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미치도록 힘들었던 군 생활의 회상
게시물ID : military_828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쓰비!!
추천 : 11
조회수 : 809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7/10/09 06:35:55

군게 다운 글 하나 써봅니다.ㅎ

01군번이고 25사단 71연대 2대대 였어요.

저희 부대는 GOP 1년, FEBA 생활 1년2개월 이렇게 하는데요.

이등병 때 자대 배치 받은곳이 바로 GOP였어요.

근데 생각해보면 GOP 생활은 낭만도 있었고, 추억도 많았고, 페바에 비하면 생활도 참 괜찮았던 것 같아요.

군대에 있는동안 정말 죽고 싶을만큼 힘들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버텼나 싶을정도로 대단했던 삶이었네요.. 그래서 나를 힘들게 했던 군생활 다섯가지 에피소드를 좀 써보려고 해요..ㅎㅎ 사실 이렇게나 고생했다는 걸 누가 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오유는 남자가 다수이니까 뭐 공감 좀 받는걸로 만족하지요...^^


1. 미친듯이 내렸던 GOP에서의 눈~!

2001년에서 2002년을 넘어가던 겨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반야 근무였는데, 아마 근무 투임할 때 쯤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한 것 같아요. 실탄을 받고 근무 투입하는데 소대장이 삽을 하나씩 더 챙겨주더군요. 그렇게 근무에 투입되어서 근무를 서다가 이전 초소 근무자가 오면 초소를 이동하는데 그날은 이동하면서 삽으로 교통로의 눈을 쓸면서 이동했어요.

그게 제 인생 최악의 하루를 알리는 시작이었어요. 그렇게 다섯시쯤 투입되었던 근무를 12시 30분경에 철수 했습니다.(아 참고로 이곳의 기온은 영하 20~35도를 넘나드는 곳이었어요.) 보통은 그렇게 근무를 마치면 해뜨기 1시간 전까지는 잠을 자는게 맞는데, 그날은 미치도록 눈이 와서 잠은 커녕 곧바로 눈삽을 들고 후방도로로 나갔어요. 근무교대자들이 제가 근무서는동안 열심히 눈을 치웠지만 눈은 계속 왔고 여전히 쌓여있었지요.

참고로 우리 소초(소대)가 담당하는 섹터의 길이가 1.6키로미터였습니다. 그곳의 눈을 밀고 퍼내고 쓸어내고 하다보니 해가 뜨더군요. 해가 뜨면 하루의 일과가 마무리 되고 아침 식사 후 잠을 자야되는데,,, 그날은 미치도록 눈이 왔잖아요.. 소초 인원 전원이 투입되어 계속해서 눈을 치웁니다. 아침밥도 안먹고... 눈을 치우다 보면 뒤로 또 눈이 쌓이고, 그러면 또 치우고... 이런 바보같은 짓을 계속 합니다.

그렇게 11시경 교대로 아점을 먹고 오후 다섯시까지 눈을 치운것 같아요.. 장장 24시간을 눈과 씨름한 듯 해요. 잠도 안자고 고작 한끼 식사만을 먹고요. 오죽하면 옆사단(28사단) 대대장이 우리 섹터에 와서 그랬대요. "너네 제발 눈좀 그만치우라고.." 아마도 우리랑 비교되어서 그런 듯해요.

모두가 ㅅㅂ ㅅㅂ 거리며 보냈던 X같은 하루였어요.ㅜ 


2. 미친듯이 내렸던 비 그리고 보수작업

2002년인가 2003년인가 연천쪽에 비가 어마어마하게 왔던적이 있어요. 살면서 그렇게 미치도록 비가 퍼부었던적이 있을까 싶을정도로요. 비가와서 임진강이 범람했었고, 이 후 인근 주민의 피해와 우리 군부대 시설의 보수는 전부 우리의 몫이었죠. 그 중 정말 힘들었던 작업이 진지 보수였어요.

