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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대화
게시물ID : panic_942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셔니언
추천 : 12
조회수 : 140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7/13 13: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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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마, 그렇게 웃는 모습이 얼마나 얼빠져 보이고, 멍청해보이는 지 알기는 알아?"

얼굴에 핏대 올리며 벌겋게 상기된 그 모습에 더 이상 겁을 먹지도, 당혹스러워 하지도 않게 되었다. 어차피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그럼 잘 알지. 내 얼굴인데 내가 그걸 왜 모르겠냐? 웃는게 뭐 어때서 그래?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잖아."
 
그는 더욱 역정을 내며 거칠게 소리쳤다.
"이 멍청아, 세상 돌아가는거 안보이냐? 웃는 얼굴에 침을 못뱉어? 웃기고 자빠졌네. 웃는 얼굴에 침을 뱉는 정도가 아니라 아스팔트에 면상을 갈아버려도 시원찮게 생각하는게 요즘 세상이라고! 너 정신이 있는거니? 없는거니?"
 
"그만 소리질러, 머리 속이 웅웅거려. 웃는 거 가지고 뭐라고 하는 네가 더 이상해보여. 넌 스스로 그렇게 생각 안 해봤어?"
 
"허, 참내...."
 
이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마는 녀석. 이 녀석은 늘 이런식이다. 늘상 나만 보면 한심하다느니, 골통이라느니, 얼이 빠졌다는 식의 말을 지껄이곤한다. 워낙 자주 있는 일이라 결국 적응해버렸지만.... 예전에는 얼마나 공포였는지 원....생긴 것도 적응 못 하게 생겼는데 말하는 투까지 그러니 꼭 잔소리 괴물이라도 나타난 것같았다.
"너 그나저나 그 애 어떻게 할꺼야?"
 
"응? 아, 미유냥? 그 분은 왜?"
 
"만나기로 해놓고 바람맞혔잖아. 그래도 계속 연락할거냐?"
 
미유냥은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이었다. 하는 행동이 좀 괴기쩍긴 하지만 분명 여자이고, 또 왠지 모르게 호감이 가곤 해서 어렵게 어렵게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지만 정작 당일 날 약속시간에서 20여분 지나서야 이제 일어났다느니, 목이 너무 아파서 전화도 못했다느니하며 약속이 파기되어버렸다.
"흠, 계속 연락할 생각이야, 그건 왜?"
 
"또라이."
 
"말 좀 곱게 쓸 수없냐?"
 
"네 행동 보고 그 정도면 양호한 줄 알아, 이 또라이새끼야."
 
"너는 가면 갈수록 언어구사능력이 점입가경이다. 앞으로 어떤 육두문자가 튀어나올지 기대되는데? 완전 스펙타클 영화 한편감?"
 
"미친 새끼, 너 죽고 싶어 환장했냐? 응! 아가리를 찢어 목구멍에 팔꿈치 쑤셔박을 새끼가...."
 
"어차피 네가 날 죽일 수 있다고 난 생각 안해."
 
당장이라도 한입에 꿀꺽 삼킬 것 같은 눈.
"화도 안나냐?"
 
"아프다잖아. 나도 아프면 약속이고 뭐고 없다고. 그런거 하나 이해 못하냐?"
 
"그러니 핸드폰 없던 시절에 삐삐 연락 안온다고 세 시간씩이나 추위에 벌벌 떠는 gae새끼처럼 기다리고 앉아있지."
 
"그거에 비하면 20분이면 엄청 양호한 거야. 안 그러냐?"
 
"아우! 나까지 돌아버리겠네! 으아아!"
 
이내 등까지 돌려버린 그 녀석.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고개만 샥 돌려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탄식을 하면서 가슴을 퍽퍽 두들겼다.
"야...."
 
"밸도 없냐고?"
 
"그래."
 
"그까짓거 갖다 버린지 오래됐다. 어쩌랴? 세상 살다보니 그런거랑 친해지질 않더라. 자존심 세워봐야 세상 좋을거 없더라."
 
"바보녀석....멍청이, 또라이...."
 
"더 지껄여봐."
 
"두 글자로 줄이자. 바보."
 
"세상에는 바보가 너무 없어. 나 한명쯤은 더 늘어나줘야 하지 않겠냐?"
 
"병신, 그게 왜 하필 너냐?"
 
"글쎄, 그거에 대해서는 생각 안해봤어. 뭐, 모든 일에 이유가 있어야하는건 아니지."
 
"혼자 착한 척이나 하고, 속으로는 배배꼬여서 제대로 세상 보지도 못하는 천치."
 
"예, 제대로 보셨습니다."
 
"화가 나도 화도 못내고"
 
"못내는게 아니라 안내는 것입니다요."
이 말을 듣고는 몸을 돌려 앉아 실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지금도?"
 
"아마 그럴걸?"
 
"그럼 여전히 내가 무섭다는 거네?"
 
징그러운 비웃음이 녀석의 입술에서 슬슬 비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적응됐어도 무서운건 무서운거니까."
 
난 녀석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어휴, 무서운거 감추시느라 고생이 많수다. 깔깔깔깔깔"
 
징그러운 웃음소리. 저 놈 웃음소리만 들으면 자다가도 경기 일으킨다니까....
 
"그리고, 무거우시겠습니다. 그 가면만 해도 무게가 장난이 아닐텐데? 좀 떼어놓고 살 생각은 없수?"
 
