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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혼은 꽃비 되어-어느 동성애자의 죽음
게시물ID : readers_298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oull00
추천 : 1
조회수 : 53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0/01 19:15:13

많은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노동운동의 효시를 전태일 열사의 분신에서 찾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효시를 이 사건에서 찾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느 동성애자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003426, 한 청년(실명을 알고 있지만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20살의 나이로 동성애자인권연대(약칭 동인련, 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목을 매어 자살합니다. 그는 생전에 육우당(이 이름은 그의 여섯 친구인 술, 담배, 녹차, 파운데이션, 수면제, 묵주에서 따왔습니다.), 설헌(허난설헌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미동, 동화, 항아. Catholic84, 안토니오(그의 세례명입니다.) 등의 많은 이름으로 불리어 왔습니다. 이 이름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그의 부모님처럼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한 말은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되겠느냐였으니까요.

그가 스스로 이반’(동성애자)임을 자각한 것은 중학교 3학년 겨울부터였습니다. 추정컨대 묵주를 가장 좋아할 정도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기에 더 고민스러웠을 테지요. 고등학교 시절은 성적 지향 때문에 학교생활도 평탄치 않았습니다. 커밍아웃을 한 이후, 그는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학교폭력에도 노출되었습니다. 또한 절친했던 친구들과 관계가 단절되었고, 소수의 친구만이 그와 연락을 계속했습니다. 그가 지나갈 때마다 멸시와 편견, 수군거림이 계속되었고, 일부 친구들은 그를 괴물 취급하며 기피했습니다. 그는 각종 봉사활동에 몰두하며 위안을 삼았지만, 멸시와 폭언과 수군거림은 계속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그는 사춘기 때부터 우울증에 시달려왔다고 합니다. 그의 우울과 허무는 부모가 따로 사는 가정환경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평소 신경이 예민했고 감수성이 섬세했던 그는 사춘기 무렵부터 불면증에 시달려 수면제를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로도 그는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가 고등학교를 결석하는 일이 잦아지자, 부모는 그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게 했습니다. 그는 12주일에 한 번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았습니다. 진료에서 그는 자신이 정신병자가 아니라고 거듭, 반복해서 답했습니다. 성적 지향은 약물을 복용하고 주사를 맞는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에게는 약간의 신경안정제와 우울증약이 주어졌지만, 그는 투약을 거부하고 자신이 정신질환자가 아님을 설명했지만 묵살 당했습니다. 그는 "담당 선생님이 아버지에게 이 곳에서 치료를 받는다고 해서 이성애자가 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혹시 그런 기대를 하고 오신 건가요?” 라고 했다. 의사 말이 맞다. 난 이성애자가 될 수 없을뿐더러 되고 싶지도 않다. (중략) 난 내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른손잡이가 있으면 왼손잡이가 있는 것이고 이런 길이 있으면 저런 길도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가장 많이 다니는 길'을 걷는다면 난 단지 인적이 드문 길'을 걷고 있는 것뿐이다." 라고 자신의 일기에 썼습니다.

그는 200212, 졸업 직전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고등학교를 그만뒀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제대로 하려면 대학 가서 공부해야 한다.”며 아들의 성적 정체성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대학 진학의 꿈을 꾸고 문학을 전공하기 위해 시집, 문학선 등을 탐독했습니다. 자퇴 이후 그는 청소년이라는 위치 때문에 학교를 나와서 돈을 벌기도 힘들었고, 무엇보다 자신을 긍정하고 존중하기에는 현실이 너무나 가혹해 많이 괴로워했습니다. 그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아르바이트와 노동으로 생활비를 조달하였고, 자신의 월급 중 일부를 동인련에 후원했습니다.

