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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freeboard_16211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따
추천 : 0
조회수 : 15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8/31 11:27:21

그녀는 군데 군데 썩어있어 아주 낡아버린 피아노 건밭같은 이를 환히 드러내면서 웃는 여자였다. 머리는 빨간 색이었던가..
그리고 체형이 호리호리했다는게 내가 기억해 낼 수 있는것의전부다 
어떤 곳에 걸려있는 파스텔 톤의 인물화를 여러분은 아는가? 그것은 가까이서 보면 인물과 뒤의 배경의 구분이 쉽지 않아 모든게 뭉그러져 보일 뿐이고 몇걸음 물러서서 보아야 그게 인물화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는 그런 그림말이다. 
내게 그녀가 딱 그렇게 떠오르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가지  분명하고 또렷하게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그녀의 썩은 이 일것이다.

나는 이제 그녀를 썩은이라고 칭하겠다.

썩은이 는 나에게 은밀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멍 때리고 있는 나에게
'워 아유 프롬' 이라는 만국 공통인사 말을 건네왔다
짧은 영어로 내가 그녀에게 돌려줄 수 있는 말은 오늘 하루에도 수 번은 얘기했음 직한 '아임 프롬 코리아' 뿐 이었다. 
썩은 이는 자신은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났으며, 10년 전에 이곳 양곤으로 왔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덧붙여 무슨 이야기를 더 했는데 내가 알아듣지 못한 관계로 나도 모르고 여러분도 모르는 이야기를 여튼 했다. 

그리고 자신은 학생이고 외국인 친구가 많다고 했다. 손수 핸드폰에 같이 찍은 일본 프렌드, 아일랜드 그랜파, 등등을 나한테 친절히 보여줬다. 

나는 일찍이 여행길 위에서 말을 걸어오는 현지인들의 행위, 가령 길을 안내해준다는 등의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쯤은 파악해둔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어리숙하고 호락치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했다.
"아임 트래벌러, 아임 낫 해브 이너프 머니"
라고 힘을 주어 말을 했다. 

그런데 썩은이는 "오노" 라고 하며 손사래를 치느듯한 표정을 지었다. 

미얀마는 문호를 개방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방인에게 그저 친절을 베풀고 싶어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썩은이에게 쉐다곤 파고다 를 갈 예정이라고 이야기 했다. 썩은이는 자신이 길 안내를 도맡아 해주겠다며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 기회를 달라고 애원하듯 말했다. 
나는 말이 썩 잘 통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동행이 있으면 나쁘지 않을 듯 한 생각과, 현지인이라 하더라도 왠지 나의 수족이 하나 더 늘 것 만 같은 부담감이 공존해서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좋다 싫다 라는 명확하고 확고한 의사표시를 하지 못하고 더듬더듬 하고 있는새 썩은이는 다시 그 썩은이를 활짝 드러냈다.

썩은이는 나를 부족마켓 이라는 곳으로 우선 안내했다. 파고다에 들어가려면 미얀마 전통의상인 룬지 를 입어야만 한다는 상식을 더해준 후에 말이다    

이야기를 잠깐 새서 미얀마 양곤의 다운타운 거리의 풍경을 한번 묘사해 보려고 한다. 
변변치 않은 어휘력과 문장으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움도 따르고, 어차피 이야기의 골자에서 벗어나 있으니 만큼 간략하게만 서술하겠다.

무질서가 질서인 거리를 본적이 있는가 
별 개성없는 비슷비슷한 차들의 끊임없는 행렬에 부지런히 울리는 클락숀 소리, 공사중인 건물은 왜 하나 건너 하나씩 있는지 간헐적으로 들리는 무언가가 떨어지면서 내는 둔탁한 '쿵' '쿵' 소리  사람들의 재잘대는 소리 그 외에 여러 잡다한 소리를 내며 도시는 요란한 기지개를 켜는 중이었다. 