"그래, 무겁긴하더라."
 
"그럼 버려."
 
"그렇게는 못하겠던데? 이거 버리느니 무거운거 감수하련다."
 
다시 쥐를 노려보는 뱀눈이 된 녀석은 음울하게 내뱉었다.
"화내는게 무서워서 억지웃음으로 얼굴이나 가리는 비겁한 자식."
 
"흥, 논리로 무장된 욕설이나 퍼붓는 주제에."

 
서로 그렇게 한참을 노려보았다. 녀석은 서리가 끼도록 냉혹한 눈으로, 나는 더 얼려보라는 식으로 태연히.
얼마가 지났을까, 녀석은 조용히 한 마디 했다.
"날 꺼내."
 
"안돼."
 
"왜 안돼! 너 엿먹이는 년놈들 전부 한방 먹여주고 싶지 않아?"
 
"별로."
 
"거짓말 하지마! 그럼 왜 지난번에는 내가 나와도 가만있었어! 너도 날 꺼내고 싶잖아!"
 
"부분이 전체가 될수는 없어."
 
"그깟 개똥철학은 버려! 난 너한테 없는걸 줄수있어."
 
"그거 필요없어. 넌 너무 위험해."
 
꽈악
숨이 막혀왔다. 녀석의 팔이 목을 졸라왔다.
"멍청한 자식, 이래도 화가 안나냐, 화가 안나? 당장 누가 널 죽인데도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거냐? 널 물로보고 약속파기하고, 실컷 이용해먹고 버리고, 필요할때나 연락하고 아니면 감감무소식에, 그래도 그 삐에로 가면이나 쓰고 살테냐!"
 
한참을 그렇게 숨막히게 목을 조르던 손이 풀렸다. 눈 앞이 아른거리고 숨이 막혔지만 그래도 버틸만 했다. 어차피 녀석은 나한테만큼은 어찌하지 못하니까.
녀석은 서서 쓰러진 나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넌 날 이길 수 없어. 날 받아들이게 될거야."
 
"넌 날 죽일 수 없지. 그러면 너도 날 못 이기는 게 돼."
 
기침이 목을 막았다. 담배진이 누렇게 밴 가래를 몇번 뱉어내고는 다시 일어섰다.
"웃음가면이던, 삐에로 가면이던지간에 그건 내가 선택한거야."
 
"왜 하필 그거지?"
 
"사람들이 싫어하니까."
 
"사람들이 싫어하는 걸 왜 해!"
 
"똑바로 알아들어. 싫어하는건 내 웃음가면이 아니라 바로 너야. 너! 너라고! 그래, 너처럼 내 가면을 보고 비웃거나 조롱하고 욕하는 사람들도 많아. 하지만 날보고 무서워하느니 난 차라리 조롱거리가 되겠어. 남들한테 손가락질을 받아도 웃어넘기는 손가락질이 낫지, 무서워서 또는 상대하기 싫어서 하는 손가락질은 싫어!"
 
잠시 숨을 고른 다음 다시 말을 이어갔다.
"넌 유아독존이야. 너 자신 외에는 아무도 인정안해. 하지만 너나 나나 사람없이는 못사는 동물이야. 그게 바로 인간이라고. 그 관계를 유지 못하면 사람으로서의 존재는 사라져. 그 관계가 없어지면 곰이나 호랑이같은 혼자사는 육식동물과 다를 바가 없어!"
 
"넌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정체성도 버릴테냐? 여기에서는 이렇게 맞추고, 저기에서는 저렇게 맞추고? 흐흐, 재밌겠네. 나말고도 다른 녀석이 또 나타날수도 있겠네. 과연 어떤 녀석이 나올지 꽤나 기대되는구나. 네가 말한 것처럼....스펙타클한 영화 한편이야."
 
녀석은 거울 저편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손을 흔들었다.
"당분간 나는 사라져줄게. 네가 옳은지 내가 옳은지는 두고봐야할테니. 그런데 말야.... 아, 아니다, 좋은 밤 되라고..좋은 밤."
 
녀석은 그렇게 멀어져갔다. 그리고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앞으로 언제까지 녀석이 침묵하고 핏줄선 눈으로 멀리서 지켜볼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녀석은 너무 폭력적이고, 난폭하고, 자신밖에 모른다. 그런 녀석을 꺼내봐야 좋을건 없다.
 
며칠이 지났다. 오늘 다시 미유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난번에는 너무 미안하다며 오늘 술을 사겠다고 했다. 꽤나 주당인걸로 아는데....
간만의 외출이라 옷에도 신경쓰고 머리에도 꽤 공을 들였다. 몇번을 헝크리고 다시 머리감으며 매만졌는지 모르겠다.
거울 속의 나에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미유냥이 하는 행동은 별나도 꽤 괜찮은 사람같단말야. 그렇지?
거울 속의 나는 기분 좋은 미소로 화답을 해주며 말했다.

"술 먹고나면? 그 후에는 어떻게 할거야? 여자 안아본지도 꽤 오래잖아?"
 
그 녀석의 말이 맞았다.
 
어느새
 
또 한 녀석이 들어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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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싸이월드에 있지만 2007년쯤 NFCS(넷츠고->네이트 환상문학동호회)라는 곳에서 활동할 적에 썼던 글입니다.
싸이월드를 뒤적이다가 발견해서 이렇게 한번 올려봅니다.
딱히 공포스럽진 않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올려볼만한 게시판도 못찾겠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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