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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전설의 여관 융프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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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상연
추천 : 5
조회수 : 56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8/12 0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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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하가 녹아 흘러서 모인 호수는 터키석처럼 아름답다.

 후르릅

 "커어억!"

 물맛이 상당히 비리다. 자세히 보니 물고기가 살았다. 

 어쨌든.

 초원과 흙의 냄새를 머금은 시원한 바람이 피부를 스쳐지나간다. 아직 문명이 걸음마도 때지 못한 이 시대에 모든 자연이 원시림 그 자체였다.

 이 아름다운 보석을 품은 알프스의 작은 부분은 오늘부로 내가 개척할 땅이다.    
 
 집짓는 것은 간단하다. 물질 포스로 사전에 그려놓은 재료를 물질화 시키면 된다. 그것으로 내가 원하는 형태를 만들고 고정시키면 끝. 자동화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은 알아서 변형된다.

 초원에서 호수와 만년설이 보이는 자리를 잡았다. 높이는 약 4.5층으로 3층까지는 여관이다. 1층과 2층은 카페겸 식당이고 3층은 손님에게 내놓을 방이다. 그리고 4층은 내 방이고 4.5층은 다락이었다.

 바닥은 평평한 대리석으로 기초를 세웠다. 벽은 사람 몸통보다 큼지막한 돌로 2층 높이까지 쌓았다. 그리고 나서 문과 창문을 만들었다. 나밖에 할 수 없는 짓이다. 그저 원하는 위치에 네모난 창문을 붙이기만 하면 짠! 창문이 만들어지고 문이 만들어졌다.

 3층과 4.5층까지 나무와 시멘트, 벽돌로 쌓고 벽은 새하얀 페인트로 칠을 했다. 세모난 4.5층 가운데에 창문을 만들었다. 3층과 4층도 방마다 창문을 넣었다. 그리고 지풍은 빨간색 기와장을 꼼꼼히 박았다.

 자동 조정. 형태 고정-

 기본 형태가 자동 조정되었고 형태가 고정되었다. 
 집안으로 들어갔다. 4.5층까지 텅텅 비어있는 내부. 한쪽 벽면에 난로와 굴뚝을 만들었다. 1층과 2층은 합쳐서 식당이다. 2층에서 1층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절반정도만 만들었다. 2층에서 1층을 바라보는 벽면으로 작은 무대도 만들었다. 3층은 총 8개의 방을 만들었다. 모두 2인실이다. 

 돌과 나무, 그리고 창문이 많은 이 집은 열손실이 컸다. 벽에 세세한 작은 통로를 만들었다. 1층 난로에서 나오는 열이 벽에 통해 이동 할 수 있도록 세세한 관을 만들었다. 물질 자체의 기능과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능력을 지녀야만 할 수 있었다. 

 이 상태에서 수로도 만들고 화장실과 목욕탕도 만들었다. 이 여관 안에서 잠을자고 먹고 마시고 씻고 쌀 수 있다. 제일 문제는 화장실인데, 사실 이 더러운 장소를 청소하고 관리하기란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초소형 청소 로봇을 만들어 풀어놓았다. 하수구가 막히면 알아서 뚫어주고 조준이 잘 못되서 바닥에 묻은 더러운 똥도 치워 줄 것이다. 

 하루 정도 더 공사를 한 다음날에 오픈을 했다.
 여관 이름은...
 융프라우다. 젊은 여자라는 뜻으로 미래의 스위스 알프스에 있는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다. 그리고 그 젊은 여자란 나다.

 "신체 수정!"

 허리까지 내려오는 붉은 머리카락, 호수와 같은 터키석 눈동자.  초미세하게 주근깨를 넣었다. 오직 미를 위해서 넣은 것이다. 주근깨를 넣은 뺨 부분은 언제나 불그스름하다. 묘하게 홍조를 띠도록 만들었다. 수박만한 풍만한 가슴(맥주맛을 좋게 만든다.), 찰진 엉덩이와 허벅지. 요시! 꼴린다. 이건 통한다.

 9000년전으로 돌아와 여관을 오픈했다.
 메뉴는 호밀빵과 쇠고기 스프, 그리고 맥주. 
 그리고 몇 가지 마법을 초월하는 31세기 아이템!
 
 *   *   *      

 BC. 7000. 

 "엄마... 제발 일어나."

 마른 풀을 쌓아놓은 곳 위에 누워 시름시름 앓고 있는 엄마를 바라보며 소년. 소년이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는 깨어나지 않았다. 그 옆에 소년보다 꼬마 아이가 어머니와 형을 멀뚱멀뚱히 바라봤다.

 엄마는 얼마 전부터 깨어나지 않았다. 잠병에 든 것이다. 한 번 잠병에 들게 되면 깨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잠병에 들곤 하는데, 그러면 다시는 깨어나는 일이 없었다.

 "잠병이다. 형. 엄마가 잠병에 들었어. 엄마 다시는 안 깨어나는 거야?"

 소년은 눈을 감은 어머니를 응시하며 동생에게 대답했다. 

 "깨어날거야. 어제 거리에서 나뭇가지를 뱀으로 만들어낸 술사를 봤어. 사람들이 사기꾼이라고 하지만, 그 마술사라면 엄마를 잠병에서 깨어나게 해줄 마술을 써줄 거야."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멍난 흙에 보관해놓았던 호수에서 주운 빛나는 돌 몇개, 그리고 귀한 잡고기 몇 점을 가죽에 담았다.

 "우아우아야. 집 잘보 있어."

 동생 우아우아는 입구에서 떠나는 형을 바라봤다. 그러면서 멀어져가는 형을 보자니 왠지 오줌이 마렵고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형! 언제 올꺼야? 잠병에서 깨어나는 마술사 대리고 올거야? "

 "응. 금방 돌아올께."

 흙과 모래를 섞은 작은 집 입구에 서성이는 새까만 피부의 꼬마. 소년은 동생 우아우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걱정마. 들어가있어."

 "응. 형 근대 배고파."

 "돌아오면 과일도 따올게."

 "알았어!"

 기다리는 동생과 잠병에든 엄마를 놔두고 소년은 돌로 지어진 큰 마을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한 소년은 돌바닥에 앉아있는 늙은 마술사를 발견했다.

 "이봐, 엄마가 잠병에 들었어. 잠병에 깨어날 수 있는 약 같은 거 없어?"

 늙은 마술사는 하나 남은 썪은 이를 들어내며 웃었다.

 "이 땅에는 잠병에 께어나는 약도 마술도 없다. 껄껄껄!"

 "하! 역시 사기꾼이잖아! 개니 왔어! 너 같은 사기꾼보다 무당을 찾아갔어야 했는데. 내가 멍청했군. 요즘은 잠병에 깨어나게 하는 무당과 마술사가 얼마나 많은데! 늙은이, 너는 신묘한 능력이 없나보지?"

 입은 웃고 있떤 늙은 노인이 눈을 찡그렸다. 하! 하며 콧음을 치고는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를 다섯개를 집어 들었다. 집어든 돌멩이를 가볍게 집어던졌다. 떨어진 돌멩이를 이리저리 굴리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엄마가 잠병이 들었다니? 지금 어린 동생이 기다리고 있군. 지금 너가 오른 손에 쥐고 있는 가죽주머니에는 호수에서 주운 빛나는 돌멩이 세개와 잡고기 몇 점이 있을 거야. 잠병을 낮게 해주는 댓가로 가져온거겠지. 그렇지?"

 소년은 입을 쩍 벌었다. 혀까지 얼어 붙을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그러다가 깜짝 놀라며 노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 노인은 진정한 마술사였다. 감히 마술사에게 모욕을 주다니. 저주를 받을지도 몰랐다.

 "미안해 노인! 당신 말이 맞아. 집에서 내 엄마와 동생이 기다리고 있어. 기분 나쁘게 해서 미안해. 제발 봐줘."

 노인은 다시 껄껄 웃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건 괜찮다. 다만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 이 땅에는 잠병에 깨어나게 하는 약도 마술도 없는 게 사실이다. 잠병에 깨어나게 하는 약이나, 마술은 다 거짓말이야."

 "그럼, 우리 엄마는 영원히 잠에 빠지게 되는 거야? 이대로 자다가는 살까지 썪는다구. 오래 자는 사람만큼 냄새나는 사람이 없잖아. 우리 엄마가 그렇게 변하는 건 싫어."

 "물론 길은 있다."

 "길이 있다니 무슨 소리야?"

 "지금 이 땅에는 잠병을 깨어나게 하는 약과 마술이 없어. 그런데 이 땅 너머에 있는 땅. 위대한 땅 아프리카나에는 있을지도 모르지."

 "아프리카나? 정말 그렇게 큰 땅이 존재해? 그 소문은 거짓말이라고 하던데. 생각해봐. 저 바다 끝으로 가서 돌아온 사람은 없다구. 왜냐하면 바다 끝에 낭떨어지가 있기 때문이야." 

 "하하, 누가 그런 헛소리는 하는 거야. 아프리카나는 있고말고. 그 위에는 그보다 더 거대한 땅도 있고."

 "노인은 가봤나보지?"

 "껄껄... 내가 거기서 왔지. 그개 내 피부가 하얀 이유지."

 "그럼 잠병을 낫게 해주는 곳으로 가는 방법을 알려줘."

 노인은 또 다시 껄껄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가는 방법은 나도 모르지만, 자네에게 환상을 보여줄 순 있지."

 "보여줘!"

 노인은 새끼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새끼손가락을 잘라야해. 내 마술의 댓가는 쬐금 지독하거든."

 소년은 주저없이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러나 손 끝은 떨렸다. 목이 빳빳했다. 침 넘어가려는 것도 참았다. 노인에게 겁쟁이로 보이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꿀꺽 하며 침이 넘었다. 

 "좋아, 좋아! 손가락을 이리내."

 소년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날카로운 돌칼은 가지고 있나? 안 그러면 둥근돌로 처내야 떨지거든."

