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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게인 MBC(기사모음-스압주의)
게시물ID : sisa_9841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넘어넘어
추천 : 1
조회수 : 138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9/20 13:19:28
오마이뉴스에서 연재한 시리즈물 기사를 한번 모아봤습니다!(여기서 언론사는 따지지 맙시다-_-;; 이 기사는 딱히 나쁘지 않아요)
아래의 'MBC 몰락 10년사'처럼, 좋은 기사들인 것 같아서 1편부터, 현재 최신 연재분인 7편까지 한번 모아봤어요. 주간연재인 몰락 10년사와는 달리 이건 7일간 매일 연재됐더군요;
혹 아직 못 읽어보신 분들이 있다면, 이걸 보면서 지난 몇 년간~현재의 mbc의 비참한 현실을 모두 함께 알아주자는 취지에서 말이죠...(복붙) 

2012년 170일 파업. 그 후 5년이 지났습니다. 이 시간에도 MBC 구성원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쫓겨나고, 좌천당하고, 해직당하고, 징계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저항했습니다. 끝도 없이 추락하는 MBC를,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지켜보면서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이제 그만 '엠X신'이라는 오명을 끝내고, 다시 우리들의 마봉춘, 만나면 좋은 친구 MBC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시 싸움을 시작하는 MBC 구성원들의 글을 싣습니다. 바깥에서 다 알지 못했던 MBC 담벼락 안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MBC 입사가 꿈이었는데... 벽만 보고 앉아있다 해고"

[어게인 MBC⑦] '유배툰' 올렸다가 해고됐던 권성민 PD

일곱 번째 글은 정직 후 유배지에서 '웹툰'을 올렸다는 이유로 해고됐다가 복직한 권성민 PD의 글입니다.   

권성민 MBC PD가, 징계 시절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사측에서 문제로 삼았던 웹툰.

권성민 PD는 <오늘의 유머>에 세월호참사 관련 보도를 비판한 '엠병신 PD입니다'는 글을 올렸다 정직 6개월 징계를 받았고,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예능국 이야기>(일명 유배툰)를 올렸다가 해고를 당했다.ⓒ 권성민


어릴 때부터 MBC를 좋아했다. 입사 지원서를 쓸 때 다른 방송사의 공채도 열려있었지만 MBC만 지원했다. 그리고 2012년 1월, 운 좋게 입사했다. 입사하기 전날, 노동조합은 파업을 시작했다. 첫 출근한 회사는 전운으로 가득했고 생애 첫 사령장은 어느 어수선한 사무실에서 받았다. 조합 가입 자격이 없는 수습 기간 동안 선배들이 없는 텅 빈 회사에서 바로 방송을 만들기 시작했다. 

같은 해 4월 수습이 해제되자 파업에 동참했고, 대학등록금도 내 손으로 벌어 다녔던 나는 우습게도 내로라하는 방송국에 입사한 뒤 처음으로 부모님께 생활비를 지원받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싸운 뒤 같은 해 7월 파업을 접고 방송에 복귀했다. 모든 것이 뒤틀리고 어긋나있는 회사로.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MBC에 입사했지만

입사 원서를 낼 때 회사의 상황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다만 머지않아 해결되고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거라 생각했다. 신입사원 연수에서 만난 조합 집행부도, 연수가 끝날 쯤 파업도 끝날 테니 신입사원들은 크게 마음 쓰지 말라는 말을 했었다.

그보다는 사실, 정말 붙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니 입사 이후에 대한 고민도 막연할 일이었다. 어찌어찌 가게 된 최종면접 전날에는, 너무 싫은 김재철 사장이 면접장에 나올 텐데 표정관리 못 하는 나는 어쩌나 하는 걱정도 했다. 면접 당일, 정말 표정 관리가 안 됐는지 사장은 나를 보자마자 "MBC는 좋은 회사야. 권성민씨 같은 사람이 내가 싫으면 나가라고 싸울 수도 있는 회사라고"라는 말부터 했다. 속마음이 보였나 뜨끔 했는데, 그러고도 어떻게 합격을 했다. 그 말을 했던 김재철 사장은 정말로 자기 나가라고 싸운 조합원들을 자르고 쫓아내고 징계했지만.

그렇게 누군가는 해고되어 있고, 누군가는 유배되어 있고, 누군가는 정직을 받으며 계속 싸우고 있는 MBC에서 내 첫 직장생활이 시작됐다. 그 직장생활을 해나가는 동안 또 누군가는 유배되고, 누군가는 정직을 받으며 지난한 싸움이 이어졌다. 

회사를 상대로 한 정직 및 해고 무효 소송 1심에서 승소한 MBC예능국 권성민 PD가 25일 오전 마포구 MBC상암사옥 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권PD는 지난해 <오늘의 유머>에 세월호참사 관련 보도를 비판한 '엠병신 PD입니다'는 글을 올렸다 정직 6개월 징계를 받았고,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예능국 이야기>(일명 유배툰)를 올렸다가 해고를 당했다.

ⓒ 권우성


그 모든 시간이 답답하고 슬퍼서, 답답하고 슬프다고 얘기한 2014년 5월, 이번에는 내가 6개월 정직을 받았다. 정직이 끝난 같은 해 12월에는 수원의 비제작부서로 다시 쫓겨났다. 매일 아침 9시까지 무궁화호를 타고 수원의 사무실에 가서, 아무런 업무 지시도 없는 빈 책상에 하루 종일 앉아 있다 퇴근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낸 2015년 1월 해고되었고, 이듬해 5월 1년 반 만에 대법원의 부당해고 판결로 복직했다.

그리고 2017년 9월, 다시 파업을 시작했다. 5년 전보다 더 높은 강도로.

6개월 정직, 비제작부서, 해고, 복직... 그리고 다시 파업

수원으로 유배되어 있을 때, 보도국에 있다가 쫓겨난 기자 선배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밖에서 내가 보아온, 빛나는 MBC를 만들었던 이들은 대부분 그 선배처럼 쫓겨나 있었다. 참담하게 망가진 뉴스와 사람들의 비아냥거림이 일상이 된 지도 몇 년째였다. 나는 그 선배가 기자로서 망가진 자존심을 토로할 줄 알았다. 앞서가는 뉴스를 이끌었던 주역으로서 회한을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선배의 괴로움은 다른 곳에 있었다. "세월호가 가라앉을 때, 그 자리에서 제대로 보도를 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그 생각에 짓눌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에게 빼앗긴 마이크는 망가진 자존심이 아니라 지독한 부채감이었다.

내가 해고자의 신분으로 지내는 동안, 그 '해고자'라는 이름 덕분에 이런저런 일들에 참여한 적이 있다. 거기서 '해고자'라는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들을 종종 만났다. 하지만 대부분은 결코 같은 무게의 '해고자'가 아니었다. 나의 해고는 크고 튼튼한 노동조합이 법정 싸움도 함께 해주고 사회의 관심도 받았지만, 대부분의 해고자는 부당함을 하소연할 곳도 없고 함께 싸워줄 노동조합도 없었다. 같은 '해고자'로 불린다는 사실이 더없이 무거웠다.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이 파업중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을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이 파업중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을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권우성


MBC노조 조합원들이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방송문화진흥회 앞에서 이사회를 앞두고 고영주 방송문화이사회 이사장과 김장겸 MBC 사장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MBC노조 조합원들이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방송문화진흥회 앞에서 이사회를 앞두고 고영주 방송문화이사회 이사장과 김장겸 MBC 사장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이희훈


다시 파업에 임하는 우리의 싸움도 그렇게 무겁다. 이 사회에는 부당함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수많은 싸움들이 있다. 그 싸움의 대부분은 외롭다. 거리에 앉아 머리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쳐도 들어주는 이는 많지 않다. 노동조합처럼 함께 싸울 이들이라도 있다면 다행이다. 더 많은 이들은 홀로 그 싸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조용히 침묵을 삼킨다. 그런 속에서 우리의 싸움은 많은 이들의 관심과 응원을 받고 있다.

나의 해고가 받은 관심도, 우리의 싸움이 받는 응원도, 단순히 이름이 잘 알려진 큰 방송사라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저렇게 부당한 일이 많이 벌어지고, 그 부당함을 겪은 이들이 제대로 맞서지 못할 만큼 기울고 구멍 난 이 사회를, 언론이 대신 감시하고 대신 찾아가 달라는 사람들의 명령이다. 그러니 우리가 받는 관심과 응원은, 그 무게만큼의 부담이고 책임감이다. 

쫓겨난 기자 선배의 빼앗긴 마이크가 망가진 자존심이 아니라 지독한 부채감이었던 것처럼, 지난 5년 동안 MBC 구성원 각자가 버티며 겪어온 절망과 분노는 하나하나 새 싸움의 발판으로 쌓여왔다. 거기에 시민들이 보내는 응원의 무게까지 끌어안고 파업을 한다. 이길 것이다.  

MBC사옥앞에 선 권성민PD 회사를 상대로 한 정직 및 해고 무효 소송 1심에서 승소한 MBC예능국 권성민 PD. 권PD는 지난해 <오늘의 유머>에 세월호참사 관련 보도를 비판한 '엠병신 PD입니다'는 글을 올렸다 정직 6개월 징계를 받았고,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예능국 이야기>(일명 유배툰)를 올렸다가 해고를 당했다.

MBC예능국 권성민 PD.ⓒ 권우성


* 권성민 PD는 2012년 MBC에 입사해 <섹션TV연예통신><위대한 탄생 시즌3><무릎팍도사><나는 가수다> 등의 조연출로 일했다. 2014년 6월, 커뮤니티 게시판에 MBC의 세월호 보도를 비판한 글을 올렸다가 6개월 정직 징계를 받았고, 2015년 1월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명 '유배툰'을 올렸다가 해고됐다. '정직 및 해고 무효소송'에서 승소해 2016년 6월 복직한 후에는 <듀엣가요제><오지의 마법사> 등을 담당해왔다.

화제의 'MBC 김장겸 사장 패러디' 제가 만들었습니다

[어게인 MBC⑥] MBC 실상 알리려 '마봉춘세탁소' 운영자 된 조의명 기자

여섯 번째 글은 MBC 유배자와 징계자들이 만든 페이스북 페이지 '마봉춘세탁소' 운영자인 조의명 기자의 글입니다.   

마봉춘세탁소

마봉춘세탁소ⓒ 마봉춘세탁소


<마봉춘세탁소>라는 유치한 이름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몇 달 째 몇몇 동료들과 몰래 운영해 오다가 최근 주변 사람들에게 '걸렸다'. 왜 그런 짓을 벌였는지 많이들 궁금해 하는데, 일일이 답하려면 너무 긴 얘기라, 잠시 이 지면을 빌려 경위를 설명하고자 한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덩케르크>를 보다가, 엉뚱한 장면에서 혼자 울었다. 전투에서 패배하고 대륙 끄트머리까지 내몰린 연합군 병사들의 머리 위로 독일 폭격기의 공습이 떨어진다. 변변한 저항도 못 한 채로 웅크려 있다가, 폭발음이 귀에 울리기도 전에 방금 전까지 얘기를 나누던 전우가 넝마 같은 주검으로 나뒹구는 광경을 본다. 싸우지도, 도망치지도 못하고 다만 폭탄이 내 앞으로 떨어지지 않기만을 기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죽은 이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이는 그저 부끄럽기만 하다. 내가 그랬다. 나는 이명박 정권 이래 10년 가까이 참혹한 언론 장악의 전장이 되어버린 MBC에서, 여태까지 살아남은 부끄러운 생존자 중 한 명이었다.

