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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필사] 박성원 소설집 『고백』
게시물ID : readers_291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ㅁㅈ이
추천 : 4
조회수 : 30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8/03 22:26:08

박성원 소설집 『고백』



난 두 가지 냄새가 섞여 있을 때 안심을 해. 그건 나약하다는 표시기 때문이야. 난 나약한 사람들을 사랑해. 나약한 사람들 대부분은 상처투성이야.

―레슬링을 하면서 내가 깨우친 게 뭔지 알아? 둘이 부둥켜 안고 있지만 결국 혼자라는 거지. 미끄러지는 땀 속에서 말이야.

―모든 추상은 현실에서 온다. 강해지기보다는 강함을 느껴야만 한다.

아무리 많은 수의 환자를 돌보아도 결코 환자가 될 수 없다는 서양 속담이 있어. 내가 그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기찻길처럼 영원히 마주 본다는 데에 있어. 마주 봐야만 하지만 결코 벗어나거나 헤어질 수는 없어.

―그러니까 똑같은 문장이라고 하더라도 그 장소에 당연히 있을 법한 곳에 사용하면 눈에 띄지 않고 익숙해지는 데에 비해 상황이 다른 장소에서 사용하면 의미나 감정마저 다르게 전달되는 법이지.

「고백」



사진은 시간을 조각낸다. (중략) 그런 사진들을 한꺼번에 보고 있으니 조각난 시간만이 뒤엉켜 있는 것 같았다.

절박한 것은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뿐이었다. 바보 같은 얼굴. 절박한 그림자. 그때나 지금이나 돌멩이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공통점 밖에 없다.

거짓말은 교육을 통해 필수적으로 습득되는 것이다. 교육도 심지어 사랑도 이데올로기다. 세상엔 거짓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과 거짓말을 하는 사람 그리고 진심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늘 두렵다. 두렵기에 의존한다. 그러니 이젠 더 이상 의지할 그 무엇도 없다. 진짜를 만나는 순간 오직 더러움 뿐이다.

「더러운 네 인생」



인간의 몸은 간사한 것이다. 몸은 생활에 맞춰 길들여진다.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처럼, 장님이 청각을 발달시키는 것처럼, 침대에 맞춰 몸을 늘리고 줄이는 것처럼, 노선에 맞춰 버스를 타는 것처럼,

그러니까 어쩌면 태양이 되지 못한 도넛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한가운데 구멍이 휑하니 뚫린 태양이란 있을 수 없다. 꽉 찬 밀도와 들끓는 밀도, 그러나 그의 삶은 도넛과 같았다. 음식을 채워 넣고 술과 담배 연기를 욱여넣어도 텅 비어 있는 도넛의 구멍. 그리고 그 구멍에선 늘 환청이 떠다녔다. 내 탓이 아니야.

시간은 자기 몫을 챙겨 유유히 사라지지만 사람의 기억은 시간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오후의 그림자처럼 한없이 길게 늘어진다.

점과 점 사이의 거리. 출발 지점과 독착 지점. 우리는 공간 사이의 거리만 계산할 수 있을 뿐이다. 도착 지점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몸」



한 방울의 피에는 한 사람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고 했다.
세상은 하나의 지도란다. 그렇기에 지도를 벗어날 순 없는거야.

하지만 나는 차라리 그런 음악 소리에 위안을 얻곤 한다. 그들의 음악에는 궁지에 몰린 이들의 절박한 감정이 담겨 있다. 굶주린 듯 헐떡이는 목소리가 내 뱃속에서 터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특히 피를 달라고 외치는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마침내 전율하듯 온몸을 솟구치곤 했다.

「심해어」



열등감은 자석과 같아서 서로 잘 잡아당기는 법이다.

아, 기계들이 만드는 몽타주여, 위대한 기계들의 콜라주여. 미술은 여기에 있었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굳이 전시실까지 찾을 필요가 없는 거구나.