 "그런 거 없어. 그냥 돌로 처내."

 "꽤 아플텐데."

 "맹수에게 목을 뜯겨도 나는 비명따윈 지르지 않아."

 "끌끌끌... 맹수을 보기나 해봤고?"

 "여러본 봤지."

 "입 악물어!"

 쾅!

 돌멩이를 내리쳤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셔졌다. 비명을 지르지 않겠다던 소년은 한참동안 비명을 질러댔다. 

 뜯겨져나간 새끼손가락의 파편을 모은 노인은 흙가루와 뭉치기 시작했다. 둥글게 만든 그것을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손바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얼릉 마셔! 고통도 사라질거야. 환영도 보일 것이고."   

 소년은 고통을 참아가며 연기를 코와 입으로 들이마셨다. 연기가 코와 입으로 들어간 소년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콜록. 콜록!"

 "끌끌... 짧았지? 잘기억하라고. 잊어버리면 곤란해."

 "봤어! 산이었어. 하얀 모래로 뒤덮힌 산. 그 하얀 모래는 차가웠다. 처음 보는거야. 세상에 정말 그런 것이 있단 말이야? 말도 안 돼. 아.! 그리고 여자, 거기에 이상한 집이 있었어. 큰 돌로만들어진. 그곳에 붉은 여자가 ... 아름다웠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어. 그토록 아름다운 여자는 처음 봤어. 그곳으로 가는 길... 맞아 길... 아. 길! 잊어버리면 안 돼!"

 "그 먼 곳을 가겠다고? 아프리카나를 넘어야 할 거야. 솔직히 난 너가 아프리카나도 못 갈거라고 생각해. 죽을거야. 죽기전에 동생과 엄마를 보는 게 어때?"

 "안 돼! 잊어버려. 늙은이 부탁이야. 동생을 돌봐줘."

 "헛소리."

 "정말 부탁이야. 나는 지금 가봐야해. 이 환영이 사라지기전에!"

 "그래 잘 가라. 가거든 마술 몇 개 배우고 와."

 "마술 배워서 알려줄테니까, 동생을 부택해."

 환각에 취한 소년은 헤롱헤롱거리며 길을 떠났다. 노인은 소년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돌멩이를 던졌다. 돌을 던질 때마다, 점괘가 달라진다. 저것이 과연 돌아올 수 있을까? 노인은 소년의 미래를 볼 수 없었다.
   

 BC. 6990.
 알프스의 융프라우 여관. 
 겨울. 

 "역시, 아무도 안 왔네."

 휘이이이잉~...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1층 높이까지 눈이 쌓여있었다. 어두운 밤하늘 눈보라가 친다. 춥기도 극한으로 춥지만, 저 눈속을 뚫고 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초에 이 주변에 재대로된 문명이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가볍게 기지개를 피며 일어났다.  

 가게를 오픈한지 10년이 지났다. 그런데 손님이 한 명도 안 왔다. 그동안 이 지겨운 곳에서 뭘 핬냐고? 잠을 잤다. 아무리 나라해도 10년을 이런 곳에 조용히 보낸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뭐, 시간이야 남아 돌지만.

 어쨌든 그동안 잠을 잤다. 나는 10시간을 잤을 뿐이지만, 시간 포스로 10년이 흐르도록 했다. 1시간에 1년이 흐른 것이다. 10시간이나 쇼파에서 잤는데 몸이 뻐근하다.

 10년간 가게는 변화가 없었다. 초소형 관리 로봇이 모든 것을 관리해왔기 때문이다. 덤으로 여관의 땅까지 모든 사물은 앞으로 10만년은 거뜬하게 형태를 유지 할 수 있었다. 즉 미래의 학자가 이 사물이 연도측정을 하면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만년은 넘은 건물이 서있고 물건도 멀쩡히 사용되기 때문이다. 
 
 부엌에 있는 통밀빵을 보관하는 통밀빵 나무통이 있었다. 통밀빵이 무한으로 나오는 나무통이다. 그곳에서 통밀빵 하나를 꺼냈다. 음, 냄새가 좋군. 최상급 상태의 통밀빵이었다. 빵맛도 좋았다. 나무접시에 담았다.

 맥주통으로 갔다. 이것도 무한의 맥주통이다. 맥주가 무한으로 나오는데 꼭지를 틀면 맥주가 나온다. 꼭지를 틀고 잤다간 알프스가 맥주에 잠길 수도 있다. 맥주잔에 잔뜩 담았다. 맥주는 언제나 얼기 직전으로 차갑다.

 마지막으로 쇠고기 수프통으로 갔다. 이것도 무한의 쇠고기 수프다. 꼭지를 틀면 쇠고기 수프가 나오는데 고기와 야체도 적절하게 들어가 있다. 크! 냄새. 접시에 수프를 담았다.

 따뜻한 난로가에는 낮은 테이블과 쇼파가 있었다. 테이블에 통밀빵과 수프 그리고 차가운 맥주를 올려놨다. 쇼파에 걸터 앉아 통밀빵을 집어 들었다. 한 입 물어 씹고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나무수저로 수프를 떠먹었다.
  
 "와, 진짜 꿀맛이다."

 냠냠냠...

 쩝쩝쩝...

 어쩐지 음식이 맛있다. 몸이 달라져서 그런가? 음식이 쉽없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스프와 빵을 다 먹고보니 가슴에 수프라 빵가루, 맥주가 떨어져 있었다. 메이드 옷이 더러워졌다. 가슴을 너무 키웠나보다. 확실히 가슴이 크니까 어깨도 무겁고 불편했다. 

 "오늘의 포스!" 
   
 물질 ◀

 오늘 만들어낼 물건은 지팡이다. 

 현자의 지팡이.

 재질은 나무로 이루어진 지팡이다. 끝은 뾰족하고 윗부분은 다람쥐 꼬리 처럼 둥글다. 그런데 길이가 2미터로 아주 길게 만들었다.
 
 기능으로는 불과 물, 바람과 흙, 그리고 번개를 다스린다.
 사용 방법은 사용자의 의지를 따른다. 

 불을 뿜어내거나, 불을 끄거나, 불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물로는 대기중에 수분을 움직여서 비를 내리게 하거나, 바다를 가를 수 있다. 혹은 얼음을 만들고 주변을 얼려 버릴 수 있다. 불과 마찬가지로 물과 얼음을 조정한다.

 바람도 조정한다. 강풍이 분다면 강풍을 잠재우고 바람이 안 불면 바람을 불게 할 수 있다. 

 흙도 조종한다. 절벽에서 바위가 떨어지면 그 바위를 멈출 수 있고, 바닥에 사람이 파묻히면 흙이든 진흙이든 돌이든 모두 갈라서 사람을 구조 할 수있다. 물론 주변에 있는 돌로 사람 뚝배기를 깨버릴 수도 있다.

 번개를 치게 한다. 뇌전을 쏠 수 있고 날아오는 번개를 지팡이로 흡수 할 수 있다. 번개를 치게 할 수도 있는다.

 그리고 어떤 생명이든 치료 할 수 있다.
 사람도 살릴 수 있다. 조금 생각해 봤는데 역시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게 만드는 게 좋았다. 사람 목숨 그까이거 얼마나 한다고 '모든 것을 치료 할 수 있지만 죽은 자는 살릴 수 없다.' 같은 허접한 제약을 하는가. 애초에 폭풍을 조정하는 능력이 사람 한 사람 살리는 것보다 더 에너지가 많이 든다. 죽은 사람 살리는 게 폭풍을 만드는 것보다 비용적으로 더 싼데 폭풍은 가능하고 사람은 못 살린다? 말도 안 된다. 
 요시! 이 지팡으로 사람도 살릴 수 있다. 
 
 현자의 지팡이 하나만 있으면 모세도 안 부럽다. 바다를 건너겠다고? 바다를 가르면 된다. 바다 위를 걷고 싶다고? 바다 위를 걸으면 된다. 하늘을 날고 싶다고? 바람을 타고 날아가면 된다. 

 모험을 하다가 무릎에 화살을 맞고 여행을 못한다고? 무릎을 고치면 된다. 아, 실수로 누군가의 뚝배기를 깼다고? 다시 살리면 된다. 

 무려 이 모든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딱 한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융프라우를 방문한 첫 번째 손님에게 주는 서비스지."

 선착순이다!

 무대 앞에 있는 바닥에 찍어 넣었다. 이 지팡이를 뽑는 조건은 첫 번째 손님이여야 한다. 즉, 누구든지 먼저 가져가면 임자! 

 ...

 어차피 수천년은 손님이 안 올텐데. 잠이나 자야지.


 *    *    *
 

 BC. 6988.

 12년이 흘렀다. 
 소년은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청년이라는 단어처럼 튼튼하고 젊음이 넘처나는 청년이 된 것이 아니었다. 삐적 마른 몸에는 근육과 뼈만 보였고 머리카락과 수염이 얼굴을 덮어 노인처럼 보였다.
 
 바다를 건너면서 수 많은 괴수와 만났다. 그러다가 오른쪽 뒷통수의 머리가죽이 조금 벗겨졌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것은 천운이었다. 그러나 그 천운은 끝나지 않았다.

 아프리카나로 도착하고 생전 본적이 없는 수 많은 동식물을 보게 되었다. 배가 고파서 과일을 따먹다가 피를 토했고 거의 죽은자와 다름 없이 몇일간 정신을 잃었는데도 다시 깨어났다. 기적이었다.
 
 혹은 생전 처음보는 이빨이 뿔처럼 솟아난  맹수에게 등가죽을 물렸지만 바위 절벽에서 뛰어내려서 살아남았다. 맹수에게 살아남은 것보다 물 한 방울 없는 바위 절벽에서 떨어지고 살아남은 게 더 신기했다.

