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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몰락 10년사(기사모음-스압주의)
게시물ID : sisa_9841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넘어넘어
추천 : 2
조회수 : 98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9/20 12:39:05
경향신문과 주간경향에서 한창 연재중인 시리즈인데, 좋은 기사들인 것 같아서 1편부터, 현재 최신 연재분인 11편까지 한번 모아봤습니다!>_<
혹 아직 못 읽어보신 분들이 있다면, 이걸 보면서 지난 몇 년간~현재의 mbc의 비참한 현실을 모두 함께 알아주자구요...ㅠ

1-'대표 얼굴'들은 이렇게 쫓겨났다


2012년 2월, 서울 명동에서 열린 MBC 파업 행사에 참여한 오상진 당시 MBC 아나운서가 거리에서 유인물을 배포하고 있다. /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 제공

2012년 2월, 서울 명동에서 열린 MBC 파업 행사에 참여한 오상진 당시 MBC 아나운서가 거리에서 유인물을 배포하고 있다. /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 제공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축출이 시작됐다. 

손석희 현 jtbc 뉴스룸 앵커는 2009년까지 10년간 <MBC 100분 토론>의 진행자였다. 당시에도 그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꼽혔다. 당시 보도를 보면 손석희에 대한 보수진영의 교체 요구가 강했다고 한다. 그해 11월 <100분 토론>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토론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수가 뉴라이트 인사로 교체된 MBC 감독기관인 방문진과 청와대가 그를 비토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과의 토론을 일주일 앞두고 10년 넘게 지키던 MC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3년에는 최고의 청취율을 기록하던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도 그는 물러났다. 그 즈음 ‘설마 시선집중인데, 청취율, 영향력 1등인데…’ 하는 상식적인 믿음이 부질없음을 김재철 사장은 증명했다. 시선집중의 고정 출연자를 강제로 하차시키고, 내용에 대해서도 교묘하게 검열을 시도했다. 프로그램을 두고 불화설이 돌았고 손석희는 떠났다. MBC는 결코 그를 붙잡지 않았다.

유랑민이 된 MBC 아나운서들 

강제 축출의 시작은 2008년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의 교체부터였다. 그의 클로징 멘트는 그것을 따로 본다는 시청자가 있을 정도로 큰 화제를 모았다. 비판적인 그의 발언을 이명박 정부가 불편해한다는 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경영진은 기자들의 제작 거부사태까지 불러일으키며 신경민 앵커의 하차를 강행했다. 이후 MBC 경영진은 일선 PD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김미화·윤도현 등을 프로그램에서 내쫓았다.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이 쌓이고 쌓여 2012년 방송의 독립을 요구하는 170일 파업의 도화선이 되었지만 결국 그 파업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17년 4월 오상진 아나운서가 MBC의 <라디오스타>에 출연했다. 그는 한때 MBC의 간판 아나운서였다. 뛰어난 외모와 매너로 MBC가 오랜만에 찾아낸 대형 아나운서였다. 그가 라디오 스타 말미에 흘린 눈물을, MC들은 퇴사 이후의 회한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사실은 정작 프리랜서가 돼서야 겨우 다시 설 수 있었던 MBC는 그와 더 깊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2006년 입사한 오상진 아나운서가 전성기로 향해 가던 때, 그가 맞닥뜨린 환경 변화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다는 것 정도였다. 그는 반듯한 외모만큼이나 바른 길을 가고자 했다. 대중적 인기를 핑계로 언론인의 양심에 복무하는 것을 저어하지 않았다. 2012년부터 MBC 화면에서 그가 사라졌다. 그는 2012년 170일간의 파업 자리에 있었다. 파업이 끝난 후에도 얼마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를 MBC에서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사표를 냈다.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서울 MBC에서만 800여명이 넘는 인원이 끝까지 참여한 파업이었다. 그 원동력에는 기꺼이 파업의 얼굴이 돼준 MBC 아나운서들이 있었다. 이들이 공정방송을 외치고, 유인물을 돌리고, 일일 호프를 열고, 집회의 사회를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대중들이 MBC 파업을 이해할 수 있었다. 따라서 파업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올라갈수록 이들에 대한 경영진의 증오도 함께 높아졌다. 170일 후, 이들에 대한 개별적 보복이 시작됐다.

마이크를 빼앗기고 영업직, 송출실로 

PD나 기자가 자기 전문성과 무관한 분야를 몇 년씩 전전하는 것도 큰 문제지만, 아나운서가 특정 시기에 마이크를 빼앗기는 것은 직무 특성상 훨씬 더 큰 타격이 된다. 아나운서는 마이크를 붙잡고 TV에 등장하는 시간만큼 실력이 유지되고, 시청자와의 유대감이 향상된다. 누구보다 이를 잘 아는 MBC 경영진은 공정방송을 외친 아나운서들로부터 집요하게 마이크를 빼앗았다. 뉴스 따로, 스포츠 따로, 심지어 라디오 뉴스 따로, 아나운서가 하는 모든 일에 계약직들을 뽑았다. PD들이 프로그램에 아나운서들을 캐스팅하겠다고 해도 아나운서실 간부들 선에서 번번이 묵살됐다.

멀쩡한 아나운서들이 멀뚱하게 하루를 보냈다. 경영진은 때가 되면 잡초를 뽑듯이 이들을 영업직으로, 송출실로, 심의실로 보냈다. 강재형·박경추·차미연·손정은 등은 그렇게 회사 여기저기를 전전했다. 굴욕감을 느낀 아나운서들은 연수를 떠나고 휴직을 했다. 결국 박혜진·최현정·김정근·문지애 등은 MBC를 떠났다. MBC를 대표하던 얼굴과 목소리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졌다.

화면에서 사라진 아나운서들이 바로 MBC의 자산이자 경쟁력이었다. 그들은 양심에 충실했고, 공정했으며, 뛰어난 직업인이기도 했다. MBC 아나운서실은 수십 년간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방송인을 길러내는 산실이었다. 현 경영진들은 이런 아나운서들의 삶과 터전을 송두리째 망가뜨렸다.

시청자들은 김재철·안광한·김장겸이 사실 누군지도 잘 몰랐고 관심도 없다. MBC의 경영진은 국민의 재산을 지키는 일종의 관리인이다. 그 본분을 잊고 그들은 MBC를 공공의 재산이 아닌 자기들이 만든 구멍가게처럼 운영했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청자가 사랑했던 아나운서, 앵커, MC, DJ들을 수없이 잘랐다. 그 방식은 노골적이었고, 저열했다.

2012년 파업 도중 한 아나운서가 동료들을 뒤로 하고 회사의 품에 안겼다. 궁지에 몰린 경영진은 반색했다. 그는 뉴스데스크 앵커로 복귀했다. 그가 자리를 지킨 지난 5년간 뉴스데스크의 신뢰도와 영향력은 역대 최저를 갈아치웠다. 시청률은 2%대로 추락했다. 역대 최장수 앵커 기록을 눈앞에 둔 그를 오늘도 뉴스데스크에서 목격한다. 손석희·박혜진·오상진·문지애의 이름이 지워진 자리를 채우고 있다. MBC 아나운서들이 성명서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2012년 파업 이후 11명의 아나운서가 제자리를 잃고 회사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으며, 11명의 아나운서가 회사를 떠났다고 한다. 

(7월 8일)

② 풍자와 웃음을 축출한 MBC 경영진들

MBC의 간판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 MBC제공
MBC에서 권력에 대한 비판이 사라지는 동안, 풍자와 해학도 사라졌다. MBC사장들은 명민한 예능인들을 모욕했다. 이들을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쫓아내고, PD들의 제작 자율성을 함께 무력화시켰다. 

<무한도전>과 <라디오스타>가 국민을 좌경화시킨다고 믿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을까. 거짓말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MBC 부사장이었다. 지난 10년간 MBC는 이런 이들에게 휘둘려 왔다. 

2014년 백종문 당시 미래전략본부장과 극우성향 인터넷신문의 모 국장은 최고급 한정식집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모 국장은 “(MBC) 예능이 국민을 좌파·좌경화하는 데 일등공신”이라면서 MBC <무한도전>, <라디오스타> 등을 문제 삼았다. 백종문 본부장은 “(예능PD와 작가가) 의도하고 있는 거지, 회사가 손을 못 대고 있는 것”이라며 평소 가지고 있던 저열한 인식을 드러냈다. MBC 경영진이 김태호 PD와 무한도전을 손보고 싶어한다는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예능 프로그램이 국민을 좌경화한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봅슬레이를 타고, 타지에서 고생하는 해외동포들을 위로하고, 군함도를 찾아 빼앗긴 역사를 알려주는 일이 좌파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라디오스타> MC들이 낄낄거리며 연예인들에게 돌직구를 던지면 시청자가 좌경화된다는 것일까? 놀랍게도 이 녹취록이 공개된 후 백종문 전 본부장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웃음을 불온시하는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건 권력에 대한 집착과 강박이었다. 

김미화, 윤도현, 그리고 최양락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연예인 블랙리스트 논란이 일었다. 코미디언 김미화가 첫 번째 표적이 되었다. MBC 라디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은 시사 프로그램의 대중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풍자와 해학이 있는 그의 방송은 큰 인기를 끌었고 동시간대 청취율 1위, 전체 프로그램 중 광고 판매율 2위를 기록했다. 8년여의 장수가 매우 당연했다. 하지만 당시 극우파들은 이 같은 객관적 성과지표에 아랑곳하지 않고 김미화를 흔들었다. 이들에겐 김미화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개인적 인연이 있었다는 게 더 중요했다. 결국 김재철 사장은 김미화를 끌어냈다. 

어느 날 김재철 사장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김미화에게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기는 게 어떠냐’는 협박성 제안을 했다. 라디오 PD들이 즉각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김재철 사장의 측근인 이우용 라디오본부장은 여러 방식을 동원하기 시작했고, 결국 2011년 4월 뜻을 이루었다. 김미화 퇴출 소식에 하루 8000만원짜리 광고가 빠져나가기도 했다. PD들은 당시 DJ였던 김흥국의 경우와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흥국은 당시 한나라당의 선거를 도왔던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MBC는 김흥국도 강제 하차시킨다. 이런 억지스런 과정을 거쳐 가수 윤도현, 배우 김여진도 MBC 라디오에서 추방되었다. 

