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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readers_295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우라
추천 : 2
조회수 : 21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9/06 0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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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어떤 사람의 경멸 어린 시선을 받아본 사람은 그 기억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내가 11살 때 우리 가족은 그 지역에서 제일 가난한 동네에 살고 있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대부분 지하 셋방에 살았다. 

여름에는 시원했지만 햇빛이 비치지 않는 마치 쥐 소굴 같은 곳이었다.

가끔 쥐가 나왔으니 어떻게 보면 쥐소굴이 맞았는지 모르겠다.



그 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방학이 되면 아침 일찍 일어나 씻지도 않고  

흙먼지가 가득한 놀이터에 앉아 유심히 모래 구덩이를 만들며 누군가 피다 버린

담배꽁초를 찾으며 시간을 때우기 일쑤였다. 

가끔 거의 새것 같은 장초를 발견하면

누구라 할 것 없이 한 번 씩 폐 속 깊은 곳에서 연기를 한 바퀴 돌리고 나서

다음 사람에게 넘기곤 했다. 

그것이 아니면 일부 부지런한 아이들은 

폐지와 공병을 주워 

그 돈으로 본드를 사서 흡입하기도 했다.

일부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그런 아이들을 보고 불량아 내지 부랑아라고 손짓하겠지만

나한테 그런 일련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던 건 우리 형도 그런 부류에 속했기 때문이다.

형은 일찍이 타고난 재능으로 골목 대장 노릇을 했다.



아마도 아버지의 카리스마를 물려 받았으리라 말 나온 김에 

아버지의 얘기를 하자면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얘기를 하기 싫어했으므로 나는 형의 풍부한 몸짓이 섞인 이야기를 통해서 

단편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대단히 의미 있는 일 이었다. 어릴적엔 제법 상상력이 풍부했던 나는

형의 이야기를 몇 배로 부풀려 들었다. 

내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총을 적들에게 다다닥 하고 쏘면서 전쟁터를 누비는 람보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나를 목마 태워 껄껄 웃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형은 이야기 하는 재주가 뛰어났다. 

종종 형 주위에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형이 들려주는 얘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아이들은 그런 형에게 일종의 구독료 대신 담배를 상납하곤 했다. 형에게는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형이 크면 아버지처럼 군인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뭐 아무튼.. 결국엔 따르는 사람이 많게 됐지만..
 


아무튼 나는 그런 형과 달리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햇빛도 들지 않는 쥐 소굴 같은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것은 무척 따분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비지땀을 흘리며 밖에서 다른 아이들무리와 어울려 지내기는 싫었다.

정확히는 아이들이 나를 거부했지만..그런 관계로 나는 항상 거의 홀로 지냈다. 

다행히도 거실 구석에는 여러 신문사의 신문이 차곡차곡 반듯하게 쌓여있었는데

어머니가 주말마다 부지런하게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폐지로 사용하기 위해 모은 것들 이었다.

나는 무료할때면 그 신문 뭉텅이에서 신문을 뽑아 읽곤 했다. 

어떤 날은 XX신문사, 어떤 날은 OO신문사,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덕분에 어릴적 부터 세상을 편견없이 평등한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



그 신문들에서 일부 사람들은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느낀것은 우리가 사는곳과 신문에 나온 사람들이 사는곳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동네는 항상 싸움소리로 시끌벅적 했고 앞서 말했다시피 

우리는 각종 합법적인 정신환각 물질을 정기적으로 흡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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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스티븐킹 같은 느낌으로 써봤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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