그는 학교에서도 늘 외로움을 느꼈고, 불필요한 간섭과 불필요한 참견, 그리고 배타성과 폐쇄성, 따돌림에 괴로워했습니다. 그의 글씨체는 그가 처한 상황만큼이나 비뚤어졌고, 그는 그런 글씨체로 다른 동급생들의 눈을 피해 몰래몰래 한 줄 두 줄 편지를 써 내려갔습니다. 2002년 가을, 동인련의 상근 회원인 정욜은 힘내라는 말과 함께 자신도 활동이 가능하냐는 내용이 담긴 편지와 함께 푸른색이 보일까봐 종이로 감싸진 후원금 2만원을 받습니다. “어린 친구가 그러는 게 너무 기특해서,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다녔어요.” 정욜은 그런 편지를 받은 건 처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동인련의 인터넷 회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20021231일 동성애자인권연대 송년의 밤에 처음 참석했습니다. 정욜은 "그와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했지만 분명 기억하는 것은 설헌이라는 닉네임으로 자기를 소개한 것. 찰랑거리는 귀걸이와 화장기 어린 얼굴, 곱슬머리에 작은 체구. 그리고 주변 분위기를 유쾌하게 주도하던 그의 밝은 표정이었다. 그는 그렇게 우리와 처음 만났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는 모임에 나왔을 때 비단조끼 옷을 입고, 화려하고 고전적인 귀걸이를 걸고 나타났습니다. 그 때문에 귀걸이는 한동안 그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물건이었습니다.

그 뒤로 그는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던 한 달여를 제외하고 동인련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도 몸과 마음은 늘 동인련에 있었습니다. 그 시절, 사무실에 출근한 동인련 활동가들은 기름난로 하나뿐이던 사무실에서 돗자리 하나 깔고 잠을 자는 그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끼니를 거르는 일도 종종 있었지만 자신을 알아보고, 차별하는 사람이 없는 서울 생활이 오히려 심리적으로 편했습니다. 그는 서울 생활이 편한 이유는 모두가 서로 낯선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신이 동성애자이더라도 차별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거듭 역설했습니다.

이후 그는 다니던 일과 아르바이트를 접고 반전 평화 집회, 동성애자 모임, 성매매 여성의 성노동자 집회 등에 꾸준히 참석하면서 인권 운동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곽이경 등과 함께 서울 동대문 시장을 찾아 무지개 깃발을 만들기 위해 색색의 천을 사기도 했고, 그 천을 들고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에도 참가했습니다. 그 깃발을 들고 반전집회에 나가던 날, 그는 남은 빨간 천을 예쁘다며 몸에 둘렀다. 한 활동가는 "무지개 깃발 아래 모였는데, 하필 빨간색 천을 두르고 있으니 사람들이 너무 튄다며 만류했지만 그는 그대로 있었다. “, 나 추운데 안아줘.” 동성애자인 걸 들킬까봐 누구도 그의 말을 들어줄 수 없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이런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일부 기독교계였습니다. 200345일 당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청소년 보호법 시행령 7조의 ‘(청소년) 유해매체 심의 기준에서 동성애를 명시한 조항이 헌법상 행복 추구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반발하면서 동성애를 죄악으로 규정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성명서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동성애를 창조질서의 도전이자 가정 해체의 원인이고, 에이즈 등의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성애자를)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로 심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일부 기독교의 동성애에 대한 반발과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는 일부 매체의 반동성애 보도기사에 분개했습니다. 그는 동성애가 유해 단어라는 편견, 동성애가 전염병이라는 일부의 주장에 맞서 인터넷과 오프라인에서 논쟁을 벌이며, 동성애가 전염병이 아니며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범죄가 되는가,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유해한 것이냐고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한기총, 기독교 단체들의 견해에 반대하는 반박 글을 중앙일보 디지털국회 및 동아일보, 조선일보 독자마당 등에 올렸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와 기독교계는 그의 주장을 외면했고, 일부 기독교 언론에서는 계속해서 비난 사설과 칼럼을 쏟아냈습니다. 411, 그는 그의 여섯 친구 중 묵주와 절교를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필명 중 하나인 Catholic84라는 필명을 사용하지 않기로 하고, 일부 사이트에 가입된 아이디 역시 바꿨습니다. 하지만 이틀 뒤, 밥을 먹을 때면 늘 성호를 그을 정도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난 가톨릭을 벗어나서는 살 수가 없어라는 고백과 함께 그 선언을 철회하고 십자가와 성모 마리아상을 사다 동인련 사무실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버리기로 한 Catholic84라는 필명도 다시 쓰고, 계정들도 다시 원래대로 회복했습니다. 그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편견 때문에 후회할 선택을 하였다며 잠시나마 신앙을 포기하려 했던 것을 잘못된 선택을 할 뻔했다고 회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매일 묵주 기도를 드렸습니다. 동성애자들이 멸시받지 않는 세상이 오게 해달라고. 그리고 그는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됩니다.

