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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아라드 괴담 - 略式百物語 #. 열다섯 번째 이야기 저주열차
게시물ID : dungeon_6656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athance
추천 : 3
조회수 : 19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8/16 00: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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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은 자신의 앞에 한창 심지를 태우고 있는 초 하나를 두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주에 대해서 아는 거 있어? 꽤 여러 가지 종류가 있잖아. 일단 가장 간단하게 그냥 말과 생각으로 저주하는 게 있고, 행동으로 저주하는 것도 있고. 예를 들어서 상대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잔뜩 괴롭히고 찢고 태운다거나, 상대가 찍힌 사진에 구멍을 뚫는다거나, 아니면 인형에 못을 박는 다거나….
 아, 너 저주에 뭐가 있는지 잘 알지? 어떤 게 있어? …응. …어. …아니, 아니, 잠깐. 얘기는 고마운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너무 자세하잖아. 저주 강좌 같은 게 되어버릴 거 같아. …하여튼 저주가 그렇게 다양하게 있다는 거잖아. 그건 확실히 잘 알았어.
 그런데 그 저주라는 게 제법 까다롭잖아. 들키면 저주가 돌아온다느니, 뭐 그런 식으로. 그런 조건도 다 뚫고 저주를 거는 것도 어떻게 보면 엄청 굉장하다 싶은 것 같아. 그런 게 잘도 안 걸렸다는 느낌이잖아.
 물론 천계에도 그런 이야기, 당연히 있어. 그 온갖 저주, 그게 진짜일지 구라일지는 확실하진 않지만, 어쨌든 있어. 그중에서도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특이한 게 하나 있어.

 해상열차는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지. 천계는 조각조각 나뉘어 있으니까, 다른 데로 가려면 열차 아니면 배잖아.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사람들이 두고 가는 물건들이 제법 많아. 그래서 열차의 운행이 끝나면 차장은 모든 객실을 돌면서 승객이 두고 내린 물건이 있나 살펴봐. 내가 말해줄 저주는 이 해상열차를 이용한 방법이야.
 저주의 대상을 향한 저주의 말이 잔뜩 적힌 종이를 어딘가에 넣어서 해상열차의 운행이 시작돼서 끝날 때까지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 저주가 진짜 일어난다는 거야. 그냥 종이만 숨겨두는 건 안 되고, 꼭 병이든 상자든 가방이든 어딘가에 넣어둬야 한다고 해. 게다가 발견되기 쉬운 곳에 있을수록 저주가 더 강해진다는 이야기도 있고.
 너희는 그런 저주 같은 거 믿어? 솔직히 나는 그런 거 잘 안 믿거든. 그런데 그 저주를 은근히 하는 사람이 있었다나 봐. 해상열차 이용 시 그런 거 두고 내리지 말라는 알림이 붙었다는 말이 있다더라고. 정말이지 별에 별사람이 다 있어.
 그런데 그 방법이 딱 한 번 끝까지 발견되지 않은 적이 있대.

 그날도 별다른 사건도 사고도 없이 무사히 해상열차의 운행이 종료되려는 찰나였어. 차장은 늘 하던 대로 모든 차량을 훑어보면서 손님이 두고 간 물건이 없나 둘러보고 있었어. 끝까지 둘러보고 다시 맨 앞으로 돌아가던 중, 눈에 훤히 띄는 곳에 놓인 커다란 가방이 있는 걸 보게 되었어.
 분명 처음 둘러봤을 땐 없었는데, 갑자기 생겨난 듯이, 마치 발견되라는 듯이 아주 당당하게 있었대. 이상한 일이었지. 딱히 숨겨져 있던 것도 아니었고, 그리 어두운 색도 아니었고, 크기가 작은 것도 아니었는데, 그런 걸 못 보고 지나칠 리가 없잖아. 그래도 기분 탓이겠거니 하면서 가방을 들어 올렸다고 해.
 그런데 가방은 미묘하게 묵직했어. 게다가 똑…똑…. 하고 뭔가 액체 같은 게 떨어지는 듯한 소리도 들렸어. 가방 안에 든 물 같은 게 새기라도 한 걸까 하는 생각에 보니까 떨어지는 것도, 고인 것도 빨개. 술병이 안에서 깨지기라도 한 건가 싶었는데, 어쩐지 가방을 열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대.
 그래도 일단 치우기는 해야 할 테니까, 차장은 마음속으로 가방의 주인에게 사과하면서 가방을 열었어.

 죽어.

 길 가다 총 맞아서 죽어.

 폭사해서 죽어.

 바다에 빠져서 죽어.

 아랫세계로 떨어져서 죽어.

 전신의 뼈가 부러져서 죽어.

 머리부터 떨어져서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온갖 종류의 저주의 말이 적힌, 붉게 젖어 있는 종이들이 가방 속을 잔뜩 채우고 있었어. 가방의 깊숙한 곳에는, 마치 그렇게 죽으라는 듯이, 잔혹하게 죽어 있는 동물의 사체가 있었어.
 차장은 기겁을 하면서 가방에서 멀어졌어. 그제야 피 냄새가 잔뜩 풍겨오기 시작해. 어떻게, 어떻게 그런 게 운행이 끝날 때까지 아무한테도 발견되지 않은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어. 무엇보다, 얼른 그 기분 나쁘기 짝이 없는 가방을 치우고 싶어 했어.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역겨움도 공포도 잠시 잊고 가방으로 달려가 가방 자체를 창밖으로 집어 던졌어. 그 저주로 가득 들어찬 불길한 가방은 그대로 바다에 가라앉아 버렸다고 해.

 그 차장은 그다음에 어떻게 되었냐고? 글쎄? 완전히 미쳐버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원인 불명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도 있어. 그 뒤에 어떻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멀쩡하다는 얘기는 없어. 마치 그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말이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청년은 자신의 앞에 있는 촛불을 불어 꺼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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