그렇게 칼춤을 추던 김재철 사장이 2013년 5월 MBC를 떠났다. 김 전 사장은 그즈음 법인카드 불법유용, 무용가와의 스캔들 의혹, 무엇보다 최고의 방송사를 최악으로 만듦으로써 전국적인 인사가 되었다. 당시 최고의 라디오 풍자 프로그램으로 손꼽히던 <최양락의 재밌는 라디오>가 그의 퇴장을 다루었다. 김재철 전 사장이 떠나는 날 ‘MB님과 함께하는 대충 노래교실’ 코너에서 최양락과 배칠수는 ‘사장님이 나갔어요’와 ‘김 사장님’을 불렀다. 경영진은 격노했다. <나는 가수다>의 심사위원이기도 했던 베테랑 PD는 회사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이유로 3개월 정직의 중징계를 받았고, 작가는 퇴출당했다. 이어진 소송에서 1심과 2심, 그리고 대법원까지 징계 이유가 없다며 무효를 결정했다. 인사위원장으로 이 징계를 주도한 안광한 부사장은 소송 기간 중 사장이 되었다.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는 안광한 사장을 꼽는 과정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정치풍자가 거세된 프로그램에서 홀로 분투하던 최양락은 지난해 6월 “다음주 월요일 8시30분에 만날게요, 웃는 밤 되세요”라는 주말 클로징 멘트가 무색하게, 그 월요일에 퇴출을 통보받았다. 14년 동안 진행하던 프로그램을 떠나면서 그는 끝인사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예능 조연출이었던 입사 3년차 권성민 PD가 세월호 보도와 관련해 MBC가 너무나 부끄러웠다는 자기반성을 인터넷에 올렸다. 회사는 6개월 정직과 함께 수원에 있는 경인지사로의 전보를 명령했다. 법원은 이 두 가지 조치 모두를 무효로 판결했다. 그동안 권 PD는 수원까지의 출퇴근시간을 이용해 예능PD의 애환을 만화로 그렸고, 주변 방송 관계자들의 큰 공감을 얻었다. 그를 미워하던 경영진은 만화의 내용 중 일부가 회사를 비방한다며 또다시 무효가 될 해고를 감행했다. 

MBC를 점령한 이들은 자리 보전과 승진의 욕망 때문에 공감능력이 사라진 사람들이었다. 풍자와 해학이 그들이 모시는 권력자를 불편하게 만들 것 같으면 곧바로 손을 들었다. 일부 극우파들의 생각이 그들의 잣대였고, 그 앞에서 총기어린 예능인들은 검열, 축출, 불법징계의 대상에 불과했다. 2017년 6월 참다못한 47명의 예능PD들이 실명으로 그 실상을 적나라하게 밝힌 성명서를 발표했다. 

“검열하는 거 진짜 웃긴다. 아무리 실력 있는 출연자도 사장이 싫어하면 못 쓴다. 노래 한 곡, 자막 한 줄까지 간섭하는 거 보면 지지리도 할 일이 없는 게 분명하다.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아무리 시청률을 잘 뽑아도 멀쩡히 하던 프로그램 뺏긴다. 생각하지 말고, 알아서 검열하고, PD가 아니라 노예가 되라 한다…. 웃기기 정말 힘들다. 웃기는 짓은 회사가 다 한다. 가장 웃기는 건 이 모든 일에 앞장섰던 김장겸이 아직도 사장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그만 웃기고 회사를 떠나라. 웃기는 건 우리 예능PD들의 몫이다.”

‘탄압’에도 불구하고, 날렵하고 유쾌한 풍자의 결을 지키고 있는 이들이 아직 MBC에 남아있다. 부도덕한 경영진들이 권력에 만취되어 있을 때, 편집실과 촬영장에서 온몸으로 창작하는 그들이 MBC다.
(7월 16일)

③ : ‘드라마 왕국’을 폐허로 만든 MBC 사장들

MBC 노조원들이 7월 13일 서울 상암MBC 1층에서 김장겸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MBC는 사장 물러나라고 소리쳤다는 이유로 김민식 PD(가운데)를 징계하기 위해 인사위원회를 열었다. / 김영민 기자
요즘 잘 나가는 작가 유시민이 수배 등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내던 1980년대. 그가 MBC에서 드라마 작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8부작 미니시리즈를 필명으로 각색했던 그는 1989년에 유시민 본인의 이름으로 <신(新)용비어천가>라는 드라마의 대본을 썼다. 이 작품의 배경은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등장과 당시 언론사 내부의 상황이었다. 당시 신군부는 정직한 언론인들을 대량 해고했고, 언론사는 권력을 잡은 권력자를 찬양하기 위해 ‘용비어천가’ 프로그램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권력에 취한 인간 군상들의 욕망과 비겁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MBC와 꼭 닮은 설정이다. 

민주화가 된 이후라고 해도, 1989년이면 군부 출신인 노태우 대통령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도 MBC에서는 이렇게 현실을 비판하는 실험적인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다. 1991년에는 해방 전후사와 6·25전쟁에 대해 획기적인 관점을 제시한 기념비적인 작품 <여명의 눈동자>가 제작되었다. ‘드라마 왕국 MBC’가 회자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부터다. 무엇보다 MBC에서는 연출자와 작가가 자유롭게 주제의식을 표현할 수 있었고, 때문에 좋은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일일이 거명할 수도 없는 숱한 화제작들이 MBC를 통해 방영되었다. 

드라마 왕국 MBC, 이제 그런 MBC는 없다. MBC 드라마 현장은 폐허가 되었다. ‘드라마 왕국 MBC’ 덕에 월급 잘 받고, 어디 가서 MBC 직원이라고 떵떵거리던 이들에 의해 MBC 드라마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망가진 뉴스에 희생된 드라마 PD들 

MBC 편성표를 보면 8시 MBC 뉴스데스크를 각각의 일일드라마 두 편이 둘러싸고 있는 기형적인 모습이다. 지상파, 종편, 그 어디에도 이런 편성은 없다. 왜 이럴까? 김재철 사장 시절부터 뉴스데스크의 시청률과 신뢰도, 영향력은 하염없이 추락했다. 경영진은 시청률이라도 잡을 요량으로 중독성 있는 일일드라마를 뉴스 앞에 한 편, 뉴스 뒤에 또 한 편 편성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이른바 드라마 인접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자체 경쟁력이 없는 뉴스가 드라마 덕에 살아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망한 뉴스의 여파는 드라마로 옮겨갔다. 

비슷한 성격의 일일 드라마 두 편을 연속 편성하니 쓸 만한 작가나 배우를 캐스팅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광고주가 그 나물에 그 밥인 내용과 인물들에게 매력이나 느낄 수 있겠는가? 드라마본부 관계자들이 경영진에게 이런 상황을 계속 경고했지만 그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광고는 빠지고 일일드라마 적자가 한 해 50억∼60억원씩 쌓여갔다. 적자의 책임은 고스란히 드라마 PD들에게 전가되었다. 일일드라마들의 적자가 부담이 되니 드라마 수뇌부들은 새로운 실험과 시도를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런 악순환 속에 드라마 PD들의 불만은 쌓여갔다. 

안광한 전 사장은 사실상 이 일의 책임자라 할 수 있다. 그가 부사장으로 있던 2013년에 이 희한한 편성은 시작되었고, 그가 사장으로 있던 2014년부터 드라마본부에서는 끊임없이 이런 무리한 편성을 그만두라며 아우성을 쳤다. 그는 모든 요구를 외면했다. PD 출신이라고 하지만, 연출자로서의 커리어는 거의 없는 안 전 사장은 편성 쪽에서 주로 일을 했다. 그는 과거 리니어(linear)한 편성만 고집하는 구시대적 인물이었다. 그나마 핵심 시간대에 시청률이 부진한 뉴스를 일일드라마 두 편으로 근근하게 버티는 상황에 안주했다. 그는 자신의 실책을 감추기 위해 드라마 부문을 옥죄면서 성과를 요구했다. 그는 MBC 드라마를 출세의 도구로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안광한 사장은 2014년 3월 임기를 시작했다. 신인급 배우 정우식은 2014년 4월부터 MBC 드라마 <개과천선>을 시작으로 <야경꾼일지> <오만과 편견> <빛나거나 미치거나> <딱 너같은 딸> <화려한 유혹> <옥중화>까지 내리 7편에 출연했다. 파격적인 발탁이었다. 그의 캐스팅은 드라마본부장이 직접 신경을 썼는데 신인배우 100여명이 오디션을 거친 역할에 그가 ‘꽂힌’ 작품도 있을 정도였다. 때로 신인 치고 너무 높은 출연료를 불러 제작진이 난색을 보일 때는 “출연료를 올려서라도 반드시 캐스팅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드라마본부장은 PD들에게 ‘안광한 사장의 부탁’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PD들은 참담했다. 배우 정우식이 바로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로 알려진 정윤회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안광한 사장과 정윤회가 시내 모처에서 만났다는 증언이 나왔다. 그는 사실이 아니라고 방방 뛰었지만 정윤회는 만난 사실을 인정해버렸다. 

사장 김장겸과 PD 김민식 

사장과 본부장이 정윤회의 아들을 챙기는 동안 MBC의 유능한 드라마 PD들은 속속 빠져나갔다. 지난 2년간 10여명의 드라마 PD들이 회사를 떠났다. 떠난 PD들의 작품을 봐도 <선덕여왕> <해를 품은 달> <개와 늑대의 시간> <파스타> 등 최근 10년간 MBC를 빛냈던 대표 드라마들이다. 케이블과 종편, 연예기획사까지 유능한 PD를 찾는 데 사활을 걸었는데, 거꾸로 MBC 경영진은 PD들을 무시하고 작품에 간섭했다. 안 떠날 이유가 없었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있던 드라마본부장은 4년 넘게 자리를 지켰고, 지방사 사장으로 영전했다. 