2003425일 금요일 오후, 그는 동인련 사무실에서 정욜 대표 외 동인련 활동가들, 경기대학교 이반(동성애자) 동아리 대표 등과 함께 저녁 늦게까지 있었습니다. 저녁식사를 한 뒤에도 51일 노동절 집회에 메이데이 성소수자 대표 참가 명단을 준비하고, 일상적인 농담과 대화들을 주고받는 등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습니다. 회원 3명은 다른 곳에 약속이 있어 오후 1930분경에 사무실을 나섰습니다. 경기대 이반동아리 대표 및 다른 회원들도 약속이 있어 출타하였다. 그는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시간이 남는다며 저녁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겠다고 말했습니다.

2003426일 토요일, 그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동 E빌딩 3305호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스스로 가방 끈으로 사무실 입구 문고리에 목을 매고 자살했습니다. 427일 아침 출근한 동인련의 상근 직원들은 문이 열리지 않아 여럿이서 문을 열다가 문고리에 목을 매고 죽은 그를 발견했습니다. 차가운 시신이 된 채 누워 있던 그의 곁에는 424일에 작성된 여러 장의 유서와 사진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현장에는 그가 마셨을 참이슬 소주 2병과 눈물에 젖은 휴지들, 책상 위에 놓은 6장의 유서와 자신의 전 재산인 34만원이 놓여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글을 읽으신 분들 중 한 가지 의문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왜 이 글을 책게에 썼을까?”

그가 죽기 2년 전인 2001년 초, 그는 시조시인회에 학생 시인 자격으로 가입했습니다. 그는 2년 동안 꾸준히 습작을 하고 시조를 투고했습니다. 그는 시조에서만큼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쓴 시조에 대해 미풍양속을 저해한다는 평이 나오자 그는 크게 좌절했습니다. 그는 편견과 인습, 미신, 그리고 구습 맹신의 잔재가 한국 사회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며 실망감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자신과 작품이 동성애자라서는 편견이 아닌 작품성과 예술성, 기교로 평가받았으면 좋겠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아마도 내가 죽기 전까지는 절대로 나는 좋은 시조시인이라고 평가받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성애주의와 금욕주의와 도덕주의를 지향하는 이런 사회에서는 이단자나 일탈자에 불과하니까.”

저는 여러분들께 그의 삶과 정체성이 담겨 있는 그의 글을 소개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의 글을 읽고 그의 삶을 기억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요. 이 글에는 그가 지은 시조 중 두 편과 그의 유서만을 싣겠습니다. 나머지 작품과 그를 추모하는 글들은 링크로 남기겠습니다.



환생

내 혼은 꽃비 되어 당신 곁에 내리는데

당신은 이런 나를 못 느끼고 계시군요.

임이여! 내 속삭임에 귀 기울여 보아요.



하소연

세상은 우리들을 흉물인 양 혐오하죠.

그래서 우리들은 여기저기 숨어살죠.

하지만 이런 우리들도 사람인걸 아나요.



유언장

 

내 전 재산을 동성애자 인권연대(동인련)에 기부하겠습니다. 제가 듣기로 어머니께서 저를 위해 적금을 들은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돈 또한 동인련에 기부하겠습니다. 이왕이면 저 죽은 뒤 제 어머니께서 동인련에 후원금을 매달 보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만 잘 될지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그렇게 해주신다면 저는 편히 눈감고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마지막 소원이니 부디 어머니께서 그렇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동인련에서 내 일기(육우당 일기)와 시조집(육우당 시조집)과 가사와 여러 편의 시와 공책(육우당 잡서)을 간직해 주셨으면 합니다. 후세 사람들에게 동성애자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알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미 사라져버린 가사가 부활하기를 바랍니다. 내가 쓴 가사가 문학적 가치는 없어도 가사부활의 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은 아비규환인 것 같습니다. 담배수면제파운데이션녹차묵주이 여섯 가지가 제 유일한 친구입니다. 그래서 육우당(六友堂)’이죠 내 세 가지 소원은 동성애자 해방 시조 부흥 가사 부활입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제 소원이 이뤄졌으면 합니다.

