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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아라드 괴담 - 略式百物語 #. 일곱 번째 이야기
게시물ID : dungeon_6652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athance
추천 : 1
조회수 : 23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8/08 00: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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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바다와 꿈을 꾸는 자

 청년은 자신의 앞에 한창 심지를 태우고 있는 초 하나를 두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천계의 지형에 대해 아는 사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영광이네! 하긴, 관광객도 아닌데 남의 나라 지형을 알아볼 필요는 없긴 하지. 그럼, 이건 알려나? 황혼의 바다. 하하, 손들어줘서 고마워. 그래, 그 인어도 헤엄치다가 휩쓸리기 쉽다는 천계의 거친 해역을 말하는 거야.
 아, 이젠 그 초거대 거북이 시체가 그 부근에 놓이면서 조금 달라졌으려나? 뭐, 옛날이야기에 지금 이야기가 무슨 상관이 있겠어? 안 그래? …뭐, 거기에 그 화산 거북이 드러누우면서 옛날과는 다른 의미로 험해졌을 거 같기는 한데. 그렇다면 예나 지금이나 그 해역은 험하기 그지없겠네.
 아, 그래. 아무튼, 그 바다가 인어도 헤엄치길 포기할 정도로 바람도 거세고, 파도도 거칠어. 분위기도 그렇고 해서 온갖 괴담의 온상지이기도 하고. 만약 그런 거친 곳을 스스로의 힘으로 건널 수 있다면 얼마나 대단한 위업을 세우는 게 되겠어?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아? …단박에 제정신이냐고 묻다니, 너무해.
 모험심이라는 건 꽤 중요한 거야. 로망이라던가, 그런 거 있잖아.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걸 언젠가 해낼 거라고 하면서 부딪히는 모습 자체가 멋진 거라고. 그건 말이지, 가파른 절벽의 한가운데에 핀 꽃을 따는 것과 같은 거야. …제정신이냐고 하지 좀 마!
 정말이지, 꿈도 모르는 야만인 같으니라고. 베릭트의 말이 이해가 가. 요즘 젊은이들은 로망을 몰라. …아니, 야유는 접어두고. 옛날 천계에는 그런 로망을 쫓던 어떤 사람이 있었어.

 황혼의 바다를, 그 거친 바다를 제힘으로 건너고 말겠다. 그것을 제 평생의 꿈이라고 외치던 사람이 있었어. 당연히 다른 사람들은 그 꿈을 비웃었지. 인어도 휩쓸리는 곳을 사람이 건널 수 있을 리가 없다고. 하지만 그 사람은 진지했어. 배든, 해상열차든, 뭐든,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모든 수단에 대해 공부할 정도로.
 무언가 집념 같은 게 서려 있는 것처럼 그 사람은 뭐든 배웠어. 그중에서도 주로 배에 대해서 공부했어. 더 튼튼한 배를 만들 방법을, 더 안전한 운행 방법을, 어떤 풍랑에도 지지 않을 방법을.
 그런 목표는 어느새 그의 미래마저 정해버렸지. 자신의 이상에 가까운 배를 만들기 위해선 단순히 공부하는 것만으론 부족해. 실전에서 직접 배우는 게 좋을 테니까. 이상을 좇던 그 사람은 함선을 설계하는 사람이 되어서 그 일에 제 평생을 바쳤다고 해.
 꿈을 꾸다가 아예 관련 일을 하고, 이름까지 널리 떨칠 정도가 되었다고 하니까, 정말이지 굉장할 정도야. 하지만 그 사람의 꿈은 함선 설계자로 이름을 떨치는 게 아니었잖아. 그래서 은퇴를 하자마자 자신의 모든 돈과 노하우를 바쳐서 제 평생의 역작을 만들어냈다고 해.
 그리고 그 사람은 때가 되었다는 말만을 남기고선, 자신의 배와 함께 홀연히 사라졌다고 해.

 그렇게 몇 날 며칠, 몇 달이 지나도 그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어. 아무도 그 사람이 그 바다를 건넜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고. 당연히 다들 그 사람이 무모한 도전을 하다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을 하면서 하나둘씩 그 사람에 대해 잊어가고 있었어.
 그러던 어느 날, 선착장을 향해 너덜너덜한 배가 느리게 다가온다는 소식이 들려왔어. 잘 살펴보니까 그 배는, 응, 그 사람의 배였어. 그 배에 대한 소식은 사람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돌아, 정말 그 사람이 황혼의 바다를 건너고 돌아온 거라는 말이 퍼졌어.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항구로 몰려들었고.
 몇 시간 뒤, 배는 항구에 완전히 정박했어. 사람들은 그 사람이 내리길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내리는 사람이 없었어. 이에 사람들은 말했어. 역시 황혼의 바다를 건너는 건 무리였다고. 그 바다를 건너는 동안 그 사람은 죽었고, 배만 흘러다니다가 천운이 따라서 돌아온 것이라고.
 그래도 그런 생각들은 잠시 접어두고 배 안을 조사했어. 안에 시체가 있다면 꺼내서 장례라도 치러줘야 할 테니까. 그런데 말야, 내부는 너덜너덜한 외부와는 달리 깔끔하기 그지없었다고 해. 마치 조금 전까지 관리되기라도 했던 것처럼. 어딘가 이상했지. 인어들이라도 탄 게 아닐까 했지만, 그런 흔적은 없었어. 애초에 버려진 배를 굳이 청소해가며 타고 있을 이유도 없잖아.
 그 이상한 느낌을 뒤로 한 채 사람들은 내부를 샅샅이 조사했어. 하지만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해. 조타실에 있던 갓 내린 듯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빼고는.

 그 뒤에 그 배는 불길하다면서 폐선박을 모아두는 쪽으로 옮겨졌어. 그런데 있지, 그 날 밤, 그 사람의 배는 묶여있던 것도 풀고 그대로 바다 쪽으로 흘러갔다고 해. 분명 그 안에 아무도 없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야.
 그 안에 정말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걸까? 그건, 그 황혼의 바다를 항해한 그 사람만이 알고 있겠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청년은 자신의 앞에 있는 촛불을 불어 꺼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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