「여름이 가기 전에 해야 할 일 세가지」



언제부턴가 그녀는 정지된 모습이 좋았다. 사진이나 그림처럼 액자 안에서 찰나도 움직이지 않는 모습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녀가 싫어하는 것은 바람에 흩날리는 젋은 여인들의 치마와 가는 비에도 떨어지는 여린 꽃잎, 그리고 깔깔거리는 웃음에 흔들리는 머리카락이었다.

<사진 1>출발하기 전 첫 번째 사진. 정지는 멈춤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가능성이다.

문을 닫는 순간 모든 소음과 빛이 사라졌다. 눈앞에 보이는 건 맑은 어둠뿐이었다.

그 무엇도 진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진짜는 무엇일까. 내가 들이마시는 공기. 움직이는 손가락. 천천히 내디디는 발. 발바닥에 전해오는 부드러움. 이게 진짜일까.

「침수」



그 친구의 방에서 잘 때면 히말라야를 오르는 꿈을 자주 꾸었는데, 정상을 바라보며 오르고 있으면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하늘을 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펄럭이는 바람 소리와 눈썹 위에 달라붙어 있는 고드름, 거친 호흡을 할 때마다 뱉어지는 숨결, 그리고 막연한 공포감이 뒤범벅되어 꿈속에 달라붙어 있었다.

내가 걸어왔던 길. 여행을 다니면서 수없이 걸었고, 지나쳤고, 보았던 그 길들. 비에 젖은 길. 흙먼지가 피어오르던 길. 새벽이슬이 눈물처럼 내려앉아 있던 길. 버스가 지나간 뒤 움푹 패어 있던 길. 술에 취해 내가 주저앉아 있던 길. 도시의 네온사인을 받아 멍든 것처럼 보이던 길. 누나의 손을 잡고 학교로 걸어가던 길. 아버지와 캐치볼을 하던 골목길. 자전거를 타던 길. 흰 눈에 뒤덮인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던 길. 어머니와 시장 보러 가던 길. 친구들이 시위를 하던 길. 내 발길이 닿았던 그 모든 길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는 무척 흔들렸다. 차장 밖에선 나무도 흔들렸고 강도 흔들렸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내가 흔들린 것이리라. 내 몸이 흔들린 것이지 나무나 강이 흔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 터였다.

「어느 날 낯선 곳」



아, 아. 젠장. 이제 2,3주 후면 20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아, 아. 다 쓴 휴지처럼, 더 이상 깎을 수 없는 연필처럼, 바람이 불어도 산세밀라의 초라한 이파리는 내 뺨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런. 리필도 할 수 없는......

녀석이 긁고 지나간 자리에는 활주로처럼 어김없이 길고 곧게 뻗은 붉은 자국들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조금 심하게 긁었다 싶은 곳에서는 간혹 외피 세포가 벗겨져, 작은 핏방울이 꽃망울처럼 부풀고 있었다. 녀석이 긁었던 곳을 다시 긁자 이번에는 채 응고되지 않은 핏방울이 번져, 추상화에 물감을 엎지른 듯 번져갔다.

거리가 떨어져 있든, 인종이 다르든, 도무지 필연의 끈을 찾아보기 힘든 우연함 속에도 언제나 보이지 않는 필연은 숨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내 꿈과 녀석의 현실이 이때까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단 말인가. 극좌와 극우가 통했듯 쾌락주의와 금욕주의가 상통했듯, 유물과 관념도 서로 깊게 내통하고 있었고, 보이지 않는 필연의 끈으로 묶여져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동안 도무지 찾으려야 찾을 수도 없었던 녀석과 나의 필연의 끈이 내 꿈과 녀석의 현실에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녀석은, 그동안 녀석은, 내 꿈을 먹고 살아왔단 말인가. 한정된 재화를 서로 빼앗고 빼앗기듯이, 누군가의 꿈으로 누군가가 현실에서 먹고 살 수도 있단 말인가.

「보너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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