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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어제, 네가 죽는 꿈을 꿨어.
게시물ID : panic_947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Y-
추천 : 16
조회수 : 1267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7/08/13 12:3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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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네가 죽는 꿈을 꿨어."


그는 술잔을 흔들며 그렇게 말했다.

안에 조금 담긴 술이 찰랑거렸다.

나는 그저 웃었지만, 그의 표정에는 사뭇 다른 진지함이 담겨있었다.


"뭐라고 할까."

"막 네 영정 앞에서 불키고 절하고."

"나 니네 가족 다 알잖아. 친척까지도 알잖아."

"다들 눈물 흘리고 그러시는데."

"난 눈물도 안나오더라. 그냥 위로하는 말 밖엔 못했어."

"아무튼 그랬어."


그는 굳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무슨 별 꿈을 다 꿨네, 하며 다시 웃어보았지만

그는 평소처럼 웃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너 발인하는 거 까지 봤다?"

"참, 커다란 녀석이 재는 아주 적더라."

"근데 그래도 눈물이 나오진 않더라."

"눈물이 나오진 않았어."


그제서야 그는 웃기 시작했다.

나는 내심 조금 안도하며 웃었다.


"우리 그저께 했던 말 기억나냐. 내가 그랬잖아. 니가 죽고나서 100년쯤 더 지나고 죽을 거라고."

"난 이제 125살에 죽는건가봐. 하하하"


나는 그의 팔뚝을 주먹으로 치면서 술을 따랐다.

그는 그 술잔을 보면서 다시금 웃음을 멈췄다.


"그 꿈에서, 혼자 우리 동네로 돌아왔는데."

"딱 컴퓨터 키고 게임 들어갔는데 말이지."

"너가 접속이 안되있는거야."

"게임 폐인 자식이 웬일이래. 했는데"

"그러고 보니 넌 죽었더라."

"우리들 자주갔던 피씨방 기억나? 그 초등학교때부터 하던 곳."

"거기 가도 아무도 없더라."

"짜증난다고 막 키보드 치다가 아저씨한테 오지게 혼났잖아."

"근데 아무도 없더라고."

"막 우리 돈 없어서 맨날 노래부르려고 갔던 옆마을 코인 노래방에서도."

"맨날 돈 없다고 500원만 꿔서 노래부르고 했잖아."

"거기도 가봤거든."

"왠일인지 딱 500원 있더라."

"그 우리가 자주 부르던 그 힙합 노래 알지?"

"그거 부르다가 내 파트가 끝났을 때 딱 멈췄는데."

"아무도 노래는 안부르고 mr만 그냥 흘러나오고."

"아, 너는 없지. 하고 또 그랬어."

"그냥 그래서 거기 마트에서 맥주 사서 그냥 털레털레 걸어갔지."

"쫄병스낵 그거에 필스너 들고."

"그래서 공원에 가서 전화기를 눌렀거든."

"내가 기억하고 있는 딱 한 명."

"근데 안 받더라고."

"그러고보니 죽었더라고."


그는 계속 술을 들이켰다.

나는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말린다고 안 마실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냥.. 그렇더라."

"없더라고."

"그래서 하튼 그건 필요 없을것 같어."

"125살까지 안 살아도 되니까."

"그냥 그렇게 막 혼자서 떠나지 마라."

"그냥 너는 그렇게 게임이나 하고, 맥주나 마시고."

"그냥 그렇게 있어라."

"그렇게 있어라."


그는 푹 하고 엎어졌다.

역시 과음했나.

술잔을 대충 내려놓은채.

그는 혼자서 계속, 없더라고. 라며 중얼거렸다.

그는 눈을 감은채 그렇게 있었다.


나는 내 술잔에 조금 남은 술을 마저 따라

그대로 쭉 들이켰다.

빈 잔은 슬쩍 테이블에 내려뒀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되는거죠?"


탁,하고 모든 것이 멈췄다.

점멸하던 백열전구도, 바쁘게 움직이던 주인장의 손도.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도.

그의 볼을 따라 흐르던 무언가도.


"그건 너가 가장 잘 알고 있겠지."

"돌이킬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잖아?"


한 여자가 모든 것이 멈춘 포차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슬쩍 웃으며 근처의 테이블에 기대 앉았다.


"저 녀석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지금 이 시간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녀는 어깨를 슬쩍 들어올리며 말했다.


"모든 것은 한 여름밤의 꿈이었던 거지."

"네가 없는 세상이 현실이고, 네가 있는 지금이 꿈일 뿐이야."

"마지막 소망은 이뤘나?"


나는 그의 얼굴을 슬쩍 쳐다봤다.

참 익숙하다.

멍청한 표정, 멍청한 후드티.

참 변함 없다.


"그냥 마지막으로 한 잔 하고 싶었는데."

"마지막에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네요."

"정말, 몰랐네요."


"하지만 너는 이미 돌이킬 수 없지."

"너가 뛰어내리기 전에 아주 잠깐이라도 생각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야."

"너가 없어도 세상은 굴러가지만."

"어떤 사람은 너가 없으면 세상이 멈추는 법이야."


딱, 이렇게 말이야. 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그 말대로다.

무기력해서, 내가 없어도 될 것 같아서.

참으로 멍청한 짓이었다.

정말로 멍청한 짓이었다.


"...얘는 125살까지 살까요."

"아니, 대답하지 말아주세요. 그냥 잊어주세요."


그녀는 살짝 짧은 한숨을 쉬며 나에게 손을 뻗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의 술잔에 남은 술을 쭉 들이켰다.

술은 전혀 쓰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단지 아쉬움을 남긴 한 잔이었다.

참 멍청한 녀석이다.

너도 나도.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포차 문을 열더니 무언가 생각난듯 멈춰섰다.


"그러고보니 이건 어떻게 할까?"


그녀가 포차 문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원래 내 마음대로 하는거지만, 저 친구를 봐서 한번 양보해주지."


나는 마지막으로 테이블에 엎어져있는 그를 보았다.

그의 눈가는 촉촉했다.

안 울었다면서, 거짓말 치고 있네.

여전히 멍청한 모습.

익숙한 모습.

마지막 술잔.

텅빈 술잔.

나는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잊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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