최근 “김장겸 사장은 물러나라”는 MBC 구성원들의 투쟁에서 가장 앞장서고 있는 김민식 PD. 그는 드라마 PD였다. 시트콤과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일가견이 있는 그를 경영진은 조합 집행부를 했다는 이유로 철저히 탄압했다. 특히 오랜 기간 현 김장겸 사장이 김민식 PD를 미워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김 PD가 일일 드라마를 살리겠다며 톱 배우를 섭외하고 준비에 들어갔지만 김장겸 당시 보도국장이 강력하게 막아 무산되었다고 한다. 김 PD는 굴하지 않고 기획을 계속해 나갔는데, 작가와 함께 기획하고 작업에 들어갔던 작품들 중에는 법정 드라마와 웹툰 원작의 청춘 드라마가 있었다. 하나는 나중에 SBS에서 방영되어 2013년 올해의 드라마가 된 <너의 목소리가 들려>였고, 또 하나는 윤태호 원작의 <미생>이었다. 김 PD는 2015년 말 결국 드라마본부에서 완전히 내쫓겨 송출실로 강제 발령이 났다. 

좋은 드라마 한 편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때로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한국 TV 시청자여서 행복한 이유는 양질의 드라마를 공짜로 볼 수 있다는 데 있었다. 그런 행복을 MBC 사장들은 시청자로부터 빼앗아갔다. 권력자의 놀이터가 된 MBC 드라마를 시청자들에게 돌려줘야 할 때가 되었다. MBC에서 김장겸 사장이 나가고 김민식 PD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날을 간절히 기대하는 이유다.
(7월 22일)

④: 쓰러지고 찢어져도 포기할 수 없는 <PD수첩>

7월 25일 제작 중단에 돌입한 MBC <PD수첩〉PD 10인이 서울 상암MBC 사옥 로비에서 피켓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 PD저널 제공</em>
매주 토요일 오후,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어김없이 <그것이 알고 싶다>가 올라온다. ‘오늘은 또 어떤 숨겨진 진실을 알려줄까.’ 대중들은 큰 기대를 한다. 별일이 없다면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영되는 시간 동안 실시간 검색어 순위 톱은 방송의 소재일 것이다. 

최선을 다해 진실에 접근하는 모습을 본 시청자는 거대권력에 의해 감추어진 진실을 폭로하기 위해,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언론사를 찾는다. 황우석의 사기행각을 목격한 그의 제자, 군 비리를 외면할 수 없었던 군인, 검사의 스폰서를 자처했던 사업가, 국무총리실로부터 불법사찰을 받은 평범한 민간인은 용기를 내서 <PD수첩>을 찾았다.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PD들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PD수첩>과 <그것이 알고 싶다>. 이 두 탐사 프로그램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지나는 동안 완벽한 대비를 보였다. <PD수첩>을 점령한 MBC의 경영진들이 PD들에게 세월호 유가족이 우는 장면을 지우라고 명령하는 사이 <그것이…>는 세월호 구조과정에서 정부와 청와대의 결정적인 실책을 찾아냈다. 물대포로 쓰러진 ‘백남기 농민사건’을 <PD수첩> 간부들이 불허하는 사이 <그것이…>의 PD들은 실제 물대포의 위력을 재연해냈다. 시장(market)의 평가는 사실상 끝이 났다. 시민들의 소중한 제보는 더 이상 MBC로, <PD수첩>으로 향하지 않는다. 

주술사가 된 MBC 간부들 

<PD수첩>을 망가뜨리려는 MBC 간부진들은 주술사(呪術師)가 되기를 자처했다. 그들은 힘겹게 아이템을 발제한 PD들에게 “시청률이 나오지 않을 거 같다, 늙은이들이 병원에서 나가는 걸 누가 보겠느냐”(진주의료원 폐업 관련), “한 회사의 구조조정에 대해 아무도 관심이 없을 거 같다”(신입사원까지 희망퇴직 강요한 두산그룹 논란),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녹조가 없을 거 같다”(4대강 녹조사태)와 같은 이유를 들어 아이템들을 불허했다. 그들의 특별한 능력은 미래를 볼 수 있어 ‘…할 거 같다’며 만들지도 않은 방송의 결과를 예언했고, 그것을 근거로 아이템을 막았다. 지난 3년, PD들이 구체적 사례를 발표한 것만 17건. 그들의 관심법과 주문(呪文) 앞에 ‘국민의 알권리’, ‘인권 존중’, ‘사회적 약자 보호’와 같은 방송강령과 방송법이 지향하는 가치는 사라졌다. 신(?)의 계시를 받는 주술사들과 토론은 불가능했다. 그들은 언론인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PD수첩>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대가로 주술사들은 승승장구했다. PD들을 강제로 내쫓고 수많은 아이템을 검열하던 윤길용 전 국장은 울산문화방송 사장을 거쳐 MBC NET 사장을 하고 있다. PD수첩 작가 4명을 예고도 없이 강제로 해고해서 방송작가 전체의 공분을 사고, 6개월간의 불방사태를 초래한 김현종 전 국장은 편성제작본부장을 거쳐 목포문화방송 사장으로, 세월호 아이템을 막았던 송재우 전 국장은 춘천문화방송 사장이 되었다. 이런 이들을 중용한 김재철·안광한 전 사장과 김장겸 사장은 <PD수첩>을 무력화시켜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촛불혁명이 한창이었던 지난해 12월 국제개발협력기구(OECD)의 노동조합 자문위원회는 ‘노동기본권과 OECD 회원 자격-한국’을 안건으로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징역을 선고받을 정도로 한국의 노동기본권이 심각하게 후퇴”, “OECD에 가입할 때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도록 노사관계 법규를 개정하겠다던 약속은 20년이 지나도록 지켜지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결의안’. 보통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유엔이 발표하는 결의안. 이 이름이 상징하듯 노동기본권 측면에서 OECD 회원자격 자체가 의심된다는 강력한 비판이었다. 유엔 산하 국제노동기구(ILO)도 대표까지 나서서 공개적으로 한상균 위원장의 구속수감과 한국 노동기본권의 악화를 비판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민노총 위원장의 구속과 노동기본권의 후퇴는 한 패키지로 한국의 국제적 위상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저널리스트가 외면할 수 있는가? 

PD수첩과 김장겸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PD수첩 PD들은 이런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국내 일각에서는 민주노총 위원장의 구속수감과 실형 선고를 당연하게 여기지만 노동계와 국제기구들의 시각은 달랐기 때문에 신중하게 낸 아이템은 ‘한상균을 둘러싼 두 가지 시선’이었다. 

김장겸 사장이 시사제작국장으로 임명한 조창호 국장은 이 기획안을 ‘한상균 구명운동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둔갑시키는 신공(神功)을 선보였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 소속 조합원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이해충돌’이 발생한다는 이유가 덧붙여졌다. 이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노조를 탈퇴하라는 반헌법적인 부당노동행위였다. 김장겸 사장은 노동기본권 아이템을 냈더니 노동기본권을 침해해 아이템을 막는 기술을 선보였다. 

이해충돌을 끌어다 쓴 모양새도 우스웠다. 정작 박근혜 정부 고위공직자들의 이해충돌 문제는 제대로 보도조차 하지 않던 이들이다. 회사의 논리대로라면 언론노조 소속인 KBSSBS 등 수많은 기자와 PD들은 노동문제를 다루지 못한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자랑스럽게 들고 나왔다. PD들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10명의 PD들은 징계를 각오하고 ‘제작 거부’ 투쟁에 나섰고, PD수첩 팀장은 보직 사퇴를 했다. 

2017년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되어 큰 이슈가 되었지만 김장겸의 MBC는 결코 보도하지 않는다. 그리고 2008년 일본이나 대만도 먹지 않는 30개월이 넘은 늙은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방송했던 PD수첩을 ‘국민을 속인 방송’이라고 자해한다. 자해는 극우집단에게 보여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회사의 자해, 예전과 다르다는 시청자들의 싸늘한 시선, 내쫓긴 동료들과 외면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PD수첩의 젊은 PD들은 고군분투했다. 쓰러지고 해진 깃발이라도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그들이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일어섰다. PD수첩이라는 깃발이 다시 펄럭이고 있다.
(7월 29일)

⑤ 김장겸의 MBC가 일베의 환호를 받은 까닭

지난 1월 12일 MBC 뉴스데스크는 안광한 전 MBC 사장과 정윤회의 회동이 허위보도라며 강력대응하겠다는 회사 방침을 뉴스로 전했지만(사진), 종편과 만난 정윤회씨가 안 사장과 만났다고 밝히면서 이 뉴스는 오보가 되었다 / MBC 방송화면 캡쳐
김장겸 현 MBC 사장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치부장,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으로 승승장구했다. 근 7~8년 MBC의 보도부문은 김장겸 체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기간 MBC 뉴스의 신뢰도와 영향력은 급전직하했다. 김장겸 체제의 뉴스데스크는 특히 동물 뉴스에 집착했다. 2013년 김장겸 보도국장이 취임한 처음 6개월 동안 99건의 동물 뉴스가 뉴스데스크를 장식했는데, 이는 그 전 6개월에 비해 4배 늘어난 양이었다. 주요 시간대 공영방송의 대표 뉴스가 “TV 동물농장”과 경쟁하고 있느냐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김장겸 보도국장 시절 ‘정윤회 문건’,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 등 권력에 대한 숱한 의혹이 있었지만 ‘고래보다 큰 대왕오징어’ 뉴스가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편집이었다. ‘알통 굵기가 정치적 성향을 좌우한다’는 알통 뉴스, ‘비오는 날에는 소시지 빵이 잘 팔린다’는 소시지빵 뉴스 등은 MBC 뉴스의 실상을 온 국민에게 알렸다. 

