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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스압] PUSH
게시물ID : panic_944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18R
추천 : 14
조회수 : 989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7/07/24 03: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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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 씨, 또 이 새끼네.”

유찬이 중얼거렸다.
휴일 낮. 도심 외곽의 한적한 커피숍.
맞은편에는 학창시절부터 단짝이었던 준우가 앉아 있었다.
준우는 유찬에게 정말 편한 친구였다.
준우는 자신을 불러낸 친구가 줄곧 휴대전화의 액정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딱히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친구의 용무가 끝날 때까지 평온한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다.

“왜 그래?”
“어? 아니 별 건 아니고. 내가 자주 가는 인터넷 싸이트에 관종 새끼가 하나 있어서.”

유찬은 준우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어떻길래?”
“하... 말하자면 긴데...”

유찬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은 뒤 자못 심각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유찬이 이용하는 곳은 각각의 세부 게시판에서 추천이 많은 글이 메인화면에 등록되어 더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건 ‘애벌레7호’라는 별명을 가진 이용자였다.
유찬은 그가 같잖은 지식으로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이 매우 고까웠다.

그가 설파하는 지식은 그야말로 사이비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간결하고 명료한 문장으로 쓰였고, 진위 여부를 떠나서 충분히 재미있었다.

그가 딱히 위험한 내용을 퍼트리고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흔해빠진 괴담에 나름대로의 추론과 약간의 과학적 사실을 섞어 흥미로운 글을 만드는 것뿐이었다. 해당 방면의 전문가가 본다면 피식 웃고 지나칠, 굳이 시비를 걸 가치도 없는 시답잖은 글이었다.

유찬이 핏대를 세워가며 애벌레7호를 성토하자, 준우는 흥미롭다는 듯 기름하고 잘 정돈된 얼굴에 얹힌 안경을 추켜올렸다.

“그래서, 뭐가 그렇게 화가 나는 거야?”
“말도 안 되는 걸로 사람들 추천을 받잖아. 그런 걸 진짜로 믿는 사람이 나타나면 어떻게 되겠어?”
“믿으면 큰일이 나는 거야?”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나는 그 자식이 이목을 끌려고 허튼 짓을 하는 게 재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야.”

유찬은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냥 두어도 아무도 손해 보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그러나 마음 속 깊은 곳에 가라앉은 미세한 알갱이들이 그의 신경을 끊임없이 간지럽혔다. 어쩌면 어떤 부류의 혐오감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한, 그런 본능적인 감정이었다.

유찬의 설명을 들은 준우는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유찬은 준우의 행동을 보고 그가 자신의 이야기에 흥미를 가졌음을 눈치 챘다. 손바닥으로 입을 덮고 시선을 내리까는 건, 준우가 생각에 잠길 때 곧잘 하는 행동이었다.

몇 분 간 생각하던 준우가 입에서 손을 뗐다. 그는 잘 닦은 안경의 렌즈보다 더 투명한 눈동자로 유찬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어떻게 하고 싶어?”
“뭐? 아니 뭐 딱히 어떻게 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그냥 좀 그만 나댔으면 좋겠어.”

유찬의 대답을 들은 준우가 싱긋 웃었다. 유찬은 자신의 절친한 친구가 뭔가 해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준우의 입에서 흘러나올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며, 유찬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2.
유찬은 준우와의 만남에서 돌아온 뒤 곧바로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그는 컴퓨터가 멈칫거리며 완벽한 준비태세를 갖출 동안 준우의 말을 곱씹었다.

똑똑한 친구가 가르쳐 준 방법은 굳이 어딘가에 적지 않아도 되는, 그런 간단한 방법이었다.

준우가 제시한 행동은 한 가지였다.

애벌레7호의 새로운 게시물에 댓글을 달 것.
댓글의 내용은 이미 지나간 게시물의 내용을 언급하며 애벌레7호에게 정정이나 해명을 요구하는 것으로 채울 것.

그 다음은 그저 지켜만 보면 될 것이라는 게 준우의 설명이었다.

