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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 병영칼럼] ‘82년생 이문정’
게시물ID : military_807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겔러거형제
추천 : 0
조회수 : 89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9/12 20: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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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 정 MBC 기상 캐스터


 

“그래도 지영아,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얻게 되는 걸 생각해 봐. 부모가 된다는 게 얼마나 의미 있고 감동적인 일이야. 그리고 정말 애 맡길 데가 없어서 최악의 경우에, 네가 회사 그만두게 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책임질게. 너보고 돈 벌어 오라고 안 해.”

“그래서 오빠가 잃는 건 뭔데?”

“응?”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라며. 나는 지금의 젊음도, 건강도, 직장, 동료, 친구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도, 계획도, 미래도 다 잃을지 몰라. 그래서 자꾸 잃는 걸 생각하게 돼. 근데 오빠는 뭘 잃게 돼?…”(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본문 중에서)

정말 내가 딱 저런 기분이었다. 결혼 6개월 만에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 때 두려움이 몰려왔다. 나는 지상파 메인 뉴스의 기상 캐스터였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늘 전신이 나오는 방송인, 그것도 여성 방송인이 아니었던가! 해외에서는 후덕한 중년의 기상 캐스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유독 외모가 중시되는 환경에 놓여 있다 보니 배불뚝이 임부가 방송할 수 있을까? 시청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겁부터 먹었다.

나의 첫 직장이었다. 2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어쩌면 운이 좋게도 하고 싶어 했던 방송을 지상파에서 시작했고, 여고와 여대를 나와 늘 여자에게 둘러싸여 있던 내가 첫발을 내디딘 세상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일할 수 있고, 시청자와 만나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나의 직장, 그런 소중한 직장에서 밀리면 어쩌지 끙끙 앓았다. 그렇게 한참을 숨기고 다니다 배가 어느 정도 나오면서부터 용기를 냈다. 

그래, 후배를 위해서라도, 선례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만삭까지 방송하고 무사히 복귀하리라. 뜻밖에 많은 사람이 응원해 주었다. 잠이 쏟아지고, 속이 메슥거리고, 피로감이 배로 늘고, 여기저기가 아팠고, 협찬 옷이 맞지 않고, 눈치를 받는 일도 있었지만 버텼다.

그렇게 출산 일주일 전까지 만삭의 몸으로 방송했는데, 극한의 통증을 이겨내고 아기를 낳고 나니 이제는 출산휴가가 또 걱정이었다. 얼마나 쉬고 나와야 할까. 많이 쉬고 나오면 내 자리가 왠지 불안하고 혜택을 날로 먹는 느낌이고, 조금만 쉬고 나오면 앞으로 비슷한 처지에 놓일 후배들을 힘들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고민이 됐다.

그래서 딱 주어진 휴가만큼 쉬고 나왔는데, 모두 내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궁금해하고 기대하는 게 느껴져 부담스러웠다. 출산휴가 내내 외모 관리는커녕 하루하루 수유하고 애 재우고 쪽잠 자는 생활의 연속이라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출근을 다시 시작한 후엔 애를 맡기는 일, 집안일, 컨디션 관리 등의 문제가 뒤따랐고, 아이 둘인 지금까지도 육아와 방송 일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저기 구멍이 날 때가 많고, 울기도 하고, 속상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세상의 모든 엄마, 혹은 여성, 혹은 맞벌이 부부의 일상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우리 딸들이 사는 미래의 세상엔 82년생 이문정이 했던 고민과 걱정은 줄고, 더 많은 꿈을 자유롭게 꿀 수 있길 바란다.
출처 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170908&parent_no=1&bbs_id=BBSMSTR_00000000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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