■동물 뉴스가 주요 뉴스로

사실 정상적인 인사였다면 김장겸 부장이 보도국장이 될 수 없었다. 2012년 김장겸 정치부장은 대통령 선거 기간 가장 악의적인 왜곡 보도로 꼽힌 안철수 논문표절 뉴스의 실질적인 책임자였다. 표절했다는 논문의 당사자도 사실을 부인하는 와중에 안철수 후보에게는 방송 10분 전에 반론을 요청했다. 이 희대의 보도는 선거방송심의위로부터 법정제재인 ‘경고’를 받았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결여했기에 당연한 중징계였다. 하지만 김장겸 부장은 보도국장, 해당 기자는 워싱턴 특파원이 되었다. 

2013년 김장겸 보도국장 취임 직후 ‘문재인 의원이 변호사를 겸직’하고 있다는 뉴스가 ‘단독’이라는 이름으로 나갔다. 역시 악의적인 왜곡이었다. 전화 한 통화면 겸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굳이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정제재인 ‘관계자 징계 및 경고’를 받았다. 김장겸 부장이 국장을 거치는 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문재인과 안철수를 비방하는 대형 오보를 낸 것이다. 그는 2015년 드디어 보도본부장이 되었다. 

2016년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터졌다. 김장겸 보도본부장은 언론과 검찰, 그리고 재판부까지 그 실체를 인정한 최순실의 태블릿PC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뉴스들을 공영방송에서 보도했다. 

일간베스트저장소. 줄여서 일베. 일베는 디시인사이드에서 출발한 유머 위주의 커뮤니티였다. 그들은 극단적인 병맛(병신 같은 맛)을 추구한 디시폐인들이었다. 그들은 김대중, 노무현, 전라도, 광주항쟁 등을 비하하며 극우적인 혐오성을 띠었는데, 그렇게 해야 병맛이 더 잘 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베의 혐오성은 범죄적 수준이어서 그들이 쓰는 상징이 실수로라도 방송을 타게 되면 제작진과 방송사가 사과를 해야 할 지경이다. 이런 일베들의 병맛과 극우적인 성향을 만족시켜주는 유일한 제도권 뉴스가 바로 MBC 뉴스였다. 김장겸 사장의 사퇴 목소리가 MBC 내외에서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일베들은 김장겸의 MBC를 비호하고 나섰다. 

3월 22일자 뉴스데스크에서는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MBC 편향보도를 비판한 것을 비난하는 뉴스를 내보내기도 했다. / MBC 방송화면 캡쳐

■왜곡 뉴스는 영전 뉴스로 

변희재는 공공연히 MBC 뉴스를 치켜세웠다. 방문진의 고영주 이사장은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소신을 가진 태극기집회의 단골손님이었는데, 그는 탄핵과정에서 MBC 뉴스가 가장 공정하다고 말했다. 고영주 이사장은 2017년 2월 김장겸 보도본부장을 드디어 MBC 사장으로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기 한 달 전이었다. 

배현진 앵커에게 양치질하는 동안 수도꼭지는 잠그라고 충고를 했던 양윤경 기자가 하루아침에 비제작부서로 쫓겨난 해프닝은 MBC 뉴스룸의 상황을 상징했다. 경영진의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와 탄압도 심해졌다. 김장겸 체제에서 품위를 지키려는 ‘불순분자’들은 부지런히 내쫓겼고, 그 빈 자리를 ‘출신지역을 보고 뽑는다’는 경력기자들로 채웠다.

그러는 사이 뉴스는 사유화되었다. 지난 1월 TV조선은 당시 안광한 MBC 사장이 최순실씨의 전 남편이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서였던 정윤회씨와 회동했다는 의혹을 단독보도했다. 당시 안광한 사장은 정윤회씨의 아들인 배우 정우식을 MBC 드라마 7편에 조연으로 출연시키라고 해 ‘MBC 판 정유라 사건’이라는 논란에 직면해 있었다. MBC 뉴스데스크는 안광한 사장의 주장을 옹호하고 나섰다. 해당 뉴스는 “근거 없는 의혹을 사실인 듯 단정지어 보도했습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뉴스에 법적 대응을 하기로 했습니다”로 시작했다. 정윤회와 만났다는 진위에 대해서는 전혀 취재, 검증하지 않은 채 오직 안광한 사장의 거짓말만 믿고 뉴스를 만든 것이다. 결국 이 뉴스는 희대의 오보가 되었는데, 정윤회가 안광한 사장 만난 사실을 인정해버렸기 때문이다. 

이 보도의 실질적인 책임자인 보도국장은 본부장으로 영전했다. 리포트를 한 경력 출신 기자는 문화부장이 되었고, 이 기사를 리드한 배현진은 최장수 앵커 등극을 앞두고 있다. 김장겸 체제에서는 오보를 두려워하지 않고 충성해야 했다. 연수·특파원·앵커·부장·국장까지 동원할 수 있는 자리는 넘쳤고, 이 자리들을 이용해 충성하는 사람들을 채웠다. 사실 김장겸 사장 자신을 비롯해 이 체제의 복무자들 가운데 기자·저널리스트로서 높게 평가받던 사람들은 드물었다. 외부의 부적절한 힘이 없었다면 존재감이 없던 김장겸 기자가 사장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개인의 사적 이익을 위해 방송을 사유화하다시피 한 김장겸 사장과 그의 친위체제가 공영방송 MBC에서 계속 군림할 수 있을까? 현재 파업 이후 입사한 20여명의 경력기자가 불이익을 감수하며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균열은 일어나고 있다. 결국 상식이 이길 것이다.

(8월 6일)

⑥ 블랙리스트 …MBC장악 마지막 퍼즐

관리·감독 기능이 있는 공적 기구의 기능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파업과 해고, 징계가 계속되는 가운데 ‘MBC 사태는 노사 양측 간의 갈등일 뿐이고, 언론자유와는 관계가 없다’는 식으로 회피했다.

지난 8일 밝혀진 MBC판 블랙리스트는 충격적이었다. 문건에 의하면 65명의 카메라기자들의 성향을 충성도에 따라 4등급으로 나누고 개인 한 명 한 명을 ‘충성’, ‘회유 가능’, ‘회색분자’, ‘강성이고 격리가 필요한 전복세력’이라는 표현으로 분류했다. 이 문건에 등장한 카메라기자들은 “우리가 등급으로 나누는 고깃덩어리였느냐”며 절규했다. MBC 블랙리스트 사건은 그동안 MBC 사측이 언론인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문건의 사실 여부는 검찰의 수사로 밝혀질 문제지만, 사실 블랙리스트 존재에 대해서는 소문이 파다했다. MBC 구성원들은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경영진의 폭압적인 관리체계를 생각하면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MBC 사측은 김재철·안광한·김장겸 사장을 거치는 동안 10명을 해고했고, 110명을 징계했으며, 157명을 ‘유배’시키는 등 꼼꼼한 폭력을 자행했다. 그들은 각종 승진·전출·인사고과를 통해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성원들에게 모욕을 주었는데, 이 모든 행위들은 정리된 블랙리스트가 없다면 불가능할 일이었다. 폭로된 블랙리스트는 일종의 마지막 퍼즐 같았다.

MBC 경영진은 지금까지 90여건에 달하는 소송에서 법원으로부터 각종 징계와 인사조치들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지만 멈추지 않고 부당노동행위를 계속했다. 독재시대에도 찾아볼 수 없었던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들은 ‘반바지는 입지 말라’는 복장의무, 업무 위치까지도 강제 보고하라는 인사관리를 도입했고, 드디어 블랙리스트까지 폭로되었다. 언론사 MBC가 최악의 노동탄압 현장이 된 것이다. 10년 전까지 가장 공신력 있는 언론사였던 MBC가 어떻게 블랙리스트로 인간을 분류하고, 근거도 없이 해고를 하는 인권 유린의 현장이 될 수 있었을까.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영상카메라기자들이 8월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MBC가 카메라기자들의 성향을 분류해 문건을 만든 것에 대해 검찰의 철저한 수사와 관계자 처벌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MBC 사태의 공범자들

권력자들은 MBC에서 벌어진 희대의 언론자유 침해사태에 대해 부인으로 일관했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 “언론의 자유는 침해할 수도 없고, 침해할 이유도 없습니다”라는 식의 답변을 반복했다. 그들은 MBC에서 멀쩡한 사장이 쫓겨나가고, 최고의 자리에 있던 김미화·신경민 등 진행자들이 마이크를 빼앗겼으며, 4대강을 비롯한 정부 정책을 검증하고 비판하는 프로그램이 불방되는 객관적 사실을 무시했고, 그런 태도로 사실상의 가해자가 되었다. 권력자들에게 질문하는 언론은 없었고, 그들의 일방적 진술만 국민들에게 전달되었다.

관리·감독 기능이 있는 공적 기구의 기능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파업과 해고, 징계가 계속되는 가운데 “MBC 사태는 노사 양측 간의 갈등일 뿐이고, 언론자유와는 관계가 없다”는 식으로 회피했다. “최승호 PD, 박성제 기자 등을 근거 없이 해고했다”고 스스로 발언한 ‘백종문(현재 MBC 부사장) 녹취록’이 세상에 공개되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판사 출신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은 눈치를 보는 데 급급했다. “(2심까지 해고 무효가 되었지만)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 MBC 노사문제에 개입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논의조차 거부했다. MBC의 이사회 격인 방송문화진흥회와 새누리당 국회의원들도 여기에 가세했는데, 방송사 임원이 법인카드를 써가면서 가진 회동에서의 발언을 “사적인 대화일 뿐”이라며 역시 논의를 거부했다. 언론인을 근거 없이 해고했다는데, 그 사건이 언론의 자유와는 무관하다는 그들의 뻔뻔한 논리 앞에 해고자들은 무력했고 MBC 경영진은 미소를 지었다.

또 다른 공범자들의 주장은 “보수정권만 그런 게 아니라 진보정권 때도 그랬다”는 것이었다. 찬찬히 따져보면 역시 거짓말이다. 비교적 MBC 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나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도 여기에 가담했다. 정작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공영방송 종사자들의 언론자유를 침해했는지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다. 국제기관들의 언론자유지수가 보수정부 9년 사이 두 배 넘게 악화되었다는 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MBC는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아끼던 황우석 박사의 불법 난자 매매와 논문 부정행위를 밝혔고, 참여정부의 한·미 FTA, 부동산 정책, 고위공직자의 재산 등에 대해서 치밀하게 검증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공범자들은 언론인에게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들의 기술을 이렇게 정의했다. “MBC에서 언론 탄압이 일어난 적이 없고, 일어났다 해도 그것은 노사관계일 뿐이며, 이런 갈등은 진보정권 시절에도 있었다”는 거대한 거짓말. 지금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합창을 하고 있는 궤변은 이렇게 완성이 되었다.