MBC 파업 참여와 무단결근, 대기발령 불응 등의 이유로 PD수첩의 최승호 PD와 전 노조위원장 출신의 박성제 기자가 해고된 가운데,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남문 앞에서 MBC 노조원들이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의 퇴진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2년 파업 당시 집회장면ⓒ 유성호


나는 부끄러운 생존자였다

파업 이후 여덟 명의 기자 동기 중 세 명이 현업에서 쫓겨나는 유배를 당했다. 나 역시 2012년 1월을 마지막으로 보도국에서 내몰렸지만, 그래도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었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시사매거진 2580>팀에서 취재를 계속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사장인 김장겸씨가 국장, 본부장을 잇달아 역임하며 완벽하게 황폐화시켜놓은 보도국에 비해 변방으로 불리는 <시사매거진 2580>은 차라리 비교적 자유로운 곳이었다. 물론 < 2580 >에서도 열 명 가까운 선배와 동료들이 어김없이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다가, 혹은 겁도 없이 날선 비판 보도를 하다가 말 그대로 '썰려 나갔지만', 비록 목이 날아갈지언정 수치스러운 보도를 내 입으로 하지는 않았다는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킬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참 비루한, 정말 최소한의 자존심일 뿐이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4년 8개월을 운 좋게 버텼다. 그리고 지난 3월 결국 '내 차례'가 왔다.

1000일 넘는 기다림 끝에 세월호가 수면 위로 인양되는 시점이었다. 급히 현장을 다녀와 기사를 썼다. 어떻게 인양이 이뤄졌는지, 왜 이렇게 시간이 걸려야만 했던 건지, 기다려온 미수습자 가족들의 고통은 어땠는지, 그리고 오랜 시간 고통 받아 온 이들에게 늦게나마 진실과 위안을 전해줄 수 있을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특별할 것 없는, 나쁘게 말해 별 볼일 없는 평범한 기사였다. 

하지만 그 '평범한' 기사조차 게이트키핑을 통과할 수 없었다. 방송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까지 끝없는 난도질이 이어졌다. 인양을 지연시킨 실책과 방임에 대한 지적을 축소하고, 지난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인사들의 인터뷰를 삭제하고, 끝내는 사고 원인을 규명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조차 지우라고 지시했다. 그렇지 않으면 방송 자체를 결방시키겠다는 협박이었다. 지시를 내린 사람은 이후 < PD수첩> 결방 사태를 야기한 조창호 시사제작국장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지금껏 내가 살아남아 온 건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조금은 비겁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선택해야 했다. 본격적으로 비겁한 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내 동료들이 그랬듯 기꺼이 수난을 감내해야 할 것인지를.

마봉춘 세탁소 패러디

마봉춘 세탁소 패러디ⓒ 마봉춘세탁소


사직서를 쓰다, 그러나

기사를 작성하던 노트북으로 사직서를 썼다. 생각했던 것보다 양식이 간단해서 조금 놀랐다. 양심적으로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지시사항은 무시하고 그나마 멀쩡한 상태의 편집본을 임의로 만들어놓고 난 뒤, 퇴근해서 아내에게 말했다. "저기 어쩌면, 나 회사 그만둬야 할 것 같아. 미안해." 아내는 고맙게도 탓하거나 말리지 않았다. 대신 도망치지 말고, 차라리 싸우다 쫓겨나라고 했다. (부인 말 들어서 실패하는 사람 없다고 하기에) 사직서를 내는 대신 조리돌림을 당하더라도 끝까지 싸워 보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녹화가 있던 방송 당일 출근을 거부하고 나름의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미 만들어 놓은 멀쩡한 기사를 방송에 내든가, 아니면 차라리 국장 말처럼 결방을 시키라고. 수십 통의 전화가 오고, 국장으로부터 몇 번의 타협안이 날아왔지만 눈 딱 감고 버텼다. 결국 다행스럽게도 방송은 간신히 욕은 먹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평범하게' 나갔다. 방송을 본 시청자 누구도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다음날 경위서를 내고, 얼마 뒤 '무단 제작 거부, 항명, 사내질서 문란' 혐의로 징계위에 회부됐다. 변론 기일을 앞두고 대선이 치러졌고, 정권이 바뀌었다. 덕분에 부조리한 회사 생활을 만화일기로 쓴 것만을 가지고 직원을 해고시키던 회사의 칼춤 수위도 그때는 잠시 한풀 꺾였던 것 같다. 항명이라는 중한 죄목을 달고도 가장 가벼운 징계인 '주의'만 받는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웠다.(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나는 참 운이 좋다!)

영화 <공범자들>의 마지막 크레디트에는 2백 명 가까운 해고, 부당전보, 징계자들의 명단이 기록돼 있지만, 거기에 내 이름은 없다. 경징계를 제외한 명단이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너무 많아서일 거다. 묘한 기분으로 징계 통보를 받아들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세상도 모르고, 여태까진 나도 잘 몰랐던 MBC 구성원들의 소리 없는 분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있어 왔을까. 현 경영진의 생각과는 달리 대다수 국민들은 절대로 어리석지 않기 때문에, 추악한 뉴스가 전파를 타면 세상이 모두 안다. 반면 그 사이사이 흘러가는 평범한 기사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평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랬듯이, 지난 몇 년 MBC에서는 희대의 특종이나 세상을 놀라게 할 대단한 단독보도가 아니라 그저 멀쩡한, 평범한 방송을 내보내기 위해 누군가 몇 번이고 목을 걸어야 했었는지도 모른다. 황당한 이야기다. 밖에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다. 

영화 '공범자들'을 패러디한 '파업자들'에 등장한 MBC 김민식 PD.

마봉춘세탁소가 영화 <공범자들>을 패러디해 만든 <파업자들>ⓒ 파업자들 화면캡처



예전 수습기자 시절 달동네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기억한다. 허름한 술집 안에서 소주 값 3천 원 때문에 칼부림이 나고 사람이 죽었다. 지난 몇 년 우리의 투쟁은 그렇게 사소하고, 관심 받지 못하고, 별 볼일 없이 처절하기만 한 몸부림이었다. 수치스러워서 세상이 알아주길 기대할 수조차 없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김없이 그날 밤엔 최악의 보도가 나갔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한다. 왜 그런 곳에 남아 있냐고. 떳떳한 기자라면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정상적인 보도를 하는 곳으로 진작 옮겨가야 했던 것 아니냐고. 사실 불러주는 곳도, 능력도 없었던 탓이 크긴 하지만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우리가 함께 지탱해 온 돌덩어리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스는 거대한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노역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벌을 받는다.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바위는 다시 떨어지니, 참 무의미한 일이다. 

이젠 아무도 기억 못하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네 번의 파업 이후 남은 MBC 구성원들은 패배의 대가로 각자의 마이너스통장 빚더미와 사측이 제기한 195억 원이란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소송. 그리고 해직된 동료들이 언젠간 돌아와야 할 MBC를 최대한 원래의 모습대로 지켜내야 한다는 버거운 짐을 짊어지게 됐다. 2012년 파업의 마지막 구호는 '질기고, 독하고, 당당하게'였다. 비록 당당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질기고, 독하게들 버텨 왔다. 스스로 의미 없는 일이라고 좌절할 때도 많았지만, 남들이 보기엔 그저 바위 뒤에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였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리고 내가 사라지면 남은 이들의 어깨 위로 그만큼의 무게가 더 쏟아질 거라는 걸 알았다. 스케이트장 같은 유배지에서 나보다 수백 배 더 큰 모욕을 참고 견뎌왔던 선배들도 어쩌면 같은 심정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승리하진 못했지만, 그래서 참 부끄럽지만, 그래도 더 큰 파국을 막기 위해 끝까지 버텨보자고 서로를 위로했다.



MBC 내부의 저항을 알리고 싶었다

이 길고, 무겁고, 비참하기까지 한 이야기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취재 현장과 인터넷 상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난, 냉소, 그리고 이젠 욕할 가치조차 없다는 무관심에 정작 이 모든 일의 원흉이 된 '공범자들'은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깃발을 흔들며 환호하는 한줌 맹신자들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만족했으니까. 부끄러움과 좌절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었다. 외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지만, 울림을 얻기엔 언제나 미약했다. 구성원들은 연이어 기고를 쓰고 시위를 하고 성명을 냈지만 관심을 받지 못했다. 조금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마침 잘 하지는 못해도 좋아하는 소재가 있었다. (소위 '인생의 흑역사'라 불러야 할) 대학생을 빙자한 백수 시절, 고스트라이터 흉내 내며 장난처럼 만들던 패러디물 제작이었다.

히틀러의 최후를 다룬 영화 <몰락>의 자막을 회사 상황에 맞춰 패러디해 개인 페이스북 계정과 즐겨 찾는 인터넷 커뮤니티 두어 곳에 올렸다. 웃으라고 만든 자막이지만, 만들면서 한 번도 웃지 못했다. 멀리서 볼 때의 희극은 사실 당사자에게 비극이니까. 동료들은 걱정하며 글을 내리라고 했다. 징계 통보 잉크도 안 말랐는데 이러면 정말 큰일 난다며 다들 염려했다. 솔직히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는 말처럼 차라리 큰일이 날만큼 많이들 봤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바로 다음날 선배 김민식 PD의 "김장겸은 물러나라!"는 외침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조용히 묻혔을 내 패러디물도 덕분에 덩달아 입소문을 타고 이곳저곳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사흘도 안 돼 조회 수가 5만 명을 넘어섰고, 내가 올린 적 없는 커뮤니티에 'MBC 사장실 근황'이란 제목으로 영상이 떠돌아다녔다. 비록 경박한 B급 개그물일지는 몰라도 MBC에 대한 기대를 접고, 관심을 거둔 지 오래인 사람들에게 언론장악의 폐해와 방송 적폐들의 실체를 알릴 수 있겠다는 희망이 그때 처음 생겼다. 기술도, 재주도, 유머 센스도 없다보니 한 달 동안 매일 퇴근하고 새벽까지 이런 저런 괴상한 실패작들만 혼자 만들다가, 결국 비슷한 고민을 하던 유능한 동료들의 능력에 기대기로 하고 본격적인 작당모의를 시작했다. 그렇게 유배자와 징계자 다섯 명이 모여 세탁소 간판을 처음 올렸다.

