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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우리 미남이 또 오니라
게시물ID : readers_286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상연
추천 : 5
조회수 : 47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6/12 00: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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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가 확 바뀐 것을 엑스포역에서 실감했다. 매표소가  있는 홀 한가운데 섰다. 눈썹과 턱을 쭉 들어 올렸다. 연록색 통유리가 3층 높이로 덮여 있다. 통유리는 난방효율이 좋지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은 통유리를 좋아한다. 뭐든지 최첨단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 촌놈이 촌구석으로 돌아왔는데 어쩐지 어색했다.

 "미남아! 우리 미남이 왔는가? 미남아!"

 얼굴이 화끈 거렸다. 대기실에 있던 할아버지가 날 부르며 달려왔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미남이라 불렀다. 얼마나 창피한지 선 채로 죽고 싶었다. 쪽팔리고 화가났다. 할아버지를 마주 보며 외쳤다.

 "엇! 미남이 할아버지! 미남이 할아버지! 우리 미남이 할아버지!"

 서로의 얼굴에 금칠을 했다. 미남이라 불린 만큼 나도 미남이 할아버지라고 외쳤다. 내 창피함을 곱절로 느껴야만 앞으로 미남이라 안 부를 것이다. 할아버지도 창피한지 웃는다. 할아버지가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 했다. 

 "눈도 크지, 코도 크지, 입도 크지, 못난데가 하나도 없네. 탤런트나 해먹고 살래?"

 "아니."

 "그럼 뭐 해먹고 살래?"

 "내가 알아서 먹고 살아, 진짜."

 "기술을 익혀야지 기술! 아이고! 군대를 가야지! 군대를 가야지 취직이 되지! 아고매! 학교는? 학교 언제 다닐래?"

 아오! 사람을 앞에서 미남이라 불렀다. 군대 안 간 것도 말했다. 일도 안 한다는 것도 말한다. 학교 안 다닌 것도 말했다. 남자는 자존심이 절반이다. 그 절반이  방금 죽었다. 할아버지 멱살을 쥐흔들고 싶었다. 

 "미남아 하드 사주랴?"

 "어."

 낮게 으르렁 거리며 대답했다. 싸만코 두 개 사서먹었다. 식도를 탁 넘어가는 싸만코로 쓰라린 위를 다스렸다. 지친다. 할아버지와 함께 대기실에 앉아 테레비를 봤다. 할아버지가 어디로 놀러갈지에 대한 계획을 말했다.

 "오동도도 가고 향일암도 가고 여천 거북공원가자 잉?"

 이미 꼴백번은 갔다온 곳이다. 토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났으니 한 동안 같이 다녀줘야 한다. 대기실에서 2시까지 앉아 테레비를 봤다. 그 후 엑스포를 지나 오동도로 갔다.

 "내 나이가 여든둘이라, 근디 복지관에 가면 중밖에 안 돼."

 "중이 뭐여?"

 "중간밖에 안 된다고! 나보다 나이 많은 놈 쌔부렀어."

 "여든이 뭐여?"

 "팔씹! 팔씹! 스물,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 여든, 아흔, 백! 그것도 모르냐!"

 "몰라."

 오동도을 돌고 자산공원을 올랐다. 돌산까지 이어지는 케이블카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뒷짐을 지고 등을 구부정하게 숙였다. 턱을 쭉 내밀면서 케이블카에 몇명이 타고 있는지 셋다. 한 사람 당 팔천원. 여섯명에 4만 8천원. 5분간 수백만원이 왔다갔다. 

 케이블카 구경이 지겨우면 벤치에 앉아서 사람 구경을 했다. 나는 여자와 외국인을 구경했다. 할아버지는 나이먹은 사람이 있나 없나 유심히 살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안 보이면 안심하며 말했다.

 "내 나이에 이렇게 걷는 사람 없어. 전부 지팽이나 쥐고 다니거나 휠체어 타고 다닌기라."

 "할아버지 물팍이 튼튼하니까, 매일 걸어. 죽을 때까지 걸어야돼. 못 걸으면 죽는기라."

 "하아~! 못 걸으면 죽는기라."

 자산공원을 넘어서 해양공원으로 갔다. 거북선대교, 돌산대교, 장군도가 보였다. 해양공원에 있는 식당에서 5000원짜리 게장백반을 사먹었다. 밥을 먹고 이순신 광장으로 갔다. 거북선에 들어가 내부를 구경했다. 이미 봤던 것들이다. 

