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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탈출기(긴글주의)
게시물ID : freeboard_16089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은사과
추천 : 7
조회수 : 66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8/12 02:07:38


그당시 내게 돈이 엄청나게 없었으므로 음슴체.

인문대 출신으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회사가 망하고 반강제로 회사를 잘린 나는 갈 데가 없었음. 그 와중 눈에 들어온 것이 공시였음. 대학생 시절에도 공시 준비를 했기 때문이었으나 그게 제대로 됐음 졸업 후 일반 회사를 들어가진 않았겠지-_-

 1년여 회사생활 하며 허리띠 졸라매서 모은 천만원을 가지고 시작한 수험생활은 2년 후 내게 쌓인 수험서와 텅장만을 남겼음. 한 한달 취업한다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2년의 경력단절로 유리멘탈에 갖은 상처를 입은 2014년 여름, 난 노량진에 들어가기로 결심했음. 장수생이 노량진에 입성하는 전형적인 루트.

하지만 더 이상 공부하기엔 돈이 없어서 부모님께 3개월의 지원을 부탁드림. 그 전 2년동안도 내가 성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기에 부모님도 2년동안 지치긴 했지만 그 생활을 끝내고 싶은 생각이 크셨는지 오케이싸인이 떨어짐.

다만, 조건이 붙었음. 지원은 학원비와 고시원비까지만 가능하다는 거였음. 내 통장에는 14만원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휴대전화 요금으로 한달 2만원 이상이 빠져나가고 있었음.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서 그정도 지원에도 감지덕지하며 고시원에 입성했음.

하 고시원.. 생각해보면 다시 끔찍함. 여기저기 발품팔아 월세 20만원 초반대에 구한 고시원은 침대 너비가 딱 내 어깨 넓이만했음. 발치는 책상으로 덮여 있었고 160 초반의 내가 침대에 가로로 앉아 공중으로 다리를 뻗으면 벽에 발이 닿았음. 요가매트 두장정도 편 크기보다 약간 큰 방..ㅋㅋㅋㅋㅋㅋㅋ

혼술남녀에 나오는 그 지질한 친구의 방은 차라리 궁궐임. 첫 날 학원 강의를 결제하고 방에 짐을 푼 나는 울고 싶었지만.. 자야 했음. 다음 날 새벽 네시에 줄을 서야 강의를 앞쪽에서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두어달 전 유명했던 노량진 학원가 앞에 줄선 사람들 사진은 과장이 아님. 하지만 3년여 전에 비해 과열된 면은 있다고 봄. 내 때는 4시쯤 나오면 앞에서 세번째 줄 정도에는 앉을 수 있었지만 요즘은 새벽 한시부터 줄을 선다고 하는데.. 나에게도 조금은 충격임.

하여튼 노량진에서의 3개월동안 내 일과는 이러했음. 영어 단어장을 들고 04:10까지 학원 앞에 가서 줄을 서고 서서 공부를 하다 보면 06:00에 학원이 문을 염. 그럼 노트줄이라고 칭하는 자리예약 표에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를 적고 강남교회로 감.

나는 부모님께 식비 지원을 받지 않았음. 그래서 식사는 무조건 공짜밥 아니면 고시원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밥에 집에서 가져온 밑반찬이었음... 강남교회에서는 아침밥을 무료로 제공함. 공짜밥을 먹고 고시원에 들러 밑반찬을 가지고 점심으로 먹을 주먹밥과 저녁으로 먹을 견과류 한줌과 맥반석계란 두개를 싸서 07:10까지 학원으로 귀환함.

그때부터 21:00정도에 고시원으로 돌아올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공부만 하는 거임. 강의가 없는 강의실은 학원에서 자습실로 제공함. 내가 들은 강의는 시험 직전 마무리특강이라 지정된 강의실이 있었고, 그 강의실에서는 다른 강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강의실에서 중간에 점심, 저녁식사를 위해 학원 계단으로 나가는 걸 제외하면 말도 안 하고 화장실도 가지 않고 공부만 함. 강의와 자습시간을 통틀어 3개월동안 단 한번도 졸았던 적이 없었음. 무슨 정신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미쳤던 거임.

21시까지 공부하고 고시원에 돌아가면 샤워하고 머리말리고22시에 자기 전에 쿠키런 딱 한 판을 하는 게 내 유일한 낙이었음. 그리고 다음 날 04:00에 일어나는 걸 반복.
   
그 짓을 3개월동안 했음. 군것질한 적도 없고 음식점을 가본 적도 없음. 내 돈 14만원은 추가 특강비와 핸드폰요금을 써야 했기 때문에 정말 1원도 여유가 없었음. 학원을 오가는 길, 공부 외에 내가 인지할 수 있었던 것들은 1000원짜리 빵가게의 빵냄새와 카페와 슈퍼 등에서 틀어놓는 exid 위아래 노래뿐이었음.

스터디? 안 했음. 사람이 무서웠음. 옆자리에 누가 앉았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음. 강사 얼굴만 기억남. 강사들은 낼모레 쟤가 나한테 청혼하면 어쩌나 했을거임-_-;; 내가 사랑에 빠진 것처럼 미친 듯이 열렬하게 강의를 들어서. 실제로 내가 가끔 질문을 하러 가면 강사들이 날 신기해하며 쳐다보는 게 느껴졌을 정도임.

그렇게 미친듯이 열심히 했음. 정말 그땐 나뿐만아니라 타인들도 이번엔 합격할 거라고 할 수밖에 없었음. 그 결과 노량진에 오기 전보다 평균점수가 15점 이상 높아졌음.



근데 떨어졌음. 그것도 정말 '1점 차이로'.. 그땐 그냥 멍했던것같음. 식사를 하면서 창 밖을 보면 한강대교 아치가 보임. 3개월 동안, 죽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한 날이 없었음. 근데 막상 떨어지니 부모님께 진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죽을 수가 없었음.

그래서 노량진을 떠나 집으로 돌아옴. 뭐 결과적으로 그 시기를 거쳤기 때문에 합격하긴 했지만, 다시는 노량진을 가고 싶지 않음. 어쩌다 지나가고 싶지도 않음. exid 위아래 노래도 싫음. 노량진에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면 죽고 싶었던 그때의 감정으로 돌아가 버림. ... 트라우마가 된 것 같음.


하여튼, 노량진 관련된 글을 보면 머리가 복잡해짐. 노량진은 정말 천태만상들이 다 모인 곳임. 하지만 나와 같이 미친듯이 공부하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음. 그리고 합격 후에도 흔적을 잘 남기지 않음. 다시 생각하는 것 마저도 엄청난 스트레스이기 때문에.

그래서 노량진에서 성공까지는 아니어도 실패하지 않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듬. 하지만 나와 같은 사람들은 분명히 있고, 이를 통해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음. 할 놈은 어디서든 하겠지만..

그래도.. 노량진에서 새벽부터 노트줄 서는 사람들을 무시하지는 않았으면 함. 그들은 나와 같은 처절함을 가진 사람들이고, 그래서 줄을 서는 것이기 때문에. 그 처절함도 없는 사람이 많은 곳이 노량진이고, 개중에서도 이들은 나름 생존을 위해 유혹을 뿌리치려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술마신 새벽이라 글이 길었음.. 그냥 노량진에서 도움 많이 받은 지질한 공시생이었던 사람의 넋두리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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