마봉춘 세탁소 패러디

마봉춘 세탁소 패러디ⓒ 마봉춘세탁소


[관련기사] 웃긴데 처절한, MBC구성원들의 패러디 '마봉춘세탁소'

마봉춘세탁소 폐업할 때까지 관심 거두지 말아 주시길

근사하고 '있어 보이는' 명칭 대신 <세탁소>라는 이름을 정한 건 MBC는 포기하고 폐기해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세탁물처럼 깨끗이 빨면 다시 좋은 방송으로 거듭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담고 싶어서였다. 개업 두 달이 지난 지금 마봉춘세탁소의 누적 도달(조회)수는 500만을 넘어섰다. 정의로운 선후배 동료들의 외침, < PD수첩>을 불씨로 시작된 결사적인 제작거부 투쟁, 영화 <공범자들>이 국민들에게 준 깊은 울림... 그들의 용기에 힘입어 우리도 작은 힘이나마 열심히 보태며 함께 싸운다.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이 파업중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을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이 파업중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을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권우성


요즘은 하루하루가 즐겁고 벅차다. 날이 갈수록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김장겸 이름 석 자가 수시로 포털 검색어에 오른다. 절망하는 심정으로 사직서를 쓰던 반 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세탁소 형편도 좋아졌다. 지난 4일 총파업 이후 기라성 같은 예능, 교양PD들과 그래픽 디자이너, 카메라기자 동료들이 속속 마봉춘세탁소에 합류했다. 시작은 비루한 아마추어였을지 몰라도, 이젠 정말 참신하고 기발한 콘텐츠들을 쏟아낼 수 있는 진용을 갖추게 된 것이다(노골적 홍보라고 욕하셔도 할 말이 없지만 아무튼 그렇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폐업'이란 건 변함없다. 머지않아 MBC가 정상화되고 나면 세탁소의 겁 없는 비판 정신은 고스란히 뉴스가 이어받을 것이다. 끊임없이 '약물 복용' 의혹이 제기되는 재기발랄함은 더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쓰일 것이다. 예전의 모습을 기억하며 응원한다는 한 줄 댓글에 감격해서 펑펑 우는 지금 우리의 진심이, 지난 전성기보다도 더 나은 공영방송을 시청자들께 돌려주기 위한 첫 번째 머릿돌로 자리 잡을 것이다.

기대해 주셔도 좋다. 아니,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다. 더 솔직히 말하면... 제발 조금만 더 기대를 버리지 말고 기다려주시기를. 우리가 지금 이렇게 달려가고 있으니까.

MBC 마봉춘 세탁소 운영자 조의명 기자

MBC 마봉춘 세탁소 운영자 조의명 기자ⓒ 조의명


* 조의명 기자는 2008년 12월 MBC에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 수도권부, 선거방송기획단을 거쳤으며 지난 8월 제작 거부 선언 전까지 <시사매거진 2580>팀에서 일했습니다.

MBC 사장-임원진이 한 일을 고발합니다, 이게 회사냐?

[어게인 MBC⑤] MBC 사옥에서 "김장겸은 퇴진하라" 페북 중계했던 김민식 PD의 증언

다섯 번째 글은 사내에서 "김장겸은 퇴진하라"고 외친 후 징계위에 회부됐던 김민식 피디의 글입니다. 김 피디는 9월 1일 열렸던 인사위의 소명서를 보내왔습니다. 김민식 PD가 이 소명서를 읽던 도중 인사위가 정회돼 이 글은 공개되지 못했습니다. 

11일 인사위원회를 마치고 나온 김민식 PD. 김 PD는 사내에서 "김장겸은 퇴진하라"를 외치는 모습을 페이스북 중계했다는 이유로 인사위원회에 회부됐다.

김민식 PD는 사내에서 "김장겸은 퇴진하라"를 외치는 모습을 페이스북 중계했다는 이유로 인사위원회에 회부됐다.ⓒ 언론노조 MBC본부


'해고 위기' 인사위 출석하는 MBC 김민식 PD ’김장겸 사장 물러나라’는 구호를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통해 외친 이유로 해고 위기에 처한 MBC 김민식 PD가 21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에서 열리는 인사위원회 출석을 앞두고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김장겸 사장 물러나라’는 구호를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통해 외친 이유로 인사위에 회부된 MBC 김민식 PD가 7월 21일 상암동 MBC사옥에서 열리는 인사위원회 출석을 앞두고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권우성


9월 1일 인사위원회 날, 인사위 소명서를 읽는 도중 임원들은 "정회!"를 외치고 차례로 퇴장했습니다. 9월 7일, 저의 징계는 무효가 되었습니다. 8월 18일부터 시작한 출근정지 20일은 9월 6일부로 끝났습니다. 재심을 위한 인사위를 임원진이 정회하였고, 기간 내에 재개되지 않았기에 징계는 원천 무효가 되었습니다. 처음 사내에서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외쳤을 때, 해고까지 거론하며 사측은 저를 압박했지만 결국 제대로 된 징계 하나 못했습니다. 회사를 떠나야 할 사람은 분명해졌습니다. 다시 한 번 김장겸 사장의 퇴진을 요구합니다. 

나의 인사위 소명서

오늘(9월 1일) 인사위에서 이뤄지는 소명은 페이스북 라이브로 진행됩니다. 이에 대해선 이미 법률적 자문을 마쳤습니다. 서울중앙법원 제50부 민사부의 판단까지 고려한 행위입니다. 법에 의해 보장된 저의 소명권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즉각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만약 제지하려거든 우선 저의 소명권에 대한 법적 근거에 대해 듣고 의견을 말씀해주십시오.

처음 징계를 위한 인사위에 출석했을 때 페이스북 라이브를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사측에서 막았습니다. 인사위는 비밀 사항이고, 임원들의 초상권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촬영을 허가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셀프 카메라 모드인데 왜 초상권이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에 대해 법률적 자문을 구했습니다. 도움을 주신 김장겸 사장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사장님은 영화 <공범자들>에 대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김정만 수석부장판사)는 8월 14일 영화 <공범자들>(감독 최승호)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법원은 공익적 목적으로서의 <공범자들> 취지를 충분히 공감하고, MBC 전현직 임원진이 공적인 인물에 해당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기각 사유를 설명했습니다.

법원은 결정문에서 "언론의 공공성, 공익성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이고, 채권자 문화방송을 비롯한 영화의 대상이 주요 방송사이어서 영상, 음성 등을 통하여 방송이 이루어지므로, 채무자들이 공범자들에 채권자 임원들(MBC 전현직 임원)의 사진, 영상, 음성을 공개함으로써 달성하고자 하는 이익의 정당성, 중대성은 충분히 인정된다"고 명시했습니다.

이어 법원은 "채권자 임원들은 언론사의 전·현직 핵심 임원으로서 공적인 인물에 해당한다"며 "채권자 임원들의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방송한다고 하여 채권자 임원들의 어떠한 이익이 침해된다고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법원은 "임원들 스스로도 자신의 피해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며 "임원들의 과거 행적이나 발언이 재조명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는 언론인인 채권자 임원들이 마땅히 수인해야 할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습니다.

제가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어떤 발언을 하고 어떤 영상을 촬영할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리 촬영을 제지할 수 없습니다. 저의 발언을 방해하는 것은 저의 소명권을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해고 위기' 인사위 출석하는 MBC 김민식 PD ’김장겸 사장 물러나라’는 구호를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통해 외친 이유로 해고 위기에 처한 MBC 김민식 PD가 21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에서 열리는 인사위원회에 출석하고 있다.

7월 21일 인사위원회에 출석하는 김민식 PDⓒ 권우성


'해고 위기' 인사위 앞두고 페이스북 라이브하는 MBC 김민식 PD ’김장겸 사장 물러나라’는 구호를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통해 외친 이유로 해고 위기에 처한 MBC 김민식 PD가 21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에서 열리는 인사위원회 출석을 앞두고 자신의 심정을 페이스북 라이브방송을 통해 전하고 있다.

김민식 피디가 인사위원회 출석을 앞두고 자신의 심정을 페이스북 라이브방송을 통해 전하고 있다.ⓒ 권우성


김장겸 사장님, 왜 답변 안 하십니까

제가 이 자리에 왜 와 있습니까? 출근정지 20일이라는 가혹한 징계 형량에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출근정지 20일이라니, 저랑 장난하십니까? 징계 사유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저의 징계 사유는 정상적으로 근무하고 있는 공영방송 사장의 업무를 방해하였다는 것입니다. 김장겸 사장이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고 저는 경위서에서 밝혔습니다. 2017년 6월 7일 회사에 낸 경위서에서 저는 김장겸 사장이 저의 일일연속극 연출을 방해했다고 밝혔습니다. 보도국장으로 본부장을 대리출석한 임원회의에서 드라마 본부장의 업무 보고 도중 '김민식의 일일극 연출을 용납할 수 없다, 노조원인 피디가 연출하는 드라마가 뉴스데스크 앞에 편성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같은 저의 주장에 대해 석 달이 되도록 사장님은 아무런 입장 표명이 없습니다. 첫 번째 인사위에서 제가 여러분께 여쭈었습니다. 저의 경위서에 대해 김장겸 사장님의 답변은 무엇이냐고요. 이중 그 누구도,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위의 경위서를 경향신문 온라인 기사로도 올렸습니다. [전문]"PD로서 명줄을 잘라놓겠다는 살의를 느꼈다" <내조의 여왕> MBC 김민식PD의 경위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경위서를 올렸음에도 아직까지 아무런 답변이 없습니다. 제가 사장의 명예를 훼손했다거나, 누군가 사장님을 모함했다거나, 반응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기자는 질문을 하는 사람입니다. 기자 출신인 김장겸 사장은 왜 본인에게 주어진 질문에 답변하지 않습니까? 영화 <공범자들>에서도 김장겸 사장은 시종일관 도망만 다닙니다. 

여기서 잠깐 영화 홍보, <공범자들>,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은 꼭 보십시오. 국내 영화사상, 최초로 법원이 사실 검증을 마치고 상영을 보장한 영화입니다.

서울중앙지법 제50민사부의 판결문을 다시 보겠습니다. 영화 '공범자들'에는 백종문 현 부사장이 최승호 피디와 박성제 기자를 증거 없이 해고시켰다고 말한 녹취록 내용이 나옵니다. 

법원은 "백종문의 음성을 녹음된 그대로("왜냐하면 그 때 최승호하고 박성제 해고시킬 때 그럴 것을 예측하고 알고 얘들을 해고시켰거든. 그 둘은. 증거가 없어. 이 놈을 가만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가지고 해고를 시킨 거예요") 사용함에 따라 백종문의 명예가 침해된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백종문은 자신의 위와 같은 발언이 악의적인 편집에 의해 왜곡된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하면서도, 그 발언의 의미를 설명해 줄 것을 요구하는 최승호의 인터뷰 요청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UHD 방송의 개국을 축하하는 자리입니다. 방송의 미래를 막지 마세요"와 같이 납득하기 어려운 대답을 하면서 그 해명을 회피하였다. 자신의 발언에 대한 해명 요청조차 거부하면서 자신의 발언을 인용하는 것이 명예권을 침해한다는 백종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저는 거듭 김장겸 사장에게 사장으로서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 나의 드라마 피디로서의 업무를 방해했고, 나를 유배지로 내쫓았던 장본인이라 말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해명을 회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꼭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그 답변을 듣기 위해 저는 이 자리에 찾아왔습니다.

