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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필사] 김숨 소설집 『침대』
게시물ID : readers_290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ㅁㅈ이
추천 : 2
조회수 : 27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7/25 15:29:25



복도에 버리고 온 한 무더기의 뼈들을 기억해냈다. 그녀는 뼈들로 복도 콘크리트 벽 갈라진 틈들을 메웠다. 콘크리트 벽은 틈들로 넘쳐났다. 그녀는 자라처럼 목을 길게 빼고 뼈를 울컥울컥 토해냈다. 그녀의 살 속에 박혀 있던 뼈들이 한 덩이 한 덩이 토해졌다. 손가락 마디마디의 뼈들이 무더기로 토해졌다. 그녀는 뼈들로 틈들을 메웠다.

“심장은 왜 남겨두느냐고요? 신의 심판을 받기 위해서라고 했어요. 죽은 자들의 신이 있는데, 한 손에는 새의 깃털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죽은 자의 심장을 들고 무게를 잰다고 했어요.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우면 영원히 죽게 하고 가벼우면 부활하도록 한다고 했어요.”

「409호의 유방」



침대에 넘쳐나던 빛이 침대 밑으로 흥건히 흘러내렸다. 쇠창살 그림자가 침대에서 미끄러져 그녀의 발목 부분까지 길게 늘어졌다.

쇠창살 새로 새벽의 차가운 안개가 소용돌이무늬를 그리며 밀려들어왔다. 암흑이 차츰 걷히고, 침대가 안개 속에서 섬처럼 떠올랐다.

「침대」



그녀는 손님들과 한 공간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손님들과 전혀 다른 공간에 존재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격리’의 느낌이 손님들과 그녀 사이에 투명한 유리 칸막이처럼 가로놓여 있었다.

어둠이 그녀의 집 거실에 폐수처럼 흘러들었다. 손님들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손님들의 눈동자 흰자위들이 죽은 물고기들처럼 떠다녔다.

집은 그녀에게 격리의 공간이기도 했지만,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완전하게 보호해주는 공간이기도 했다.

「손님들」



청바지에 휩싸인 그들의 두 다리는 게의 뻣뻣한 다리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들이 발짝을 내딛을 때마다 무릎 관절들이 분질러질 듯 구부러졌다.

그는 녹이 자신의 살과 뼈들과 혈관들로 번져나가기를 바랐다. 혈관들을 타고 심장까지 흘러들어 심장에 녹의 기운을 퍼트리기를…… 심장이 녹 덩어리처럼 굳어버리기를…… 그는 철제 책상에 달라붙은 거대한 녹 덩어리가 되고 싶었다. 녹이 녹을 먹는 것처럼 철제 책상을 녹으로 뒤덮고 싶었다.

「박의 책상」



여자는 허공에 대고 가위질을 했다. 부엌 창으로 비쳐든 햇살이 축제라도 벌이듯 분분하게 잘렸다. 여자는 가위를 식탁에 얌전히 내려놓았다. 기하학적으로 잘린 햇살들이 식탁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찬장 두 번째 서랍에서 꺼내져 자신의 손에 쥐어지는 순간, 지금까지의 삶이 ‘혁명’처럼 달라질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두 번째 서랍이 어느 때보다 유독 세상의 온갖 비밀을 간직한 듯 보였다. 그 속에 우주라도 품고 있는 듯 거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속에서 별들이 운행하고 달과 태양이 떠오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두 번째 서랍이 점점 작아지더니 소실점으로 사라졌다. 두 번째 서랍에 채워져 있는 자물통도 점점 작아지더니 반짝, 찰나의 빛을 발하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두 번째 서랍」



트럭은 이를테면 아버지에게 염소나 소나 낙타 같은 것이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염소나 소나 낙타를 사들이는 심정으로 트럭을 사들인 것은 아니었을까. 폐차될 날만을 기다리는 수많은 중고 트럭들 중에 가장 순하게 구는 트럭을 골라 집까지 끌고 온 것은 아니었을까. 아버지는 밤마다 트럭이 힘센 뿔을 고집스럽게 치켜들고, 검은콩 같은 똥을 무더기무더기 싸지르는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트럭이 단봉낙타처럼 광할하고 쓸쓸한 모래사막을 묵묵히 건너가는 꿈을 꾸었는지도……

혁대들은 아버지의 발 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아버지의 말복과 허버지와 등짝을 친친 휘감아갔다. 겨드랑이와 목까지 휘감아 숨통을 조였다. 아버지는 버둥거리다 단말마 같은 숨을 겨우 토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버지에게 넘치도록 충만했던 그 어떤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사막의 모래뿐이었을 것이다.

매서운 바닷바람이 불어 방수포가 펄럭거릴 때마다 아버지의 망막으로 밤하늘의 별자리들이 쏟아지듯 들어찼다. 리비아 사막에서 올려다보던 밤하늘의 별자리들과 이상하게도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트럭을 뗏목에 싣고 바다로 나가 서쪽으로 떠밀려가는 꿈을 꾸었다. 모래들이 아버지의 귓구멍으로 흘러들었다. 귓구멍을 틀어막아 파도소리를 침묵에 잠기게 했다.

「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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