 제일 무서웠던 것은 같은 인간에게 사냥을 당하는 것이다. 그들은 돌멩이를 뾰족한 나무와 엮어서 사용했다. 그것으로 찌르거나, 던지거나. 나무에 대서 쏘았다. 그런 물건은 처음 보았다. 

 그들은 말을 할 수 없는지 짐승의 소리를 내며 따라왔다. 검은 피부에 빨간색과 하얀색 줄로 분장했는데 맹수보다 더 무서웠다.

 가끔 친절한 사람을 만나 그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다. 물과 과일을 얻어 먹고 몇년을 생활하면서 그들에게 다양한 지혜와 지식, 기술, 그리고 사악한 마술을 이겨내는 방법도 배웠다.

 태양은 언제나 같은 곳에서 뜨고 같은 곳으로 진다. 

 세상은 계절이 있으며 이것이 무한히 순환된다.

 동물의 빨간 피를 얼굴에 바르면 사악한 마술로 만들어진 벌래가 잠자는 동안 코와 귀, 입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다리가 아프면 사냥한 동물의 다리를 쌔카맣게 태우고 그것으로 아픈 다리를 문지른다. 다시 그것을 뜨거운 물에 달여 마시면 아픈 다리가 싹 났는다. 

 청년은 어쩌다 다리를 다친 적 있었다. 너무 아파서 그들이 말 대로 해봤다. 뜨거운 물에 쌔카맣게 태운 동물다리를 달여마시자 몇일 후 아픈 것이 싹 나았다. 그 놀라운 체험을 하고 나서 나는 마술과 이 세상의 진리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그곳에서 그들의 지혜와 마술을 더 배우고 싶었지만, 해야할 일이 있기 때문에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어느 세 청년은 아프리카나의 가장 더운 곳. 아프리카나의 땅끝에 가까워졌다. 모래뿐이었다. 오직 모래만 있는 그곳에 가끔 물과 나무, 그리고 마을이 있었다. 

 모래 위에 사는 사람들은 등이 두개로 솟아있는 이상한 동물을 타고 다녔다. 

 그들의 동물을 타고 이젭트라는 곳으로 갔다. 이젭트에 도달한 순간, 지금까지 본적이 없는 거대한 돌산을 보게 되었다. 

 청년은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거대한 바위가 뾰족하게 솟아있다. 그것은 산보다 더 거대했다. 사람 손으로 바위를 깍아 만든 것인지 것은 너무 거대했지만 정교했다. 그것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를 쌓아올려 거대한 산을 만들었고 그 주변으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돌로 만들어진 집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 수 있다는 것을 청년은 처음 알았다. 청년의 손가락보다 더 많아서 세는 것이 불가능했다.  

 청년은 고민했다. 이대로 더 올라가 과거 12년 전에 환상에서 나온 그 집으로 향할 것인가. 아니면 이젭트에서 훌륭한 마술사를 찾아 잠병을 낫게 해주는 약이나 마술을 배울 것인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보아라, 아젭트의 인간들은 신밖에 지을 수 없는 저 거대한 집을 자신의 손으로 지었다. 상상을 초월한 기적이 눈앞에 있다. 이런 자들이 모여 사는 땅인데 잠병을 낫게 해주는 위대한 마술사가 과연 없을까? 이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니다. 가야한다. 하얀 모래가 덮인 그 집에. 그 환상은 결코 가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청년이 해왔던 모험은 무엇이란 말인가? 모두 그곳에 가서 잠병을 낫게 해주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청년은 결심했다. 일단 그 집을 찾아가자. 아직도 그 환상이 남아있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단편적인 기억에 맞춰 움직이면 된다. 만약. 그곳에 가서도 방법을 못찾으면 이젭트에서 찾자.

 청년은 다시 이젭트를 벗어나, 위로 위로 더 위로 올라갔다.
 
  
 "와, 시발. 정말 할 일이 없다. 그만 포기해야 하나."

 알프스 융프라우에 오고 융프라우 여관을 만든지 50년이 흘렀다. 물론 나는 잠을 다섯번 잤다. 즉 5일밖에 안 흘렀다.

 그런데 솔직히 5일간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냥 1000년 단위로 자버릴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에잇! 밀린 영화나, 애니메이션이나 봐야겠다. 아! 이참에 그냥 재밌게 봤던 영화랑 애니메이션 기억 다 지우고 다시 볼까."

 인터스텔라 안 본 뇌 여기있습니다. 

 "그냥 애니메이션이나 봐야지."

 거대한 스크린과 입체 사운드 장비를 설치했다. 사운드를 아주 짱짱하게 틀어보았다. 너무나도 조용한 이 융프라우 주변을 쩌렁쩌렁 울리게 만들고 싶었다.

 - 키미오 미테루토, 이츠모 하토 도키도키... - 

 요시! 노래좋고.

 *      *      *  

 B.C 6950

 소년은 청년에서 노인이 되었다. 
 그가 태어나고 4개절이 65번 쯤 지났다. 아니, 어쩌면 60번일지도, 어쩌면 70번일지도. 
 자기 나이를 잊어먹는 것이야 누구나 하는 실수이고
 상대의 나이를 착각하는 것도 누구나 하는 실수이다.
 그리고 정체를 착각하는 것도 누구나 하는 실수이다.
 
 "마술사님, 우리 마을에 축복을 내려주십시오."
  
 마을 최고의 연장자가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였다. 의지를 읽는 신묘한 한 능력이 아닌,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표정과 움직임을 통해 흐름을 읽어냈다.

 말은 알아먹을 수 없지만, 그들의 표정과 행동 그리고 분위기와 경험을 통해 읽었다.
 이 마을노인은 축복을 바라고 있다. 

 노인은 그 마을노인의 머리위로 손을 얹었다.

 "나라바 나라 아나라 아나, 아댜라라마하아..."

 노인만 알아먹은 언어. 그건은 어린 시절에 살았던 마을에서 사용한 미개한 언어였다. 수를 세는 것 조차 하나, 둘, 셋이 끝이었던 곳의 언어. 그러나 이들에게는 이 언어가 신비한 마술사의 주문으로 들릴 것이다.

 노인의 손에 금과 은가루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바라보던 마을노인과 마을 사람들이 놀라며 더욱 납작하게 고개를 숙였다. 
 
 마술이란 눈으로 본 것만 믿으려는 인간의 어리석음.

 기적이 그늘 눈 앞에 나타났음으로 그들은 놀라워하며 믿는 것이다. 현명한 자라면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해야 한다. 그러나 작은 마을에는 현명한 자가 없었다. 
 
 믿고 싶은 자에게는 믿고 싶은 이야기만 하면 된다.

 보고 싶은 자에게는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면 된다. 

 마술을 할 때는 의심하는 자가 한 명도 있어선 안 된다.
 그래서 먼저 빈 손바닥을 보여주고 금가루를 뿌린다. 그러면 이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빈손에서 어떻게 금가루와 은가루가 나올 수 있는 거지? 저건은 진정한 마술이다.'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노인은 연금술로 만든 가짜 금가루와 은가루를 아낌없이 뿌렸다. 그러면 이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어떻게 저 많은 양의 금가루와 은가루가 끝잆어 나오는 것이지? 저건 진짜 마술이다.'

 마을 사람은 자신의 가죽 옷이나, 흙그릇에 금과 은가루를 묻혀갔다. 어떤 여인은 금과 은가루를 햝아 먹었다. 흙바닥에 떨어진 가루를 조심히 담아내는 아이도 보였다.

 이쯤 되면 그만 뿌려야지.
 노인이 손바닥을 꽉 말아쥐었다. 더 이상 금은가루가 떨어지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 싸우며 금가루를 뺏고 있었다.

 어떤 아이가 달려와서 노인의 말아쥔 손바닥을 펴보았다. 금가루 하나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이 아이는 의심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신기해서, 호기심이 발동하기 때문에 이런 것이다. 
 그러나 마술 사에게는 의심이나 호기심이나 짜증나는 존재이다.

 노인이 헛기침을 하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자 어른들이 깜짝 놀라며 아이를 한 구석으로 대려가 매로 때리며 혼을 내기 시작했다.

 "마술사님, 부디 우리집에서 함께 식사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리 비켜! 아닙니다. 우리집에서 하십시오. 우리집은 방이 세 칸이나 됩니다. 벽은 돌로 쌓아 지었습니다." 

 "우리집으로 오시지요. 제 아내를 하룻밤 내어 드리겠습니다."
 
 "저들의 말은 무시하시고 저희집으로 오십시오. 젊은 딸 두 명이 있습니다. 바닥은 가죽털로 깔아 놓았습니다. 우리 딸 두명이 하룻밤 동안 마술사님을 잘 모실 것입니다." 

 대충 흐름을 읽은 노인은 젊은 두 딸이 있는 집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저녁으로는 토끼 고기와 곡류를 찐 빵과 과일을 대접받았다.
 
 '너희는 꼭 마술사의 자식을 낳아야 한다!'
   
 아버지의 말대로 두 달은 열심히 마술사의 시중을 들었다. 노인은 오랜만에 성욕을 풀 수 있었다.

 깊은 밤. 

 가죽털 위에서 잠을 자던 노인은 꿈을 꾸다가 깨어났다. 깨어난 노인의 마음은 심란했다. 그 꿈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자신의 마을을 떠나기 전에 만났던 어느 신비한 노인이 보여준 환상. 
 그것이 하얀 모래가 아닌, 눈이라는 것과 신비한 집이 아닌, 여관과 같은 집임을 알게 된 그였지만 그 환상은 여전히 신비로웠다.

 무엇보다 노인을 미치게 하는 것은 붉은 머리의 여인이었다. 세상에 그만큼 아름다운 여인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여인을 떠올리면 지금까지 보아온 모든 여자가 얼마나 추하게 생겼는지 깨닫게 된다. 어쩌면 그 여인은 여신일지도 모른다. 그에 비하면 그 옆에 잠을 청하고 있는 젊은 두 딸은 돼지 가축 보다 추해 보였다.