'공범자들' 김민식 PD, 죄갚는 심정으로... 김민식 MBC PD가 9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동대문에서 열린 영화 <공범자들> 시사회에서 암 투병 중인 이용마 해직기자 이야기와 파업 당시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공범자들>은 <자백>을 제작한 최승호 감독의 신작으로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을 망친 주범들과 공범자들의 실체를 다룬 기록영화다. 17일 개봉.

김민식 MBC PD가 8월 9일 <공범자들> 시사회에서 암 투병 중인 이용마 해직기자 이야기와 파업 당시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정민


최승호 감독과 김민식 MBC PD, '공범자들' 물러나라 최승호 감독과 김민식 MBC PD가 9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동대문에서 열린 영화 <공범자들> 시사회에서 구호를 외치며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공범자들>은 <자백>을 제작한 최승호 감독의 신작으로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을 망친 주범들과 공범자들의 실체를 다룬 기록영화다. 17일 개봉.

▲ 최승호 감독과 김민식 MBC PD, '공범자들' 물러나라ⓒ 이정민


이제 인사위원회를 페이스 북 라이브로 중계하는 것에 대한 법률적 근거를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우리 헌법에서는 모든 회의를 공개하라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헌법 50조 1항에서는 "국회의 회의는 공개한다"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헌법학자들은 "의사 공개의 원칙"이라고 말합니다.
헌법 109조 역시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하여 재판 공개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가장 내밀하고 보수적인 영역인 사법부에서조차 공개 심리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헌법이 회의를 공개하라고 한 것은 '밀실논의를 차단'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 대표자들이 직무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수행하는지 감시를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헌법 정신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 회의는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MBC 사규 인사규정 제38조에는 "원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를 도모하기 위하여 인사위원회를 둔다"고 하고 있습니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위원회가 되려면 무엇보다 밀실회의가 되는 것을 막고, 공개를 하여 투명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인사규정 제45조는 서면결의를 할 수 있게 돼 있으나, 이 경우 "사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아니하는 의안"이어야 합니다. 저는 한국의 대표 공영방송 MBC 인사위원회가 공개되지 않고, 밀실에서 진행되어야 할 하등의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공영방송의 임원들은 공인이이어서 초상권 보호 대상이 아니고 공개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것은 김장겸 사장님이 저를 대신해 법원에 법률적 자문을 구해주신 결과 다시 한 번 확인한 일입니다. 그리고 징계 당사자인 제가 공개에 찬성하고 있어 개인정보보호의 문제도 없습니다.

'해고' 정해 놓고 인사위?

제가 오늘 인사위에서 페이스북 라이브를 하기로 결정한 것은 임원 여러분 때문입니다.

지난 인사위에서 한 본부장님이 어떤 문서를 읽으면서 "개요를 보니 대표이사의 업무를 방해하였기에 해고를 요청한다고 되어 있는데 사상의 자유도 있고 행위의 자유도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 김민식 차장은 여기 문서에 나온 대로 진술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저는 그런 문서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인사부 직원과 부장이 당황해서 해당 본부장의 자리로 달려가 "이 문서는 인사위원들 열람용이고 김민식 차장은 이 문서를 받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지요? 그 순간 제가 "그 문서에 '해고를 요청한다'라고 나와 있나요? 그 문서에? 이미 해고를 정해놓고 지금 인사위를 여신 겁니까?"하고 말씀드렸습니다. 모두들 말을 못하시더군요. 해당 본부장은 본인의 실수에 난감해하며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보다 못해 옆자리에 앉아있던 다른 본부장께서 "아이고, 김차장. 다시 보니 문서에는 회부를 요청한다고 되어있네. 해고가 아니라 회부를 요청한다고." 아니 이미 인사위를 열어서 불러놓고 새삼 회부 요청이라고요? 잠시 후 인사위는 정회되고 '해고'라고 말씀하신 본부장님은 인사부 직원을 통해 자신의 서류를 수습해 급히 방을 빠져나가셨습니다. 

자, 지난번에 있었던 인사위 상황, 인정하십니까? 말실수였다면 당시 문서를 공개해주실 것을 정중히 요청 드립니다.

MBC 인사위원회 사규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제38조 (설치) 직원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를 도모하기 위하여 인사위원회를 둔다.
제45조 (서면 결의)
   1. 직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아니하는 의안으로서 그 내용이 경미하거나 정례적인 것일 때에는 서면으로 심의 결정할 수 있다.
(참고로 출근정지 20일은 저에게 엄청난, 막대한 불이익을 주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회사에 20일씩이나 오지 못하고, 전국의 극장을 돌며 영화 <공범자들> 홍보에 매진해야 했습니다. 체력적으로 힘듭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가혹한 징계는 재고해주십시오.)
제46조 (의사록) 위원회 간사는 회의경과 내용과 그 결과를 기재한 의사록(양식1)을 작성하여 위원장과 출석한 위원의 서명날인을 받아 보존하여야 한다.

당시 의사록을 확인하면 제가 앞서 말씀드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사위 위원장은 백종문 부사장입니다. 최승호와 박성제를 이유 없이 해고 했다고 한 백종문 부사장은 그 자리에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궐석인 백종문 부사장이나 김장겸 사장이 인사위원에게 저의 해고를 요청했다고 저는 의심하고 있습니다. 저의 의심을 풀어주실 수 있습니까? 당시 문서와 의사록을 공개해주십시오. 지난 인사위에서 녹음이나 녹화 없이 인사위를 진행했기에 해당 발언을 증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페이스북 라이브로 전 과정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동기와 원인을 제공한 것은 임원진 여러분입니다. 

MBC노조 조합원들이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방송문화진흥회 앞에서 이사회를 앞두고 고영주 방송문화이사회 이사장과 김장겸 MBC 사장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MBC노조 조합원들이 9월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방송문화진흥회 앞에서 이사회를 앞두고 고영주 방송문화이사회 이사장과 김장겸 MBC 사장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이희훈


MBC노조 조합원들이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방송문화진흥회 앞에서 이사회를 앞두고 고영주 방송문화이사회 이사장과 김장겸 MBC 사장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김장겸 물러나라고 외친 이유

자,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외친 이유, 소명하겠습니다.

김장겸 사장은 보도국 편집회의에서 세월호 유족을 가리켜 "완전 깡패네, 유족 맞아요?"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지금도 믿기 어려운 말입니다. 그런 말이 술자리나 사석이 아니라 MBC 뉴스의 보도 방향을 제시하는 편집회의에서 나왔다는 것은 심각한 사안입니다. 이후 MBC는 세월호 유족을 폄훼하는 보도를 일관적으로 내보냈습니다.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들어보겠습니다. <공범자들>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며 법원은 이렇게 판결했습니다.

 "김장겸은 문제되는 발언(세월호 유가족을 지칭하며 "완전 깡패네. 유족 맞아요?")에 대하여 무혐의처분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채무자들이 그러한 발언이 존재하였던 것처럼 허위사실을 적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장겸에 대한 불기소처분은 '세월호의 유가족을 깡패로 지칭한 표현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취지에 불과할 뿐이고, '김장겸이 그와 같은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는 아니다.

이에 더하여 다수의 문화방송 소속 기자가 김장겸이 위와 같은 발언을 한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점, 문제된 발언이 이루어졌다는 편집회의에 참석한 기자가 작성한 자필메모에도 그와 같은 발언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표현이 진실이 아니라는 점이 소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돌마고) 공연에서 MBC 김민식 PD가 노래패와 함께 개사곡을 열창하고 있다.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돌마고) 공연에서 MBC 김민식 PD가 노래패와 함께 개사곡을 열창하고 있다.ⓒ 권우성


자, 법과 원칙을 존중하는 임원진 여러분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세월호 유족 깡패라는 김장겸 사장의 발언은 사실일까요, 거짓일까요?

지난번 인사위에 올라와 저는 김장겸 사장이 물러나야할 이유가 바로 이 자리에 앉아계시는 인사위 여러분이라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처럼 무능하고 부도덕한 사람들을 임원 자리에 앉혀놓고 어떻게 제대로 회사를 운영한단 말입니까? 인사가 만사인데 말입니다.

보도국 출신 김장겸 사장이 보도를 통제하는 동안, 편성과 TV 제작은 김도인 본부장의 통제하에 있습니다. 영화 <공범자들>에도 모습을 보이시지요. 김장겸 사장에게 인터뷰를 시도하는 최승호 감독을 막고 나서자 최승호 감독이 "자네는 또 왜 이러는가? 이 친구야, 이러다 영화에 나오네. 난 다 자네를 생각해서 하는 이야기야"라는 대목에 나온 분입니다.

김도인 본부장의 라디오 국장 시절 일화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강원도의 한 고등학교 학생회장에 출마하자 자신의 휘하에 있던 프로그램 디제이에게 응원 영상을 찍게 합니다. 직무를 이용한 위계지요. 이게 고등학교 학생회 선거 선관위에서 문제가 되어 자신의 아들이 학생회장 입후보 자격이 박탈되자 바로 회사 일을 내팽개치고 강원도로 쫓아갑니다. 

자정이 남은 시간에 후배 피디에게 전화해서 자신 아들의 숙제를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후배가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하자 그제야 물러납니다. 그 후배는 나중에 보복인사를 당합니다.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있는데요, 임원 여러분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게 회사인가요?" 

9월 4일 00시를 기해 언론노조 MBC 본부는 총파업에 들어갑니다. 이번 파업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파업이 될 것입니다. 제작을 거부하고 마이크를 내려놓는 피디 기자 아나운서들의 간절함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누구보다 MBC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싸움에 나서는 사람들입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MBC를 살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이 자리에 계신 임원 여러분이 결단해야 할 때입니다.

"9월 4일 0시 이전에 김장겸 사장과 현 경영진은 조건 없이 사퇴하라.
김장겸이 물러나지 않는 한 총파업은 이제 우리의 선택이 아닌 의무이다. 국민의 명령이다."

다시 한 번 외칩니다.

김장겸은 물러나라, 김장겸은 물러나라, 김장겸은 물러나라.

페이스북 라이브로 함께 해주신 페이스북 시청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시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이번 페이스북 라이브 투쟁에 대한 전략을 세워준 불세출의 전략가 이용마 기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용마야, 고마워." 