거래는 계속된다

한때 MBC의 위기를 극복할 기회가 있었다. 2012년 당시 MBC의 170일 파업은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무한도전>의 불방이 6개월간 계속되면서 집권당인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 후보에게도 큰 부담이 되었다. 박근혜 후보는 “파업이 해고사태에까지 이르게 돼 안타깝다”는 공개적인 메시지를 냈고, 파업을 하는 노동조합 집행부와 ‘MBC 정상화’에 대해 합의를 했다. 이 합의를 근거로 노동조합은 대통령 선거를 5개월 앞두고 긴 파업을 풀었다. 당시 MBC 김재철 사장과 임원들은 멘붕에 빠졌다. 정상화란 그들의 퇴진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경영진이 그냥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일단 MBC 뉴스는 박근혜 후보와 박빙으로 경쟁하던 안철수와 문재인에 대한 대형 오보를 만들었다. 안철수의 박사 논문 표절, 노무현 NLL 녹취록 보도 등이었다. 불공정보도가 횡행했다. 실질적 책임자는 당시 김장겸 정치부장, 현 MBC 사장이었다.

결국 ‘MBC 정상화’ 약속은 사라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생했고 불공정보도의 과실은 달콤했다. 선거 당시 임원이었던 안광한·권재홍·김장겸 등은 이후 사장, 부사장, 보도본부장 등으로 영전했다. 경영진은 무서울 게 없었다. 자기들을 한때 위기로 몰아넣었던 강력한 노동조합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월급사장이어서 임기만 마치면 자연인이 되는 경영진들이 후배들에게 해고와 징계의 칼날을 마구 휘두르고,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심지어 암 투병 중인 해고자를 외면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근혜 권력은 탄핵되었지만 아직도 그 일부가 잔존해 있는 상황이다. 수많은 MBC 구성원들이 김장겸 퇴진을 외치며 제작 거부에 나섰다. 이런 와중에도 MBC 뉴스 책임자들은 ‘최저임금 인상, 탈원전정책, 고소득자 증세 등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무조건 까라’는 오더를 경제부 기자들에게 남발했고, 자유한국당은 블랙리스트 사태가 문재인 정부의 언론 장악 음모라는 창의적(?)인 발상의 역정을 내고 있다. ‘공범자들’ 사이의 거래는 계속되고 있다.

*참고문헌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스탠리 코언 지음, 조효제 옮김, 창비. 

(8월 13일)

⑦ 블랙리스트 파문, MBC를 집어삼키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카메라기자 성향분석표’, ‘요주의인물 성향’이라는 블랙리스트 내부작성 문서를 공개했다. MBC 권혁용 영상카메라기자회장이 65명에 대해 4개 등급으로 분류하여 성향을 분석, 주시하며 불이익을 준 것에 대한 입수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얼마 전 비제작부서로 쫓겨난 MBC 기자들은 일제히 ‘새로운 친구를 만나보세요’라는 제목의 메시지를 받았다. 새로운 친구로 등장한 주인공들은 황당하게도 MBC 김장겸 사장, 최기화 기획본부장, 오정환 보도본부장 등 MBC 내 주요 경영진들이었다. 현재 MBC 분위기에서 이들이 갑자기 친구 신청을 할 리가 만무한 상황.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가장 그럴듯한 이유는 이들이 모두 휴대전화를 일제히 교체했다는 것. 교체하면서 앱을 새로 깔면 이들의 전화번호가 저장된 휴대전화로 문제의 메시지가 뜬다고 한다. 만약 이 추측이 정확하다면 주요 경영진들은 같은 날 손 붙잡고 함께 휴대전화를 바꿨다는 것이데, 경영진 주변 행정부서에서도 비슷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들이 6개월 전에 새로 받은 휴대전화를 갑자기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이 이상한 현상이 매일 폭로되고 있는 MBC의 불법행위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으로 100여명을 불법 징계하고 200여명을 유배 보낸 MBC 경영진에 대한 사법처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그런 와중에 최근에는 MBC에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다는 강력한 증거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블랙리스트 종용한 방송문화진흥회

블랙리스트. 이 무시무시한 단어에서 블랙은 사악하다는 뜻이다. 사악한 사람들의 리스트라는 것인데, 어원에 의하면 절대왕조 시절 영국의 한 왕이 처음으로 썼다고 한다. 블랙리스트건 살생부건 절대권력자들이 자신의 정적을 처리하기 위해 고안한 전근대적인 폭력이고 당연히 현행 헌법이나 법률에서는 금지하는 불법행위다. 그런 단어가 지금 21세기 대명천지 공영방송 MBC에서 횡행하고 있다. 

MBC 카메라기자들 65명에 대한 성향을 등급으로 표시하고 경영진에 대한 충성도, 노동조합에 대한 태도 등을 꼼꼼하게 기록한 블랙리스트가 공개되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MBC의 이사회격인 방송문화진흥회의 고영주 이사장과 이사들의 녹취록이 공개되었다. 그는 올해 2월 MBC 사장을 뽑는 자리에서 ‘언론노조 소속의 구성원들을 제작과 보도에서 배제하라’고 시종일관 요구했다. 녹취록을 보면 그와 김광동·유의선 이사는 언론노조 소속의 기자와 PD들에 대해 ‘올바른 프로그램을 만들 리 없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고, 언론노조 소속 구성원 전체를 매도하고 있다. 사실상의 블랙리스트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방문진 이사들 역시 사법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블랙리스트는 리스트의 존재만으로는 증명될 수가 없다. 블랙리스트를 만들라는 부패한 권력의 지시, 지시를 충실하게 이행하는 중간관리자, 블랙리스트의 존재와 피해자를 방관, 혹은 방조하는 이해당사자들에 의해 완성이 된다. 이런 총체적인 시스템이 있어야 블랙리스트는 제대로 작동된다. 불행하게도 MBC에는 이런 시스템이 있었던 것 같다. 

MBC 노동조합은 2012년 유례가 없는 170일 파업을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파업의 목적이었던 공정방송에 대한 전망이 사라졌던 시점부터 경영진들의 탄압은 교묘해져갔고, 노동조합이 저항할 무기는 별로 없었다. MBC 구성원들의 저항은 유예되었고 중간간부들은 윗선의 명령이라며 과거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을 실행했다. 

표창원의 섭외가, 안철수의 인터뷰가 박근혜 탄핵촛불 촬영분이 다큐멘터리에서 사라지는 검열이 일상화되었지만 파열음 하나 나지 않았다. PD들이 캐스팅하고자 하는 아나운서의 출연이 이유 없이 불허되었지만 나서서 항의할 수 없었다. 세월호가, 4대강이, 노동문제가 PD수첩에서 다룰 수 없는 아이템이 되어갔지만 변변히 저항할 수 없었다. 저항하면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적히고, 그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 한마디로 내쫓긴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이미 주위에는 아나운서가 송출업무를, PD가 스케이트장 관리를, 기자가 드라마 홍보를 하는 비현실적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부당한 경영진 요구 실행한 중간관리자

그래도 경영진은 불안했다. 대부분의 내부 구성원이 언론노조 소속이었다. 쫓겨난 사람들을 대신하기 위해, 또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너 아니어도 프로그램, 뉴스 할 사람 많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채용과정에서 지역을 보기도 한다’는 경력사원을 부지런히 뽑았다. 신입사원 공채는 사실상 폐지했다. 그렇게 경영진은 블랙리스트가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MBC 경영진은 블랙리스트를 실질적으로 실행할 중간관리자들에게 관대했다. 지난 5년간 동료들이 해고와 징계와 유배생활을 전전할 때 ‘평범한’ 중간관리자들에게는 동료들보다 1000만원 이상 많은 연봉과 수당, 각종 선물과 해외연수, 그리고 승진이 주어졌다. 간부를 하려면 전향서가 필요했다. 부장 이상의 보직을 맡으면 발령 즉시 노동조합에서 자동 탈퇴하는 시스템이 있는데도 경영진은 굳이 보직을 맡은 이가 직접 작성한 노동조합 탈퇴서를 요구했고, 그 탈퇴서를 노동조합에 제출해야 했다. 강을 건너면서 다리를 불태우라는 의미였을까. 사실상의 부당노동행위임에도 누구 하나 노동조합에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중간관리자가 되면 경영진의 부당한 요구라도 실행하는 영혼 없는 관리자로 전락했다. 동료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들은 경영진의 부당한 오더 프로그램 요구에는 경영진 탓을 하면서 조직 보호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아이템 검열에도 저항하면 ‘유배당할 수 있고, 경력사원들이 대신 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니 받아들이라’는 부탁을 했는데, 부탁이 아니라 협박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부당한 징계와 해고가 계속되는데도 문제제기하는 중간간부는 아무도 없었다. 자기의 처지를 풍자한 웹툰을 개인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젊은 예능 PD를 해고해도, ‘기자·PD들을 동의 없이 경인지사 등 업무와 관계없는 곳으로 보내지 말라’는 법원의 판결을 계속 무시해도 국·부장들은 외면했다. 사장들은 유난히 확대간부회의를 좋아했고, 때때로 함께 외유(外遊)를 즐겼다. 노동조합의 피케팅과 소송이 있었을 뿐 회사 내부 시스템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MBC 수뇌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행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오죽하면 지난 2월, 대통령 탄핵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을 때조차도 그들은 MBC 사장을 뽑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언론노조 구성원, 올바른 가치관이 없는 사람은 앵커·기자·PD에서 배제’하라는 아무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만용은 꼼짝없이 증거가 되어 그들을 심판하게 되었다. MBC 정상화를 앞당길 수도 있는 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 앞에 나는 전혀 즐겁지 않다. MBC가 범죄의 현장이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처참하다. 

