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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파 4] 사보이는 영원하리 (7)
게시물ID : gametalk_3440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차근이
추천 : 1
조회수 : 62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7/04 19:3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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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년 6월 24일


덴마크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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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 교회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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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단은 과거에도 많았다


별 사건없이 지나가리라 생각한 통치자들은 신경쓰지 않았다


사보이 공작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추가 교회세를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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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바르디아 권역이 드디어 사보이의 손에 들어왔다


또한 공작은 지역민의 문화를 수용한다


그들은 이제 사보이의 지배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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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은 이탈리아의 새로운 위협으로 부상할 스페인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스페인 역시 북이탈리아에서 제법 영향력있는 사보이와 척질 이유가 없었다


1504년 5월 28일


필립포 공작은 스페인에 왕실결혼을 주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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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 오든말든 타락한 교황은 계속 욕심을 내고 있었다


교황은 이탈리아의 완전한 통치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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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교황은 사보이 교회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억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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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년 2월 2일


지역에서 모집하는 군대를 훈련시키는 것은 이제 효과가 없었다


공작은 범람하는 신식무기를 수용하고 상비군들을 훈련시키고 전문화 시키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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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이탈리아 콘도티에리와 계약을 맺고 그들의 전투방식과 훈련을 배워오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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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5년 4월 1일


스페인은 사보이 공국에 동맹을 요청한다


이 동맹으로 튼튼한 지원군을 얻은 사보이 공작 입장에서는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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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년 4월 8일


부르고뉴의 공작은 오스트리아의 팽창을 견제하고자 그들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명분은 오스트리아가 합병한 지역들의 해방이었다



부르고뉴는 브라벤트,플랑드르,홀란드를 동군으로 연합한 강력한 나라였지만 이 전쟁은 그들의 큰 오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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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는 카톨릭 수호의 방벽이라 불리는 헝가리와 동맹이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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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에게 협력하기로 했던 스페인이 전쟁에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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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의 병력은 총 3만


모두 모여야 헝가리와 간신히 쌍벽을 이룰정도였지만


아쉽게도 오스트리아 연합의 병력은 그 배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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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큰 기회였다


공작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부르고뉴 권역의 지방들을 빠르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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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결과는 뻔해보였다


이는 명백한 부르고뉴의 실책이었다





하지만 부르고뉴는 강대국이었고 그 힘을 무시할수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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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지는 전쟁에 필립포 공작은 전쟁세를 걷어야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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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고는 있었지만 오스트리아군의 피해도 제법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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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적 수가 너무 많아 승산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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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6년 11월 22일


부르고뉴의 수도가 함락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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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년 1월 8일엔 저지대 보루인 룩셈부르크가 함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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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공작은 빠른 병력 충원을 위해 청년들을 징집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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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추가 전쟁세를 걷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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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의 권역은 거의 점령됬지만 저지대는 요새가 많아 공격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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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까지 징집되며 마을에 남자들이 보이지 않게 됬으며 여자들은 아들과 남편이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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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년 3월 12일


전쟁을 버티지 못한 브르타니 공작은 오스트리아와 조약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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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시작된지 4년이 지났지만 오스트리아 연합은 아직도 저지대를 점령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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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고되고 공성전에 의해 많은 인력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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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년 1월 3일


길어지는 전쟁에 결국 공작은 프랑슈-콩테를 할양받고 전쟁을 멈추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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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는 이를 좋게 보진 않았지만 그들이 전쟁에서 힘써주었기에 큰 불만을 나타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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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이가 프랑슈-콩테를 수복했지만 신성로마 황제는 이를 좋게 보지 않았다


그리고 점령지역을 제국에 반환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황제는 이탈리아에 아무런 힘이 없었다





이탈리아의 맹주라 불릴만큼 사보이 공국은 제법 큰 힘을 가지게 됬고 


주변의 강대국들이 스스로 자멸하면서 어느정도 여유가 생긴 필립포 공작은 북이탈리아로 관심을 돌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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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난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1510년 11월 7월


사보이 공국은 다시 밀라노를 공격한다 북 이탈리아의 모든 권역은 사보이의 것 이어야만 하기에




이탈리아는 사보이의 것이다!


사보이는 영원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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