그 혼잡한 도시에 신호랄게 따로 없으니, 사람들이 4차선도 넘는 차들 사이를 '길건너기 게임' 같이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미얀마에 와서 가장 특색있는 것중에 하나가 바로 이 '길건너기' 에 있음은 아마 경험이 있는 자들이라면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한번에 한 차로씩 건너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두 차로도 한번에 건너뛰고..
나는 하루새 길건너기 초급자 명함을 떼고 저녁무렵에는 어느정도 익숙해졌다 여겼는데, 아직도 6차선 쌩쌩 달리는 차들 틈에 서있었던 것을 떠올리면 간담이 서늘할 정도다.

아무튼,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썩은이와 나는 발을 맞추어 같이 걸어가다가도 어느 차도가 나오기만 하면 저만치 차이가 나버리는 꼴이었다. 
썩은이는 달리는 차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가지 않았다. 그저 걸어갔고 건너갔다. 
실상은 차들의 행렬에 따라 이리저리 보고 건너갔겠지만, 나의 굼뜬 길건너기에 비해서  동작이 너무나 간결한데다 유연해서 어찌 유려해 보이기 까지해 차들이 비켜서있고 썩은이는 다만 걸어갈 뿐이라고 나는 느꼇던 것이다. 

그렇게 먼저 건너간 썩은이는 응원과 답답함이 정확히 반반씩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둘중 둘다 빨리 오라는 뜻인거니, 나는 그녀의 기대에 충족하고자 
서두르겠다는 암시를 눈으로 주고 부지런히 좌우를 살피며 길을 건넜다.

나중에는 썩은이가 차도를 건널때면 나의 손을 잡아주기 까지 했는데,  과연  이곳이 부처의 나라라는 사실을 높이 솟은 파고다의 탑에서 보다 그녀의 손끝에서 어렴풋이 더 느끼고 있었다.

부족마켓은 우리나라 종로의 금은방들이 모여 있는 시장과 비슷한 곳인데, 금붙이 들과 여러가지 부다나 거북이 등의 장식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가장 먼저 눈에 뜨였고, 그뒤에 가방이며 신발이며 파는 상점들이 나오고 더 깊숙히 들어가고 나서야 룬지라는 것을 파는 곳에 다다랐다.

썩은이가 내게 해준 사전설명대로 나는 가장 저렴한것을 우리나라돈 만원 가량에 구입했다. 만오천원에서 만원으로 디스카운트를 했는데, 그들은 내가 큰 네고에 성공한 바이어라도 되는 듯이 은근히 추케세우며, 심지어는 당해내지 못하겠다며 혀를 내두르는 시늉 까지 했다.

나는 그것을 되도록 빨리 입어보고 싶었다.타이즈에 반바지 차림이 생각보다 너무 불편했던 문제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은근히 불편했던 것은 사람들의 쳐다 보는 시선이었다. 미얀마 전통의상인 룬지를 입으면 이방인의 느낌을 조금 덜어내고 또 그만큼의 시선도 거두어 들일 수 있을거라는게 나의 계산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계산은 순 엉터리였다. 그리고 또 엉터리 였던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추후에 서술하겠다. 
상상해보아라.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서양인을.

그래도 그냥 입고 다니기로 했다. 사실은 파고다에 입장 할 때만 입을 요량이었지만, 한번 입고나니 다른 옷으로 갈아입기가 너무 아쉬울 만큼 편하고 시원했다. 

< 룬지라는 복장은 미얀마의 전통의상인데, 그냥 천 이라고 보면 된다. 그걸 몸이 통과되게 끼운다음에 허리츰쯤에 놓으면 길이가 발목정도 까지 늘어뜨러진다. 
사람이 2명이 들어갈 정도의 둘레로 되어있는데 그만큼의 여유분을 잡고 한쪽으로 팽팽하게 당긴다음 다시 반대쪽으로 대준다. 그럼 접점이 두군데가 생기는데 그것끼리 서로 교차시켜 고정시키는 것이라고 보면된다. 
남자들이 샤워를 하고 나와서 큰 수건으로
이렇게 저렇게 허리츰에 둘러매는 모습을 상상하면 이해가 더 쉽게 될 수 있을 것이다. >

그리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쉐다곤 파고다로 향했다.