유찬은 준우의 명석함을 믿으면서도, 과연 그 행동만으로 애벌레7호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을지 의심했다. 그저 댓글로 지나간 게시물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모든 게 해결된다? 유찬은 오히려 자신이 역풍을 맞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구닥다리 컴퓨터가 준비를 마쳤다. 유찬은 망설임 없이 인터넷 브라우저를 실행시켰다. 문제의 싸이트는 바로가기 첫 번째 칸에 등록해둔 상태였다. 추천 수가 50개를 넘어가는 게시물을 모아두는 명예의 전당에 애벌레7호의 이름이 보였다. 그것도 두 개나.

순간 유찬은 참을 수 없는 짜증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재빠르게 로그인한 뒤 애벌레7호의 게시물 목록을 뒤졌다. 애벌레7호의 게시물 목록은 거의 다 꿰고 있었다. 유찬은 그 중에서 가장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나 골랐다.

게시물의 URL을 복사한 뒤, 애벌레7호의 최신 인기 글의 댓글란에 붙여 넣었다.
그리고 자신의 미묘한 혐오감을 모두 담아 댓글을 작성했다.

★토사곽란(201*-07-23 11:43:49)(가입:201*-04-09)
지난 게시물을 보니 이 분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너무 함부로 퍼트리시네요.
특히 이 게시물이 제일 심각합니다. 누가 보고 진짜로 믿을까 두렵네요.
빠른 정정이나 해명 부탁드립니다.

확인 버튼을 누르기 전, 유찬은 마지막으로 고민했다.

고작 URL과 짤막한 요청이 담긴 댓글 하나. 이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유찬은 다시 한 번 애벌레7호의 게시물이 두 개나 명예의 전당에 올랐던 것을 떠올렸다. 머리에 열이 확 뻗쳤다. 유찬은 일말의 후회도 없이 확인 버튼을 눌렀다.


3.
유찬은 목이 타는 것을 느끼고 눈을 떴다.

원룸에 딸린 작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들이켠 뒤, 습관적으로 휴대전화를 들어 문제의 싸이트를 확인했다.

무심결에 명예의 전당 페이지로 이동한 유찬은 잠이 확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댓글의 수가 300개 정도로 불어나 있었다.

그가 댓글을 달 때만 해도 열댓 개 남짓이었다.
유찬은 댓글이 많이 달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싸움이 났든지, 아니면 게시물이 정말 어마어마한 재미를 주었든지.

그러나 싸움이 났다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불어난 댓글 수에 비해 추천 수의 증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유찬은 차마 그 글에 들어가서 자신의 댓글을 확인할 자신이 없어 개인정보 페이지의 댓글 모음을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댓글에 반대가 제법 달려있긴 했지만 추천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잠시 눈알을 굴린 그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았다. 그는 재빨리 애벌레7호가 쓴 원래 게시물 페이지로 이동했다.

자신의 댓글 아래에 또 하나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알권리(201*-07-24 00:15:27)(가입:201*-01-18)
토사곽란님 말이 맞습니다. 평소에 명예의 전당 눈팅만 하는데 애벌레7호님 게시물을 보면서 많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이렇게 문제가 불거지네요. 저도 애벌레7호님의 빠른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토사곽란님께 추천 드립니다.

그 아래로도 여러 개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내용이 알권리라는 이용자가 단 것과 비슷한 내용이었다. 유찬이 가져온 링크 말고도 몇 가지의 링크가 댓글란에 적혀 있었고, 하나 같이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퍼트리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유찬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동료들이 많다는 사실에 고양되었다.
물론 그 댓글들과 반대되는 댓글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댓글을 평가하는 추천과 반대 비율만 보아도, 유찬 같은 사람들의 의견이 더 많은 동의를 얻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준우가 내다본 미래가 정확했음을 깨달았다. 그저 댓글 하나만 달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이제 그 새끼도 좀 조용하겠지?’

유찬은 다음에 준우에게 커피라도 한 잔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편한 마음으로 다시금 잠자리로 파고들었다.


4.
유찬은 하루 종일 애벌레7호의 게시물에 단 자신의 댓글을 보며 히죽거렸다. 이제 반대파의 의견은 추천보다 반대가 찍힌 횟수가 더 많았다. 사실 상 완벽한 승리였다.

이제 댓글에는 다소의 원색적인 비난과 상스러운 말이 오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것을 크게 제지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중에 달린 댓글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니까. 유찬은 애벌레7호가 그 댓글들을 보며 인상을 구기는 장면을 상상하며 한껏 우월감을 만끽했다.

