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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세월호 참사가 초보 엄마에게 가르쳐준 것
게시물ID : sisa_9812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넘어넘어
추천 : 9
조회수 : 75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9/08 12:51:21
독박육아
출처는 이 책입니다. 정말  절절하고, 가슴 치는 부분이었거든요. 이외에도 참 많이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좋은 책이었지만, 이 부분 덕에 다른 이야기는 싹 잊혀져 버리더라구요(...) 참고로 2015년에 연재된 글을 2016년에 출판한 책.

[2014년 4월 16일 그 시각, 백일을 갓 넘긴 아기를 안고 거실 쇼파에 앉아 있었다. 밤새 아기와 씨름하느라 잠을 못자  게슴츠레한 눈으로 멍하니 앉아 수유를 하고 있었다. 뉴스 속보 알림이 떴다. 바다에서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데 그게 어떤 상황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구조 중이라 하니 ‘별 일 아니겠지’ 하고 생각했다. 아기가 잠든 오전 11시. 드디어 한숨 잘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반가워  아기를 안고 얼른 방에 들어가 누웠다. 그렇게 2시간 동안 단잠을 잤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얼마나 달게 낮잠을 잤는지 밤새 쌓인 피로가 다 풀린 것처럼 가뿐했다. ‘이것이 백일의  기적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잠깐의 기쁨이 이렇게 오래 죄의식으로 남을 줄은 미처 몰랐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도 그저 별 일 아니겠지 했던 내 자신이 잔인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내 자식 배불리 먹이면서 남의 아이들이 스러져 가는 모습을 가만히 앉아서 생중계로 지켜봤다는 것이 생각지도 못했던 죄책감으로 남았다.
엄마가 되어서 맞닥뜨린 대형 참사는 슬픔의 단계를 뛰어 넘었다. 그것은 엄청난 공포였다. 배 안에 있을  모두가 내 아이, 내 가족 같았다.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내 아이가 수학여행을 가는 길에 배가 가라앉아 바다에 빠졌다. 부모가 실시간으로 현장을 목격했다. 그런데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절망 그 자체다.
 
설렘으로 가득찼을 여행길이 순식간에 지옥이 되고, 엄마를 찾으며 두려움에 떨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시커먼 바다에 대고  이름을 불러 보는 것 외에는 달리 어쩔 도리가 없던 부모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부모들이 십시일반으로 배를 빌려 바다로  나가면서 아이들이 따뜻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앞다퉈 배에 담요를 던지는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내 힘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담긴 유일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마저도 이내 절망으로 바뀌었지만. 그런 부모들의 모습을 보며 몇날 며칠을 울었다. 울음은 곧  분노가 되었다.
 
 사건이 수습되는 과정을 보는 것이 무척 고통스러웠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지금까지 진상 규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니 ‘수습’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무리일 수 있겠다. 갓 태어난 아기를 키우는 초보 엄마로서 지켜본 세월호 참사는 생후 106일 아기에게 앞으로 살아갈 이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부조리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부패와 무능의 총 집합이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느 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었다.
 
세월호 사건은 초보 엄마인 나는 이 세상에서 아무도 내 자식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얻었다. “내가 ‘빽’이라도 있었으면, 이  아이들이 힘 있는 집 자녀들이었다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겠느냐”던 부모들의 절규가 너무 아팠다. 그 말은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나는 내 아이를 무슨 힘으로 지킬 수 있을까? 막막하기만 하다.
 
정말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희생된 아이들을 비롯해 모두에게 미안했다. 꽃을 피워 보지도 못하고 져버리게 해서 미안했고, 또 한편으로는  내 아기에게 이런 세상밖에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래서 뭐라도 하고 싶었다. 비겁한 변명일 뿐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 너무 답답했다. 아기가 너무 어려서 안산에 있는 분향소에도 한참 뒤늦게 찾아갔고, 매일 신문과 뉴스를 보며 혼자 눈물을 훔치는 게 다였다. 주말에 광화문에 나가 멀찌감치서 유가족들을 향해 기도를 하고 돌아오고 거기서 받아온 노란 리본을 기저귀 가방이나 유모차 등에 달고,  친구가 선물한 ‘잊지 않고 행동하겠다’는 문구가 적힌 문패를 현관에 붙여놓았다. 나도 슬픔과 분노를 함께 하고 있음을 표시하는 그 정도  뿐이었다. 일부 용기 있는 엄마들은 자발적으로 비용을 모아 동네 곳곳에 노란색 현수막을 달고 유가족들과 모임을 가지며 아픔을 공유하기도 했다.  아무튼 엄마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함께 감정을 나누는 것, 그뿐이었다. 그게 너무 미안했다.   
 
누가 감히 그만하라고 할 수 있나?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허용이 안 되는 듯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참사가 일어난 것보다 더욱 공포스러운 일이다. 아이가 사고를 당해도 아무도 구해주지  못했는데 더 이상 슬퍼하지도 말라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아기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엄마의 모든 것이다. 눈빛 하나, 몸짓 하나에도 세상을 다 가진 것만큼 행복하다. 기침 한 번에도 가슴이 철렁, 눈물 한 방울에도 마음이 졸여진다. 부모에게 아기가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자식은 그냥 부모의 전부다.
 