(8월 21일)

⑧ ‘공범자’들의 놀이터 된 MBC 시사교양국


영화 <공범자들>에서 가장 인상적인 주인공 중 한 사람은 올해 2월까지 MBC사장을 지낸 안광한씨다. 김장겸 현 사장이 MBC의 보도부문을 일베가 만족하는 수준으로 전락시켰다면, 안광한 전 사장은 MBC의 제작부문을 초토화시켰다. 단역급에 불과했던 정윤회씨의 아들을 MBC 드라마 7편에 ‘조연급으로 대우하라’며 강제적인 캐스팅을 지시했다는 혐의는 그의 ‘엽기적인’ 경영행위의 일각에 불과하다. 안광한 사장은 공영방송 MBC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시사교양’ 장르를 완전히 해체시켰고, 프로그램을 말살했을 뿐 아니라 사유화했다. 안광한 사장은 영화 <공범자들>에 자신이 등장하는 장면이 두려웠는지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이유가 없다며 기각했다. 



PD들을 사지로 내몰고 사장이 되다 


안광한씨는 2010년 “청와대로부터 조인트를 까여가며 좌파를 청소했다”는 김재철 사장의 부임과 함께 편성본부장으로 발탁되었고, 이후 부사장을 역임했다. MBC의 가장 큰 자회사인 MBC 플러스 사장을 거쳐, 2014년에 MBC 사장이 되었다. 그는 출세를 거듭할 때 어김없이 MBC의 시사교양 프로그램과 연출자들을 짓밟았다. 

안광한이라는 이름은 2010년 10월, 지금의 MBC에서는 너무나 흔한 일이 되었지만,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PD수첩 불방사태’와 함께 부각되었다. ‘4대강 수심 6m의 비밀’을 다루었던 이 프로그램을 방영 당일 불방시킨 장본인은 김재철 사장이었지만, 실질적으로 방송 강령 위반을 주도한 것은 바로 당시 안광한 편성본부장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이 일어난 지 정확히 4개월 후 그는 부사장으로 영전했다. 

MBC 방송노동자들이 2012년 170일 파업을 했을 때 그는 부사장이자 인사위원장이었는데, 그때부터 약 5년간 수백 명의 방송인을 해고하고 징계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그가 직접 피를 묻힌 해고와 징계는 끔찍한 것이었다. 불법, 위법, 경영권 남용이라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거의 전부 무효가 되었는데, 그의 사고를 짐작할 수 있는 황당한 것들도 있었다. 

김재철 사장이 갑자기 MBC를 떠났을 때 <최양락의 재밌는 라디오>는 이 상황을 풍자했는데, 안광한 부사장은 이 ‘풍자’를 이유로 입사 30년차 안혜란 PD에게 정직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2015년에는 경인지사로 부당전보한 권성민 PD가 수원으로 출퇴근하는 시간을 이용해 예능 PD의 ‘애환’을 웹툰으로 표현했는데, 그 ‘애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해고’시켰다. 그는 애환과 풍자도 검열했다. 대법원으로부터 무효 판정을 받았지만 그는 사장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 3년의 임기를 꽉 채웠다. 징계와 검열 행위들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사장이 된 후 그는 MBC에서 ‘교양’이라는 이름을 지웠다. 그는 이미 50여명의 현역 시사교양 PD들 가운데 3명(최승호, 이근행, 강지웅)을 해고하는 데 앞장섰고, 20명 이상을 부당징계·부당전보 처리했다. 겨우 법원의 명령으로 PD들이 돌아오고, 조직을 추스르고 있던 2014년 10월 안광한 사장은 공영방송 MBC에서 교양제작국을 해체하고 <불만제로> 등 교양 프로그램을 폐지시켰다. 당시 <불만제로>는 MBC 자체평가로도 가장 유익한 프로그램 2위였다. 그 해에 방송통신위원회의 ‘이 달의 좋은 프로그램상’과 한국PD연합회의 ‘올해의 작품상’을 수상한 직후였다. 그리고 ‘블랙리스트’가 발동되었다. 상을 받았던 PD들을 비롯해 15명의 시사교양PD들이 이유를 알 수 없이 경인지사, 사업국, 편성국 MD, 예능국 등지로 흩어졌다. 지상파 방송사에서 공공성을 담보하는 교양국을 해체한다는 데 대해 여론이 악화되었지만 그는 ‘사냥행위’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에 의해 MBC 시사교양 장르의 숨통은 완벽하게 끊어졌다. 

안광한 사장은 마치 ‘교양국 국장’처럼 행동했다. 

안광한 사장이 직접 지시해서 만든 것으로 알려진 토론 프로그램 <이슈를 말한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은 KBS에서 공정성 시비로 PD들의 반발을 사고, 논란 끝에 토론 프로그램에서 물러난 왕상한씨가 맡았다. 왕상한 MC에게 배정된 개런티는 자그마치 400만원. 1시간 30분 정도의 녹화시간을 고려한다면 시간당 개런티 수준은 유재석, 신동엽급이었다. 

<이슈를 말한다>는 토론 프로그램에서 어떻게 정부 정책을 홍보하고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지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다. 2015년 정호준 국회의원실 분석에 의하면 2015년 1월부터 9월까지 출연자 가운데 정부 및 여당 인사는 52.9%였고, 야당 인사는 11.7%에 불과했다고 한다. 노동문제에 있어서 그 편협함은 극에 달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 같은 경우 ‘노동자’라는 이해당사자는 토론에서 배제되었고, 노동부 장관과 새누리당 의원들이 출연해 일방적으로 ‘‘대기업 노조’를 폄하하고 정부 정책을 홍보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 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했는데, 공교롭게도 당시 고용노동부는 안광한 사장이 저지른 각종 부당노동행위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다큐멘터리 역시 안광한 사장이 직접 관리했다. 그는 이탈리아·프랑스·이란과의 수교를 기념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라고 지시를 내렸는데, 어김없이 박근혜 대통령은 그 나라를 방문했고, 방문날짜에 맞추어 프로그램은 MBC의 전파를 탔다. 지상파 방송 3사 가운데에서도 MBC가 유일했다. 안광한 사장 영역 안에서 다큐멘터리가 기록할 수 있는 사실은 명백히 제한적이었다. 세월호, 노무현, 혹시 진보적인 그 무엇이 연상만 돼도 아이템들은 완벽하게 검열되었고, 간혹 그 검열이 뚫리면 질책이 쏟아졌다. 안광한의 다큐멘터리들은 대중의 기억을 왜곡하는 데 기여했는데, 그래서 그 다큐들을 다큐라 불러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사장이 다큐멘터리까지 직접 관리 

영화 <공범자들>의 감독인 최승호 PD는 안광한 사장이 직접 해고한 당사자다. 최승호 PD가 안 전 사장이 MBC가 제공한 오피스텔에서 나오는 걸 기다려 질문을 던지는데, 안 전 사장은 카메라를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을 친다. 한때 동료였던 PD의 질문을 피해 건물 여기저기를 허둥지둥 뛰어다니는 그의 모습은 일반 관객에게는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블랙코미디일 것이지만, 한때 그를 편성본부장, 부사장, 사장으로 불렀던 MBC 사람들에게는 눈 뜨고 보지 못할 참극(慘劇)이었다. 영화는 이런 수준의 인간에 의해 MBC가 지배당했다는 사실만으로 MBC가 실패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준다. 

사실 MBC만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안광한 전 사장은 2014년 8월 모교인 고려대학교에서 ‘장한 고대 언론인상’을 받았다. 한국의 지식인을 대표한다는 언론과 학계가 지난 9년간 완벽하게 실패했다는 것을 안광한의 성공담은 보여주었다. 횡령, 무고, 업무방해, 부당노동행위 등등의 혐의로 고발돼 있는 그가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는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8월 27일)

⑨ ‘손석희’의 시선집중, ‘신동호’의 시선집중


지금은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등이 아침 시사라디오 분야를 이끌고 있지만, 누가 뭐래도 이 분야의 원조는 2000년에 시작한 <손석희의 시선집중>이었다. 오전 6시부터 8시까지 각종 시사 이슈를 다루면서, 인터뷰를 통해 이슈와 관련된 새로운 뉴스를 생산해내는 이 놀라운 프로그램은 천편일률적이었던 당시 AM 시장(현 표준 FM 시장)의 최강자로 떠올랐다. 새로운 형식을 개척한 PD의 혜안과 함께, 무엇보다 진행자 손석희의 발군의 인터뷰가 빛을 발했다. 

여야 정치권의 첨예한 대립이 있는 아침이면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등장하는 여야 대표들의 인터뷰에 정치부 기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울 정도로 프로그램의 영향력은 컸다. 언론인 손석희가 조선일보의 김대중 주필,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등을 따돌리고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떠오른 것도 바로 이 프로그램과 함께였다. 2000년에 시작한 프로그램이 10년을 넘겼을 때 MBC라디오의 상징이 되었다. 워낙 MBC 라디오는 다른 모든 채널들이 다 합친 정도의 경쟁력과 영향력을 가진 절대강자였는데, <시선집중>으로 인해 저널리즘의 가치까지 끌어안았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가졌던 것이 MBC 라디오였다. 