애벌레 7호는 하루 종일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저녁 7시를 조금 넘겼을 때쯤, 애벌레7호의 새로운 게시물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제목은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였다.
유찬은 자신이 부정할 수 없는 승리를 거두었음을 직감했다. 글의 내용은 보잘 것 없었다.
자신의 작성한 게시물은 악의를 가지고 한 것이 아니며, 본인의 무지함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어서 미안하다는 것. 글의 말미에는 그의 신상에 대한 약간의 정보가 공개되어 있었다. 

애벌레7호는 자신이 약간의 정신불안 증세를 가지고 있으며, 그 탓에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재미있는 글을 올려 추천을 받는 게 낙이라고 고백했다.

유찬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적의 시체에 말뚝을 박기 위해 댓글란을 찾아 화면을 움직인 유찬은,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애벌레7호의 진정성을 의심하며 날선 댓글들을 달고 있었다.
그 누구도 애벌레7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인터넷에서 오가는 정보의 진위를 밝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지금껏 애벌레7호가 해온 것도 그 어려움을 방패로 사람들을 속이는 일이었다. 간사한 악당의 화려한 거짓말에 속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고, 사람들은 십자가에 묶인 사형수에게 돌을 던지듯 날카로운 댓글을 적어 내려갔다.

애벌레7호는 그 댓글들에 하나하나 답하며 자신의 진정성을 증명하려 했다. 유찬이 보기에, 그것은 헛수고이자 기만이었다.

밤 아홉 시를 기해, 애벌레7호는 더 이상 댓글을 달지 않았다. 이용자들은 거짓말쟁이의 거짓말이 드디어 바닥났다며 즐거워했고, 그 누구보다 그 상황을 즐긴 것은 유찬이었다.
유찬은 열한 시가 넘어서도 애벌레7호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침대에 몸을 눕혔다.

진실은 승리하고 거짓은 불타리라.
유찬은 왠지 잠이 잘 올 것 같은 기분에 아주 살짝 소리 내어 웃으며 베개에 푹 머리를 파묻었다.


5.
그 후로 일주일 간, 애벌레7호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유찬의 관심사에서도 그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대신 혹세무민을 일삼는 또 다른 녀석이 눈에 들어왔고, 그는 새로운 악당의 글 목록을 뒤지며 준우가 가르쳐 준 방법을 사용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여덟 시를 조금 넘긴 시각, 유찬은 새로운 악당의 등장보다 더 심기를 거스르는 것을 발견했다. 애벌레7호가 또 다시 글을 올린 것이다. 제목은 ‘감사의 말씀드립니다.’였다.

유찬은 애벌레7호의 버릇을 제대로 고쳐놓았다고 생각했다. 거짓말쟁이가 한 수 접고 다시 받아들여달라고 무릎을 꿇으러 온 것이다. 그러나 유찬은 그를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아마 동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유찬은 자신의 동지들이 패잔병을 난도질하는 장면을 상석에서 구경하기 위해 재빨리 게시물을 확인했다. 그러나 게시물의 내용을 확인한 그는 몇 분간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말았다.

제목 :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애벌레7호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의 친형입니다.
며칠 전에 제 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여기에 글을 올리는 재미로 버텼던 것 같습니다.
동생 신변을 정리하다 컴퓨터를 켜서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동생이 쓴 글에 많은 관심과 칭찬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글에는 그렇게 짤막한 내용만이 적혀 있었다.
유찬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죽었... 다고...?’

댓글창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애벌레7호의 명복을 비는 사람, 조작이 아니라면 인증을 하라는 사람, 누가 일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찾아내어 벌을 받게 하라는 사람, 아예 지어낸 말로 치부하며 비웃는 사람.

그 모든 댓글들이 한 데 뒤엉켜 수라장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유찬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곳의 역겨운 풍경이 아니라 ‘주동자를 잡아 처벌하라.’는 댓글뿐이었다.

유찬은 말라비틀어진 입술을 쩝쩝거리며 간신히 적셨다. 손이 말을 듣지 않아, 마우스 커서를 움직여 컴퓨터의 전원을 끄는 데만 해도 평소보다 배는 시간이 걸렸다.

