 내가 잡고 싶은 것은 스틱이다. 버튼을 누르고 싶은 손가락을 꼼찌락 거렸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집안에는 인기척으로 가득했다. 테레비 소리도 들려왔고 이웃집에 말소리도 들려왔다. 더는 혼자가 아니었다.  마음이 고요해졌다. 멍하게 모자이크로 처리된 창문을 바라봤다. 창으로 투과된 빛은 주홍색 나팔꽃같았다. 가운데는 뾰족한 다이아몬드 모양이다. 보석 같은 창문이었다. 멍하게 그것을 바라보며 아랫도리에 손을 넣고 주물럭 거렸다. 아, 든든하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