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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아라드 괴담 - 略式百物語 #. 두 번째 이야기 두 개의 면모
게시물ID : dungeon_6651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athance
추천 : 2
조회수 : 20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8/03 00:3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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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내는 자신의 앞에 한창 심지를 태우고 있는 초 하나를 두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에반젤리스트라고 하면 어떤 게 먼저 떠오르나요? 굳이 그쪽으로만 생각하지 않아도 돼요. 그냥 크루세이더라고 생각해도 괜찮으니까요. 방향이 다를 뿐이지, 홀리오더도 에반젤리스트도 크루세이더니까요.
 어딘가 성스럽고…이쁘다고요? 어…그건 개인차가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에겐 이쁘게 보일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겐 아닐 수도 있잖아요. 아, 네. 모험할 때 꼭 필요한 분들이죠.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건 프리스트뿐이고, 그걸 또 빠르게 치료할 수 있는 건 크루세이더뿐이니까요. 네, 그만큼 모시기 힘든 분들이기도 하죠.

 제가 해드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에반젤리스트는 굉장히 심성이 바른 사람이었다고 해요. 언제나 밝고 활기찬 모습을 보였고, 힘든 사람이 있으면 격려해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했고, 늘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고…하여튼, 온갖 좋은 수식어는 다 붙을 정도였대요. 굉장하기도 해라.
 그만큼 주변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해요. 당연하겠죠. 저런 모습 하나하나가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줄 테니까요. 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이 걱정했다고 해요. 그도 그럴 게, 그 사람은 항상 피곤해 보였거든요.
 밝게 웃고 있지만, 그 눈가는 늘 검었어요. 쾌활했지만, 하품을 달고 다녔죠. 그래서 사람들은 잠을 못 자는 것일까, 너무 무리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고 해요. 저러다 쓰러질까, 큰일이라도 나는 거 아닐까, 하면서요.
 제 피로에 짓눌리기 전에 쉬엄쉬엄하라고. 너무 졸리면 한숨 자라고. 많은 말을 들었지만, 항상 그녀는 웃으면서 고개를 내저었대요. 자신은 자면 안 된다는 게 그 이유였어요. 당연히 주변에선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죠. 하지만 그 이유로 통 쉬질 않으니 어찌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에반젤리스트는 모험가들의 부탁을 받고 그들의 일에 잠시 동행했다고 해요. 크루세이더를 동반해갈 일이라니, 조금 위험한 일이었나 봐요. 여기서도 그녀는 자신을 아끼지 않고 모험가들을 도왔다고 해요.
 다친 사람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달려나가 치료를 해주고, 강해지도록 버프를 해주고, 기도를 해주고, 요리나 각종 궂은일도 도맡아서 하고, 그 외 이것저것. 동행해주는 것에 대한 보수도 전부 마다하고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열심히 일한 거예요. 이해가 안 간다고요? 왠지 그런 말 할 것 같았어요. 아마 천성 같은 거 아니었을까요?
 그녀는 평소에도 과하게 열심히 하는 만큼, 그 자리에서도 과하게 열심히 했어요. 누가 보더라도 피곤하게 보였는데도 그녀는 절대 먼저 자는 일도 없었대요. 자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냥 눈을 감은 채 쉬고 있는 거라거나…그랬죠.
 그래서 모험가들도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해요. 저러다 위급할 때 피로로 쓰러지기라도 하면 낭패였고, 무엇보다 모험 외적으로도 많이 베푸는 모습에 모험가들도 정이 많이 들었던 거에요. 그래서 일부러 일정을 늦춰서라도 쉬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고 해요. 피곤해 보이는 그녀를 위해서요.

 그래도 그녀의 피로는 충분히 풀리진 않았나 봐요. 어느 날, 제일 늦게 잠들던 그녀가 그 누구보다도 먼저, 그 언제보다도 깊게 자고 있는 거였어요. 당연히 다들 많이 피곤했던 거구나 싶어서 아무도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어요.
 그녀를 근처에 뉘어주고, 이불까지 덮어준 뒤 다른 모험가들은 자기 전까지 제각기 할 일을 했어요. 무기와 방어구를 간단히 정비한다거나, 간단하게 먹는다거나.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리에 누워 있던 에반젤리스트가 없어진 걸 알게 되었죠.
 자고 있던 사람이 없어지다니. 게다가 혹시나 몬스터가 덤벼들까, 조금씩 경계하는 사람들에게 들키지도 않고 사라지다니. 게다가 맨몸으로 사라지다니. 모험가들은 깜짝 놀랐어요.
 비상이었겠죠. 위험할 것 같아 크루세이더를 모셔왔는데, 자던 중 갑자기 사라져서는, 최악의 경우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아니, 일단 신성력으로 싸운다지만, 무기도 없이 사라졌으니까 걱정이 되는 게 당연했어요. 그래서 그들은 서로 흩어져서 그녀를 찾기로 했어요.

 그렇게 홀로 어디론가 사라진 그녀를 찾던 실버문은 문득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시선을 느꼈다고 해요. 몬스터인가 했지만, 단순한 그런 것의 기척이 아니었어요. 그것보다 훨씬 메마른, 그러면서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오싹한 그런 기척이 느껴졌대요.
 알 수 없는 오한에 실버문은 그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그 기척이 멀어지기 시작했죠. 손이 땀으로 흥건해질 정도의 긴장감. 그 시선이 멀어진 뒤에야 가쁘게 몰아서 쉬는 숨. 당장에 도망가야 한다고, 조금 전까지 자신을 보던 것은 위험하다고 직감했죠.
 여기서 그 실버문이 도망쳤을 것 같나요? 네. 그 실버문은 물러나지 않고 그 시선을 쫓기 시작했어요. 그런 게 있으면 에반젤리스트가 위험할 수도 있었으니까, 어디론가 가버린 기척을 쫓아 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했죠. 하지만 얼마나 빠른 건지, 아무리 달려도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실버문의 속도는 잘 아시죠? 그 속도로도 도통 붙잡을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도 실버문은 멈추지 않고 기척을 향해 달렸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멈춰 선 기척을 쫓아 한참을 달린 끝에 도착한 곳에는…. 어디서 구한 것일까, 날카로운 흉기를 들고서 살아있었던 게 확실했을 무언가를 마구잡이로 난자하는, 무서운 표정을 한 '그녀'가 있었어요.

 한참 동안 흉기를 내리찍던 '그녀'는 갑자기 실버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어요. 아무런 표정도 없이 공허한 눈을 한 채로. 그와 동시에 실버문은 달렸어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를 내면서. 뒤쪽에서 무언가가, 아마도 '그녀'가 쫓아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그 말을 마지막으로 사내는 자신의 앞에 있는 촛불을 불어 꺼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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