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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의 정확한 위치은 어디인가?
게시물ID : history_283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ishright
추천 : 1
조회수 : 2081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7/06/20 15:14:00
안시성의 위치는 정확히 어디인가?

결론 : 양만춘 장군이 지켜낸 안시성(安市城)의 위치는 중국사서와 환단고기에 공통으로 하북성의 개평 동북 70리 위치라 적고 있다. "탕지보" 라고도 하는는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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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만춘 장군 역할>

▶하북성 개평부 동북 70리에 있습니다.

조선시대 실학사상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 이른바 옛 안시성은 개평현 동북 70리에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개평현을 지금의 요동반도에 있는 개평으로 아는 것은 잘못이다. 개평현은 바로 요서에 있는 개평부이다. 지금 하북성 개평부 동북쪽으로 70리를 가면 천령 또는 천산이라 불리는 언저리에 탕지보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고구려의 안시성이다.
탕지보는 일명 안촌홀 변한성이라 하는데 변한성은 단군조선 시대 삼한의 하나인 번한의 수도로 곧 신지비사에 나오는 오덕지이다.
안시성의 남쪽으로는 당산 준봉이 있고 서쪽으로는 어양, 북평 보정 등지가 넘겨다 보이고 동북쪽으로는 산해관 평원이 훤히 바라다보이고 ,북녘으로는 만리장성이 희미하게 보인다 (이유립총서 천 535~536)

▶박지원의 열하일기 중' 안시성 위치'

"당 태종이 안시성에서 꼭 눈을 잃었는지는 상고할 길이 없으나, 대체로 이 성을 '안시'라고 한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당서를 상고해보면, 안시성은 평양의 거리가 5백리요, 봉황성은 왕검성이라고도하였고, 지지에는 봉황성을 평양이라 하기도 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무엇으로 이름한 것인지 모르겠다. 또 지지에는 옛날 안시성을 개평현의 동북쪽 70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대체로 개평현에서 동으로 수암하까지가 3백 리이고, 수암하에서 다시 동으로 2백리를 가면 봉황성이다. 그러니 만일이 성을 옛 평양이라고 한다면 당서에 이른바 5백 리라는 말과 서로 부합된다"고 여긴다.

그런데 우리나라 선비들은 단지 지금의 평양만 알고 있으므로, 기자가 평양에 있다하면 또한 지금의평양으로만 믿고, 정전이 평양에 있다하면 역시 지금의 평양으로만 믿어서, 만일 누가 봉황성이 곧 평양이라고 한다면 크게 놀랄 것이다. 더구나 요동에도 하나의 평양이 있었다고 하면, 이는 해괴한말이라고 나무랄 것이다.

그들은 아직 요동이 본디 조선의 땅이며, 숙신, 예, 맥, 동이의 여러 나라가 모두 위만의 조선에 예속되었던 것을 모르고, 또 오랄, 영고탑,후춘 등지가 본디 고구려의 옛 땅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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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시성의 정확한 위치 : 하북성에서 찾아야 합니다


(1) 강단의 추정 → 추정일 뿐

만주 봉천성(奉天省) 해성(海城)의 동남방에 위치한 영성자산성(英城子山城)으로 추정

(2) 중국 정사의 기록 → 하북성 북경일대라 기록하고 있다

- 한서 : 요동군, 하북성 북경
- 위서 : 안락군, 정주, 하북 북경, 밀운
- 독사방여기요 : 안시폐현, 북경현 동북 50리, 한요동속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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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환단고기 기록 → 정확히 위치를 기록하고 있다

“안시성은 하북성 개평의 동북쪽 70리에 있다”

▶영성자산성 안시성 아니다" (이종호 박사)

영성자산성이 안시성이 아니라는 데는 여러 근거가 있다.

 첫째, 산성의 지형이 험하지 않고 산도 높지 않으며 토성이어서 견고하지 않다. 성벽이 좁은 데는 너비가 2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당나라의 포차ㆍ충차의 경우 2미터 정도의 흙덩어리는 얼마든지 뚫을 수 있는데 이런 토성에서는 당나라 100만 대군의 공격을 3개월이나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지적이다.

둘째는 영성자산성의 규모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성내는 주로 좁은 협곡으로 이루어져 있고 평탄한 곳이 적어 10만 명의 군사가 주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 기록에 의하면 산성 동남쪽에 인공 토산이 있다는데 그 토산은 너비가 20미터도 채 안되고 산등성 중간이 바로 동쪽 성벽의 토대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인공위성이 촬영했다는 영성자산성의 토산 흔적도 확실한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고 지적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 성벽의 경우 인공 토산이 아니라 동쪽 성벽이 허물어진 흙더미로 추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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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요수의 남쪽이다

(신당서 동이열전) 대요수와 소요수가 있는데 대요수는 말갈의 서쪽 남산에서 시작되고 남으로 안시성으로 흐른다; 소요수는 요산 서쪽에서 시작되는데 역시 남쪽으로 흐른다, 량수는 요새 밖에서 시작되어 서쪽으로 흐르다 합쳐진다. (水有大辽、少辽:大辽出靺鞨西南山,南历安市城;少辽出辽山西,亦南流,有梁水出塞外,西行与之合)

마자수는 말갈의 백산에서 시작되고 색이 오리의 머리 색깔과 흡사하여 압록수라 부른다. 국내성 서쪽으로 흘러 염난수와 합해지고, 서남쪽으로 안시에 이르러 바다(황하)로 흘러 들어간다. 평양성은 압록의 동남쪽에 있어 커다란 배로 사람을 건네고 믿음직한 참호 역할을 하고 있다. (有马訾水出靺鞨之白山,色若鸭头,号鸭渌水,历国内城西,与盐难水合,又西南至安市,入于海。而平壤在鸭渌东南,以巨舻济人,因恃以为堑)

。《汉书·地理志》:“大辽水出塞外,南至安市入海,行千二百五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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