 마음이 심란하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자꾸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그 눈 덮힌 산은 환상일 뿐이었다. 결국 그곳을 찾지 못했고 노인은 이젭트로 돌아가 마술을 배웠다.

 노인은 한 가지 진리를 깨달았다. 진리란, 인간은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운명이란 바로 죽음이다.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운명인데 과거의 자신은 그것을 잠병이라 불렀다. 지식이 부족했던 거겠지. 엄마에게는 운명이 찾아왔고 죽음으로써 끝이 난 것이다.

 그것을 뒤늦게 깨달은 노인은 매일 같이 피눈물을 흘렸다. 그 소중한 젊은 시절을 존재하지도 않는 마술 따위를 배우는데 허송세월을 보냈다. 무엇보다 그곳에 버려두고온 동생이 생각났다.

 미안하다. 동생아.

 엄마는 본래 죽었기 때문에 걱정돼지 않는다. 다만 동생은 아직도 살아있을 지도 몰랐다.
 동생은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까? 제발 기다리지 마라.
 헛된 마술에 정신이 팔려 세상 끝 너머의 머나먼 땅까지 와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순진한 사람들을 속이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잠병을 낫게 해주기는 커녕 이 모습을 보게 된다면 동생은 실망만 하게 될 뿐이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환상을 갖고 있다. 밤이 깊도록 사라지지 않는 이 심란한 마음. 어쩌면 그 환상은 가짜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내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 환상을 쫒다가 죽는다면 그것도 운명인 것이다.

 노인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정녕 이대로 살다가 죽어야 한단 말인가? 이 미개한 세상에서. 신비함이란 눈꼽만큼도 없는 냉소적인 이 세상에서 시체가 되어 썪어가야 한단 말인가. 

 이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노인은 참을 수 없었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면 고향이 그리워진다. 그러나 도저히 어느 곳에도 정착 할 수가 없었다. 알고 있지만, 인정 할 수가 없었다.

 *   *   *

 BC. 6940

 노인은 눈을 깜빡였다. 차가운 눈보라에 눈꺼풀이 얼어 붙었고 발바닥이 얼어 붙었다. 

 정말 얼어 붙었다. 

 발바닥에는 이미 감각이 없어졌고 발가락 끝은 검개 썪어들어가고 있었다. 퉁퉁 부었다. 얼음이 단단하게 박혀 있었다. 완전히 얼어 버린 것이다. 

 노인의 몸을 가리는 것은 천 한 조각. 천을 뚫고 쑤셔오는 차가운 바람을 견뎌가며 노인은 운명을 기다린다.

 환상속의 그 장소에 왔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노인은 걸었다. 그 한 걸음은 발처럼 무겁고 느렸다. 그러나 운명의 바람은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길고 흰 머리카락은 걸을 때마다 바스락 거렸고 얼마후 부셔져 떨어졌다.
그러고 보니 발가락 몇 개도 보이지 않았다. 깨진 것이다. 깨진지도 몰랐다. 발가락이 깨진 것을 보고 나서 알았다.

 세상에 놀라운 마술이란 마술은 거의 봤던 노인이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서 호기심도 사라지고 감각도 무뎌졌다. 더는 놀라울 것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걷고있는 자신이 너무나도 놀라웠다. 죽음에 이를 수록 이 세상의 법칙과 멀어지고 저 세상의 법칙에 가까워 진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다. 자신인 이미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죽은 자가 걷는 것이다. 죽기 이전에 진정한 신비를 체험하고 있다.

 노인은 이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나이가 들 수록 세상에 대한 놀라움도 사라지고 느낌도 사라졌다. 그런데 지금 이 감각은 마치 어린 시절에 이 세상에 대해 신비를 꿈꾸던 그 어린 마음과 같이 가슴벅차고 놀라웠다.

 '이제 죽을 때가 온 거겠지.' 

 얼굴이 너무 얼어서 웃을 수가 없었다. 
 이쯤이면 됐다. 이제 그만 운명을 받아들이자...
 죽음을...
 노인은 스르륵 눈을 감았다.
 
 그때...
  
 - 키미오 미테루토, 이츠모 하토 도키도키~ 유레루 오모이와 마슈마로 미타이니 후~ 와~ 후~ 와~ -

 "뭐여?"

 노인은 깜짝 놀랬다.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 아하~ 카미사마 도우시데~ ...!@!@#! -

 "어어? 이게 뭔 소리여?"

 눈밖에 없는 이 산맥 전체에 쩌렁쩌렁 울리는 소음공해. 생전 듣도보도 못한 기괴한 소리가 세상천지로 진동하고 있었다. 

 저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가슴을 찌르는 듯한 서늘함이 느껴졌다. 노인은 두려웠다. 사악한 벌래의 장난인가?

 소리가 얼마나 큰지, 저 머나먼 곳에 있는 만년설에서 산사태가 일어날 정도였다.

 "설마?"

 노인은 곧 바로 소리가 나는 쪽을 향했다. 힘이 솟는다. 몸은 거의 죽었을 텐데, 어째 저 소리를 들으니 힘이..

 얼마 걷지도 않았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가자, 어떤 집이 보였다. 생전 처음보는 집이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익숙했다. 

 그래. 알아. 안다. 저 집을.

 두 눈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환상속에서 꿈속에서 보았던 그 모습과 닮았다. 지금 그곳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노인은 그 집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을 두두렸다.

 똑 똑 똑!

 BC. 6940

 똑. 똑. 똑.

 "이츠모 하토 도키도...? 허억!"

 노래 부르다가 심장이 정지 할 뻔 했다.
 아무도 없어야 할 장소에서 누군가 노크를 했기 때문이다. 
 깊은 밤. 거센 바람에 창문이 흔들린다. 
 환청인가?

 꿀꺽...

 똑. 똑. 똑!

 100% 외계인이다. 그것 말고는 설명 할 길이 없다. 외계인 놈들은 좀 성가신데... 너무 똑똑해서 잡기도 힘들고 역으로 나를 조정할 수도 있다. 그냥 우주를 통째로 삭제 시켜버리는 것이 답이다.

 어쩌면 미래에서 온 '나'일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찾는 것은 진짜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때 뿐이다. 설마 지옥인이 차원을 찢고 현실 차원으로 처들어왔나?
 
 똑똑똑...

 에이씨! 여자답게 문을 열었다.

 "융프라우에 어서오세요~"

 휘이이잉! 
 썰렁한 눈보라가 얼굴을 후벼팠다. 눈을 찡그리며 문 앞에 서있는 노인을 바라봤다. 천 같은 것으로 몸을 감쌌다. 그래도 제법 문명밥은 먹은 것 같다. 이 시대에 천으로 몸을 감싸다니. 이 시대에 천이 있나? 

 "밖은 추우니 어서 들어오세요.... 어 우왓! 씨발. 왜그러세요!"

 "아... 아!"

 노인이 내 치맛자락을 붙잡고 울기 시작했다.
 몸 상태가 정말 처참했다. 발바닥이 코끼리 발바닥처럼 퉁퉁 부어 검게 썪어있다. 6.25 장진호 전투에서 보급품 없이 맨손으로 처들어온 중공군의 발바닥 보다 더 끔찍했다. 

 노인은 신발 대신 얼음을 신고 있었다. 발바닥 주변에 주먹만한 얼음이 넙쩍하게 붙어있다. 저 무거운 발을 질질 끌고 여기까지 온 것인가? 천 하나만 걸치고? 발가락도 몇 개 없네?

 나이가 들면 울어도 눈물이 잘 안 나온다. 이 노인도 그랬다. 눈물 없이 울고 있었다. 

 와 진짜 불쌍하네.

 "잠시만 좀 놓아주세요."

 "흐허허... 나마ㅏ바가 하ㅏ아아라 미키아다가라리"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자동 번역기를 안 넣었군. 자동번역기를 만들어 천장에 박아 놓았다.

 "허흑 진짜였다니... 진짜로 있었다니!"
        
 노인을 난로가에 있는 쇼파에 안내하고 부엌으로 뛰쳐갔다. 서둘러 빵과 스프를 담고 있는데, 노인이 쩔뚝 거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거기에 앉아 계세요."

 노인은 울면서 다시 쇼파로 돌아갔다.


 *   *   *  


 실감나지 않는다. 진짜로 있었다니.

 노인은 그 환상속의 그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환상속에 만났던 붉은 머리의 여인을 두 눈으로 보았다. 놀라웠다. 실제로 본 그 아름다움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 시대, 이 땅에 보았고 사랑에 빠졌던 여인들과 비교를 할 수가 없었다. 똑같은 눈, 코, 입이 있고 팔다리가 달려 있는데 어떻게 저 여인만은 저렇게 다를 수 있단 말인가? 

 노인은 정신을 차리고 집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이 상당히 넓었다. 높게 쌓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튼튼한 기둥이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집은 벽만 있을 뿐이지, 기둥이 없었다. 어째서 천장이 무너지지 않는 거지? 마술인가?

 벽에는 따뜻한 불이 타오르고 있다. 놀라운 구조다. 연기가 천장으로 올라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간단한 구조지만 지금까지 저런 발상은 해본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 푹신푹신한 의자는 무엇이란 말인가? 가죽인가? 세상에 이렇게 정교하게 가죽을 가공하는 기술이 있다니! 이젭트 최고 장인을 모아놓고 이 집과 똑같은 걸 만들라고 시켜도 불가능할 것이다. 

 얼마 후 붉은 여인이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음식을 가져왔다.

 "통밀빵과 쇠고기 스프입니다."

 "통밀빵과 쇠고기 스프? 먹는 것입니까?"

 "당연하죠. 빵을 모르세요?"

 "모릅니다. 저는 고기와 곡물을 빠아 끓인 죽은 먹어봤습니다."

 "일단 드셔보세요."