전 아무것도 이룬 게 없고 허무함과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가끔은 동성애자로 태어난 걸 후회하기도 했구요. 이 나라가 싫고 이 세상이 싫습니다. 이성애자 기피증도 넌덜머리나구요. 강자도 약자도 없는 그런 천국에서 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께서는 내 장례를 천주교식으로 해주세요. 난 천주교를 사랑합니다.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어요. 부디 편하게 지내세요. 어차피 사람은 한 번 죽는 거잖아요. 그리고 동인련(동성애자인권연대)에 엄마가 후원해주셨으면 해요. 동성애자 인권이 향상되면 나 같은 사람은 더 이상 없을 테죠. 더 이상 동성애자들이 멸시받아서는 안돼요.


동인련 사람들에게

지금은 어려운 일이 많지만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리라 믿어요. 매일 동성애자 해방과 시조부흥과 이미 사라진 가사가 부활되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묵주기도를 드렸는데 내 기도가 헛되지 않았으면 해요. 사무실에 있는 십자가와 성모 마리아상은 그대로 놔두세요. 하느님께서 동인련에 축복을 내려 주실 테니.


한국의 동성애자들에게

언젠가는 ……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거예요.

난 이승에서 사는 게 싫어서 이렇게 떠나가지만 여러분은 여러분의 소중한 인생을 보람되게 사세요. 난 여러분들이 유황불 심판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여러분도 하느님의 자녀니까요.


할 말이 너무 많네요. 에휴, 죽을 사람이 뭔 할 말이 이리도 많은지…… 내가 죽기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나 죽은 걸 비난할 사람이 있을 것이란 추측 때문입니다.

더러운 호모세끼 그래 잘 죽었다……

애미 가슴에 못질하는 불효자……

낙오자, 못 난놈…… 목숨을 끊다니……

 

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난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당신들, 날 비난하기 전에 이 씹스러운 사회를 먼저 비난하십시오. 당신네들이나 처신 똑바로 하고 나서 날 비난하십시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시지요.

 

난 그저 편히 쉬고 싶습니다. 동인련 식구들……

다들 수고하세요. 나 먼저 갈게요. , 누나들의 수고가 다음세대의 동성애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거 잊지 마시구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 동안 즐거웠어요.

 

, 홀가분해요. 죽은 뒤엔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죠.

‘***은 동성애자다라고요.

 

더 이상 숨길 필요도 없고 그로인해, 고통 받지도 않아요.

 

내 한 목숨 죽어서 동성애사이트가 유해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나 죽은 게 아깝지 않다고 봐요. 몰지각한 편견과 씹스러운 사회가 한 사람을 아니, 수많은 성적소수자를 낭떠러지로 내모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도 반 성격적 반인류적인지 ……

 

우리더러 죄인이라 하기 전에 자기네들이나 먼저 회개하고 이웃사랑 실천을 해야 할 거예요. (물론 내가 저세상으로 가려는 큰 이유는 우울증과 허무함이지만요. 이 사회도 싫고 …… 아비규환 아수라장 그 자체)

 

2003. 4. 24 ()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C%9C%A1%EC%9A%B0%EB%8B%B9_(%ED%99%9C%EB%8F%99%EA%B0%80)

https://www.google.co.kr/url?sa=t&rct=j&q=&esrc=s&source=web&cd=1&ved=0ahUKEwiImurClM_WAhVHxbwKHWKgC8kQFggkMAA&url=http%3A%2F%2Fwww.lgbtpride.or.kr%2Fxe%2F%3Fmodule%3Dfile%26act%3DprocFileDownload%26file_srl%3D60037%26sid%3D2b4778ac06fe022d7127169323d7bf26&usg=AOvVaw1JWc0JKits77dKIAN9G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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