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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파 4] 사보이는 영원하리 (2)
게시물ID : gametalk_3436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차근이
추천 : 1
조회수 : 38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6/29 19: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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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퍼져있던 예술적 활동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통치자들은 자신의 위신을 위해 다양한 예술가들과 철학가들의 학파를 후원하고 문화적 부흥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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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예술적 부흥은 이탈리아의 상업공화국 루카에서 부터 시작되어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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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이 공국은 베른과 발스태드를 합병했지만 이 두 주의 통치자들은 여전히 비협조적이고 스위스의 영향력 내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었다


공작은 빠르게 행정가들을 투입하고 그들을 달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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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지방의 자치도를 뺏고 지배권을 공고히 하려는 노력은 그렇게 빛을 발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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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0년 6월 25일


루도비코 공작은 봉건적 관습에서 벗어나 사보이 령 전 지역의 지배권을 공고히 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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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수가 많아진 스위스인들을 달래기 위해 그들의 문화를 수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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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비협조적인 스위스 지방들을 달래기 위해 자치권을 높혀주기로 했다


그리하여 분리주의는 잠시나마 수그러드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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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프로방스 지역을 노리고 있었다


1450년 11월 23일


교황은 프로방스 공작들 파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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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2년 6월 25일


천한 출신의 루도비코가 마상시합의 우승을 거머쥐었다


귀족들은 분개하고 통치자인 루도비코는 난감해 할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우승은 우승, 그는 군의 지휘자가 되었고 공작으로부터 아시나리라는 성을 하사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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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년 1월 3일


사보이 주는 새로 추기경을 선출하게 된다


사보이의 첫 추기경이 사보이에서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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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년 4월 3일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두 왕족 남녀는 이베리아의 통치권과 그 힘을 공고히 하기 위해 서로 정략결혼을 맺고 나라를 하나로 합치기로 한다 스페인 연합왕국의 시초가 될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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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요원들의 노력은 드디어 사보이가 합병한 스위스 주들을 사보이령 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들의 노력덕에 그곳 통치자들은 좀더 협조적으로 사보이를 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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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년 5월 16일


사보이는 프랑스와 동맹을 맺는다 또한 더 이상 힘의 균형이 맞지않는 스위스는 그들의 최우선 과제에서 벗어나게 된다


루도비코 공작은 프랑스의 힘을 빌어 부르고뉴와 대항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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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4년 6월 27일


선대 공작이 천민출신의 여자와 결혼했다는 문서가 발견되면서 왕가가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루도비코 공작은 이를 적극 부인하지만 귀족들은 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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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와 정전협약을 맺은 지금 공작은 프로방스를 노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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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6년 3월 12일


사보이의 추기경이 프랑스에 매수된 사건이 벌어진다


사보이는 프랑스에 큰 실망을 하지만 국력차이때문에 별 대응은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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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성직자들의 분노는 치솟고 그들은 이에 대한 대책을 요구했지만


공작은 이를 무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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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7년 5월 13일


루도비코 공작이 승하하고 아메데오 9세가 공작에 오른다


루도비코 공작이 병으로 급사했기에 나라 전체에 충격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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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자의 사망에 대한 충격을 완화시키기도 전에 아메데오 9세는 교황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던 프로방스의 드라기냥 지방을 노리고 공격한다


프로방스 공작이 파문당했기 때문에 프로방스 정벌에 대해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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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하게 드라기냥을 정복했지만 프로방스군은 아직 남아 있었다


부르고뉴에 통행권을 요청하려 했지만 들어줄리 만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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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프랑스에 통행권을 요청한 공작은 루도비코 지휘관에게 승리를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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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8년 1월 14일


전쟁이 한창인 때 상인들은 교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성직자들과 대립한다


교권이 약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시대상 교권을 무시할 때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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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기는 이미 사보이군에 기울고 있었다


아메데오 9세는 1458년 3월 2일 국가 안정을 위해 행정가들을 파견했고


7월 2일엔 사보이의 영광을 노래하던 음유시인을 궁정으로 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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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8년 7월 10일


사보이 군대는 남은 프로방스 잔존 병력을 처리하기 위해 로렌지방으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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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사보이 교구는 새로운 추기경 선출을 위해 프랑스에서 추기경을 매수하려 했지만 위험부담이 커서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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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철광석에 문제가 생겨 병력의 장비 지급에 문제가 생겼다


하지만 어차피 전쟁은 끝나가고 당분간 전쟁은 없을 것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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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8년 10월 3일


아메데오 9세는 전쟁때문에 미뤄두었던 피에몬테 백작의 딸 베아트리체 보르세와의 결혼식을 진행하고 


태어날 아들의 이름을 에마뉘엘레 피리베르토 사보이아로 지정한다


그는 이듬해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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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0년 12월 22일


프로방스와의 전쟁이 끝났다


프로방스는 사보이 공국에 배상금과 드라기뇽 주를 넘겨주게 되었다


또한 프로방스 공작의 영토였던 로렌 역시 독립하게 되었다


이로써 프로방스는 전 유럽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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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와의 승리로 오만이 하늘무서운 줄 모르는 듯 오르는 공작은 자신의 위신을 더욱 높히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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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이아에 거대한 성당을 세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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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미술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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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르네상스의 학풍이 사보이에 유입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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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매수하진 않았지만 추기경을 또 한번 매수할 기회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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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피에몬테 백작의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고


이에 동조하듯 지방 귀족들은 공국내 힘을 모으기 위해 파벌을 결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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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은 오만한 피에몬테 백작의 직할령을 뺏기로 결정하고


피에몬테 백작에게 반역죄를 씌워 그를 체포하고 그 영지를 회수하기로 한다


혹시모를 반란에 대비해 병력을 피에몬테 근처로 집결시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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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 반란은 일어나지 않았고 귀족들의 불만이 있었지만 피에몬테 백작의 체포 또한 완만하게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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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3년 8월 9일


반란진압과 중앙집권화에 열을 올리던 아메데오 9세는 영국에 대한 프랑스의 방위 요청을 '실수로' 거부하고 만다


이로써 프랑스 - 사보이 동맹은 해산된다



프랑스 - 사보이 동맹이 해산됨에 따라 루이 11세는 사보이 공작 아메데오 9세에게 큰 앙심을 품게 된다






프-사 동맹 해산이 사보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지 그때까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과연 사보이는 프랑스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을것인가




사보이는 영원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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