 우선 빵이라는 덩어리는 집어보았다. 오오, 부드럽다. 한 입에 물어뜯었다. 몇 번 씹자마자 입안에 가득하는 표현 할 수 없는 새로운 맛에 두 눈이 절로 뜨였다. 맛있다. 이런 맛은 처음이다.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슬프고 기쁠 대도 안 나오던 눈물이 여기서 나온다. 너무 맛있어도 눈물이 나오구나. 노인도 그것을 처음 알았다.

 노인은 눈물을 닦아내고 옆 나무로 만든 그릇에 담긴 쇠고기 스프를 바라봤다. 아까부터 신경 쓰이는 이 맛있는 냄새. 그동안 세상 천지를 여행해봤고 다양한 말을 배웠지만 그 모든 말이도 지금의 맛과 냄새를 표현하는 단어는 없었다. 
 
 냄새만 맡았을 뿐인데 침이 흐른다. 노인은 쇠고기 스프에 손을 담갔다. 뜨겁다. 그러나 노인은 비명을 꾹 참고 쇠고기 스프를 손으로 떠먹었다.

 맛있어... 아아! 너무 맛있어! 이 세상의 맛이 아니다. 어쩌면 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 죽고 난 다음 세계에 나오는 맛이다. 

 노인은 쇠고기 스프를 더 떠먹었다. 밭에 심은 작물도 넣은 것같았다. 세상에! 이 향과 맛, 그리고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이것... 이건 도대체! 뭐지? 고기가 씹힌다. 이건...! 이건 무슨 종류의 고기란 말인가! 한 번 씹을 때마다 그 속에 깃들어 있는 깊은 맛이 이빨을 타고 흐른다. 그것이 혀에 잊을 수 없는 강렬하고도 부드러운 맛을 남기고 사르르 사라진다. 

 "거기 스푼이 있으니까, 그걸로 떠먹으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노인은 스푼이 있으니까 그걸로 떠먹으세요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감사합니다를 반복하며 쇠고기 스프를 손으로 퍼먹었다. 

 허겁지겁 허겁지겁
 쩝쩝쩝 
 냠냠냠
 후르르륵...

 한 그릇, 두 그릇, 세그릇을 먹어서야 노인이 손을 멈췄다. 노인의 손이 빨갛게 부었다. 큰 화상은 아니었다. 조금 따가울 정도. 그것에 비하면 지금 노인이 느끼는 행복감은 오감을 마비시켜 사소한 통증이나, 걱정을 완전히 망각하게 만들었다.

 죽어도 좋아. 죽어도 좋다! 노인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설마 이대로 눈밭에서 눈을 뜨는 것은 아니겠지? 그럴 바엔 지금 죽고 싶다. 
 영원히...
 하아... 
 만족스럽게 부른 배. 따뜻한 불, 푹신한 의자. 허리가 절로 파묻혀지는 의자에 누운 노인은 서서히 잠에 취하며 스르륵 눈이 감겼다.
 
 "헛! 아저씨, 여기서 자면 안 돼요."

 "..."

 "아저씨! 여기서 자면 큰일나요. 아저씨!"

 "..."

 "아이씨, 지금 자면 안 돼는데... 미치겠네... 한 번 자버리면 10년은 흘러버리는데. 에잇! 몰라, 이것도 재밌겠지."
  
 붉은 머리의 여인은 한쪽에 박혀있는 나무 지팡이를 집어들었다. 지팡이를 노인의 발에 갖다 댔다. 에메랄드 빛 섬광이 뿜어져나왔다. 노인의 검게 죽은 발에 혈색이 돌아왔다. 붓기가 빠져나가고 탱글탱글한 10대의 발이 되었다. 발바닥은 젊이의 발이지만, 발목 위로부터는 쭈글쭈글하고 거칠었다. 
 
 붉은 여인은 노인의 몸을 좀 더 관찰했다. 

 "음... 머리가죽도 벗겨져 있고 등가죽도... 손가락도 한 개 없네. 이빨도 별로 없고... 헐... 어떻게 알고 여기에 온 거지? 아니, 어찌 왔지?"

 고칠 곳이 한 두군대가 아니었다. 붉은 여인의 나무 지팡이에 강렬한 초록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초록 섬광이 노인의 몸으로 퍼져나갔다.
 
 우득, 우드드득!
 
 뼈가 뒤틀리고 살이 늙어났다 줄었다를 반복했다. 혈관이 튀어나오다 사라지다를 반복했다. 피부와 머리카락이 벗겨지고 모공속에서 검은 피가 흐러나왔다. 

 이 모든 것이 몇 초 흐르지도 않았다. 

 노인은 어느세 젊은 청년이 되었다.
 
 탄력있고 강인해 보이는 검은 피부와 근육. 빼곡한 검은 머리카락. 그 어둠 속에서 더욱 찰란하게 빛나는 하얀 이빨. 아주 가지런하다. 

 "요시. 나도 자야지."

 지팡이를 거둔 붉은 여인은 윗층으로 올라갔다.

 BC. 6930
 여관에서 하룻밤.
 세상은 10년이 흘렀다.

 따뜻한 햇볕의 줄기가 들어왔다. 창문을 뽀얗게 했던 눈바람은 가시고 푸른 초원의 산들바람이 꽃냄새를 머금고 "여름이 되었습니다." 라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융프라우는 봄에도 눈이 쌓여있다. 푸른 초원을 보려면 여름에 와야 했다.

 청년은 붉은 여인과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 어제 먹었던 것과 똑같이 훌륭한 통밀빵과 쇠고기 스프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청년은 굉장히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청년은 우선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발가락에 감각이 돌아온 것이 얼마만인지 몰랐다. 그런데 감각만 돌아온 게 아니라, 발가락 자체가 돌아왔다.

 손가락도 꼼지락 거렸다. 아, 이런 느낌이었지. 너무 오랫동안 잃어버린 부분이라 자꾸 새끼손가락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붉은 여인과 눈을 마주치면 흠칫하며 고개를 처박았다. 굉장히 떨렸다. 감히 신성한 여인, 위대한 영혼을 지닌 존재에게 고개를 처들다니 용서 할 수 없는 일이다. 

 왕도 함부로 바라보다가는 목이 잘리는 이 시대에 감히 위대한 영혼을 두 눈으로 바라본다? 눈알을 파고 목을 졸라 죽여도 시원치 않을 것이다. 함께 식사를 하는 것도 엄청난 사치였다.

 "정말... 고맙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편히드세요."

 "아... 예..."

 청년은 조심스럽게 쇠고기 스프를 먹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스푼질이다. 음식을 흘릴 까봐 긴장했다. 감히 이 귀한 것을 흘리다니! 한 방울이라도 흘렸다가는 자신을 용서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또 용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붉은 여인? 감히 그렇게 부르다니.  이것도 용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불러야 할 지 고민했다. 그래서 위대한 영혼이라 부르도록 결심했다. 

 청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위대한 영혼이시여...  저는 아주 옛날 제가 소년이었을 시절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 예?"

 위대한 영혼이 깜짝 놀랬다. 그러고는 입을 다물었다. 
 감히 말이 겹쳐선 안 된다. 위대한 영혼의 입술을 바라보다가 청년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저는 엄마와 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엄마는 잠병에 걸리셨습니다. 그게 죽음인지도 몰랐던 저는 잠병을 치료하기 위해 마술사를 찾아갔습니다. 어느 늙은 마술사는 저에게 환상을 보여줬고 그 환상속에서 저는 이 집과 위대한 영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위대한 영혼을 찾기 위해 방랑을 하며 살아왔고 결국에 이곳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흐음... 잠깐만요. 맥주좀 가져올게요."

 위대한 영혼이 맥주라는 특이한 술을 가져왔다. 그것을 한 모금 마시자 괴로움에 인상이 절로 찡그렸다.
 위대한 영혼도 그것을 쭉 들이켰다.
  
 "크~... 그런데 그 노인 마술사가 보여준 환상으로 여기까지 왔다구요? 어? 흐음... 불가능할텐데."

 "그럴리가요. 결국 이렇게 오게 된 것도 사실이잖습니까?"

 "이상하네... 나는 마술을 이 세상에 허락한 적 없는데? 외계인이 한 짓인가? 아닌데."

  
 맥주가 술술 넘어간다. 오랜만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서 즐거웠다. 
 이 사람을 이끈 것은 진짜 환상이었을 것이다. 아니, 그것이 뭐가 되었든 간에 이곳까지 찾아온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아마, 아프리카 주변에있는 섬, 마다가스카르나, 혹은 다른 섬에서 건너고 이집트를 통해 혼자 온 것 같은데. 저짓은 나도 못한다. 

 그나저나 이야기를 들어 보니 피르마드를 말 한 것 같았다. 벌써 피라미드가 만들어 졌다고? 지금이 BC. 6930인데? 애내들 아직 농사나 짓고 살아야 할 텐데. 아니, 하긴 뭐 기록이나 문자가 있기 전에 어느정도 문명이 있긴 있었다. 피라미드와 비슷한 뭔가를 본거겠지.
 
 꿀꺽꿀꺽...
 크~ 시원하다.

 "제 이름은 '융프라우'에요. 위대한 영혼이라 부르지 말고 그냥 융프라우라고 불러주세요. 손님께서는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제 이름은 아마, '우하우하' 입니다.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첫 손님 기념사진을 촬영을 해야지. 제 옆으로 오세요."

 "사진촬영? 그것이 뭔가요...?"

 우하우하와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었다.
 찰칵!
 사진이 빈 허공에서 현상되었다. 사진 한 장을 우하우하에게 주었다. 

 "사진이란, 음... 그림입니다. 정교한 그림이죠. 한 장 가지세요."

 우하우하는 사진을 뚫어지게 처다보았다. 그는 이 그림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입구에 최초의 손님이라는 글씨와 함께 사진을 걸어 놓았다.

 "자, 이제.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으니, 일단 이거 받으세요. 잠병을 낫게 해주는 마법의 지팡이. 이름은 현자의 지팡이 입니다."