MBC 김민식 피디가 지난 29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김장겸 퇴진!"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MBC 김민식 피디ⓒ 유지영


* 김민식 PD는 96년 MBC에 입사해 청춘 시트콤 <뉴논스톱>, 드라마 <내조의 여왕> 등을 만들었고, 2012년 언론노조 MBC 본부 편제부문 부위원장으로서 170일 파업을 함께 했습니다. 지난 5년, 김장겸 사장의 집요한 방해로 드라마 연출을 하지 못해, 작가로 전업을 고민하다 올해 초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펴냈습니다. 김장겸 사장이 떠난 후, 드라마국으로 복귀해 다시 로맨틱 코미디 연출가로 일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결혼식 전 수갑 체포... PD수첩 탄압에 유서 쓸 생각도"

[어게인 MBC④] MBC 탄압의 상징, < PD수첩> 미국산 쇠고기편 김보슬 PD의 아픈 증언

네 번째 글은 2008년 < PD수첩-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방송하고 이명박 정권의 MBC 장악 시나리오의 첫페이지를 장식했던 김보슬 PD의 글입니다.

영화 <공범자들> 포스터. 역대 다큐멘터리 영화 중 독보적인 흥행 속도를 보이고 있다.

영화 <공범자들> 포스터.ⓒ 뉴스타파


최승호 선배가 영화 <공범자들>을 만든다고 인터뷰를 부탁하셨다. 난 며칠을 고민해야만 했다.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는 게 괴로워서가 아니었다. < PD수첩>이 정권의 표적이 된 시발점이 '나'였다는 죄책감에 난 오랫동안 대중 앞에 이야기하는 걸 꺼렸다. 편파·왜곡 방송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쓴 채 갈가리 찢긴 < PD수첩>을 선후배 동료들이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만 보아야 했다. 그게 너무나 미안해서 앞에 나설 수가 없었다. 내 상처를 걱정하는 선배들이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있어라'라고 얘기하는 걸, 마치 난 그래도 되는 양 합리화의 수단으로 삼았던 것 같다.

잊으려 했다.
잊고 싶었다.
하지만 8년 전 기억을 더듬어가며 인터뷰를 하면서 깨달았다. 
세상엔 절대 잊을 수 없는 것들이 있구나.
난생 처음 유치장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고,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여 검찰청으로 향했던 그 날. 봄이 왔는데도 유난히 차가웠던 검찰청 유치장 바닥의 한기는 절대로 잊힐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일제시대,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옥살이한 독립투사도 아니었다. 
군부독재시절,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 옥살이한 민주투사도 아니었다.
난 역린을 건드렸고, 저잣거리에 수배 명령이 내려져 결국 잡혀간 역적이었다. 2009년의 일이었다.

<공범자들>을 보며 2시간 내내 울었다. 아니, 오열했다. 그리고 며칠 정신적 몸살을 앓은 끝에 나는 내 생각이 틀렸다고 결론 내렸다. 나는 잊으려 하지 말고 기억하려고 했어야만 했다. 그들이 < PD수첩>을 시작으로 MBC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9년간의 일들을 영화는 낱낱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MBC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는지, 그 과정을 다시 복기해보기로 했다.

13일 밤 MBC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2'를 방송했다.

2009년 4월 13일 MBC <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2' 방송 화면ⓒ MBC


# 기억 1

2008년 4월, 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을 비판하는 방송을 했다. 나는 '광우병' 방송이라는 말을 아주 싫어한다. 이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협상을 비판하기 위해 만든 방송이, 광우병의 위험성을 과장하고 반정부 시위를 일으키도록 선동한 방송으로 둔갑하는 데에는 "광우병 방송"이라는 프레임이 매우 주효했다.

이 방송 안에는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한 새로운 사실은 없다. 이미 노무현 정부 때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던 광우병에 관한 내용들이 방송의 자료가 되었다. 오히려 새로운 사실은 협상 과정에서 발견했다. 하나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봐 협상 날짜를 숨기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외교통상부 문서인 '한미정상회담 핵심 의제'에 의하면 이미 'OIE기준(전 월령 쇠고기 수입)에 따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허용'이라는 방침을 정했다는 사실이다. 

새로 출범한 정부는 성공적인 방미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해 과욕을 부린 셈이고, 그것이 국민의 건강권을 외면했다는 데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화들짝 놀라 등 떠밀리듯 재협상을 하고, 대국민 사과를 한 이명박 정부는 < PD수첩>을 조준사격하기 시작했다. 첫 사격부대는 보수언론이었다. 보수언론은 한 번역자의 말을 빌려 < PD수첩>이 번역을 왜곡했다고 연일 떠들어댔다. 초등학생도 토익, 토플 만점 받는 세상에서 방송에서 일부러 틀린 자막을 썼다는 억지 주장은 기가 찰 일이었다. 해외 공관을 통해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한 프로그램이 해당 부처의 공직자에 의해 형사 고소되는 경우가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이 탄압을 성공시키기 위해 고소가 아닌 '수사 의뢰'라는 방식을 택한다.

검찰이 25일 밤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을 보도했던 이춘근 PD를 체포한 가운데, 검찰이 체포하려는 김보슬PD가 26일 오전 여의도 본사 로비에 마련된 농성장에서 '이춘근 PD 구속 규탄 MBC 노조 비상총회'를 지켜보고 있다.

검찰이 2009년 3월 25일 밤 MBC <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을 보도했던 이춘근 PD를 체포한 가운데, 김보슬PD가 26일 오전 여의도 본사 로비에 마련된 농성장에서 '이춘근 PD 구속 규탄 MBC 노조 비상총회'를 지켜보고 있다.ⓒ 권우성


# 기억 2

< PD수첩>은 보수언론과 검찰의 협공에 무참히 짓밟혔다. 졸속 쇠고기 협상을 책임져야할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만든 언론인들을 명예훼손과 업무방해로 '수사의뢰'를 하면서 나는 프로그램이 갈기갈기 찢기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해야만 했다. 프로그램의 본질인 '졸속 협상'은 온데 간데 없어졌다. 번역과 멘트 실수는 광우병의 위험성을 과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둔갑했고, 나를 포함해 이춘근 선배, 조능희 선배, 송일준 선배, 그리고 김은희 작가까지 수사대상에 포함되어 공동의 핍박 운명체가 탄생했다. 

나는 괴로움에 잠을 잘 수조차 없었다. 밤새 사무실 소파에서 뒤척이다 눈을 뜨면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신문 1면에는 왜곡, 편파, PD수첩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어떻게 해야 왜곡 편파 < PD수첩>이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신문을 들고 MBC 옥상에서 뛰어내려 목숨 줄을 끊어야만 그게 증명이 될까... 유서를 쓰고 죽음으로 이야기하면 내 억울함이 증명될까, 사무실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몇날 며칠을 고민했다. 내 실수들이 91년부터 시작된 < PD수첩> 역사에 "편파 왜곡 방송"이라는 오명을 남기게 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웠다. 그것이 이명박 정부의 언론 탄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저들이 꼬투리잡지 못할 정도로 아주 완벽한 방송을 하지 못했다는 후회는 내 속을 갉아먹고 있었다. 저들이 노린 위축 효과는 절묘하게 나를 흔들고 있었다.

검찰이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보도와 관련해 8일 오전 MBC본사 압수수색을 시도한 가운데, 출입구를 봉쇄한 MBC 노조원들과 검찰 수사관들이 대치하고 있다.

검찰이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보도와 관련해 2009년 4월 8일 오전 MBC본사 압수수색을 시도한 가운데, 출입구를 봉쇄한 MBC 노조원들과 검찰 수사관들이 대치하고 있다.ⓒ 남소연


# 기억 3

2009년 2월, 임수빈 검사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 PD수첩> 기소에 반대하며 수뇌부와 갈등을 빚다가 결국 사표를 던진 것이었다. 다시 수사팀이 꾸려졌다. 3차례 소환장을 보낸 검찰은 곧이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나는 회사에서 검찰수사에 항의하는 농성을 시작했다. 교체된 수사팀은 달랐다. 내 발로 걸어가거나, 잡혀가거나 둘 중에 하나여야 끝이 난다는 걸 알았다. < PD수첩> 방송이 정운천 전 장관과 민동석 협상대표의 명예를 훼손했는지 수사하기 위해 한미 쇠고기 협상의 내막을 밝히고자 했다면 내 발로 걸어갈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수사는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 PD수첩>의 방송을 낱낱이 해부해 왜곡방송으로 만들고자 하는 수사였다. 

2층 침대 3개가 있던 숙직실에서 나는 장기투숙자가 되었다. 아침에 샤워를 하고 나면 분장실에 가서 머리를 말렸다. 처음엔 낯설어하던 분장실 직원들도 날마다 드나드는 나에게 아는 척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암투병중이던 아버지를 모시고 몸보신을 해주겠다며 주말마다 음식을 싸오셨다. 어느 날엔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들고 오셔서 백숙을 해먹은 기억이 있다. 아버지가 뭐라고 하셨는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베트남 파병을 다녀오고 평생 보수적이라고 스스로를 이야기해온 아버지가 한숨 쉬며 나를 바라봤던 그 얼굴만 흐릿하게 남아 있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를 다룬 MBC 'PD수첩'과 관련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체포된 김보슬 PD가 수갑을 찬 채 16일 오전 서울 서초경찰서를 나와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되고 있다. 김 PD는 오는 19일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는 예비신부로 15일 밤 결혼식 준비를 위해 시댁을 방문했다가 검찰 수사관들에게 체포됐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를 다룬 MBC 'PD수첩'과 관련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체포된 김보슬 PD가 수갑을 찬 채 2009년 4월 16일 오전 서울 서초경찰서를 나와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됐다.ⓒ 유성호


# 기억 4

그렇게 한 달을 훌쩍 넘겼다. 결혼식을 앞두고 있던 나는 회사 밖을 나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내 발로 회사 밖을 나가면 나는 체포되는 거였다. 내가 회사 안에서 농성을 시작하면서 함께 있어 주었던 선배들과 후배들에게도 미안했다. 그동안 잘 버텨왔는데...압수수색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지켜주던 분들에게 나 혼자 굴복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가족들 얼굴도 떠올랐다. 하지만 어떤 명분도 나의 선택을 대신해줄 순 없었다.

4월 15일, 결혼식 4일전 나는 회사 밖을 나섰다. 결혼식 준비를 미처 하지 못한 채 농성을 시작했던 탓에, 나는 가장 먼저 드레스를 고르고 예물을 골랐다. 웨딩촬영 후 주인을 기다리고 있던 사진도 찾았다. 그리고 초저녁쯤, 박길배 검사가 전화를 했다. 이제 대충 준비 되었으면 가자고 했다. 처음엔 나름 날 배려해줬구나 싶었다. 하지만 검찰청으로 가는 동안 여자 수사관이 얘기했다. 날 계속 놓치는 바람에 하루 종일 밥도 못 먹었다고. 그럼 그렇지. 

지난달 25일 검찰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던 'PD수첩'의 이춘근 PD가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웨딩프라자에서 열린 김보슬 PD와 조준묵 PD와의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를 하고 있다.