세월호에는 그렇게 17년을 애지중지 키운 아이들이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휴대전화를 꾹꾹 누르며 “엄마, 사랑해”라는 메시지를 남겼던  아이들이었다. 누가 감히 그 부모들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사람들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고 마음대로  정해버렸다. 반 년도 채 안 지나서부터다. 할 수 있는 게 그저 슬퍼하는 것밖에 없는데 그것도 하지 말라며, 자신의 전부를 황망하게 잃은  부모들에게 등을 돌렸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을 도대체 무슨 자격과 권리로 할 수 있을까. 수족을 잃은 것보다 더한 고통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그만하라고 할 수 있냐는 말이다. 
 
희생자 가족들 중 단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는, 그냥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아기 엄마에 불과했던 나는 혼자 화내고 우는 것 외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늘 안타까웠고, 미안했고, 괴로웠다. 편안히 앉아서 두 눈으로 사건을 지켜본 목격자라는 사실이, 내 아기에게 젖을 먹이며 다른 아이들의 최후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는 죄책감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무언가를 할 수 있었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어떠한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드러나는 잘못과 치부를 덮는 데에만  급급해 보였다. 자기들도 부모이면서, 가족이면서 생때같은 자식들을 어이 없게 잃어버린 부모들에게 그만하라고,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가만히  있으라고만 했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에게 이성을 찾으라고 요구한다.
 
배 안에 있던 아이들을 단 1명도 구하지 못했으면서, 그런 나라로부터 희생자 가족들이 받는 것을 ‘특혜’라고 했다. 지켜주지 못한 내  자식들이 어떻게 사고를 당했고 왜 구조되지 못했는지 알고 싶다는데 그 앞에서 주판알을 먼저 튀겼다. 가까스로 살아 남았지만 친구를 잃은 고통에 휩싸인 아이들을 위로하는 방법이 대학 특례 입학이었다. 심지어 세월호에 매몰돼 경제 성장이 더뎌지고 있다며 호도했다. 탐욕, 결국은 돈 때문에  이 사단이 났는데 해결책으로 돈부터 들이미는 천박함에 몇 번이나 가슴을 쳤다. 소중한 아이들이 떠난 이 세상에서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앞날이  깜깜하기만 한 곳에서 돈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우리는 너무 빨리 잊었고, 너무 빨리 물들었다.
 
언제부턴가는 인터넷에서는 세월호 관련 기사가 올라오면 읽기가 겁이 난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도 저버린 것 같은 댓글들은 나에게도 상처가 됐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비교적 더 많은 울분을 느꼈던 엄마들 사이에서도 “돈이 많이 든다는데 인양을 꼭 해야하나요?”라는 이야기를 접하면 힘이 쭉 빠졌다. 아직도 그 안에 9명이나 남아있는데.
 
소중한 가족을 잃은 세월호 사건 유족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현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가족을 잃은 슬픔 앞에 어떻게 이념이나 성향을  우선할 수 있을까? 사건을 막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국가, 정치가 아닌 정쟁(政爭)만 일삼는 사회. 이런 세상에서 내 아이를  키워내야 한다는 것이 깜깜할 뿐이다. 
 
아이를 키우며 기적을 빌어야 하는 세상     
2014년 1월 1일생인 아기가 태어나 마주한 세상은 암담했다. (중략)과연 내 아이가 적어도 성인이 될 때까지 단 한 건의 사고도 겪지  않고, 아무런 사건에도 엮이지 않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을까. 그것은 기적일 것 같다. 아이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건강하게 아무런  사고 없이, 온전히 자라주는 것 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 같다.
 
세월호 참사 2년. 국가의 안전의식이 변화했느냐는 설문조사에서 여전히 10명 중 6명은 아니라고 답했다. 304명이나 희생되는 장면을  뜬눈으로 지켜보았으면서도 아직까지 그 원인조차 제대로 파헤치지 않는 여전히 불안한 세상.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위로는커녕 비난을 받는 너무나  비정한 곳에서 나는 아기를 키워야 한다. 아무도 내 가족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두려움을 안고. 하루하루 내 아이에게 운이 따르길, 기적이 함께하길  바라면서 말이다.]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너무너무 와닿는 글이죠ㅠㅠ 특히 제가 밑줄로 강조한 부분... 유족들 본인도 그만 가슴에 묻으라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고 하고 말이에요(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9032 여기 참조). 그 돈 다 돌려주고  아이 살리고 싶다고 하고(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569 여기 참조).
아이고. 육아  서적을 읽으면서 세월호 사건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라서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거 같았어요8ㅁ8 그렇죠, 그만큼 이 사건이 한국  현대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우리나라 전체에 엄청난 상흔을 남긴 대참사라는 거겠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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