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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1 텍사스 홀덤
게시물ID : freeboard_16253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따
추천 : 0
조회수 : 33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9/09 00:47:13

  굽이치는 도로를 한참 달리고 나서 얼마간 곧게 뻗은 길이 시작되었다. 도로 양옆으로 끝없는 평원이 수놓아져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산중에 만나는 곧은길과 넓은 초원이 잠시인 걸 알기에 열심히 눈에 아로새기려 부단히 바람에 맞서야 했다. 

 바간에서 출발한 미니버스는 7시간 여 만에 깔로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가까워 질수록 그 이전의 미얀마 와는 다름을 어렴풋이 느껴가고 있었지만, 깔로에 닿아 발을 내딛는 순간에 그것을 피부로 더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고산지대에 있어서 우선은 덥지가 않았다. 더운 도시에 있다가와서 그런지 덥지않다는 것을 서늘하게까지 느끼고 있었다. 

 예약은 레일로드 게스트 하우스 라는 곳에 했다. 버스 일행이 13명 정도였는데, 그중 혼자서만 동양인이었고, 또 목적지도 달랐다. 나를 제외환 나머지는 다 같은 방향으로 갔고 나는 정반대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 하나의 장면이 지금까지의 나의 여행의 씁쓸한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성수기에는 어떨런지 잘 모르겠지만, 미얀마에서 좀체 동양인 여행객을 마주치기가 어렵다.  서툰 영어와 다른 생김새 그리고 숫적열세와 그 밖에 등. 동남아시아에서 아시아인인 나는 이곳에도 저곳에도 끼지 못하는 어정쩡한 존재인 듯만 했다.

 여행을 하면 저절로 여행객들과 어울리고 친해지는 줄만 알았다. 여행을 사진으로 배운 나니까 말이다. 
  바간에서 역시  내가 묵은 숙소에 동양인은 오로지 나 하나였다. 나에겐 다 비슷하게 보이는 서양인들은 이미 테라스며 옥상이며 모든 곳을 빠짐없이 채웠고, 나에게 조그마한 공간도 틈새도 허락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 촘촘한 틈새를 헤집을 용기가 혼자인 나에게 도무지 생기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쭈욱 그렇게 혼자 이곳저곳 흘러 가고 있다. 좋은 것도  물론 있고, 허전하고 아쉬운 것도 물론 있다.  사실 조금 외로운것 뺴고는 모든것이 괜찮다. 조금 외로운 것 빼고 말이다.

 나는 배낭여행객들을 많이 보게되는데, 혼자다니는 경우는 의외로 없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 알게 되었다. 

 텍사스 홀덤을 하고 있는 3명의 영국인 무리에 부러운 시선을 던진때는 그렇게 혼자서 여행한지 만 10일 째 되던 날 밤이었다. 
 
 나는 우연치 않게 그자리에 합석하게 되었다. 맥주와 마리화나 그리고 텍사스 홀덤이 그들을 좀 관대하게 만든 덕분이었을 것이다.

 먼저 말을 건네준 이는 자기를 잭이라고 소개한 사나이다. 그는 사나이라는 표현이 아주 잘 어울리는 외모를 가졌기에 나는 그렇게 지칭할 밖에 없었다. 노랑머리를 길게 길른 스타일이었는데, 무심한듯 뒤로 넘겨져 귀에 걸쳐 있었다. 움푹들어간 눈을 더 들어가보이게 할 만큼 눈썹뼈가 볼록 튀어나와 있었고, 그만큼의 높이로 코가 오똑 솟아있었다. 각진턱과 호탕한 웃음 소리도 자신이 사나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옆에는 조 라고 소개한 그의 친구가 있었는데, 생김새나 스타일이 모든것이 잭과 반대되는 부류에 속해있었다. 나근나근한 목소리에 부드러운 외모를 가지고있었다. 뺨과 턱을 감싸고 있는 수염도 그의 외모따라 부드럽게만 보였다. 
 
 왕좌의 게임을 손에 들고 있는 조쉬는 동양인에게 별 관심없다는 듯한 인상이 생김새보다 먼저 들어왔다. 앞머리 부분에 이미 탈모가 어느정도 진행되어 있었고 눈썹과 수염 머리카락까지 모두 옅은 노랑색이었는데 그것이 테라스 등 아래서 더 옅게 보이는 바람에 내 눈에는 백색증을 앓고 있는 사람같이 보이기 까지 했다. 

 그리고 내가 있었다. 

 나도 그들이 처음에 무슨게임을 하는지 잘 몰랐는데, 나는 이제껏 포커도 제대로 쳐본적이 없었기 때문에다. 그들이 나에게 하는 게임의 이름을 소개해준 덕분에 나는 그것이 텍사스 홀덤 이라는 카드게임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처음에 그저 더듬거리는 영어로 몇마디를 주고 받았고 그후론 내앞에 놓여있는 맥주를 간간히 홀짝이면서 그들의 놀이에 집중했다. 

 그들은 다 영국에서 왔는데, 내가 아는 것도 별로 없고 해서 대화가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그저 '맨체스터'  '박지성' '런던브릿지' '영국날씨' '락의 본고장' 정도의 주제로 띄엄띄엄 이어지다 결국은 중단되었다.