'PD수첩'의 이춘근 PD가 김보슬 PD와 조준묵 PD의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를 하고 있다.ⓒ 유성호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다룬 MBC 'PD수첩'과 관련한 명예훼손 혐의로 김보슬 PD가 결혼식을 사흘 앞두고 검찰에 체포된 가운데, 1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다룬 MBC 'PD수첩'과 관련한 명예훼손 혐의로 김보슬 PD가 결혼식을 사흘 앞두고 검찰에 체포된 가운데, 2009년 4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유성호


# 기억 5

검사들은 준비된 질문지를 읽어나갔다. 나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명예훼손 및 업무 방해. 우리의 죄목은 그것이었다. 번역을 잘못한 이유를 물어봤다. 대답하고 싶었다. 번역 감수까지 받고 내보낸 그대로인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줄 알았다면 다른 번역가를 쓸 걸 그랬다고. 아레사 빈슨이 인간광우병 의심진단을 받았는지 물어봤다. 대답하고 싶었다. 그렇게 궁금하면 전화번호 줄 테니 가족들에게 직접 물어보지 그러냐고. 왜 미국에서 직접 인터뷰한 사람들 답변을 쓰지 않고 방송에 나온 여론조사 내용을 그대로 썼냐고 물어봤다. 대답하고 싶었다. 몇 사람의 인터뷰보다 방송에 나온 여론조사 내용을 그대로 쓰는 게 더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우리의 프로그램은 그렇게 난도질당했다. 왜 이런 인터뷰를 썼는지, 왜 자막은 그렇게 넣었는지, 우리는 심지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도 하지 않는 질문들을 '검사'들로부터 받아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 검사들에게 < PD수첩>은 반드시 '편파, 왜곡 방송'이어야 했으니까.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엄중한 임무였으니까. 

# 기억 6

유치장에서의 첫날 밤. 아무 말 없이 경찰관이 따뜻한 녹차 한 잔을 창살 사이로 건네주었다. 그걸 받아 마시며 애써 아무하고도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공소시효 만료 하루를 앞두고 들어온 사기 피의자 아주머니 한 분이 자꾸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무슨 일로 여기 들어왔냐고. "방송 잘못했다고 잡혀 들어왔어요"라고 마지못해 대답을 했더니, 자기 자신의 억울한 이야기를 하려던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며 얘기했다. "요즘도 그런 경우가 있어요?" 그러게요. 그런 경우가 있네요...

날이 밝았다. 다시 검찰청으로 조사를 받으러 가야하는데 바깥이 시끌시끌했다. 경찰관이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포승줄을 감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라고 반항해봤지만, 매우 곤란하다는 듯이 규정이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밖에는 MBC 선후배들이 서초경찰서 로비를 꽉 메우고 있었다. 나도 뭐라고 멋지게 한마디 외치고 싶었는데, 소리치는 선후배들, 그리고 지금의 남편의 얼굴을 보자 쏟아지는 눈물을 삼키느라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호송차에 태워진 후, 검찰청에 도착해 나는 교도소 독방같이 생긴 검찰청 유치장에 "보관"됐다. 꽃샘추위가 채 가시기도 전, 그 차가운 독방 안에서 나는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마지못해 수사하는 거라며 투덜거리던 한 검사의 푸념이 떠올랐다. 이 모든 시나리오가 이명박 정권의 보복이자 전 언론인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다룬 MBC 'PD수첩'과 관련한 명예훼손 혐의로 김보슬 PD가 결혼식을 사흘 앞두고 검찰에 체포된 가운데, 1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09년 4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유성호


# 기억 7

이춘근, 조능희, 송일준 선배와 김은희 작가, 그리고 막내작가까지 모두 수사를 받고 난 후, 우리는 검찰의 대대적 수사발표와 함께 기소됐다. 그리고 모두가 형사재판정에 서야만 했다. 1심 재판 과정 내내 검사들은 억지수사, 억지기소였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듯했다. 치열했던 1심 재판은 수개월이 지난 후에야 끝이 났다. 판결문 일부를 첨부한다.

피고인들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특히 광우병 위험성과 피해자들이 공적 지위에서 수행한 이 사건 쇠고기 수입협상의 결과 및 그 과정상의 문제점에 대하여, 이 사건 보도 당시 다우너 소 동영상 공개 및 그에 이은 사상 최대 규모의 리콜조치, 인간광우병 의심환자 사망, 현재 미국이 시행하고 있는 광우병 위험통제 정책만으로는 광우병 위험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는 국내외 전문가들의 평가 등을 감안하면 광우병 위험으로부터의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관하여 의구심을 가질 만한 충분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고, 당시까지 알려진 과학적 연구결과와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 등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비판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인들이 이 사건 보도를 통하여 피해자들이 수행한 '이 사건 쇠고기 수입협상'이라는 정부 정책을 비판한 행위는 언론의 자유의 중요한 내용인 보도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 볼 것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이 사건 쇠고기 수입협상을 수행한 피해자들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될 수 있다고 하여 바로 피해자들 개인에 대한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거나 그러한 고의가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 

# 기억 8

아버지는 무죄 판결을 보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손주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 날이었다. 그 손주는 10달 내내 엄마 뱃속에서 재판정을 드나들어야 했다. 나는 만삭의 몸으로 항소심 재판정에 몇 시간씩 앉아 있었다. 힘들었나보다. 재판 다음 날 양수가 터져 보름 일찍 아이를 낳았다. 마지막 대법원 판결 후, 김재철 사장은 편법으로 < PD수첩> 사과방송을 내보내며 이명박 정권을 보도의 피해자로 만드는 피날레를 장식했다. 정운천 전 농림수산부 장관은 그 이후,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민동석 전 협상대표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을 하다가 박근혜 정부 때 아시아 중동지역 협력대사직에 임명되었고, 현재는 사임한 상태다. < PD수첩>을 수사했던 전현준 당시 부장검사는 이명박근혜 정부 내내 요직을 차지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더불어 사표를 냈다. 수사검사였던 박길배 검사는 수원지검 특수부장으로, 김경수 검사는 공주지청장으로, 송경호 검사는 서울 중앙지검 특수 2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김장겸-고영주 풍자하는 MBC노래패 4일 오전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에서 언론노조 MBC본부 서울지부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총파업 첫째날 집회가 열리고 있다. MBC노래패가 김장겸 사장과 고영구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가면을 쓰고 풍자 공연을 하고 있다.

▲ 김장겸-고영주 풍자하는 MBC노래패4일 오전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에서 언론노조 MBC본부 서울지부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총파업 첫째날 집회가 열리고 있다. MBC노래패가 김장겸 사장과 고영구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가면을 쓰고 풍자 공연을 하고 있다.ⓒ 권우성


많은 이들이 나를 두고 탄압의 상징적 인물이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지난 2009년 권력을 총동원한 뭇매를 맞고 자발적 기억상실증에 걸렸었다. 나에겐 그 이후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다. 8년이 지난 지금, <공범자들>을 보고 난 뒤, 모든 걸 다시 기억한다.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그리고 MBC를 장악하기 위해 어떻게 < PD수첩>을 짓밟았는지. 

우리는 그렇게 망가지기 시작해 겨우 숨만 쉬고 있는 MBC를 되살리기 위해 다시 파업의 길로 나섰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내 기억을 공유한다.

김보슬 MBC PD

김보슬 MBC PDⓒ 이영광


* 김보슬 PD는 2003년 MBC 입사해 2008년 < PD수첩 -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을 방송한 뒤 부당한 검찰 수사에 불응하다 결혼식 전 체포 , 3년에 걸친 재판 끝에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MBC 유배지에서 받은 조롱... 모욕감에 퇴근하다 통곡도

[어게인 MBC③] 5년간 취재에서 배제된 김수진 기자 "시민들 편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세 번째 글은 2012년 파업 이후 사측으로부터 '잉여인력'으로 취급되어 경인지사, 드라마마케팅부,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구로) 등 유배지를 전전하며 5년 동안 단 한 번도 취재현장으로 복귀하지 못한 MBC 김수진 기자입니다. 

MBC 김수진 기자가 4일 낮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김재철 사장, 권재홍 보도본부장, 이진숙 기획조정본부장 아웃!"이 적힌 피켓을 들고, 해고된 박성호 기자회장, 이용마 노조홍보국장 등 동료기자 복직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2년 파업 당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김재철 사장, 권재홍 보도본부장, 이진숙 기획조정본부장 아웃!"이 적힌 피켓을 들고, 해고된 박성호 기자회장, 이용마 노조홍보국장 등 동료기자 복직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벌였던 김수진 기자.ⓒ 권우성


문득 지난 5년을 되돌아본다. 2012년 겨울에 시작해 여름에 끝을 본, 가장 길었던 총파업은 성공하지 못했다. 조합원들은 흩어졌다. 노조 집행부에겐 해고와 정직 등 징계가 내려졌고, 적극가담자로 분류된 조합원들은 대기발령을 받거나 신천교육대로 쫓겨났다. 회사는 집요하게 직원들을 솎아냈다. 

핀셋으로 뽑아내듯 정확하게 파업에 참여했던 조합원들을 집어내 인사발령을 냈다. 경인지사나 용인 드라미아 등 방송을 하지 않는 부서로 기자와 피디, 아나운서들을 하나둘 발령내다 더 이상 보낼 곳이 없어지자 회사는 2014년 가을, 파업 참여자들을 보낼 부서를 아예 새로 만들었다.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구로), 신사업개발센터(여의도), 미래방송연구소 등 화려한 이름의 수용소를 세우고 수십명을 쫓아냈다. 아나운서와 기자, PD를 사회공헌실, 마케팅부, 심의실, 사업국으로 보내기도 했다. 이 인사에서 백여 명의 조합원들이 본업을 빼앗기고 부당전보됐다. 백여 명을 내쫓았지만 인사발령의 이유는 없었다. 2012년 파업에 참여했다는 사실 이외에는. 

2012년 파업에 대한 보복

개인적으로 나는 이때 드라마본부 드라마마케팅부로 전출됐다. 기자로 입사해 10년 넘게 기자로 일했던 내 인사카드에 적힌 직종은 나에게 한마디 통보도 없이 드라마PD로 바뀌었다. 드라마본부로 첫 출근한 날 인사를 하자 한 보직자는 "셀럽이 나타났네"라며 조롱했다. 파업에 앞장서 사진 등이 찍혔던 것을 비꼰 것이었다. 예산 한 푼 없었지만 드라마마케팅부의 부서장은 나에게 "기자 경험을 살려 드라마 홍보를 하라"고 했다. 드라마 홍보는 그러나 기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암담했다. 너무 화가 나 퇴근길에 신호대기를 하다 통곡을 하는 날도 있었다. 다른 부문으로 쫓겨간 사람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드라마 홍보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영업을 뛰거나 시설관리를 해야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다수는 업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닌,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인 일들을 부여받았다. 이어 진행된 인사평가에서는 대부분의 부당전보자들에게 최하등급인 R과 N이 부여됐다. 한때는 동료였던 어떤 부장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며 "어쩔 수 없었다"고 최하등급 부여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연속해서 R을 받은 사람에게는 "상사에게 인정 받는 법" "대인관계 향상 스킬" 등의 교육을 받게 하며 모욕감을 줬다. 