동서남북 네개의 입구 중에 우리는 동쪽 입구를 통했다. 입구가 시작되는 문에서면 위로 길게 늘어선 계단을 맞이하게 된다.          
지금 뜬금 없이 그 계단이 몇개나 되는지 세어보고 싶어지는데 어떤 뜻이 있는 숫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글을 쓰며 들었기 때문이다.  꼭 이런 생각들은 나중에야 들기 마련인데, 누군가 그걸 세어본다면 나에게 알려주는 아량을 베푸는 것을 기대해보련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파고다 같은 곳 무언가 경건한척 해야되는 듯한 장소에 갔다오고 나서는 실제로도 그의 행실이나 생각이 당분간 그렇게 변하기도 할 뿐 더러 그런 기간이면 자신에게도 베풀 아량이 있다는걸 증명 하기 위해 안달을 내곤하니까.

입구 중간쯤에는 무엇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위태하게 서있었는데, 빨간색 페인트칠이 세월에 벗겨져 자주색 정도를 띄고 있고 크기도 크지 않아서 그 본래 목적인 안내에는 적당해 보이지 않았다.
거기엔 네가지 그림에 엑스표시가 되어있었는데, 지금에 와서 정확히 기억 나는것은 신발과 양말 그림, 그리고 짧은 치마 그림 이다. 나머지 두개는 나에게 해당사항이 전혀 없어서 기억을 못하는데. 나였다면 강아지랑 맞잡은 손을 그려놨을 것이다. 사실 고백하자면 치마도 나랑 접점은 없다.

나는 맨발이 왜 그렇게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 줬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겠다.
맨발 때문인지 발은 무지 편했지만, 덕분에 손엔 양말과 신발이 들려 있었다.

나는 그것을 당장에라도 어딘가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싶은 욕망을 일순 거침없이 느꼇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대신에 나는 썩은이를 돌려보냈다.

썩은이는 돌아갔고, 내 손엔 양말과 신발 그리고 썩은이가 나에게 팔고간 스무장의 엽서 묶음이 들려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쳇 그렇게나 순수한척 나를 속여먹다니. 
순진한 나는 결국 썩은이에게 속아서 사진엽서나 강매당한 신세군'

그렇게 썩은이와의 짧은 만남은 끝이났다.

썩은이가 없어지자, 말 그대로 앓던 썩은이를 뽑아낸것 처럼 시원하고 자유로워졌다. 썩은이는 그저 옆에서 몇마디 거두고 길을 안내하고 그정도 한게 다여서 곤혹스럽다거나 귀찮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돌려보내고 난 후 나는 분명히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한번 자유를 맛보니 난 더 큰 자유에 갈증을 느끼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나는 당장에 내 손이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실행에 옮겼다. 

손이 자유로워진 나는 아까 전부터 신경을 은근히 거슬리게 하는 룬지 하단의 삐죽 튀어 나온 실 가닥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그것을 주욱 잡아 뻇는데, 내가 예상 했던 것보다 더 주우욱~ 뽑혀 나왔다. 
도중에 그것을 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에 나는 확 잡아 당겼는데, 끊어 지진않고 그것역시 확 잡혀 당겨나왔다. 
어느새 내 손을 몇 바퀴 둘둘 말정도의 실이 뽑혀버렸고. 나의 룬지는 그대로 엉망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앞서 말한 또다른 하나의 엉망이다.
  밑단이 완전히 풀어져버려서 금새 너덜너덜 해져버렸다. 나는 솜사탕이
생각났다. 솜사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꾸로 돌려보았다. 왠지 그렇게 발가벗겨 질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내가 좀더 자유로운 사람 이었다면 나는 그것을 훌러덩 벗어 던졌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조심에 조심을 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글이 싱겁게 끝나버렸다. 사실 좀 피곤해서 씻고 자야겠다. 왠지 오늘은 양치질을 좀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중에 안것이지만 내 싸구려 룬지는 우리나라 돈 4천원 정도면 살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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