충실한 청취자이자 동료였던 나는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 악독한 사장이 오더라도 <시선집중>을 무너뜨리지는 않겠지’라고 순진하게 믿었다. ‘저 영향력을? 시장의 절대적인 신뢰를? 설마…’라고 생각했다. 청취자의 알 권리를 위한 송곳 같은 질문이 정파적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손석희의 진행은 각종 현안에서 진보인사들이 쩔쩔매는 장면도 여과 없이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박근혜와의 악연과 축출 

하지만 손석희의 질문은 보수우파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간섭이 노골적으로 되었다. MBC 수뇌부들의 압박은 집요했고, 모욕적이었다. 7년간 매주 출연하던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를 제작진과 아무런 의논 없이 내쫓았다. 김여진-전원책이라는 흥미진진한 진보-보수 논객 간의 토론에서 김여진씨의 출연을 일방적으로 막았다. 심지어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와의 인터뷰를 몇 시간 전에 강제로 취소시키는 예의 없는 간섭을 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박근혜 대통령과의 악연이 부각되었다. 한나라당 대표였던 2006년, 당시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난하는 박근혜 대표에게 ‘IMF 경제위기는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의 책임’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는데 “저랑 싸움하자는 건가요?”라는 유명한 말이 돌아왔다. 2012년 대통령 후보 시절에는 과거사와 관련한 질문을 받던 도중 인혁당 사건에 대해 잘못된 발언을 해서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는 등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런 악연을 대통령 박근혜가 가만히 놔두진 않았을 것이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독대 당시 굉장히 집요하게 “삼성이 압력을 넣어 JTBC 뉴스에서 손석희를 자르라”고 했다는 폭로를 하기도 했다. 하물며 자신의 손아귀에 있던 MBC였다. 결국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마지막 방송을 했다. 13년 만인 2013년 5월이었다. 그리고 3개월 후 <신동호의 시선집중>이 시작되었다. 

만약 MBC가 정상적이었다면 손석희의 후임으로 신동호의 시선집중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4년간 뉴스데스크를 탁월하게 진행했던 박혜진 앵커가 이 전통의 시사프로그램 타이틀 롤을 이어받지는 않았을까. 혹시 젊은 오상진은 어땠을까. 아나테이너와 시사의 만남으로 화제가 되지 않았을까. 영화 <공범자들>의 감독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지만 황우석 사태 당시 PD수첩의 명MC였던 최승호 PD가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은 상상에 불과했다. 그들은 이미 MBC에서 쫓겨나 있거나 배제된 상태였다. 최승호 PD는 2012년 해고되었고, 박혜진·오상진 등 아나운서 동료들은 그 해 170일 파업이 끝난 후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 등의 집요한 방해 속에서 각종 프로그램의 출연이 막힌 상태였다. 그들 모두를 물리치고 <시선집중>의 왕관을 집어든 사람은 바로 손에 피를 흥건하게 묻힌 신동호 아나운서였다. 

그리고 결과는 참담했다. 일단 ‘숫자’면에서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당해내지를 못했다. 10%대의 청취율은 3분의 1 수준인 3%대까지 떨어졌다. 라디오 청취자들은 한 번 채널을 정하면 웬만하면 쭉 그 채널을 유지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아침 6시에 시작하는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MBC 라디오의 경쟁력을 견인했고, 당연히 광고 수주도 압도적이었다. 신동호의 그것이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시선집중>이 몰락하고, MBC 라디오가 동반 추락하는 사이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부상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현재 라디오 전체 청취율 2위를 구가하며 예전 <손석희의 시선집중>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TBS의 책임자는 MBC에서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만들었던 주인공 정찬형 PD다.

시선집중을 관두고 JTBC로 이적한 손석희 앵커의 뉴스가 대중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세월호 비극 이후다. JTBC 뉴스는 세월호 침몰 후 가장 오랫동안 팽목항을 떠나지 않았고, 온 힘을 쏟아 문제에 천착했다. 손석희를 버린 MBC의 수뇌부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그들은 세월호라는 단어를 꺼낼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세월호 추모로 하고 있는 PD에게 그것을 내리라고 협박했다. 김도인, 노혁진 등 노회한 간부들은 세월호라는 사건에 ‘중립’이라는 허울을 붙여 노골적인 방해공작을 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헌신짝처럼 버린 언론인 손석희는 JTBC에서 절대권력을 무너뜨리는 스모킹건이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구치소로 향했다. 

■게시판을 폐쇄한 시선집중 

세상이 바뀌었지만 <신동호의 시선집중>은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올 여름 신동호라는 이름이 연일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며 큰 화제가 되었다.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이 동료 아나운서들의 TV·라디오 출연을 부지런히 막았던 사실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이다. 아나운서 신동호에 대한 신뢰는 회복불능 상태에 빠졌다. 현재 <신동호의 시선집중> 청취자 게시판은 폐쇄 중이다. 한국 방송 역사에서 진행자에 대한 항의로 게시판이 도배된 후 아무런 설명 없이 그 게시판을 폐쇄한 만행은 없었다. MBC는 엄연히 국민의 재산인 ‘공영방송’이다. 국민의 재산이 국민들이 유일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곳인 게시판을 폐쇄한 것이다.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은 손석희의 존재가 사라진 MBC에서 수년 동안 <백분토론> <시선집중> <이슈를 말한다> 등 각종 시사 프로그램의 MC를 도맡아 했지만, 그가 제대로 된 언론인으로 평가받는지는 의문이다. 그가 대중의 신뢰를 잃어버린 것으로 보이지만 MBC 김장겸, KBS 고대영 사장이 회장단으로 있는 방송협회는 그렇지 않았다. 9월 4일, 그들은 신동호 아나운서를 방송유공자로 표창한다. 같은 상을 받는다는 김태호 무한도전 PD는 이 상을 거부했다. 이 부조리극은 과연 언제 끝날 것인가.

(9월 2일)


⑩ 김장겸이 망친 보수, 보수가 망친 MBC

·보수세력은 궤변을 동원해 MBC가 망가지는 것을 방조했는데, MBC가 망가지는 만큼 자신들이 영달할 줄 알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MBC에서는 지금도 메인 뉴스에서 ‘박근혜씨의 허리가 아프다’는 동정뉴스를 보도한다. 방송 3사 중에 유일하다. 태극기 집회에 참가하는 극소수 시청자에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호소할 일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뉴스 편집이다. 자유한국당이 현 MBC 경영진, 김장겸 체제를 껴안고 가려는 이유도 이런 뉴스 때문이 아닐까. 김장겸 체제는 이렇게 해서 보수세력에 큰 도움이 될 거 같지만 사실을 따져보면 오히려 정반대에 가깝다. 

■유승민 죽이기에 나선 김장겸의 뉴스 

새누리당 붕괴는 2016년 4월 총선 참패가 시작이었다. 과반은커녕 원내 1당마저 잃은 완패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직후의 선거 이후 12년 만이었다. 가장 큰 원인은 친박들의 발호로 공천이 엉망이 되었기 때문이었고, 무엇보다 유승민 의원의 공천 배제와 탈당사태였다. 친박 핵심들과 정기모임을 갖는다는 김장겸 당시 보도본부장이 장악한 MBC 뉴스는 완벽하게 친박의 입장에서 선거보도를 했는데, 가령 ‘친박 패권’이라는 비판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심지어 유승민 의원의 새누리당 탈당 직후에도 당사자의 입장은 수세적으로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공천 배제를 지시한 이한구 당시 공천위원장의 입장은 2배 이상의 분량으로 싣는 등 균형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사건은 총선에서 합리적 보수유권자가 새누리당에 등을 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MBC 뉴스는 큰 일조를 한 셈인데, 정작 그 뉴스의 책임자였던 김장겸 보도본부장은 MBC 사장이 됐다. 

유승민 의원은 합리적 보수주의자의 이미지가 있다. 그런 그가 2012년 MBC의 170일 총파업을 공정방송에 대한 당연한 요구로 보고 MBC 파업사태의 가장 큰 원인이 ‘김재철 사장의 전횡’이라는 점을 밝힌 것은 그의 당연한 선택으로 보였다. 파업의 정당성을 나름대로 옹호했던 그의 선택은 MBC 뉴스 수뇌부를 상당히 자극했다. MBC 뉴스는 ‘유승민 죽이기’에 나섰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9월 4일 국회 본청 계단에서 MBC 사장 체포영장 발부 등에 항의하며 국회 보이콧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2015년 1월 원내대표 선출 때부터 유승민 의원과 친박세력의 충돌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부추기더니 2015년 7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근혜 대통령의 갈등이 전면전으로 치닫자 박근혜 대통령의 호위무사, 유승민의 저격수가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야가 합의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고, 이 합의를 주도한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서는 “배신의 정치를 선거에서 국민들이 심판해야 한다”며 살의가 느껴질 정도의 감정을 여과 없이 내뱉었다. 국민의 여론은 싸늘했다. 친박계를 제외하고는 3분의 2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찬성하고 있던 법안이었다. 심지어 박근혜 전 대표 시절에는 그가 직접 유사한 국회법을 낸 적도 있었다. 이런 사실들을 MBC 뉴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사건은 사실상 새누리당 붕괴의 전조(前兆)였다. 김장겸의 MBC 뉴스는 합리적 보수주의조차 용납 못하는 프로파간다였다. 

JTBC <썰전>에 출연 중인 박형준 교수는 유독 이명박 정부와 관련된 이슈만 나오면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논리를 자주 펴는데, MBC 언론인들이 참여하는 유례 없는 총파업과 김장겸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에 대한 그의 논평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그의 이런 논리야 말로 MBC를 망친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지난 9년간 MBC에서 벌어진 폭력적인 ‘부당노동행위’들은 1980년 전두환 정권 때 언론통폐합에 이은 대규모 해고사태와 비견할 만한 일대 사건이었다. 시대와 동떨어진 언론인에 대한 수십 건의 해고와 징계에 대해 법원은 당연히 경영권 남용으로 부당하다고 판단했는데, 그 사법부의 수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지명한 양승태 대법원장이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의 고용노동부 또한 ‘부당노동행위’들에 대해 MBC 경영진에게 수차례에 걸쳐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런 명백한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는 ‘근로감독’까지는 하지 못했다. 책임을 방기하던 고용노동부는 겨우 정권이 바뀌자 자신들의 임무를 재개한 것이다. 김장겸 MBC 사장의 체포영장 발부와 조사는 MBC 언론노동자들이 당한 초법적인 폭력에 대해 정부가, 국가가 뒤늦게 나선 당연한 결과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과 비교하면 더욱 극적이다. 당시 검찰은 정연주 KBS 사장을 횡령과 배임이라는 무시무시한 죄목으로 또,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방송한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해서는 공무원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해괴한 죄목으로 체포했다. 기소도 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대법원은 정연주 KBS 사장의 죄가 없음은 물론이고, KBS 사장에서 해임한 것도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PD수첩 역시 방송 내용의 공익성을 인정했고,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낙하산임을 스스로 증명한 사장들

그들이 전가에 보도로 들고 나오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낙하산 사장이 있었다’는 논리 또한 사실이 아니다. MBC 이사회(방송문화진흥회)는 여야 6대 3 구조라는 법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극복하고자 MBC에서는 방송편성규약과 노사 간 단체협약을 통해 공정방송을 구현했다. 사장이나 본부장이라도 함부로 편성이나 제작에 직접 개입하지 못하도록 ‘국장책임제’를 두었고, 공정방송협의회를 만들었으며, 이 협의회에서 전달되는 의견들을 사장이나 본부장들이 무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통제장치를 두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사장들은 이런 통제장치를 건드리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잘 나가던 과학자 황우석 교수의 사기행각이 드러나고, 역시 노무현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한·미 FTA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이유였다. 