 의자에 앉아 거리에서 쌩쇼를 하는 젊은이를 구경했다. 예전에는 기타만 쳐도 대단한 놈이었다. 촌구석에서 기타치는 모습을 구경하려고 사람이 바글바글 모여던 시절이 있었다. 각설이 가위치는 소리만 들려도 여수에선 큰 축제였다. 이제는 예전만큼 신경쓰는 사람이 없다.  

 밤이 되었다. 의자에 앉아 아이스크림과 닭꼬치를 먹었다. 밤바다를 바라봤다.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케이블카나 섬과 다리에 들어온 불빛을 바라봤다. 빨간색→파란색→보라색→초록색→빨간색. 혹은 유람선을 봤다. 사람들이 손은 흔든다. 이 흔하고 지루한 것을 저녁 8시까지 봤다. 늦게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

 새벽에 교회를 갔다온 할아버지가 테레비를 틀었다. 할머니는 아침밥을 차렸다. 멍하게 일어나 앉았다. 할아버지가 여러 조각으로 찢은 달력 위에 뭔가를 적었다. 적으면서 할머니에게 물었다. "오늘이 몇 물이지?", "오늘이 장날인가?" 이때따 싶어 채널을 돌렸다.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며 "9번!"하면서 리모컨으로 채널을 다시 돌렸다. 아침마당에 이금희가 나왔다. 벌써부터 지겹다.

 "오늘은 행일암에 가자, 할머니한테 할아버지가 가자고 했다고 하지 말아라 잉?"

 "향일암? 거기 이천번은 갔잖아."

 "아, 갔었냐? 허허. 오랜만이니까 또 가야지. 얼릉 토끈 챙겨라."

 할아버지는 열쇠와 버스카드를 묶은 줄을 토끈이라 불렀다. 그것을 두개 챙기고 향일암으로 갔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돌산대교를 넘어 1시간은 가야 했다. 30분쯤 타자 토가 나올 것 같았다. 올라오는 것을 겨우 삼켰다. 이것으로 이천 한 번째 마시는 토였다.

 향일암 아래에 있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10시즘이었다. 좁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랐다. 전부 장사판이었다. 동동주, 갓김치, 게장백반, 여수에서 흔한 것을 비싸게 팔아먹고 있었다.

 이미 봤던 거라 대충 훑어보고 지나갔다. 할아버지는 "쌀쌀 걷자.", "좀 앉았다가!","뭐가 급하다고 서두르냐!"라며 소리쳤다. "이 이정도는 걸어야지", "못걸으면 뒤져" "다 본거잖아."라고 대꾸했다. 

 향일암 입구에 멈췄다. 대리석으로된 돌계단이 어마무시하게 쌓여있다. 입장료는 어른이 2000원이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조금 놀랬다. 돈을 받았나? 

 "어- 허! 중놈들이 돈독이 올라가지고..."

 입장료를 내고 계단을 올랐다. 할아버지 호흡에 맞춰서 좀 오르면 앉았다가 다시 올오르기를 반복했다. 젊은 사람조차 쉬지 않고 오르기엔 벅찼다.

 바위 틈으로 구멍이난 길이 나타났다. 바위와 절벽에는 동전이 빼곡히 박혀 있었다. 그것을 본 할아버지가 냉큼 달려들었다. 벽에 붙어있는 동전을 하나씩 뜯었다.

 "어어! 어어어! 뜯지마! 뜯지마!"

 "캬악! 괜찮어! 우리는 교회다니니까 아멘 하면 돼!"

 "아나, 진짜."

 할아버지는 동전을 하나씩 뜯을  때마다 "오. 주여."을 읊조렸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나는 사람이 오는지 길을 확인했다.

 "아, 언제까지 뜯을거여!"

 "차비는 벌어야지!"

 "진짜 느리네."

 눈알을 굴렸다. 벽에 붙은 500원 짜리를 추적했다. 높은 곳에 500원 짜리가 많았다. 벽을 차고 날아올랐다. 착지했을 땐 한 손에 500원짜리 두개씩 들려있었다.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죽기 5분전에 꼭 회개하소."

 끄덕.

