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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전 여자친구에게 부치는 편지
게시물ID : military_804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ktwiz
추천 : 2
조회수 : 475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9/05 22:5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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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나에게 온 페미니즘

  저는 27살 이성애자 남자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 5년을 넘게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숨어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드러난 싸움의 시작은 페미니즘이었습니다. 저희는 페미니즘을 주제로 눈물을 흘려가며 광화문 한복판에서 싸웠습니다. 그 이후로 감정의 골을 보이다 결국 헤어졌습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저의 관심과 애증은 아마 전 여자친구로부터 비롯된 것일 겁니다. 그리고 이 글도 그 친구에 대한 저의 마음을 덜어내기 위한 과정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1. 나에게 비춰진 페미니스트

  첫째, 공감받기를 바랍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본인들이 받았던 아픔들을 공감해주길 바랍니다.

  둘째, 공감해주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멸시하거나, 포기해버립니다. 페미니스트이기에 페미니즘은 일단 옳은 사상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페미니즘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타인들에 대해 ‘깨어있지 않다’며 처음 몇몇에게는 분노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포기하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셋째, 공감하지 않는 상대와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페미니즘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은 상대와 대화와 토론을 통해 그 사상을 전파해야 할 텐데 그 과정을 매우 힘들어 합니다.

 

2. 내 맘대로 이해해보는 페미니스트

  첫째, 왜 공감받으려 할까? 아마도 페미니즘의 시작은 그동안 자신들이 받아왔던 사회적 차별에 대한 깨달음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자신들에 대한 차별(혹은 혐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이었다는 것을 알고 큰 충격이 왔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인생 전체를 어렸을 때부터 되돌아보게 되고 자신이 겪었던 아픔들 중 많은 부분이 암암리에 이루어진 사회적 차별에서 이루어진 것에서 온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이 자신들을 ‘깨어있다’고 지칭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성차별적 요소를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페미니즘은 그들에게 이해하거나 배우는 것이 아닌 느끼는 것입니다.

  둘째, 공감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왜 실망할까? 페미니스트가 아닌 여성들은 깨어있지 못해 답답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페미니스트가 아닌 남성들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비인간적인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니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실망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들과 왜 이야기 하는 것을 스트레스 받아할까? 페미니즘은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 아닌 느끼는 것이라는 데에서 답을 찾습니다. 페미니스트의 깨인 눈으로 본다면 사회는 여성차별(여성혐오)로 가득 찬 곳입니다. 설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답답한 일일 것입니다. 더러운 변기를 보고 왜 변기가 더럽냐고 묻는 사람에게 우리는 마찬가지의 답답함을 느낄 것 같습니다.

 

3. 왜 하필 남성혐오인가?

  미러링. 가장 많이 들었던 정당화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못하였습니다. 남이 나를 때린다고 하여 나도 남을 때린다는 것은 심정적으로 이해는 가지만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적 보복을 허용하지 않는 21세기에 어울리는 대응방식으로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함무라비 법전 시대에나 어울릴법한 구시대적인 사고를 하기에 남성혐오를 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것 또한 아니라고 봅니다.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바라보자면 이 세상은 본래 남성들의 것이었습니다. 사회 구조는 남성들이 만들었고 그들이 유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사회 구조가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남성들이 만든 사회 구조가 여성들을 억압합니다. 그렇다면 여성의 입장에서 남성들은 자신들을 억압하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혐오스러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성혐오는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이 시대 남성들의 숙제인가요? 그것 또한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의 사회 구조는 인류가 생기면서부터 만들어진 아주 오래된 구시대의 산물입니다. 페미니즘적 논리를 따르더라도 비판받아 마땅한 것은 구시대의 남성들이지 이 시대의 남성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 시대의 사람들이 현 시대의 여성들을 억압하고, 현 시대의 남성들이 현 시대 사회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지 않느냐? 비판할 수 있습니다. 일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 시대 남성들이 항상 특권층의 위치에만 있고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는지 대전제부터 다시 생각해본다면 다른 의견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 우리나라의 페미니즘

  어렸을 때부터 저는 양성평등에 대해서 배우면서 자랐습니다.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은 하지 않아야 하고, 남녀는 기본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 등을 당연한 명제로 듣고 살아왔습니다. 상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페미니즘이 가지고 있는 대명제인 ‘여성과 남성의 권리와 기회는 평등하다’라는 사실도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녀가 차별받던 시절 페미니즘이 미국 등지에서 사회에서 일할 권리, 선거에 참여할 권리 등을 얻어낸 것은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도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설 기초를 세운 일이었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입니다. 우리나라는 페미니즘 운동이 대중화 된지 얼마 안 됐습니다. 언론 등에서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이후로 웹상에서, 현실에서 페미니즘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내리게 되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작년 가을쯤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그 자체에 대한 논쟁을 1년 동안 이어오고 있습니다. 한국식 페미니즘은 소위 메갈인지, 워마드인지, 영페미인지, 꿀빠니즘인지, 여권신장운동인지 아니면 남녀가 모두 동등하게 대우받기를 바라는 사회운동인지 누구도 확실하고 명쾌한 답을 주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페미니즘은 이제야 시작단계에 있고 지금까지 보여준 것으로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너무나 스펙트럼이 다양한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시작을 가져 사람들에게 어떠한 인식을 남겨주느냐 하는 큰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5. 페미니스트, 내 전 여자친구에게

  큰 틀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여권 신장이 필요하고 페미니즘 운동이 갖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남자로서 페미니스트 여러분께 바랍니다.

  첫째, 남성들을 적으로 돌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사회는 남녀가 대립해서 싸우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 화합하고 공존하는 사회입니다.

  둘째, 공감하지 못한다고 하여 실망하지 말아줬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여성들이 사는 사회와 남성들이 사는 사회는 분명 다른 사회입니다. 공감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회에 사는 우리 남성들 혹은 일부 여성들은 영원히 여러분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이해하려 해도 나의 아픔에 비춰보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당사자가 아니면서 옆에 있는 사람들을 함부로 이해하려 드는 것도 올바른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노인이나 임산부, 장애인과 같은 다른 사회적 약자에 얼마나 공감하실 수 있나요? 멀리 아프리카에서 굶고 있는 아이들의 아픔은 어느 정도 공감하고 계신가요? 그러니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도 인정해주었으면 합니다.

  셋째, 남성들을 먼저 공감해주길 바랍니다.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공감해주길 바란다면 말입니다. 우리들의 아픔 말고 그들의 아픔은 없는지 보십시오. 가부장적 제도 아래서 남성들은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은 없는지 먼저 말해주고 공감해 준 다음 여러분의 아픔을 보여주십시오. 페미니즘이 여성만을 위한 사상이 아님을, 모든 성의 평등을 위한 것임을 스스로 입증하고 공감을 요구하십시오.

 

저는 여성분들이 우리사회에서 귀하게 쓰이기를 바랍니다. 유리천장을 깨고 사회 중요 직역에서 자신의 결정권을 행사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저는 남성분들이 짊어지었던 삶의 무게를 덜 수 있는 사회를 바랍니다.


남자와 여자 그 밖의 모든 성별들이 동등하게 대우받는 그런 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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