박경추 아나운서 - 김수진 기자, 'MBC블랙리스트' 탄압 사례 발표 MBC 박경추 아나운서와 김수진 기자가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언론노조 MBC본부 사무실에서 열린 ‘MBC블랙리스트 진짜 배후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해임 촉구 기자회견’에서 노조 활동을 이유로 자신이 겪은 업무배제 등 피해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 박경추 아나운서 - 김수진 기자, 'MBC블랙리스트' 탄압 사례 발표MBC 박경추 아나운서와 김수진 기자가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언론노조 MBC본부 사무실에서 열린 ‘MBC블랙리스트 진짜 배후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해임 촉구 기자회견’에서 노조 활동을 이유로 자신이 겪은 업무배제 등 피해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권우성


요행히 보도국에 남아 자기 이름으로 뉴스를 전하던 기자들도 결국엔 대부분 마이크를 빼앗겼다. 인터넷 뉴스와 편집부서, 내근부서 등 방송 리포트를 하지 않는 다양한 부서로 쫓겨났다. 뉴스의 방향에 대해 조금이라도 불만을 드러내거나 사측의 눈 밖에 나면 바로 방출됐다. 경력기자와 사소한 언쟁을 하거나, 인사를 하지 않으면 조직 분위기를 해친다며 인사발령을 냈다. 주요 부서에는 조합원이 거의 남지 않았다. 보도국은 비정상적으로 조용해 졌고, 비정상적으로 박근혜 정부에 우호적인 뉴스가 매일 <뉴스데스크>를 채웠다. 그런 뉴스 때문인지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는 아무런 법의 제재도 받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김장겸 보도본부장은 사장의 자리에 올랐다. 

김장겸 사장은 촛불집회로 시민의 정치개혁 열망이 뜨거웠던 올해 초 사장이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던 바로 그날, 탄핵 발표가 나기 30분 전 모두가 텔레비전 화면에 눈이 쏠려 있던 그 때, 김장겸 사장은 또 한 번 핀셋 인사발령을 냈다. 탄핵다큐를 제작하던 PD 등 기자와 PD를 구로에 사무실이 있는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로 쫓아낸 것이다. 

MBC상암 사옥 집결 '총파업 승리' 다짐 ‘김장겸 체제 퇴장, 공영방송 MBC 재건을 위한 언론노조 MBC본부 합동출정식’이  4일 오후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 광장에서 전국에서 모인 2천여명의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MBC상암 사옥 집결 '총파업 승리' 다짐‘김장겸 체제 퇴장, 공영방송 MBC 재건을 위한 언론노조 MBC본부 합동출정식’이 4일 오후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 광장에서 전국에서 모인 2천여명의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권우성


MBC상암 사옥 집결 '총파업 승리' 다짐 ‘김장겸 체제 퇴장, 공영방송 MBC 재건을 위한 언론노조 MBC본부 합동출정식’이  4일 오후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 광장에서 전국에서 모인 2천여명의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유배지의 고통... 모욕감은 나눈다고 작아지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세상이 바뀌는 분위기 속에 김장겸 사장의 인사폭이 매우 소심해졌다는 것이었다. 수십 명 씩 쫓아내던 전과는 달리 십여 명이 방출됐다. 나도 이 인사발령에 포함돼 드라마본부에서 구로로 쫓겨났다. 부서장은 매일 아침 사무실을 살피며 근태 체크를 했다. 아무런 업무도 주어지지 않았다. 구로 사무실의 유배 동료들은 서로 의지했지만, 모욕감은 나눈다고 작아지지 않았다. 우리는 이 부당한 행위를 더 이상 참고 견디지 않기로 했다.

마침내 총파업에 돌입해 유배지 폐쇄 선언을 하고 상암동으로 돌아오던 날, 나와 같은 처지의 유배자들이 수백명 조합원들 앞에 섰다. 울지 않겠다고 했지만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지난 5년을 요약한 영상물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리에 앉아 있던 동료들이 우리를 박수로 환영하며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에 남아있든 밖으로 내쫓겼든 우리는 다 같은 피해자였던 것이다. 

이제 이 싸움을 승리로 끝내야 한다. 한 국장급 간부는 총파업 출정식을 앞둔 4일 오전에 "싸움이 길어질수록 불리한 것은 노동조합"이라고 말했다. 김장겸 사장과 간부들은 파업이 길어지면 월급을 못 받는 조합원들이 이탈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듯하다. 끝까지 자리를 뺏기지 않겠다며 어색한 투쟁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MBC 조합원들은 5년 전 170일을 싸운 경험이 있다. 이에 더해 지난 겨울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우리 편에 서 있다. MBC는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MBC 김수진 기자

MBC 김수진 기자ⓒ 김수진


* 김수진 기자는 2001년 12월 MBC에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 경제부, 정치부 등을 거쳤으며, 아침뉴스 <뉴스투데이>와 마감뉴스 <뉴스24> 앵커로 일했습니다.

"양심 지키겠다며 퇴사한 프리랜서 앵커, 고맙고 미안해요"

[어게인 MBC②] <타블로와 꿈꾸는 라디오> 강희구 PD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었다"

두 번째 글은 MBC라디오국 강희구 PD입니다.  

MBC 라디오 PD 제작거부 돌입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 다 하지 못해”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소속 라디오국 PD 조합원들이 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 사옥 노조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장겸 사장, 백종문 부사장,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제작 거부를 결의했다. 이날 이들은 "MBC 라디오PD들의 제작 자율성은 심각하게 훼손당했고, 세월호와 위안부, 국정농단의 중요한 이슈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며 검열과 개입에 대한 사례를 공개했다.

▲ MBC 라디오 PD 제작거부 돌입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 다 하지 못해”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소속 라디오국 PD 조합원들이 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 사옥 노조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장겸 사장, 백종문 부사장,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제작 거부를 결의했다. 이날 이들은 "MBC 라디오PD들의 제작 자율성은 심각하게 훼손당했고, 세월호와 위안부, 국정농단의 중요한 이슈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며 검열과 개입에 대한 사례를 공개했다.ⓒ 유성호


- "강피디, 파이팅이여. 이번엔 쟁취할 거여."
- "부끄럽고 감사합니다. MBC 입사 이후 많이 배웁니다." 
- "좋은 직장이네. 많은 가르침을 주고."

모 신문사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문자를 받았습니다. 제 마음을, 저희 동료들의 싸움을 알고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부끄러움과 고마움입니다. 

9월 4일, 공영방송 MBC와 KBS 노동조합이 총파업을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공정한 방송을 해보겠다는 겁니다. 그동안 경영진의 이유 없는 해고와 징계, 차별과 격리로 망가져버린 방송을 다시 살려보고자 일어섰습니다. 저는 이보다 일주일 먼저 MBC 라디오국 제작 거부에 동참했습니다. 

그 이유도 다르지 않습니다. 라디오국 제 옆자리에는 방송에서 배제된 박경추 아나운서가 라디오 운행 업무를 합니다. 몇 명의 라디오 PD는 비제작부서로 밀려났습니다. 막내 PD들은 수시로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았고, 누군가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속 노란리본도 검열당하는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아이템과 진행자는 완벽한 통제를 받았습니다.

노동조합, 파업 이런 용어들이 불편하실지 모릅니다. 분명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이고, 특별히 노동법에서 구체적으로 보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저희들의 파업은 실제로 여러분께 불편을 드립니다. 방송 역사상 처음으로 MBC FM4U 음악채널 전체가 DJ없이 음악만 흐릅니다. 표준FM도 곳곳에서 파행입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만나도 좋은 방송 MBC 문화방송, 디스크자키 배철숩니다. 다시 만날 그날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 2017년 9월 4일 <배철수의 음악캠프> 클로징 멘트 중에서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페이스북에는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9월 4일 클로징 멘트가 올라왔다.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9월 4일 클로징 멘트는 큰 파장을 불러왔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MBC상암 사옥 집결 '총파업 승리' 다짐 ‘김장겸 체제 퇴장, 공영방송 MBC 재건을 위한 언론노조 MBC본부 합동출정식’이  4일 오후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 광장에서 전국에서 모인 2천여명의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앵커로서 MBC 라디오 뉴스에 참여했던 김경정 프리랜서 아나운서. 이번 파업에 지지 의사를 밝혔다.

앵커로서 MBC 라디오 뉴스에 참여했던 김경정 프리랜서 아나운서. 이번 파업에 지지 의사를 밝혔다.ⓒ MBC


종교가 없다는 DJ 배철수는 이 상황이 빨리 끝나서 하루빨리 청취자를 만날 수 있기를 누군가에게 바라봅니다. 이 상황의 결말과 무관히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 프리랜서 작가들도 '세월호', '위안부 문제'를 다룰 수 없는 방송 현실을 비판하며 PD들의 파업을 지지합니다. 라디오 뉴스를 전하는 프리랜서 앵커 김경정씨는 라디오뉴스의 편파성을 고발하고, 양심을 지키기 위해 부당한 피해를 당해야 했던 많은 MBC 사원들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퇴사했습니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고 책임지는 PD로서 이런 마음이 고맙습니다. 동시에 일상적으로 이뤄졌던 아이템 검열과 출연자 통제 그리고 동료들에 대한 부당노동행위와 인격침해를 막아내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먼저 행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물러설 수 없습니다. 막상 프로그램을 놓고 나니, 참 불안합니다. 청취자들이 다 떠나버리는 것은 아닐까하는 두려움 때문인데요. 그런 지금 동료들의 지지와 청취자 여러분의 응원 문자를 받고 있는 겁니다. 

MBC는 제게 참 좋은 직장입니다. 이곳에서 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과 노동자의 권리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존경하는 동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과 함께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면, 진심으로 사람들을 더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방송을 만들겠습니다. 공영방송 MBC의 라디오 PD로 살아간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강희구 PD MBC 강희구 PD는 < FM4U 비포 선라이즈 김소영입니다 > <타블로와 꿈꾸는 라디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등을 연출했다.

▲ 강희구 PDⓒ 강희구


* 강희구 PD는 2008년에 MBC에 입사해 <타블로와 꿈꾸는 라디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등을 연출했으며, 현재는 라디오편성사업부 소속입니다.
(9월 6일)

MBC 선후배 쫓겨날 때 침묵... 저는 겁쟁이였습니다

[어게인 MBC①] 2012년 파업 후 입사한 박창현 아나운서 "겁쟁이도 파업에 나선 이유"

첫 번째 글은 2012년 파업 이후 입사한 마지막 공채 아나운서, 박창현 아나운서입니다. 

170일간 진행된 MBC노조 파업이 끝난 뒤 사측이 '분위기 쇄신'을 이유로 PD수첩 작가 6명을 전원 해고시킨 가운데,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앞에서 한국방송작가협회 소속 작가들이 결의대회를 열고 PD수첩 작가의 해고사태를 규탄하며 원상복귀를 요구하고 있다. 이날 집회는 지난 1970년 협회가 설립된 이후 최초로 드라마, 예능, 교양, 라디오 등 모든 부분의 방송작가들이 대거 참여해 PD수첩 작가들의 전원복귀와 책임자 문책 등을 요구했다.