유찬은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제야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정말일까...?’

유찬은 글의 진위에 대해 고민했다. 모든 것이 거짓말일 거라는 행복한 상상은 점점 바람이 빠져 쭈그러들었다.

‘진짜면 어쩌지...?’

유찬은 더럭 겁이 났다. 주동자는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글 목록을 살펴보면 단박에 증거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댓글을 지울까?’

그래도 자신의 댓글에 달린 댓글들은 남는다. 그리고 모든 정보는 사용자가 삭제해도 일정기간은 보관된다고 들은 기억이 있다. 오히려 글을 지우는 것이 증거인멸에 해당해 더 큰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었다.

유찬은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끼고 자신의 가슴을 한 번 쳤다. 가까스로 다시 숨을 쉬게 된 그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집어 준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내일 볼 수 있어?
- 좋아. 대신 2시 이후에. 어디서 볼래?

지난번 그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유찬은 베개도 없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얼굴조차 모르는 애벌레7호의 모습이 눈 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유찬은 모든 것이 애벌레7호가 지어낸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는 마지막 희망을 간신히 붙잡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6.
“얼굴이 왜 그래?”

준우가 유찬의 얼굴을 보고 처음 건넨 말이었다.
그 때 그 커피숍. 대신 자리는 가장 구석진 곳, 칸막이로 막힌 자리였다. 화장실을 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앞을 지나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찬은 준우가 오기 한참 전에 도착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준우는 언제나처럼 순진한 얼굴로 유찬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핏기 없는 피부, 퀭한 눈, 말라서 갈라진 입술. 수염은 며칠이나 깎지 못했는지 거슬릴 정도로 자라 있었다.

“벌써 한 잔 마신 거야?”

준우는 유찬의 앞에 놓인 종이컵을 살짝 들었다 놓았다. 거의 마시지 않은 커피가 차갑게 식어버린 것을 눈치 채고, 준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았다.

“죽었대.”

오랜 정적을 깨고 유찬이 입을 열었다.

“죽어? 누가?”

준우가 되물었지만 유찬은 또 다시 입을 다물었다. 흔들리는 눈동자. 눈물을 흘리고 싶지만 쥐어짜낼 눈물이 없는 듯한 표정으로, 유찬은 어렵사리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을 고백했다.

준우가 가르쳐 준 대로 댓글을 단 것, 사람들의 반응, 애벌레7호를 둘러싼 일들의 결말, 주동자의 색출 등...
물론 자초지종에서 유찬이 느꼈던 비릿한 즐거움은 빠진 상태였다.

준우는 유찬의 이야기를 전부 듣고는 손으로 입을 감쌌다. 유찬의 설명이 썩 훌륭한 건 아니었지만, 그는 충분히 사건의 정황에 대해 이해한 것 같았다.

준우가 손을 떼었다. 유찬은 간절한 눈으로 준우의 입에서 흘러나올 복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준우의 눈동자는 언제나처럼 맑고 투명했다. 유찬은 친구의 눈에서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사악한 조언을 해준 친구가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잡아뗄 가능성도 생각해봤지만, 그의 눈에서는 그런 의지조차 읽을 수 없었다.

“네가 그 사람을 때렸어?”
“뭐?”

그건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것이었다. 그 어떤 의도도 포함되지 않은 아주 올곧은 질문. 유찬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가 묻는 것들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아니.”
“네가 그 사람을 칼로 찌르기라도 했어?”
“아니...”
“그럼 네가 낭떠러지에서 떠밀기라도 했어?”
“아니...”

준우는 싱긋 웃으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댔다.

유찬은 지나치게 여유로운 그의 행동과 표정에 의아함을 느꼈다. 준우는 마치 유찬의 불안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느긋한 표정으로 유찬을 바라보았다.

억겁과도 같았던 몇 초의 시간이 흐른 후, 말라비틀어지기 일보 직전의 유찬에게, 잔잔한 미소를 띤 준우가 말했다.
아주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려 머리 뒤에서 깍지를 끼며.
저녁식사로 뭘 먹을 지 이야기하는 그런 대수롭지 않은 투로.



“그럼 네가 직접 죽인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출처 처음 떠올렸을 때는 겁나 쩐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쓰고 보니 마지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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