 2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 지팡이었다. 그것을 우하우하에게 넘겨주었다. 최초의 손님에게 주는 대서비스! 자유도를 높게 업그레이드 시켰다.

 우하우하는 지팡이를 받으면서도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댓가를 지불 할 능력이..."

 "댓가요?"

 "마술이나, 신묘한 물건에는 댓가가 따르지 않습니까? 주먹만한 금덩어리나, 팔 다리, 혹은 영혼같은..."

 팔 다리? 그게 왜 필요해? 그걸 어디에 써먹는다고? 영혼도 필요없다. 아니 애초에 이 세상에는 영혼이란 것이 없다. 본래 없는 것이고 내가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뭐, 금 따위에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는데. 전혀 필요없지. 
 
 "그냥 가져가세요."

 우하우하는 두 번 거절하지 않았다. 
 
 우하우하와 함께 마지막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우하우하에게 추가로 선물을 줬다. '현자의 로브' '현자의 돌' '현자의 책'이 세가지였다.

 현자의 로브는 모습을 감추거나 바꿀 수 있었다. 

 현자의 돌은 물질을 변환 시킨다. 

 현자의 책은 찾고자 하는 것이나 미래를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이밖에 만능적인 기능이 있다. 로브가 따듯해지거나, 시원해지거나, 현자의 돌이 어두운 곳에서 현자의 돌이 밝게 빛나거나, 현자의 책을 가지고 있으면 자동번역이 된다거나. 

 "절 때로 빼앗기면 안 됩니다."

 "예, 절 때로 빼앗기지 않겠습니다."

 "하하하, 뭐, 세상 살다보면 사실 생각치도 못한 괴물을 만나게 될 때가 있어요. 그때는 빼앗겨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 또오세요."

 "꼭 다시 오겠습니다."

 우하우하는 여관을 떠났다.

 *    *    *

 햇볕에 목과 등이 따스했다. 바람은 여전히 서늘했다. 
 몸은 날아갈 수 있을 정도로 가볍고 발거름은 힘과 자신감이 넘쳐났다. 태어나서 처음이로 느껴보는 쾌적함과 충만함. 

 다시 젊어진 우하우하는 지금까지 거쳐왔던 여행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현자의 지팡이가.
 가슴에는 현자의 책.
 주머니 속에는 현자의 돌.
 그리고 현자의 로브를 두른 몸.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현자의 지팡이를 휘두르자, 머리 위에 구름이 생겨났다. 그것이 얼굴이 비치는 햇볕을 막아주었다. 한 번더 휘두르자, 보이지 않는 바람이 몸을 둘러쌓았다. 발이 땅에 닿지 않아도 바람을 타고 앞으로 날아갔다.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가는 길에 어느새 우하우하는 어느 마을에 이르렀다. 그 마을은 우하우하가 예전에 금은가루를 뿌렸던 장소였다.

 "이번에는 진짜 금가루를 뿌려줘야지."

 우하우하가 로브를 펄럭였다. 그러자 노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우하우하는 마을 입구로 들어갔다.

 마을은 많이 변해있었다. 돌로 쌓은 집은 조금 부수를 했을 뿐이지만, 진흙으로 지어진 집들은 끊임없이 새로 짓다보니, 형태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마을에 세워진 이상한 나무 동상이었다. 어떤 존재를 모실려고 만든 동상인지, 동상의 피부는 쌔카맣고 새끼손가락도 하나 없었다. 

 그 앞에는 제단이 있었고 많은 해골과 뼈다귀, 그 가운데는 쌔카맣게 탄 어린 아이의 시체가 있다. 비명을 지르던 표정 그대로 태워져 있다. 산채로 태운 것이다. 무엇을 위해 받쳐진 것인지 몰라도 지독한 마술이었다. 

 한 청년이 우하우하에게 다가왔다. 청년은 전신에 그림이 그러져 있었다. 그 모양이 심상치가 않았다. 몇 가지는 이젭트에 마술을 상징하는 세모, 동그라미 같이 정교한 기호도 보였다.

 그런 청년이 앞에서서 우하우하 얼굴을 유심히 살펴봤다.

 "당신은...! 그 마술사?"

 "오래전에 이곳에서 금은가루를 뿌리고 젊은 두 딸이 있는 집에 하룻밤 묵었지. 나를 기억하느냐?"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놀란 표정이지만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어느 덧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을 둥글게 쌓았다.

 "20년 전. 내가 어렸을 때, 당신 손에서 나오는 금가루가 너무 신기해서 그 손바닥을 펴본적이 있었소. 그러다가 어른들에게 매를 맞았소. 그 후에 당신의 마술이 너무 궁금해서 이젭트로 갔소. 그곳 최고 마술사 아비누스에게 19년간 마술을 배우고 이 마을로 돌아왔지."        

 "20년 전 이라고?"

 "그렇소. 어쨌든 나는 이렇게 최고의 마술사에게 마술을 배우고 왔소. 당신과 마술 대결을 하고 싶소. 누가 더 훌륭한 마술사인지!"

 청년이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자 두 손에서 금가루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손바닥에서 금가루가 하염없이 떨어졌다. 마을 사람들이 제단 앞에서 기적이 일어났다며 비명을 질렀다.

 금가루는 어느 새 청년의 무릎까지 쌓였다. 그리고 무릎을 거의 가리고서야 금가루가 떨어지는 것이 멈췄다. 엄청난 양이었다. 정말 훌륭한 마술이었다. 우하우하의 정성기에도 금가루를 발목까지 쌓는 게 최대였다. 그런데 이 청년은 겨우 19년을 배우고서 금가루를 무릎까지 쌓을 정도로 뿌려댔다. 

 우하우하는 청년이 뿌린 금가루를 한 주먹 쥐어보았다. 아주 가볍다. 말랑말랑했다. 부피도 컸다. 자신이 연금술로 만든 가짜 금가루보다 훨씬 가볍고 밝게 빛났다. 엄청난 기술이었다. 이 청년의 연금술은 우하우하보다 뛰어났다. 

 "어떻소? 지금 이 기술은 이젭트에서도 최고로 인정받고 칭송받는 기술이오. 이제 당신 차례요."

 솔직히 졌다. 순수한 마술 대결이라면 우하우하의 필패였다. 그러나 우하우하는 더 이상 마술을 쓰지 않았다. 우하우하는 품속에서 현자의 돌을 꺼내들었다.  

 "내 차례군."

 우하우하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모래를 한줌을 쥐었다. 모래에 현자의 돌을 갖다대자, 모래가 금가루로 변하기 시작했다. 달란 한줌의 모래가 금가루로 변했을 뿐이다. 

 "하!, 겨우 그정도인가?"

 청년이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바로 그때!
 우하우하의 주변으로 모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우하우하 주변으로 작은 토네이도를 형성하며 주변의 모든 모래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얼마 후 폭풍이 잠잠해졌다. 마을 전체에 금가루가 발목까지 쌓여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청년은 자신의 발목까지 쌓인 금가루를 쥐어봤다. 무겁고 단단했다! 진짜였다!

 인정 할 수 없다. 자신은 세계 최고의 마법사 아비누스에게 마술과 연금술을 환영술 세 가지를 마스터한 최고 마술사였다. 그런 자신이 어줍잖은 또돌이 마술사에게 지다니...

 "대단하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소. 이번에는 나의 환영술을 펼칠 것이오!"

 청년이 품속에서 마른 나뭇잎을 꺼냈다. 연기만 나도록 불씨를 지폈다. 청년은 불씨가 남은 마른잎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그러자, 입과 코, 귀를 통해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연기가 마을 전체로 퍼지기 시작했다. 마을사람들이 그 연기를 마시게 되었다. 우하우하도 연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우아!!! 사자다! 사자가 나타났다!"

 "청년이 사자로 변했어!"

 "마술사다. 저 청년이야말로 진정한 마술사다!"

 청년이 서있던 자리에 사자가 나타났다. 과거 우하우하가 물 없는 절벽으로 뛰어내릴 때 보았던 그 맹수였다. 우하우하는 조금 두려움을 느꼈다. 정말 엄청난 환각이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환각을 보며 박수를 쳤다.

 연기가 흩어지고 사자가 사라졌다. 그 자리에 청년이 서있었다. 청년은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이겼음을 확신했다. 우하우하가 땀을 흘리며 약간 겁에질린 표정을 보자니 더욱 그러했다.

 우하우하는 숨을 돌렸다. 그리고는 청년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청년, 인정하마. 엄청난 환각술이었다."

 "고맙소. 노인"

 "그러니 나도 보여주겠다. 너희가 진정으로 무서워 하는 모습을!"

 우하우하의 현자의 로브가 펄럭였다. 그 자리에 있던 우하우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을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청년도 놀랬다. 그러나 얼마 후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감쪽같이 사라졌군. 대단한 마술이오! 노인! 하하하하하...;;;;;;;;;;;;;;;;;;;;;;;;;;;"

 쿠오오오오오옹!!!!

 "뭐, 뭐야! 하늘을 봐봐!"

 마을 전체를 뒤덮은 검은 그림자. 
 도마뱀의 몸통, 뱀의 목, 박쥐의 날개, 거대한 체구!
 덤으로 입에서 뜨거운 불을 뿜기 시작했다. 그 불이 오래전부터 마을 뒤에 있었던 큰 바위산을 녹여버렸다.

 쿠오오오오!!!!!

 바위를 녹인 괴물은 괴성을 한 번 더 지르고 하늘에서 사라졌다. 
 사라졌던 우하우하가 다시 나타났다.  
 모두의 숨이 얼어붙었다. 노인이 다시 나타났음에도 녹아내린 바위는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벌벌 떨며 두려워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두려움에 떨고 있는 청년.
 우하우하가 청년에게 말했다.

 "더 하겠느냐?"

 "..."

 청년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찍었다.

 "진정으로 참된 위대한 마술사를 제가 뵙습니다!"

