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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아라드 괴담 - 略式百物語 #. 열두 번째 이야기
게시물ID : dungeon_6655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athance
추천 : 1
조회수 : 25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8/13 0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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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장치의 광신자

 소녀는 자신의 앞에 한창 심지를 태우고 있는 초 하나를 두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이야기라는 건 참 재밌어. 제대로 글로 이야기를 남기기 힘들었기에 입에서 입으로, 모든 게 기억에 의존해서 전해 내려오는 거잖아. 그리고 그게 나중에 글로 기록이 되어서 책이 된 뒤에야 조금이나마 정확하게, 내용이 변하는 일 없이 전해 내려오게 되는 거고.
 우리끼리 자주 말하는 이런 소문이나 괴담 같은 것도 거의 그런 부류지. 입에서 입으로, 글에서 글로. 가끔씩은 책에서 책으로. 그래서 내가 이런 얘기 하는 걸 좋아하는 걸지도 몰라. 일단은 재밌잖아.
 당연하겠지만, 마계에도 그런 입에서 입으로, 기록에서 기록으로 전해지는 옛날이야기가 있어. 아주 아주 오래전, 마치 천계와도 같은, 어쩌면 천계의 것보다 훨씬 뛰어난 정교한 기계장치와 찬란한 과학기술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진 비극에 대한 아득한 옛날얘기야.
 지금은 그런 것들은 전부 비극으로 인해 사라졌고, 그 빈자리는 마법이 들어찼거든. 게다가 그게 진짜인가 싶을 정도로 실감 나지 않는 것들이라서 사람들은 그냥 만들어낸 옛날이야기인 줄만 알았을 거야.
 마계에 루크가 올라타기 전까지는 말야.

 루크는 마계에 올라탄 뒤 마계를 천천히 재건했어. 지금 마계에 불이 들어오는 것도 다 루크 덕이니까. 그렇듯이 온갖 버려져 있던 기계장치들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제 용도를 되찾은 것도 전부 루크의 덕이야. …세계정복 같은 생각만 안 했어도 좋은 분으로 길이길이 남았을 텐데.
 그런데 그 루크가 다른 모험가들에게 퇴치되기 전에, 루크가 마계에서 무언가 하고 있었다는 것 같아. 빛을 모으는 거 말고, 선택받은 사람…그런 것을 모았다고 해야 하나? 무언가 검사를 해서, 무언가가 적합한 사람들을 모았다는 것 같아. 그 무언가가 뭐냐고? 나는 그거 한창 할 때 아라드에 있었으니까 잘 모르지. 하지만 확실히 사람들을 선택했다는 것 같아.
 후, 하여튼, 마계는 루크에 의해 빛도 되찾았고 용도를 잃었던 기계장치도 되찾았어. 그런 루크의 업적들을 보며, 그리고 루크가 직접 만들어 내는 것들을 보며, 깊이 감명을 받은 어느 마계인이 있었다고 해. 자연히 동경하게 되었고, 루크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했지.
 그 사람은 당연히 아까 말한 선택 받은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루크의 추종자에게 다가갔어. 그 사람은 루크를 동경했으니까. 기계장치의 왕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기 위해서. 하지만 그 사람은 선택되지 못했어. 그 결과를 납득하지 못해 끈질기게 들러붙었지만, 돌아오는 말은 안된다는 말뿐이었어.

 …나는 무언가에 집착한다는 게 과하지 않은 선에서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야. 하지만 그 집착이 과해질수록 점점, 빠르게 나빠진다고 생각해. 그 사람은 루크에게, 기계장치의 왕에게 자기도 모르게 집착을 하고 있었어.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결과에 납득할 수가 없었던 거야.
 자신만큼 루크를 동경하는 이는 없을 거라고, 루크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주어진 현실은…그 사람 기준으로 가혹했지. 당연할 정도로 크게 상심했고, 깊게 절망했어. 동경하는 이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된 자신이 대체 무엇을 해낼 수 있을까.
 그렇게 비척비척 걷던 끝에 도착한 곳은 쓰레기장이었어. 루크를 추종하는 자와 각클들이 모여서 사는 바로 그곳. 죽은 자의 성에서 버려지는 고철들이 쌓이는 곳. 그 사람은 온 사방에 널려있는 버려진 기계장치들을 봤어. 아니, 그런 것들을 장치라고는 못하겠지. 잘 쳐줘야 기계부품. 혹은 그냥 고철 덩어리.
 그 사람은 그것들을 보면서 생각했어. 자신의 넘쳐나는 안타까움을. 루크에게 선택받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을. 기계장치의 왕에 대한 집념을. 선택의 기준 같은 거 그 사람은 알지 못했어. 그딴 거 솔직히 알 바도 아니었을 거야. 중요한 건 자신이 선택받지 못했다는 것뿐이니까.
 내가 이렇게까지 루크를 동경하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그분을 존경하는데. 마계에 빛을 가져와 준 그분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마계의 온갖 고철 덩어리에게 쓸모를 돌려준 그 기계장치의 왕을 내가 얼마나 따르고 싶어 하는데!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그 사람은 버려진 고철들을 집어 들었어. 자신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선택하지 않은 걸 후회할 정도로, 다시금 선택을 하고 싶어질 정도의 인물이 되어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 고철들을 이어붙이기 시작했어.

 그 녀석이 고철을 이어붙이기 시작하고 몇 달이 지난 뒤, 그 쓰레기장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고 해. 죽은 자의 성에서 떨어지는 고철들이 쌓이는 그 쓰레기장에, 각클들도 두려워서 피해 다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 덩어리가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소녀는 자신의 앞에 있는 촛불을 불어 꺼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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