 바지가 흘러내렸다. 춥지도 않는데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손을 넣어서 빵빵한 것처럼 보이도록. 동전 소리가 나지 않도록.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조심히 걸었다. 헤헤. 차비, 입장료, 밥값까지 벌어버렸네.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래로 내려갔다. 유일하게 있는 gs25시 편의점은 어진간한 식당보다 깨끗하고 넓었다. 그리고 길다란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경치도 좋았다. 할아버지는 뭘 먹어야 할지 잘 몰랐다. 내가 라면이랑 햄버거랑 마실 것을 샀다. 할아버지가 평소에 먹어본적 없는 것만 것만 골랐다.

 처음에는 "밥을 묵어야 든든하지!"하다가 "묵을만 하다잉?", "아따 맛있다."하면서 좋아했다. 여수에서 흔한 것을 바가지로 씌워서 먹는 것보다 싸고 맛있었다. 바다와 섬을 바라보며 커피까지 한 잔 했다. 점심을 적당히 싸게 먹고 다시 버스를 탔다. 시내 한 바퀴를 돌고 집으로 돌아갔다.

 며칠이 흘렀다. 여전 거북공원에 있는 짜장면집에서 할아버지와 짜장면을 먹었다. 그러다가 전화가 왔다. 학교 때문에 전주로 돌아오라는 전화였다. 할아버지가 오물거리며 말했다.

 "왜? 집에 가고잡냐?"

 "학교 가야된대."

 "한달만 더 있다가."

 "안 돼."

 "보름만 더 있다가."

 "안해."

 "하루만 더 있다가."

 "알았어."

 "우리 미남이 가버리면 보고잡아서 어쩌냐? 나이가 들어가지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할아버지 죽어버리면 어쩔라고 가냐?"

 "요즘은 나이 먹어도 잘 안 죽어."

 "허허."

 거북공원을 통해 웅천을 지났다. 웅천 해수욕장과 공원을 걸었다. 신설된 메가박스로 들어가 편안한 의자에 반쯤 누웠다. 카라멜 팝콘 냄새가 진동했다. 맛있는 냄새다. 침이 흐른다. 참다가는 흐르는 침에 익사할 것 같다. 하나 사서 할아버지와 나눠먹었다. 다 먹고 집까지 걸어서 돌아갔다.

 올 때는 옷만 입고 왔었다. 돌아가려는 지금은 등산가방에 손가방까지 들어야 했다. 할머니가 먹을 것을 가방에 차곡차곡 집어 넣었다. "이거 묵을래?","아 괜찮어. 그만.","그럼 이거 묵을래?","안 먹어","요거는?","안 먹어.","이거 가져가서 묵어라.","그래 넣어. 전부 넣어부러." 진짜로 다 집어넣었다. 가져가봤자 냉장고에서 썩을 것이다. 갖다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가방만큼 무서운 아니, 무거운 정성이 착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따라오지 말라해도 역까지 따라왔다. 표를 사려는데 할아버지가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 주었다. "아 됐어 됐어. 아까 돈 줬잖아.","그건 가만 놔두고 이걸로 써!" 만원을 받았다. 사람들 앞이라 창피했다.

 "방학은 언제하냐?"

 "몰라, 여름에."

 "졸업은?"

 "몰라, 4년 뒤에." 

 "다음에 또 놀라 오니라. 그러면 오동도도 가고, 향일암도 가고 마싯는 것도 사먹고. 여천 거북공원도 가고 알았지 잉?"

 "알았어."

 "어서가. 몸 건강하고, 싸우지 말고, 어디가서 깡패한테 뚜두려 맞고 다니지 말고, 나쁜 짓 하지말고 알았지 잉?"

 "할아버지도. 나 가네."

 "어이어이, 그래. 갔다오니라."

 기차로 갔다. 기차에 오르기 직전에 입구를 봤다. 할아버지가 여전히 서있었다. "할아버지! 얼릉 들어가!", "할아버지가 알았다며 손짓했다. 기차로 들어갔다. 표에 적혀있는 좌석을 찾아 앉았다. 출발하려면 아직 15분이나 남았다. 멍하게 창밖을 바라봤다가 가방을 놓고 기차밖으로 뛰쳐나갔다. 할아버지가 안 보였다. 대기실로 가보았다. 그곳에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뭐대로 왔냐? 얼릉 타."

 "좀 있다. 출발하려면 아직 12분 남았어."

 "떠나불면 어쩔라고?"

 "다음에 타지"

 "허허."

 그렇게 10분 정도 함께  앉아서 테레비를 봤다.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그냥 함께 앉아서 테레비를 구경, 사람 구경을 했다. 그리고 다시 입구에서 헤어졌다.

 "우리 미남이 또 오니라."

 다시 한 번 손짓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기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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