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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고마운 시누이
게시물ID : wedlock_88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엄마는중2병
추천 : 25
조회수 : 1584회
댓글수 : 18개
등록시간 : 2017/06/23 00: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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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니까 쑴체 양해부탁해요~^^

신랑은 한살 위 누나만 있쑴. 
시어머님 성격이 한마디로 장군감이신데 오로지 아들이 최고이심. 
난 친정엄마가 결혼전에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결혼하고 아이낳아 키우면서 친정엄마가 매일매일 그리웠쑴. 
결혼하고 2년정도 시댁에서 살았는데 시어머님께서 식사할때 맛난 반찬 아들 밥그릇에 자주 올려주고 그러셨쑴. 
내가 못되서 그랬겠지만 그땐 엄마없는 설움이 너무 커서 그게 넘나 싫었쑴.  
그러다 하루는 시누이가 같이 식사하다가 시어머님께 한소리 했쑴. 
"엄마, 그러지마!! 그거 얼마나 꼴불견인지 알아? 애도 아니고 다커서 자식까지 있는 애한테 왜그래? 알아서 먹게 냅둬!!"
이 한마디가 왠지 엄마없는 내 설움을 알아주는것 같아서 너무나 고마웠쑴. 
그 뒤로 어머님의 밥상에서 아들 반찬놔주기는 없어졌쑴. 

그러다 둘째를 임신하면서 분가를 하게 됐쑴. 
근데 시어머님께서 아무때나 연락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오시고 그러셨쑴. 
그러자 시누이가 그랬쑴. 
"엄마, 그러지마!! 그거 얼마나 불편한 줄 알아? 왠만하면 가지말고 꼭 가야할 일이면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가!!"
그뒤로 어머님 왠만하면 오라고 부르심. 
(바로 옆동네 살았어서 그게 편해쑴.)

그뒤로는 특별히 어머님과 트러블은 없었고 힘들고 고단하게살아오신 어머님의 인생이 느껴지기 시작할때쯤 위암 3기 선고 받으셨쑴. 
수술날짜가 둘째 돌잔치 예약한 바로 전날이라 전부 다 취소했는데 그걸 항상 맘에 두고두고 둘째손자한테 미안해하셨쑴. 

항암과 재발을 반복하며 4~5년을 투병하시다가 내가 셋째를임신하게됐쑴. 
항암으로 입원하실땐 불룩한 배를 하고 모시고 갔고 퇴원은 시누이가 시켜드리고 그랬었쑴. 
근데 시어머님께서 셋째임신하니 정말 달라지신게,..
시에서 노인일자리 만들었는데 (공공.. 뭐라 했는데 기억이 나지않쑴. ) 거길 나가시는거였쑴. 
워낙 밖에 놀러가시는거 좋아하시고 사람 만나는거 좋아하시지만 일을 해서 돈을 버는건 다르니 가족이 모두 말렸는데 
"손녀(딸인걸 알고계셨쑴.)한테 선물해주고 싶어 그런다" 며 결국은 그 몸으로 일을 하셨쑴. 
그렇게 버신걸로 나 맛난거 몸에 좋은거 사 주시고 애기 용품 사라고 용돈도 주셨쑴. 
손자 둘만 있을땐 식후에 마실 커피도 아들이 못타게 했는데 셋째 생기고 나니 아들한테 커피는 물론 설거지도 시키셨쑴. 
"난 애를 둘은 키워봤지만 셋을 안키워봐서 얼마나 힘들지 상상도 안된다.  이젠 너(어머님의 아들이자 내 신랑)도 이런 집안일도 하면서 도와줘야돼. 둘 키우기도 힘든데 셋은 오죽하겠냐!!" 하셨던 그때를 지금도 잊지못하고 있쑴. 
 시댁에 식사하러 가면 "너 이거 잘먹잖아~" 하심서 나 좋아하는 음식 만들어주시고 남은거 싸그리 싸주시고 밥먹고 나면 쉬라 하셨쑴. 
설거지는 신랑이~^^;;
그런 셋째가 구순구개열로 태어나서 실망하실까봐 정말 걱정 많이 했는데 오히려 위로해주심. 
사고라고 생각해라, 너무 이쁜 아가라서 삼신할매가 심술 좀 부렸나보다, 하시며 누구보다 아픈 손녀를 끔찍히 사랑해주셨쑴. 