 커다란 손에는 너나 할것 없이 손등부터 손목까지 털이 나있었고, 그 손에 쥐어진 카드는 어설프게 섞이고 있었다. 패를 섞은 사람은 패를 한장씩 두번 돌리는데, 자신앞에 놓일 카드는 정성스레 놓는 반면 다른 이들에게 돌리는 카드는 아무렇게나 던지는 모습에는 일종의 어떤 의식같은 염원이 있었음이고, 또 이들이 영락없는 친구사이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에게 할당된 2장의 카드를 보는 방법도 다 제각각이다. 어떤이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손으로 집어 올려 보는 경우가 있는데,  손에 그냥 아무렇게나 쥐고 심지어 마리화나까지 같이 들고 있는 모습은 숙련공의 그것과도 비슷했다.

 
 테이블에 뒤집어진채 붙어있는 카드를 투시라도 해보려는듯이 가만히 노려보다가 자신앞으로 끌고간다. 그리곤 테이블에서 떼지 않고 카드 끝부분만을 살짝 들어서 보고마는 이도 있다. 약간의 변태시즘이 거기엔 있다. 

 그리고 한장을 보고 덮어놓고 다른 한장을 보고 덮어 놓고, 그렇게 차례차례 한장씩 보는 경우가 있다. 거기엔 느림의 미학이 숨어있다.

 그리고 패를 돌렸던 사람이 자신의 칩을 테이블 중간에 아무렇게나 던지면서 배팅을 시작한다. 다른이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린후 자기코인을 그 위에 더한다. 어떤 경우에는 2장의 카드를 그냥 내려놓고 마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게임을 포기하는 의미라는것은 벌써 몇번 판이 돈 후에야 나는 깨달았다. 
 
 이 게임은 총 7장의 카드로 하는 게임인데 2장을 받은 직후에 게임을 포기하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도 못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 못먹어도 고' 정신이 있다.

  판돈을 걸고 레이스를 계속 할건지 포기를 할건지 2장의 카드를 받은 상태에서 정해지고 난후에, 다시 3장의 카드가 테이블에 오픈된다. 
 그럼 이제 자신이 가진 히든 카드2장과 테이블에 오픈된 카드 3장 을 가지고 다시 배팅을 한다. 

 의미심장한 웃음기를 띄거나 말도 안되는 허풍을 떠들거나, 아니면 뭐라  중얼대던가,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거나, 다리를 떨거나, 눈을 심하게 깜빡인다던가 아니면 아예 깜빡하지도 않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던가, 고개를 가로 젓는다거나, 세로젓는 다거나, 머리를 쓸어넘기거나, 박수를 친다거나, 코를판다거나, 하는 잡다한 동작들이 패를 돌리는 사이사이에 일어나고 배팅과 배탱사이에도 끊임이 없다.

 배팅사이에 레이스를 계속하는 사람이 한사람뿐이 없다면 그 사람이 결국은 그 판돈을 따게된다.

 3장의 카드가 오픈된 상태에서도 레이스를 계속하는 경우에 1장을 더 오픈하고 배팅을한다.

 그러고도 승부가 나지 않으면 마지막 한장을 오픈하고 배팅을 또 한다. 여기서도 둘다 레이스를 고집하게 되면 그제서야 자신이 어떤패를 들고 있는지 상대에게 확인시켜 주고 승자를 가리게 된다.

 자신이 들고 있는 패는 결국은 7장이 되야 완성이 되는 게임인데, 그러기 전에도 2장에서 또 어떤이는 5장에서, 6장에서, 7장에서 게임을 포기해버리고 만다. 

 여기서 재미난 것은 게임을 포기해버리는 순간에 자신은 패배자가 되고 마는것이다 상대가 자기보다 보잘것 없는 패를 쥐고있다고 하더라도 그순간 패배하고 마는 것이다. 

 반대로 형편 없는 패를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보다 좋은 패를 쥔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까지 하고 있었다. 
 약한자가 강자를 때려눕히는 흥분이 거기엔 있었고, 열등한자가 우등한자를 넘어서는 짜릿함이 있었다. 역설과 정설이 뒤섞여 있었다.
 
 게임을 포기하게 되고 자신의 돈을 잃는 상황에서, 나는 당연히 상대의 패와 자기의 패를 확인하는 과정이 있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의아했던 것은 그런 과정이 없고 다시 패를 그냥 섞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게임은 끝났을 뿐이다. 미완이지만,


 아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거기에는 또 상당한 인내심도 필요하지 않은가. 나같으면 당장 상대방이 들고 있는 패가 무엇인지 알고싶어하지않았을까.

 나는 이것이 멘탈게임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이게임에 대단한 흥미를 느꼈고 그렇기 때문에 별거 아닌 나의 일기장을 채울  소재로 선택했다.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아직 있고,
 나에게는 2장의 패가 주어져 있다.

 그것은 초석이다. 그것은 어떤 우연한 작용에 의해 각자에게 주어진다. 그 우연이라는 것은 패를 섞고 돌리는 신에게 있어서는 필연이 될 수도 있겠지만, 여튼 받아들이는 우리에게는 우연한 것이다. 태어난 나라를 고를 수 없기에 내가 여행객중에 이방인인 것이다. 그리고 엄마 아빠의 아들인 것이고 형의 동생인 것이다. 남자로 태어났고, 86년도에 태어났다. 그밖에도 그 어떤 것 하나 내가 정해서 가지고 나온것이 있나. 

 그런데 나는 2장을 받고 게임을 포기하고 마는 우둔함을 인생을 살면서 늘 가지며 살고 있었던 것 같다. 
 게임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전혀 반대임을 깨닫고 있었다. 게임과 인생이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말이다.
 
  바둑은 모르지만, 초석이 좋지않아도 묘수에 게임이 뒤집히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2장의 카드로 승부를 결정짓는것은 너무 성급한 일이 아닐까

 그것이 어쩌면 로열스트레이트플러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이쯤에서 성급하게 글을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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