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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뭔 죄냐고..?
게시물ID : readers_291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심한듯쉬크
추천 : 5
조회수 : 87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8/04 02:55:32

그러니까 
이 글은 내가 그냥 시쿤둥하게 생각했던 
하루키를 후진 작가로 강등시켜버린..
하루키를 사랑한다던
무척이나 구렸던
내 젊은 날의 등장인물들 중에서
친구1에 대한 나의 뒷담화이다.

 
하루키를 입에 달고 살며
온라인 하루키 동호회에 활동하고
지적쎈쓰가 넘치고
문학적 감수성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그리고, 주변을 상기시키던 친구가 있었다.

문학을 포함한 다른 지적영역을 
일상의 화제에 올리는 사람은
남들 보기에 잘난 척으로 보일 수 있는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는 지라.
공통 화제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어디가서 맘 편히 떠들리..하는 마인드로
나와는 다른 취향의 그녀를 그려려니 봐주었고,
또 실제로 그 친구역시
자신이 늘 입에 달고 다니던 거처럼
예민하고, 센쓰가 넘치고, 상처를 잘 받는 사람이리라고 믿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스무두어살에 만나, 
오년이 흐르고, 
십년이 흘렀다.
 
나는 
더운 날의 생크림케잌같은 멘탈을 
오직 콤플렉스 하나로 지렛대삼아
무념무상한 세상과 홀로 전투를 치러 나갔고,
나름에 승리와 나름의 패배후에 나름의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그런 일상중에
그 친구와는 일년에 한두번의 전화통화로 
그간 잊고 살았던, 
세상에 여전히 존재하는 교양스런 이야기들을 
화제에 올리곤 했다.

 
나의 싸움만큼 
그녀의 전투도 치열했는지는 모르겠다.
사는 것이 모두 다 제각각 다른 싸이즈 신발 신는 거
각자의 인생무게를 어찌 함부로 측량하랴.

그 친구는 
여전히 하루키와 
버지니아울프의 자신만의 방과 
쟝그니에르...
그리고, 가끔씩 카프카
이 네사람을 번갈아 읊어 대었고,
같은 문장, 비슷한 느낌은 여전했다. 
나는 그려려니..안물안궁..일관되네..싫증도 안나나?
같은 작가라도 세월따라, 생활따라 해석이 바뀔텐데..이러고 말았다.
 
그 친구도 나도 
양아치같은 타이밍의 청춘앞에서
맨손으로 각개전투와 고군분투중이여서
말만인 위로도 서로에게 컸고, 
진심만이 전해지는 어리석은 충고도 금과옥조였고..
뭐든 좋게만 해석되던 시절이 지나고..
 
각자의 인생 스테이지에 
결혼과 임신의 시즌을 지나가게 되었다.
내가 몇달씩 앞서서 뭇사람이 예던 길을 지나갔다.
미국이 조금 큰 나라다.
그래서 멀리 사는 그 친구에게
나는 결혼식 참석도, 선물도, 뭐도..
별로 진심인 마음밖에 그 친구에게 바란 게 없었는데...
그런 나와는 달리,
그 친구는 나한테 당당하게 물어보고,
당당하게 요구하며,
당당하게 실망했다.

 
나는 학기말이였고,
나는 임신중이였으며,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학위를 마치려
학점을 추가로 더 수강하고 있었다.

나의 결혼식에는 진심으로 축하하던 전화만 있었던 그녀가
내가 내 남편과 그녀의 결혼식을
몇개주를 건너는 비행기를 타고 와서 참석하고,
아무 대책없이, 며칠을 머물며 축하해주길 바라며,
한국에서 온 식구들로 가득한 그녀의 신혼보금자리에서
그녀의 엄마가 결혼식 이틀전에 나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너는 왜 오지 않느냐고..힐난하며, 물으실 때도 
나는 죄송하다며 연신 미안해 하는 걸로
마무리 하고 말았다.
 
추운 겨울날
후미진 도서관에서 끝날 것 같지않는 시험공부를  하루종일하며
짬뽕이 무척이나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내게
결혼식 후에도 그녀는 자주 전화를 걸어
내 보기엔 그냥 오지랖넓은 노인의 참견같은 시어머니에 대한 무궁한 흉과
그 입장이라면 느껴질 듯한 동서들의 나름의 이유있는 서걱거림에 대해 불평을 하고는 했다.