 청년을 따라, 마을 전체의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우하우하가 가는 곳 마다 기적을 일으키고 증언을 했다. 아픈 병을 낫게 해주고 어린 나이에 죽은 아이는 살려주었다. 

 때로는 길가에 산적을 만나면 모조리 태워죽였다. 우하우하는 현자의 책을 펼쳐 산적들이 몇 명이나 있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에 보물을 숨겼는지도 알 수 있었다. 모든 걸 알아낸 우하우하는 산적이 가진 보물을 찾아내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마을 사람 가운데에도 사악한 자가 많았다. 우하우하는 현자의 책을 자주 펼쳤다 상대방의 미래 뿐만이 아니라, 과거에 저지른 잘 못 그리고 현재의 상태까지 모조리 읽어낼 수 있었다. 그것을 모주 고려한 우하우하는 사악한 사람을 죽였다. 심지어 우하우하가 그 사람을 죽임으로써 수백년 뒤의 미래까지 어떤 영향이 가는지 알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기적을 행하고 가는 곳 마다 '알프스에 있는 전설의 여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것을 증언했다. 그곳은 융프라우라는 곳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은 우하우하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또 이야기가 끝나면 우하우하가 직접 기적을 행사해 치료해주기까지 했다. 앉은뱅이가 바로 일어나고 봉사가 눈을 뜨고 팔이 잘려나간 사람의 팔이 새롭게 자라나며, 썩은 시체가 살아났다.

 "아이가 몇 살이었소?"

 "1년도 안 되었습니다."

 "허어... 어찌 죽게 된 것이오?"

 "마을에 돌던 돌림병으로 그만... 흐흐흑..."

 "눈물을 그치시오 어린 부인. 죽은 아이야. 다시 살아나라!"

 죽은 지 오래되어서 부패된 냄새를 풍기던 아이가 다시 살아나 울음을 터트렸다. 마을 사람들은 진짜배기 기적에 전율을 느꼈다. 

 마을에 살고 있던 무당들은 모조리 도망갔다. 우하우하가 무당은 모조리 불로 태워 죽여버렸기 때문이다.

 "아이고 나으리, 우리 아들 좀 살려주십시오."

 한 남자가 어린 소년을 앞으로 대려왔다. 걷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다. 그런데 배를 걷어 올리자, 배속에 구더기 같은 것들이 달라붙어 꿈틀거리고 있었다. 벌래들이 살아있는 아이의 생살을 파먹고 있었다. 우하우하가 인상을 찡그렸다.

 "도대체 어찌 된 것이오!"

 "몇 달 전에 아들이 배가 아프다 해서 마을에 살고 있던 어느 무당과 마술사에게 치료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놈들이 아들의 배를 치료하겠다면서 이렇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저는 지금 껏 그것이 치료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위대한 마술사님의 진정한 기적을 보고 기적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부디 우리 아들을 살려주십시오."

 "뱃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은 다 정화되고 배는 치료되어라!"

 우하우하가 지팡이를 갖다대자 벌래가 사라지고 어린 소년의 배가 말끔이 치료됐다. 

 "아이야, 괜찮느냐?"

 "네! 이제 안 아파요!"

 "허허! 그래, 앞으로는 가짜 마술사와 무당 말 따위는 믿지 말거라."

 "네!"

 우하우하가 해맑게 웃는 아이와 함께 웃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노여움 가득한 표정으로 돌변하며 마을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당장 이 마을에 있는 마술사와 무당을 모조리 잡아오도록 하시오! 내가 직접 태워 죽일 터이니! 그 자들은 이 어린 소년을 치료한답시고 더럽고 사악한 곤충을 배에 심은 자들이오! 그자들의 자식과 부모가 있거든 모조리 잡아오시오!"

 마을 사람들은 우하우하를 경외하며 한 편으로는 즐거워했다. 마을에 있는 무당과 마술사의 가족을 싸그리 잡아왔다. 그들을 한 대 모아놓은 우하우하는 현자의 책을 펼쳤다. 우하우하는 현자의 책을 읽어내릴 수록 얼굴에 노여움이 가득하기 시작했다.

 "우드드득! 이 기생충 같은 노오옴들!!!" 

 우하우하가 책장을 몇 번 더 넘겼다. 그러다가 그 가운데에 어린 소녀를 제외시켰다. 어린 아기도 있었지만 우하우하는 그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과거 현재 미래를 읽어낸 우하우하는 저 아기들이 결국에는 여자들은 팔아먹고 남자들은 끔찍하도록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저 죄인의 가족 가운데 어린 소녀만은 사소한 잘 못만 저지르며 살아간다. 우하우하는 약간의 죄만 짓고 사는 죄인은 용서해주기로 했다.

 "아이고 마술사님!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제 아들만은,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들만은 제발 살려주십시오. 적어도... 적어도 저 딸년 대신에 제 아들만은!!!"

 "입닥쳐라! 이 더러운 자식들아. 너희들은 돌팔이 기술로 사람들을 속이며 치료하였다. 마을 사람들을 더욱 병들어가게 만들었고 힘겹게 모은 재산을 비료비로 빼앗아 호의호식하며 너희 자삭들만 편히 살도록 만들었다. 너희의 더러운 핏줄과 근본은 너에서 끝나지 않고 너희 후손조차 그런 근성으로 사람들을 등처먹고 살아간다. 나는 오늘 그런 더러운 너희를 불로 태워죽일 것이다!"

 한 여자가 울부짖으며 말했다.

 "당신에게는 자비란 것도 없습니까!? 신에게 노여움과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신께선 다 보고 계십니다!"

 우하우하의 표정이 굳었다. 말 없이 하늘위에 화염구를 만들었다.

 "기회를 주겠다. 너희 신에게 기도를 드려라. 당장 내 머리위에 번개를 내려치게 만들어 달라고! 너희를 살려달라게 해달라고!"

 "ㅅ... 시... 신이시어 제발 저희를 구원해주시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잠시 더 기다렸다가 우하우하는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화염이어! 저 더러운 죄인들의 머리 위에 떨어져라!"

 "사... 살려줘! 제발 자비를!"

 "왜 나한테 자비를 찾는 것이냐! 너희 신에게 찾아라!"

 화염구가 떨어졌다. 무당과 마술사의 가족들은 그 자리에서 몰살해버렸다.

 "와!!!!!!"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우하우하에 대한 이야기가 살아있는 전설로서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우하우하를 찾기 시작했다. 기적을 받기 위해 그 기적을 보기 위해 혹은 가르침을 받기 위해. 융프라우라의 전설의 집에 대한 소문도 빠르게 퍼져나갔다.

 *    *    * 

 이젭트에 어느 강과 신전 앞.
 수만명의 사람들이 강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만들어진 돌다리위에 이젭트의 왕 파리오가 나타났다. 머리에 쓴 황금 모자를 제외하고는 입은 것 하나 없었다. 완전히 알몸이었다. 파리오는 피골이 상접하고 굉장히 말라 있었다.

 "하아... 창피하다. 그리고 죽을 것 같다. 제발 강의 여신이시여. 비를 내리게 하소서!"

 수만명의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파리오는 자신의 물건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딸딸딸딸딸....

 탁탁탁탁탁!!!

 이제는 서지도 않는다. 파리오는 이 끔찍한 악몽이 어서 끝나기를 빌었다. 감뭄이 오면 왕은 사람들 앞에서 자위를 한다. 강에서 자신의 씨앗이 뿌려 강의 여신을 달래는 것이었다.

 파리오도 마음 속으로는 이딴 것이 될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상황이 너무 절박했다. 민심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왕이 직접 벗어야 했다. 그런데 이짓을 한지가 90일이 지났다. 감뭄은 더 심해져서 이제는 하루에 세 번씩 사람들 앞에서 이짓을 해야했다.

 찍.

 !?

 이젠 자신의 씨앗이 날아가지도 않는다. 쾌감도 없었다. 그저 물빼는 느낌이었다. 모두가 파리오의 씨앗이 성스러운 것이라 한다. 솔직히 자신의 것 만큼 불결한 것은 없다. 하얗고 끈적한 씨앗이 손목을 타고 흘렀다. 파리오는 자신의 손바닥에 묻은 하얀 씨앗을 강물에 씻었다. 

 그것을 수만명의 사람들이 지켜봤다. 저들은 진심으로 비가 오기를 바라지만, 지금 이렇게 구경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재밌기 때문이었다.
 
 굉장히 불쾌했다.

 굉장히 비참했다.

 "죽고 싶다."

 파리오는 힘겹게 신전으로 들어갔다.
 시녀들이 나타나 파리오는 부축했다. 파리오는 힘겹게 신전에 있는 왕좌에 앉았다. 그 옆으로 핸드가 나타났다. 파리오의 조언자였다. 

 "그... 우하우하라는 자에 대해서는 알아봤는가?"

 "예! 지금 모셔오고 있습니다."

 "뭐잇!? 벌써?"

 "전령에 의하면 우하우하는 우리가 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령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보았던 마술사와 차원이 다른 마술을 보았다고 보고했습니다."

 "오... 신이시여. 제발 이번에는 진짜 마술사이기를!"

 몇 일이 흘렀다. 
 파리오는 아침부터 신경질적이게 소리쳤다.

 "우하우하는 오고 있느냐!?"

 "예! 곧 도착한다고 합니다."

 "제발 빨리... 난 정말 죽을 것 같다. 어제는 그곳에 피가 나왔느니라!" 

 벌컥! 
 커다란 문이 활짝 열렸다. 그곳에서 회색 로브와 거대한 지팡이를 든 우하우하가 당당히 걸어나왔다.

 "오오!!! 당신이 우하우하요?"

 "그렇소."

 우하우하는 당당했다. 고개를 숙이거나, 딱히 예의를 차리지도 않았다. 그저 왕 앞에 당당히 섰다. 오히려 왕을 내려다 보았다. 우하우하는 절 때로 복종한다는 의미로서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융프라우를 제외하고는!
 
