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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필사]백가흠 소설집 『四十四』
게시물ID : readers_291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ㅁㅈ이
추천 : 4
조회수 : 20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8/05 19:18:14


백가흠 소설집 『四十四』



그는 어렸을 적에도 말을 끝까지 다 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뱀이 내는 소리처럼 숨을 들이키며 스으, 하면 모두 그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다. 앞니 사이로 드나드는 숨소리가 언제나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다음은 기회도 없었고, 말도 없었다. 스으, 다음에 한 번 시작된 주먹질은 웬만해선 멈추지 않았다.

「한 박자 쉬고」



‘왜’라는 물음은 그에게 가장 의미 없는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왜’에 답해야 하는 것을 그는 참을 수 없었다. 모든 일에 근원이나 본질이 있다는 것에 대해 동의할 수 없었다.

「더 송 The Song」



지나간 것처럼 보였던 겨울이 다시 얼굴을 디밀었다. 오고 있던 봄은 도로 물러갔다.

스무 살, 그때도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덕분에 그는 살기 위해 자기를 버리는 법을 일찍 체득했다. 자신을 잊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자기의 주장도 없어야 했고, 정치나 그 밖의 사회에 대한 인식 같은 것도 불필요했다. 그에겐 생존만이 필수적인 것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쓸모없고 쓸데없는 일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에 비껴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다. 언제나 침묵했다.

사람들 눈에 띈다는 것은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언제든 바깥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라고 그는 믿었다.

그는 그녀가 예전보다 더 시끄러워졌다고 생각했다. 상황이 바뀌면 당연히 사랑도 바뀌어야 했다. 사랑이란 감정이 자연히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의지로 감정을 바꾸는 것이라고 믿었다.

모든 것이 너무 느리게 흘러갔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잊히고 사라져갔다. 맨 처음이 다시 기억나려면 지나온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남은 생에서 그것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그는 삶에 너무나 순응적인 사람이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은 모두 미친 짓이었다. ‘사랑이 어딨나. 나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

「흰 개와 함께하는 아침」



말하지 않고도 서로 통한다는 것이 익숙함이라면, 그 익숙함은 많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참으로 평범하고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주로 얘기했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는 우리와는 다른 부류로 인식되어갔다.

어둠 속, 저 멀리 펼쳐져 있던 짙은 암흑의 윤곽이 사라지고, 아주 가까운 곳의, 불빛이 닿는 곳의 황량함만 눈에 들어왔다. 하드라이트가 닿는 그 너먼의 짙은 어둠은 보이지 않았으니 더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아내의 시는 차차차」



어둠은 소리 없이 사방으로 퍼졌다. 나는 낮에서 밤이 되어 가는 하늘빛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석양이 질 무렵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하늘은 붉게 반짝였고, 금세 축축하고 싸늘해진 공기가 땅에 내려 앉았다. 열어놓은 창으로 겨울 냄새가 들이닥쳤다.

가을 내내 햇살 속을 전력 질주했다. 귓바퀴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좋았다. 바람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전거를 멈추면 나를 향한 말들이 어수선하게 떠다니는 것 같았다.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에 따라 작품이나 책의 의미는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이미 검증된 필자를 가까이 두는 것이 모든 면에서 나았다. 필자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를 피해 하릴없이 작은 방에 앉아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밀려왔다가 멀어지는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를 피해 둥근 달을 좇아 빠지고 들어오는 바닷물의 깊이를 엿보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혼자여서 작은 방에 있는 것뿐이었다.

말은 돌면 돌수록 사실에 가까워졌고, 오해는 오래되면 사실이 되었다.

「흉몽」



그와의 시간이 쌓이며 그녀도 모든 것이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감정은 더욱 거대해져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四十四」



매일 통화로 소소한 일상까지 수다를 떨었고 가족보다 서로를 잘 알았지만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도 그만큼 크기 마련이었따. 자신들이 정말 서로를 좋아해서 친구로 남았는가 곰곰 생각해볼 때가 많았지만, 세월이 그들을 여전히 친구로 묶어놓았다. 무엇보다 그녀들에겐 서로 말고는 친구가 아무도 없었다.

시간은 지나가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여 사람 마음 속 깊숙한 곳에 탑을 쌓는다. 기억 속에 가라앉은 시간의 끝은 뾰족한 바늘처럼 생겨서 복원해내면 따끔하게 마음의 가장자리를 찌르곤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날카로운 시간의 기억을 다시 찾지 않을 만큼 깊숙한 곳에 숨겨놓는다. 그러곤 어디에 그 시간을 두었는지 잊어버리고선 우왕좌왕한다. 서로 사랑할수록, 함께한 시간이 많이 쌓일수록 그 끝은 벼려진 바늘과 같아진다. 그 끝을 기억하지 못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왜 상처받고 상처주는지 모른 채 시간은 계속하여 흘러만 간다. 깊은 시간을 나눈 우정도 비슷하다. 우정은 시기와 질투 같은 다른 감정으로 얽히기 쉽다. 가족끼리 대화가 안 되는 이유는 대개 서로에 대한 감정이 먼저 튀어나와서인데, 친구 사이에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끼리 형제와 자매 같은 용어를 써가며 남다른 친밀감을 갖는 이유는 하나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의 비밀을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혜진은 믿었다. 고요한 새벽에 옆 사람의 기도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마치 자기가 신이라도 된 것처럼 상대방의 고민과 걱정을 고스란히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네 친구」



오래전, 한동네에서 살던 사람들의 피맺힌 고함을 들을 때마다 그는 안 그래도 작은 키가 더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저 사람들은 자기가 버텨야 하는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야. 힘으로만 이기려고 해서는 저 인간들을 이길 수가 없다고, 이 사람아.”

“고립감을 들게 하는 게 최곤데,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고, 한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결국, 자기를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거요.”

「사라진 이웃」



사람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모르는 법이다. 그는 의미 없이 했단 말을 반복하고, 하던 말을 잊어버리고, 두서없이 엉뚱한 말을 이었다.

상처로 얼룩진 기억은 불현 듯 솟아났다. 그런 기억은 자신의 내면이 끊임없이 거부하기 때문에 뭔가 떠올랐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에게 실재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메테오라에서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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