이 모든 통제장치를 걷어찬 것은 바로 ‘이명박근혜 정부’ 시절 임명된 사장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낙하산임을 행동으로 증명했다. 김재철 사장은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을 불방조치시켰다. 이명박 정부가 체결한 한·미 FTA관련 반대집회에 대한 뉴스를 내보내지 않았다. 신경민·손석희·김미화 등 당시 권력이 불편해했던 최고의 앵커·MC들을 잘랐고, 이런 모든 이슈를 논의할 노사 간 공정방송협의회를 무력화시켰다. 단체협약을 해지했다. 수백 명의 MBC 언론인들을 해고했고, 징계했다. 안광한 전 사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최측근이었던 정윤회씨의 아들을 강제로 드라마에 투입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방문하는 국가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순방 날짜에 맞춰 방영하는가 하면, 박정희 대통령의 치적을 알리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PD수첩에서는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 대통령이 나오는 장면을 삭제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이런 행위들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프리덤하우스, 국경없는 기자회 등이 매년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는 보수세력 집권 9년 내내 하락을 면치 못했다. 보수세력은 궤변을 동원해 MBC가 망가지는 것을 방조했는데, MBC가 망가지는 만큼 자신들이 영달할 줄 알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망가진 MBC는 사회적 흉기가 되었고, 그 흉기가 자신들을 향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제발 역사를 직시하고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길 합리적 보수주의자들에게 부탁드리고 싶다.

(9월 11일)


⑪ MBC 몰락, 그 시작은 MB였다.

·2009년 이근행 노조집행부가 출범하자마자 마주한 것은 검찰이었다. PD수첩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PD와 작가를 체포하고자, 방송관련 자료를 압수하기 위해 영장을 들고 MBC에 들이닥쳤다.



영화 <공범자들>의 포스터는 이명박 전 대통령(MB)의 얼굴이 크게 모자이크 되어 있다. 영화의 말미, 최승호 감독은 이명박 대통령을 찾아가 “공영방송을 망친 주범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다. 혹자는 왜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냐고 묻고, 또 혹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잘못을 했냐고 묻는다. 왜 그가 공범자들 피라미드 구조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해 있는 것일까. 드디어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왔다. 

지난 9월 12일 국정원 개혁위가 발표한 ‘문화·연예계 정부 비판세력 퇴출 관련 조사결과’에 따르면 MB 정부는 MBC와 KBS를 장악하기 위해 청와대와 국정원이 중심이 되어 조직적으로, 구체적으로 움직였다. 국정원의 발표는 MB정부가 MBC를 일종의 ‘반정부단체’로 보고 불순분자를 박멸하고, DNA 자체를 바꾸려 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MB는 정보기관까지 동원해 MBC를 장악하려 했다. 길고 치열한 싸움 끝에 MBC는 MB의 방송이 되었다. 

2009년 12월 10일, MBC 방송문화진흥회 김우룡 이사장(왼쪽)이 MBC 임원진의 재신임을 묻는 회의를 진행하기에 앞서 항의방문한 이근행 당시 노조위원장과 어색한 악수를 하고 있다./남호진 기자
■엄기영 사장, MBC에서 쫓겨나다 

2008년 MB가 대통령으로 취임할 당시 MBC의 사장은 앵커로 이름이 높았던 엄기영이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가’편 방송으로 국민적 저항이 일어나고 정권이 위기에 처하자, MB 정부는 이 프로그램을 음해하기 시작했고 엄기영 사장을 압박했다. 친정부 인사가 장악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 방송에 대해 가장 높은 수준의 징계인 ‘시청자에 대한 사과’ 명령을 내렸는데, 그 명령을 제작진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엄기영 사장은 곤혹스러웠지만 사과방송을 구성원들의 극심한 반대 속에서 강행했다. 엄기영 사장은 10월에는 손석희를 <100분 토론> MC 자리에서 내려오게 했고, 새로운 <100분 토론> 진행자가 ‘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4대강 수질은 로봇물고기가 지킨다’는 코미디가 만들어졌다. 

2009년에도 가까스로 엄기영 사장은 자리를 지켰다. 엄 사장은 정권의 미움을 받던 신경민 앵커를 기자들의 제작거부에도 불구하고 4월에 쫓아냈다. 그 해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고 정권은 또다시 긴장했다. <PD수첩>은 노 대통령 서거 국면에서 ‘봉쇄된 광장, 연행되는 인권’편을 통해 광장을 봉쇄하고 집회에서 무차별적으로 시민을 연행하는 이명박 정부의 공권력을 강하게 비판했는데, 그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현 MBC 기획본부장이고 각종 부당노동행위의 당사자가 된 당시 최기화 정책기획팀장은 방송이 나가고 있는 도중에 집에서 뛰어나와 직접 PD수첩 팀장을 찾아 강하게 항의했다. 항의의 내용은 ‘위에서 난리가 났다. 이런 프로그램이 나가면 엄기영 사장을 지키기 힘들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실시간으로 프로그램을 모니터하던 그 ‘위’가 어디인지 이제야 밝혀진 셈이다. 

대통령과 고려대 동문인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그해 8월 임기를 시작했고 MBC에 대한 간섭을 노골화했다. 결국 엄 사장에게 임원 인사권을 빼앗는 굴욕을 주었고, 엄 사장은 사퇴했다. 2010년 2월 엄 사장은 이근행 노조위원장 등 조합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MBC 파이팅”을 외치고 떠났다. 유명 언론인으로서 부당한 권력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던 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영화 <공범자들>의 포스터./(주)엣나인필름■이근행 위원장과 노동조합의 투쟁 

이근행 PD는 2009년부터 2년간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이하 MBC 노동조합)의 노조위원장이었다. 2009년은 MB 정부가 MBC에 대해 ‘복수’를 할 것이 자명한 해였다. 노동조합 간부를 구하지 못해 ‘사다리를 탔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고난의 해였는데, 이근행 PD는 수난이 예정된 노조위원장의 길을 선선히 받아들였다. 이근행 PD가 MBC 노동조합의 위원장이 될 때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원세훈 국정원장이 취임했다. 

2009년 이근행 노조집행부가 출범하자마자 마주한 것은 검찰이었다. PD수첩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됐다. 그들은 PD와 작가를 체포하고자, 방송 관련 자료를 압수하기 위해 영장을 들고 MBC에 들이닥쳤다. 이근행 집행부는 온몸으로 막았다. 검사와 수사관들은 빈 손으로 돌아갔다. PD들은 체포당하지 않기 위해 집에 가지 않고 조합 사무실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모든 조합원들이 돌아가면서 밤을 새며 혹시 있을지 모를 압수수색에 대비했다. 흡사 MBC는 남한산성 같았다. 

국정원의 발표를 보면 바로 이즈음인 2009년 7월 국정원은 TF팀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의 노제 사회를 본 김제동은 1급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무려 연예인을 사찰하는 MB 정부였다. 소름 끼치도록 냉혈한 권력 앞에서 MBC 노동조합은 싸움을 준비해야 했다. 

엄기영 사장이 쫓겨난 2010년 본격적으로 MBC 장악의 시나리오가 진행되었다.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은 역시 고대 출신이자 MB와 막역한 사이였던 김재철을 사장으로 임명했다. 노동조합은 김재철 사장 체제가 들어서는 것을 막았다. 출근저지투쟁, 위원장의 12일 단식, 전국 MBC의 39일 전면파업. 파업이 끝나자 이근행 위원장은 모든 투쟁에 책임을 지고 해고되었다. 조합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조합원들의 투쟁 열기는 식지 않았지만 김재철 사장은 4대강 사업의 의혹을 파헤친 <PD수첩>을 불방조치하는 등 검은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청와대와 국정원 로드맵을 따라 김재철 사장은 2011년부터 더욱 노골적으로 MBC 장악을 시도했다. 2011년 3월 PD수첩에서 최승호 PD가 쫓겨나간 것이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PD들을 드라마 세트장 등에 강제 배치하는 만행도 이때 처음 시작되었다. 라디오에서는 김미화, 윤도현, 김어준이 줄줄이 하차했다. 결과는 참담했지만 시사교양PD, 라디오PD들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피케팅을 하고, 국·부장의 면전에서 침묵시위를 하면서 저항의 불을 지펴나갔다. 큰 불로 번질 것이 두려웠던 김재철 사장은 노동조합과 2011년 9월 ‘꽤 괜찮은 공정방송 조항’이 담긴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이 소중한 단체협약은 김재철 사장, 그 배후의 정권과 2년 동안 처절하게 싸워서 얻은 결실이었다. 

이런 와중에 2012년 2개의 선거(국회의원·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김장겸 정치부장은 ‘MB 내곡동 사저 의혹’을 은폐하는 등 편파방송을 계속했고, 결국 170일 파업으로 이어졌다. 그 파업은 실패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김재철과 맺은 단체협약으로 파업의 정당성은 법원으로부터 계속 인정받았고, “공정방송은 언론인의 근로조건”이라는 엄청난 의미를 지닌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국정원 TF까지 동원된 MB 정부의 MBC 장악은 단기적으로는 성공했을지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MB의 몰락은 MBC를 비롯한 언론과 문화계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 했던 그 불법적인 시도가 백일하에 밝혀지면서 시작되었다. <공범자들>의 결말이 궁금하다.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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