 파리오는 그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진심으로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우하우하도 그럴 것이란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파리오는 우하우하를 대리고 서둘러 강 앞에 나갔았다. 
 이미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전 보다 열배는 더 많은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왕 파리오가 소문이 자자한 대현자 우하우하를 초대했다는 소문이 도시 전체에 퍼졌기 때문이다. 
   
 파리오가 자신의 물건을 잡고 흔들려고 했다. 그때 우하우하가 손을 들어 그것을 막았다.

 "비는 바로 내릴 것이오."

 우하우하가 두 손을 넓게 뻗었다. 그러자 산들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강가에 있는 풀잎이 흔들렸다. 

 하늘에 구름이 촘촘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두워졌다. 바람이 더욱 거새졌고 천둥이 치기 시작했다.

 우르르르릉... 

 바람이 거세졌다. 그러자 구름이 번쩍하며 쪼개졌다. 하늘을 유심히 바라본 사람들은 구름을 찢은 하얀 줄기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는 엄청난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쾅!

 벼락이 쳤다. 곧 이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솨아아아!!!

 굴고 길다란 물방울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춤을 췄고 파리오는 기뻐하면서도 우하우하의 능력을 굉장히 두려워했다.

 "하하하! 대단하시오! 당신은 진정한 마술사요. 당신이 믿는 신은 누구요? 신전에 가장 큰 자리에 그 동상을 세우고 싶소."
 
 "융프라우."

 우하우하가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강을 바라봤다. 빗물에 의해 강물은 삽시간에 불어났다. 그리고 넘처 흘렀다.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도망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불어난 물에 휩쓸릴까 걱정한 것이었다. 
 우하우하가 손을 들자 비가 멈췄다.
 그 후 우하우하는 이젭트에 몇 일을 더 머물다가 떠났다.

 
 우하우하는 바다에 이르렀다. 푸른 지평선 너머로 한 점의 섬도 보이지 않았다. 바다 끝에는 절벽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어리석은 과거가 떠올랐다. 이 말도 안 돼는 상상을 정말로 믿었던 과거가 실감나지 않았다.

 "정말로 바다를 건너실 것입니까!?"

 "우하우하시여! 가시기 전에 가르침을 내려주시옵소서!"

 이젭트에서 따라온 서기관과 군인 그리고 그들의 몸종이 천명. 부모가 없는 고아나 어린 나이게 과부가 된 사람이 이천명. 이밖에 가르침이나 기적을 보기위해 우하우하를 따라온 자가 만명. 도합 일만 삼천명의 사람들이 우하우하를 따르고 있었다.

 우하우하는 자신을 무작정 따라온 사람들을 바라봤다. 대부분 얼굴의 때깔이 좋치 않았다. 몸이 크게 아픈 사람은 없었지만, 먼 길을 따라오느라 모두 지쳐있었다. 대부분 준비없이 집을 떠나온 사람들이다. 모두들 허기지고 목이 말라 보였다.

 사람들을 살펴보던 우하우하가 입을 열었다.
 
 "누군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져시오."

 그 말을 듣고 이젭트의 서기관들이 몸종들에게 서둘러 우하우하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라고 시켰다. 그러나 그보다 빠르게 한 소녀가 우하우하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떡과 마실 물을 내주었다.
 떡과 마실 물을 받은 우하우하는 소녀의 머리를 쓰담아주었다.

 "허어... 이렇게 착할 수가. 자신이 먹을 음식 전부를 내어주다니."

 "아니옵니다."

 지팡이를 들어 소녀의 머리를 살짝 두두렸다. 이것으로 소녀의 수명이 100년 정도 늘어났다. 100년간 아프지 않을 것이고 심각한 부상을 입더라도 다 나을 것이다. 덤으로 늙지도 않을 것이다.

 우하우하가 떡 한 개를 꺼냈다. 그리고 품속에서 현자의 돌을 꺼냈다. 현자의 돌을 떡에 갖다대자 떡이 커지기 시작했다. 소녀에게 제일 먼저 몸통만큼 큰 떡을 때어 주었다.

 "한 명씩 앞으로 나오시오!"

 굶주린 사람들이 앞으로 나왔다. 우하우하는 몸통만한 떡을 한 사람씩 나누어 주었다.

 "받은 떡은 이웃에게 나누어 주시오. 욕심을 낼 필요는 없소. 떡은 많이있소."

 "아닛! 떡이 계속 커지잖아!"   

 떡을 받은 사람들의 떡도 거대해 지기 시작했다. 너무 커져서 너도 나도 떡을 뜯어내어 나누어주었다. 모두가 몸통만한 떡을 받고 배불리 먹었다. 

 "흐음. 목이 말라보이는군."

 우하우하가 거대한 바위로 다가갔다. 지팡이를 들어 바위 한 가운데 수십개의 구멍을 쏭쏭 내었다. 그 구멍에 소녀가 줬던 마실 물을 흘려넣었다. 들어간 물이 다시 역류하여 나왔다. 

 졸졸졸...

 물줄기가 끊기지 않고 계속 흘러나왔다. 그러더니 옆에있는 구멍에도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얼마 후 마른 바위 주변으로 깨끗한 생수가 흘러넘쳤다.

 "마른 바위에서 물이 흘러넘치고 있어!"

 사람들이 거대한 바위 주변으로 몰려들어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젭트에서 따라온 서기관들은 이 놀라운 기적을 기록하기 바뻤다. 그렇게 모두가 식사를 마쳤고 우하우하는 바다 앞에 섰다.

 거대하게 꿀렁이는 바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기만 하면 푹푹 빠져버려서 걷기란 불가능한 그곳에 우하우하가 발을 담궜다. 

 모두가 숨을 죽이며 그것을 바라봤다. 우하우하가 지팡이를 높이 들어올렸다. 지팡이로 바닥을 쿵! 하고 찍어내렸다. 

 바다가 갈라젔다.

 서기관과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많은 기적을 보았지만, 보면 볼 수록 더 놀라운 일만 일어난다. 몇몇 서기관들과 사람들은 거대한 바다가 갈라지는 것을 보고는 두려워서 도망을 갔다. 우하우하는 더 이상 이들을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바다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서기관들은 황급히 우하우하를 불러세웠다.

 "위대한 우하우하시여! 저희들은 몹시 두려워 이 바다를 건널 수 없겠사오니, 제발 가시기 전에 가르침을 내려주시옵소서! 이젭트로 돌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는 가르침을 전파하고 싶습니다!"

 우하우하는 마지막으로 딱 한 번, 뒤를 돌아섰다. 그리고 세상 천지가 진동 할 만큼 거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다른 누구로도 말고 오직 스스로를 등불로 삼으라!"

 우하우하는 단 두 마디를 남기고 몸을 돌렸다. 다시 갈라진 바다 길로 들어갔다. 얼마 후 우하우하는 작은 점이 되어 사라졌다.
 사람들은 몇 일이 지나도 여전히 갈라져 있는 바다를 보다가 떠났다.

 그 이후 우하우하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거대한 바다를 가르고 죽은 자를 살리고 마른 바위에 물이 영원히 샘솟도록 하는 이 전설은 수천년간 이야기를 통해 전해져 내려왔다. 그리고 그의 어록은 인류의 모든 종교의 교리에 영향을 주었다.
 
 우하우하는 이집트에서 부터 아프리카, 유럽, 중동과 아시아까지 다양한 형태와 구전을 통한 전설로 기록되었다. 그 모습은 때로는 용의 형태로, 때로는 선지자의 형태로, 때로는 신으로서, 이 전설을 모티브한 수많은 종교와 신,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서기관들은 영원히 샘이 솟는 바위를 이젭트로 가져갔다. 그렇게 이젭트는 수천년간 번영을 누리기 시작했다. 

 *    *    *
  
 나는 현자의 책을 펼쳤다. 그동안 보는 것이 두려워 미루고 있던 책. 난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와서야 동생이 살아있는지 확인하려고 책을 펼쳤다. 책을 펼치고 동생 우아우아가 살아있는지 확인해봤다.

 살아있다. 

 기적이다.

 조용히 책을 덮는다. 나도 모르게 조금 읽어버린 동생의 삶. 너무 괴로워서 도저히 읽을 수 없었다. 

 가기전에 길가에서 과일 한 개를 땄다. 그리고 동생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보았다. 그곳은 예전에 살았던 곳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였다. 

 모든 것이 낙후된 그곳. 음식이랄 것은 불에 태운 것이나, 과일과 고기가 전부였다. 이 땅은 농사라는 것도 모르는 그런 곳이었다.

 흙집이 가득한 마을에 이르렀다. 예전처럼 흙과 똥, 마른 풀을 섞어서 만든 작은 집들이 밀집되어 있었다. 

 마을에서 가장 외진 곳. 수풀 사이에 위태롭게 지어진 흙집. 

 동생은 자신을 기억 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예전 소년 시절의 모습으로 얼굴도 복장도 바꾸었다. 떠나기전에 들고 있었던 가죽주머니에 잡고기와 강물에 주운 빛나는 돌을 집어넣었다.

 문도 없는 그 흙집으로 들어갔다.

 마른 풀잎과 흙을 섞어 만든 곳에 한 노인이 누워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동생은 이 나이까지 아내도 같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빨이 썩고 허리가 굽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외로워지는 그저 그런 고통. 
 홀로 죽음을 기다리며 숨만 쉬고 있었다.

 "... 거기 누구십니까?"

 동생이 힘겹게 몸을 세웠다.
 나는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가죽 주머니를 동생에게 주었다. 그리고 과일을 한 개 건넸다.

 "이게..."

 쭈글쭈글하고 갈라진 손으로 잡고기와 빛나는 돌멩이 몇 개를 이리저르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다시 나를 바라봤다.

 "과일 가져왔어."

 수십년간 메말라 있던 동생의 눈가에 눈물을 맺혔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게 동생을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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