결혼초창기에 고부갈등을 시누이가 잘 해결해준 덕분에 시어머님과 잘 지낼 수 있었쑴. 
그런 시어머님께서 막둥이 6개월 접어들때쯤 병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셨쑴. 
이제 어머님이랑 많이 가까워져서 같이 시장도 다니며 딸래미 옷구경도 하면서 비싸고 좋은건 아니라도 작은것이라도 선물도 해드리고 해야지 하며 꿈에 부풀어있었는데 너무 슬펐쑴...ㅠ

그 후로도 시누이는 홈쇼핑같은데서 1+1 좋은거 나오면 사서 나도 꼭 하나씩 챙겨주고 가끔 애기 옷도 이쁜거 있으면 선물해주곤 했쑴.  그 당시 여성 의류 만드는 일을 했는데 내 옷도 챙겨주고 해서 10년동안 난 청바지외엔 옷을 사본적이 거의 없었쑴. 
 지금은 시아버님도 돌아가시고 사는곳이 전보다 좀 멀어지기도 했고 아이들이 점점 크면서 서로 사는게 바쁘다보니 가끔 안부전화 주고받는 정도지만 지금도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고 있쑴. 
언니, 정말 고마웠어요~♥

* 여담이지만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시기 일주일전 항암치료를 하고 퇴원하셨는데 점점 기력이 떨어지셔서 다시 병원에 입원하셨쑴. 
어머님 손 꼭 잡고 좋아지실거라고 조금만 더 힘내시라고 하고 돌아서는데 왠지 안아드리고 싶어졌쑴. 근데 너무 힘들어하시고 이미 자리에 누우셔서 편히 쉬시라는 마음으로 아쉽지만 그냥 집으로 돌아왔쑴. 
근데 그날밤, 다 자고 막둥이랑 둘이 누워 놀고 있는데 이 녀석이 갑자기 방문쪽을 보며 막 울어댔쑴. 
한번도 그런적이 없었던터라 나도 많이 당황스러웠쑴.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칠 줄 모르는데 관찰해보니 문쪽만 보며 울길래 아이가 문 반대쪽을 보게 몸을 돌려 서면 다시문쪽을 바라보며 울기를 20여분정도...
그러더니 언제 그랬냐는듯이 곤히 잠이 들었쑴. 
순간 불길한 생각에 병원에 전화해볼까 했지만 방정맞은생각하지말아야지 맘잡으며 잠들었는데..
새벽에 시누이가 울면서 전화왔쑴. 
"엄마가 많이 위독해...빨리 와" 
부랴부랴 아기는 옆집에 잠시 맡기고 병원으로 달려감. 
밤새 이미 온몸의 혈관이 다 터져서 귀 코 등으로 피를 엄청 흘리셨다함. 
의사말이 지금 의식이 없을뿐이지 신경은 살아있어서 온몸으로 고통을 느끼고 계신거라고,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거라 하셨쑴. 
결국 시어머님은 나랑 손잡고 시장도 한번 못가보고 돌아가심...ㅠ
전날 밤 아마 막내손녀한테 인사하러 오셨던건 아닌가 싶음. 
나도 그때 병실나오기전에 꼭 안아드리지못한게 지금도 후회됨. 

딸같은 며느리라고 하신적 없지만 며느리 힘들게 안하려고 노력해주신 시어머님이셨쑴. 

친정엄마의 고등어조림과 김치찌개, 시어머님의 김치지짐과 나물무침이 유독 먹고 싶은 날임..ㅠ
출처 시작은 고마운 시누이였는데 결론은 두 엄마가 그리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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