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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고장 난 안마의자
게시물ID : readers_289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연히
추천 : 4
조회수 : 670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7/07/14 13:5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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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K는 술잔을 기울이는 대신 흐릿한 눈동자로 J의 행동을 살폈다. K보다 한참 뒤에 입사 했음에도 J는 회사 안에서 K보다 점점 입지를 높여가고 있었다. 넥타이를 머리에 동여매고 숟가락을 마이크 삼아 노래를 부르던 J가 이번에는 과장의 팔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런 J가 만족스러운지 과장은 시원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었다. 아부를 떠는 J의 모습에 모두는 익숙하다는 듯이 소란스러운 대화를 이어갔다. 이따금 자신도 안마를 잘한다는 말들이 혼잣말처럼 들려왔다. J는 팔부터 시작해서 어깨, 다리 순으로 안마를 했다. 뿐만 아니라 온갖 익살스러운 말들로 과장의 입 꼬리를 끌어올리기 바빴다. K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볼품없이 헤진 양복의 끝단으로 시선이 닿았다. 천천히 손바닥으로 양복을 쓸어본 K는 손가락 끝으로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K는 탄력을 잃은 종아리를 연신 주물럭거렸다.



 술자리가 끝나고 몇몇은 2차를 외쳤다. K는 오천 원짜리 싸구려 손목시계를 내려다 봤다.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지하철이 없는 외진 곳이었고 버스는 이미 끊긴지 오래였다. 지하철까지 타고 갈 택시비조차 K의 지갑에는 들어있지 않았다. K는 직원들의 웅성거림을 뒤로하고 주변을 살폈다. 길게 늘어선 상가 뒤편으로 찜질방이 보였다. K는 다시 직원들이 몰려있던 쪽을 돌아보았다. 과장과 직원들은 이미 K와 멀어져가고 있었다. 구두의 뒤축을 구겨 신은 J가 뒤늦게 식당을 나왔다. 두리번거리는 J와 그런 J를 보고 있는 k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물렸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J는 K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무리를 향해 빠르게 걸었다. K는 J의 뒷주머니로 살짝 튀어나온 무언가를 보았다. J가 뛰자 그것이 아스팔트 위로 힘없이 떨어졌다. K는 그것을 주워들었다. 십만 단위가 넘는 금액이 반듯하게 적혀있는 영수증이었다. K는 한참동안 영수증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찜질방은 코골이 하는 사람 하나 없이 적막했다. K는 딱딱한 나무 베개 위로 머리를 얹었다. 찜질방 내부에 자리 잡은 매점 냉장고의 낮은 울림 사이로 또 다른 진동소리가 끼어들었다. K는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폈다. 핸드폰 진동 소리라고 생각하기에는 끊어지지 않는 긴 진동이었다. K는 불 꺼진 찜질방을 어슬렁거렸다. 대여섯 걸음을 내딛었을 때 비로소 진동의 근원지를 찾을 수 있었다. 온통 가죽으로 뒤덮인 안마의자였다. 주름진 몸을 안마의자 위에 얹고 종아리를 알맞게 끼워 맞춘 노인이 시원하다는 말을 반복해서 내뱉었다. K는 안마의자 위에 몸을 실었다. 노인은 보란 듯이 천 원을 안마의자 투입구에 집어넣었다. K도 노인을 따라 천 원을 투입구 사이로 밀어 넣었다. 진동소리와 함께 안마의자가 온몸을 매만졌다. J에게 안마를 받던 과장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손으로 안마의자의 가죽을 쓸어보았다. 제이의 얼굴도 이렇게 단단하고 두꺼운 가죽으로 되어있을 것 같았다. 안마가 끝난 뒤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안마의자 하나가 K의 시야에 들어왔다. 구석에 홀로 놓인 안마의자의 등받이에는 ‘고장’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다. K는 가만히 고장 난 안마의자를 내려다봤다. 엉덩이 부분과 발을 죄며 안마를 하는 곳이 헤져있었다. 




 K는 찜질방에서 바로 출근을 했다. 퀭한 눈빛의 과장이 K에게 다가왔다. 과장의 손에는 보고서 하나가 들려있었다. 지난 번 K가 아이디어 회의 때 과장에게 개인적으로 제출한 보고서였다. 과장이 K에게 보고서를 건넸다. K는 보고서를 열었다. 모든 내용이 K가 고안한 그대로였다. 하지만 오른쪽 상단에는 K의 이름이 아닌 과장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K의 미간이 일순간 구겨졌다. 과장은 K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과장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K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을 뿐이었지만 K는 그 두드림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과장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자연스레 사무실을 나섰다. 과장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k의 어깨를 거세게 치고 스쳐지나갔다. K는 고개를 확 돌렸다. J와 시선이 마주쳤다. J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K는 과장과 편안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과장의 옆에서 안마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순간 어제 먹은 고기의 노린내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K는 가까스로 침을 삼켰다. 이내 결심한 듯 k는 과장의 책상에 놓인 제출용 보고서를 챙겼다. 무방비 상태로 놓인 노트북도 뒤져 K의 아이디어가 기록된 파일을 지웠다. 그리고 k는 조용히 회사를 빠져 나갔다.



 회사를 나온 K는 찜질방으로 향했다. 찜질방으로 향하는 길에 길가에 놓인 쓰레기통으로 보고서를 버렸다. 찜질방 구석에는 여전히 고장 난 안마의자가 놓여있었다. K는 등받이에 붙어있는 ‘고장’ 종이를 떼어냈다. 안마를 하지는 못했지만 K에게 고장 난 안마의자는 어떤 의자보다 아늑했다. K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의 진동이 요란하게 울렸다. 과장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K는 핸드폰과 배터리를 분리시킨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안마의자의 진동 대신 케이의 가슴이 잔잔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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