내 모든 사정과 형편을 다 아는 그녀가
도서관에 앉아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오늘은 임산부 옷을 보면서..니 생각을 했다..로 시작하는 인트로와
어쩌니..내가..옆에 있었으면 짬뽕이라도 테잌크아웃해서 가져다 줄텐데..의 클로징멘트를
앞에 나온 작가들을 돌아가며 외듯이, 주문처럼 읊조리며
나를 무장해제시키고, 
자신의 일상의 본론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왜 이 새로운 시갓식구들은 나를 몰라보냐..는
 
그러다,
여전히 짬뽕을 먹고 싶어하고
여전히 불어나는 몸에 맞는 옷을 사러갈 시간을 찾지 못하고
여전히 하루종일 앉아서 공부를 하던 나에게
소포가 하나 도착했다.
 
서울에서 온 거였다.
당시 싸이월드가 유행이였는데.
거기서 임신사실을 안 서울사는 다른 친구가 
무얼 하나 나에게 보낸 거였다.
배가 아주 편한 비로도같이 생긴 임산부 바지
임산부 윗도리, 또 임산부 바지..그리고, 임산부 영양제.
뭔 쪽지도 하나 없이, 
무심한 기지배가 그냥 그리 던진 거다.
 
도서관 구석까지 날 찾아와
말도 없이 소포를 전하고
자기 시험에 바빠 서둘러 떠난 남편을 보며,
사서에게 가위를 빌려 박스를 열어 보았다.
그리고, 나는 울었다.
 
내가 추운 겨울날 먹고 싶고, 그리워 하던 짬뽕이..
내가 도서관 구석에 공부하다가, 눈치 보며 받았던 전화들이..
그리고, 소포를 펴 보고, 
임산부 바지를 꺼내 화장실에서 갈아 입고,
다시 앉으면서 느껴지던 그 편안함이 주던 안도감이,
그리고, 
소포의 포장지를 휴지통에 버리지 못하고
가방속에 구겨넣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 순간이
뭔가 진짜와 안진짜를 가르는 그 순간같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세월이 흘러,
우연히 책을 검색하다가  
그 친구의 블러그를 보게 되었다.
내 심술궂은 눈에는 
글도 여전히 같은 말이고, 
사진도 여전히 안 늘었더라.
하지만,
갈고 닦은 포장솜씨는 더욱 일취월장하여,
작은 미국 동네에서 드문 한인커뮤니티에는
잘 포장되어 팔리는 센쓰를 발휘중이었고,
또, 여전히, 하루키..하루키..하루키..
어쩌다 버지니아 울프.. 
또 어쩌다 쟝그니에..의 쳇바퀴를
한바퀴씩 돌리고 있었다.
그 바퀴에서 탈락한 수고한 카프카에게 위로를..
 
늙지도 않냐..가 첫 반응이였고
그래도 계속 돌리는 자생적 PR효과가 먹히고
여전히 그리 포장된듯한 그 무엇과 몰아일체로 사는 그 느낌적 느낌이 불쾌했고..
그리 느끼며 들여다 보는 내가 제일 불쾌했다.
 
그러나, 그녀의 쳇바퀴는 부지런 하고 일관된 거 인정
그리고, 그 불쾌함을 제거하는 게 나한테는 필요하다는 거 인정
 
이 기분나쁨의 근원에 내가 있나?
남한테 피해안주는 자뻑에 내가 왜 분노하나?
혹시 나한테도 그런 면이 있어 더 열받나?
내가 그 친구한테 사기라도 당한 느낌인가?

말만 번지르한 이기적인데 공주인데..
거기까지는 괜찮은데,
남으로 시녀삼는 거.
지는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하며 진심만 주는데,
내가 되갚는 진심은 외면한 채,
내 빈손을 자꾸 쳐다보며, 뭐 없냐고 지적질 하는 거.

뭔가를 선망하는데
지가 선망하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너는 알거라고 자꾸 까꿍거리는 거.
스타일만 엄청 신경쓴거?

외롭다 외롭다..카는 데,
온갖 외로울 씨앗은 당사자가 뿌린다는 거

그리고, 그 이유를 죽어도 모를 그런 말알간 표정의 캐릭터들의
대변자로 하루키가 오랫동안 나에게 제껴제 있었다는 거

그러다 생각들었다.
하루키가 뭔 죄가 있냐는 거
하루키를 싫어함에.. 내가 사심있었음을 인정
 
그리고, 마음 고쳐 먹는다.
나 아님 또 누가 내 마음속 맺힌 것을 풀어주리
let go..하며, 내가 다시 함 읽어 줄란다.
하루키..기달리..




내 화해의 제스쳐에
알라딘신의 장바구니에서 희생된 
황정은 작가의 책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
그 미안함을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를 기점으로
더이상은 더러븐 기억의 영향으로 
책 지르기를 하지 않으리라고..
내 손 씻겠다고.. 맹세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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