170일간 진행된 MBC노조 파업이 끝난 뒤 사측이 '분위기 쇄신'을 이유로 < PD수첩 > 작가 6명을 전원 해고시킨 가운데, 지난 2012년 8월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앞에서 한국방송작가협회 소속 작가들이 결의대회를 열고 < PD수첩 > 작가의 해고사태를 규탄하며 원상복귀를 요구하고 있다.ⓒ 유성호


2013년 3월. MBC 아나운서 선배들은 치열하게 공정방송을 외치며 파업에 참여한 죄로 각종 유배지에 있었다. 나는 그 무렵, 그토록 동경하던 MBC에 입사했다.  

비록 유례 없던 최장기 파업을 겪으며 망가졌다 해도 여전히 훌륭한 선배들이 있는 곳이었기에 머지않아 MBC가 회복되리라 참 순진한 생각을 하던 때이기도 했다. 하지만 파업 이후 더욱더 처절하게 망가지는 MBC를 아나운서국을 입사 후 계속 지켜봐야만 했다.

돌이켜 보면 이명박 정부는 제법 교묘했다. 4대강, 언론 길들이기, 국정원 정치개입 등을 둔감한 사람들에게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정도로 비치게 만들었다. 뒤이어 들어선 박근혜 정부는 더 노골적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블랙리스트, 언론 탄압 등 이제는 둔감한 사람들마저도 그 부당함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MBC 또 아나운서국의 수난사도 두 정부의 그것과 함께했다.

수습 기간이 끝날 무렵 뿔뿔이 유배지로 흩어졌던 아나운서 선배들이 대부분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선배들은 더 이상 마이크 앞에 설 수 없었다. 

방송 안 주고, 방송 안 한다고 저성과자 낙인 찍고  

신동진 MBC아나운서 '손석희, 박원순 인터뷰 했다고 사측 압력' MBC아나운서 27명이 김장겸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 사퇴를 촉구하며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앞에서 ‘방송거부-업무거부 돌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2년 파업 당시 한국아나운서협회장을 맡았던 신동진 아나운서가 손석희 JTBC사장(MBC출신), 박원순 시장, 해직언론인 등을 다룬 협회지 ’아나운서 저널’을 보여주며, 이 내용을 이유로 사측의 압받을 받아야 했다고 폭로했다. 업무거부에 돌입한 아나운서는 변창립, 강재형, 황선숙, 최율미, 김범도, 김상호, 이주연, 신동진, 박경추, 차미연, 한준호, 류수민, 허일후, 손정은, 김나진, 서인, 구은영, 이성배, 이진, 강다솜, 김대호, 김초롱, 이재은, 박창현, 차예린, 임현주, 박연경 이상 27명.

▲ 신동진 MBC아나운서 '손석희, 박원순 인터뷰 했다고 사측 압력'MBC아나운서 27명이 김장겸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 사퇴를 촉구하며 지난 8월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앞에서 ‘방송거부-업무거부 돌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2년 파업 당시 한국아나운서협회장을 맡았던 신동진 아나운서가 손석희 JTBC사장(MBC출신), 박원순 시장, 해직언론인 등을 다룬 협회지 ’아나운서 저널’을 보여주며, 이 내용을 이유로 사측의 압받을 받아야 했다고 폭로했다. 업무거부에 돌입한 아나운서는 변창립, 강재형, 황선숙, 최율미, 김범도, 김상호, 이주연, 신동진, 박경추, 차미연, 한준호, 류수민, 허일후, 손정은, 김나진, 서인, 구은영, 이성배, 이진, 강다솜, 김대호, 김초롱, 이재은, 박창현, 차예린, 임현주, 박연경 이상 27명.ⓒ 권우성


4일 오전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에서 열린 언론노조 MBC본부 서울지부 조합원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연대발언 중인 타 방송사 노조위원장의 익살에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4일 오전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에서 열린 언론노조 MBC본부 서울지부 조합원 총파업 결의대회. 네번째 줄 가운데에 박창현 아나운서가 보인다.ⓒ 권우성


MBC의 얼굴이자 목소리였던 선배들은 철저하게 시청자들로부터 격리되었다. 자꾸 '위에서 결재가 안 난다', '아직은 시기가 아니다' 같은 이유로.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선배들이 파업의 주동세력으로 찍혔기 때문이었다. 회사의 만행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인재의 외부 유출을 막고 우수한 사원들에게 혜택을 준다는 명목 하에 5등급의 인사 평가제가 도입되었다. 제법 그럴듯한 이유로 등장한 인사 평가제는 곧바로 부역자들에게는 승진과 금전적 혜택을 주었고, 눈 밖에 난 이들에게는 '저성과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R(최하등급)을 받는다는 것은 주홍글씨와 같았다. 방송에서 철저히 배제하고는, 방송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능력이 없다' 평가했다. 그리고 '당신이 받지 않으면 다른 선후배가 받아야 한다'며 선배들에게 의무적으로 R등급이 찍혔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R등급을 받은 선배들이 방에서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는 아예 평과결과와는 무관하게, 그냥 권력자의 눈 밖에 나면 별 이유 없이 쫓겨났다. 도대체 나를 전출 시키는 이유가 뭐냐 묻는 선배에게 국장은 '그런 건 이야기 해주지 않아'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 곳에서 생활하는 하루하루가 숨 막혔다. 그 무렵 쓴 일기장에는 이런 고민이 가득했다. 

"어느 날 방에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숨소리조차 조용한, 아무도 이야기 나누지 않고 각자 조용히 벽만 바라보거나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는 풍경. 이곳이 정말 아나운서들이 생활하는 공간인가 싶었다. 회사가 방송에서 우리에게 침묵을 강요했고 이제는 이곳에서마저도 침묵이 일상화가 되었구나." - 2016년 9월 일기 중 

권성민 MBC PD가, 징계 시절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사측에서 문제로 삼았던 웹툰.

권성민 MBC PD가, 징계 시절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사측에서 문제로 삼았던 웹툰.ⓒ 권성민


나보다 1년 먼저 MBC 예능국에 입사한 권성민 PD와는 대학 때부터 친구였다. 2012년 파업 당시, 나는 아직 준비생이었고, 그때부터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성민이는 "평상시에 예능은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휴식, 위안을 줄 수 있지만 지금처럼 사회가 비정상일 때 예능은 자칫 그 비정상을 덮고 가리는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고민을 종종 털어놨다. 성민이는 새내기 PD 시절에도 그런 문제의식을 가진 친구였다. 

2013년, 나는 꿈에도 그리던 MBC에서 '설마 MBC에서 그런 일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싶은 일들을 직접 목격했다. 하나둘 선배들이 회사를 떠났고 쫓겨났다. '세월호 보도 참사'가 벌어졌던 그 무렵, 성민이에게 전화를 걸어 한참 회사 욕을 하며 한풀이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날 새벽, 성민이는 인터넷에 '엠X신 피디입니다'라는 글을 썼다. 내용은 처절한 자기반성이었다. 정작 반성해야 할 사람들이 반성하지 않자, 입사 3년차 피디가 시청자들에게 사과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성민이는 예능국에서 쫓겨났다. 유배지로 부당전보 당했고, 유배지 생활을 그림으로 그려 SNS에 올렸다가 결국 해고됐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했는데, 그는 당당하게 '틀렸다'고 외쳤을 뿐이었다. 정작 언론의 입이 되어야 할 아나운서인 나는 침묵하고 있었다.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난 그 시절, 겁쟁이었다. 

친구의 해고, 선배의 징계... 나는 겁쟁이가 됐다

회사를 상대로 한 정직 및 해고 무효 소송 1심에서 승소한 MBC예능국 권성민 PD가 25일 오전 마포구 MBC상암사옥 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권PD는 지난해 <오늘의 유머>에 세월호참사 관련 보도를 비판한 '엠병신 PD입니다'는 글을 올렸다 정직 6개월 징계를 받았고,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예능국 이야기>(일명 유배툰)를 올렸다가 해고를 당했다.

회사를 상대로 한 정직 및 해고 무효 소송 1심에서 승소한 MBC예능국 권성민 PD가 지난 2015년 9월 25일 오전 마포구 MBC상암사옥 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권PD는 지난해 <오늘의 유머>에 세월호참사 관련 보도를 비판한 '엠병신 PD입니다'는 글을 올렸다 정직 6개월 징계를 받았고,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예능국 이야기>(일명 유배툰)를 올렸다가 해고를 당했다.ⓒ 권우성


성민이가 해고까지 당하자 더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가장 믿고 따르던 선배인 오승훈 아나운서에게 내 고민을 털어놨다. 그때 선배는 내게 "잊지 말자"고 했다. 그리고 "늘 깨어있자"고 했다. 비록 지금 당장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더라도 끊임없이 생각하며 옳고 그른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고민하자고 했다. 그렇게 선배에게 위안을 받으며, 나는 내 용기없음에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며칠 뒤 승훈 선배는 회사 게시판에 경영진을 향해 '권성민 PD의 해고를 재고해 달라'는 글을 썼다. 날카로웠지만 정중했고, 품위 있는 글이었다. 하지만 선배는 그 글로 인해 빨갱이로 낙인 찍혔고, 결국 아나운서국에서 쫓겨났다. 선배가 쫓겨나던 날 밤, 승훈 선배를 붙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하지만 정작 선배는 "괜찮다"고 했다. 가장 힘든 건 선배였을 텐데, 나는 고작 미안함과 상실감에 울었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겁쟁이가 되었다.  

손정은 선배는 마주치지도 못했던 고위 임원에게 인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송에서 철저히 배제됐고, 이후 아예 아나운서국에서 쫓겨났다. 라디오국 이대호 선배(PD)는 사내 게시판에서 보도부장의 글에 반박 글을 달았다가 비제작부서로 쫓겨났다. MBC에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전부 옮겨 적을 수 없을 정도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동시에 "아버지는 잘 지내시니?"라는 안부 인사가 권력에 아부하는 자들 사이에서 오갔다. 권력자와 부역자들은 주거니 받거니 그들만의 잔치를 반복했다. 난 그 속에서 침묵한 대가로 험한 꼴을 면했다. 하지만 그들은 겁쟁이조차 분노하게 했다. 나는 분노를 넘어 패배감을, 자괴감을, 창피함을 느꼈다. 5년 동안 침묵했던 겁쟁이도, 닫힌 입을 열고 떠들게 했다. 

난 참 많은 빚을 졌다. 회사 동료들에게, 아나운서 선배들에게,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박창현 아나운서

ⓒ 박창현


(9월 5일)


더는 이런 비극이 MBC 안에서 벌어져서는 안 된다. 이제 와 용기 냈다고, 지난 부채의식을 던질 수는 없다. 지난 5년의 침묵은 부채의식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함께 싸우며, 조금이라도 갚아나갈 것이다. 먼저 용기 내 상식을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탄압받은 동료들을 위해, 당당한 MBC 구성원으로서의 주어진 역할을 다 할 것이다.

* 박창현 아나운서는 2013년 MBC에 입사해 오전 5시 뉴스, 경제매거진M 등을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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