임진강 근처에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참호(맞나?)가 있어요. 그곳에 토사가 다 밀려들어왔고, 그걸 퍼내는 작업이었어요. 그날은 아침 점오도 없이 후다닥 아침 식사를 하고 육공트럭에 삽과 마대자루를 싣고 아침 7시부터 작업장으로 나갔어요. 참호 상태는 허리를 접어도 못들어갈 정도로 토사가 밀려들어온 상태였어요. 그렇게 앞에서부터 진흙을 거두며 안으로 조금씩 들어갔죠. 생각해보세요. 앉아서 삽질을 수시간동안 한다고 생각해봐요. 그리고 그 많은 진흙을 마대자루에 담아 전달전달해서 밖으로 빼내는거죠. 비오고 난 여름 날씨 너무 습하잖아요. 죽도록 힘들었어요.

그렇게 작업이 마무리 된 시간이 해가 다 졌을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미친 군대같아요..ㅠ


3. 총기사열

왜 훈련보다 이게 더 힘들었을까요? 몸이 힘들었다기 보다는 아마도 정신적으로 너무 스트레스 받았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이 무슨 ㅄ같은 짓을 몇날 며칠동안 한걸까 싶어요. 총을 완전분해하고 미친듯이 닦아내요. 그러면 깨끗해지죠. 근데 더 닦으래요. 또 분해해요. 또 미친듯이 닦아내요. 하지만 먼지가 있대요. 더 닦으래요. (무균실도 아니고 당연히 먼지가 있을 수 있지..ㅜ) 그렇게 몇날 며칠을 총과 수통 방독면 등등 모든 것을 새것보다 더 새것처럼 만드는 일을 해요. 그리고 마지막 날은 새벽 2시까지 닦았던것 같아요. 온갖 말도 안되는 꼬투리를 잡아가며.. 사람 잠도 안재우고... 더 이상 닦을것도 없는데 계속해서 닦게 만들어요. 사람 미치게 하는거죠..ㅠ


4. 닁기미 준비태세

FEBA내려오면 밀린 훈련 받느라 죽어나요. 거의 매달 훈련에 2주에 한번씩 준비태세 걸렸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정말 이거 너무 힘들더라구요. 퐈스트페이스 소리를 얼마나 많이 들었으면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 멘트들이 기억나요. 준비태세 걸리면 내무반이고 창고고 모두 다 뒤집어 엎잖아요. 엎는것은 그래도 뭐 할만 하죠. 문제는 나중에 그거 정리하는게 참 그지 같은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 없는게 이미 유통기한 다 지난 군수물자들(화생방 보호의며 전투식량이며)가지고 뭐하는건가 싶어요. 최전방이 이런데 후방은 말해 뭐할까요? 나중에는 다들 익숙해져서 할만 했지만 초기엔 정말 미치는줄...ㅠ


5. 군역사에 남을 연대 RCT

우리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 모두 진급에 목마른 사람들이었어요. 혹한기니 마일즈니 유격이니 수 많은 훈련들이 있었지만 그냥 다 애들 장난 같아요. 우리 때 했던 연대 RCT에 비하면요.. 완전 FM의 표본을 보는 듯한 훈련이었어요. 냇가 건널 때 전투화 젖을까봐 돌다리 짚어가며 건너면 중대장이 ㅈㄹㅈㄹ을 했어요. 그냥 신발 다 젖도록 군인답게 걸었어요. 갑자기 적 포탄이라도 떨어지면 완전군장한 상태로 모두들 좌우 사이드로 몸을 던져요. 그렇게 연대 RCT 훈련하기 전에 우리끼리 약속하고 사전 훈련 빡시게 했지요.

9사단 백마부대랑 붙은거였는데 한번은 통제관이 그만 앞으로 가고 좀 쉬래요. 근데 우리 중대장 무전 한번 넣더니 그냥 전진앞으로 명령합니다. 통제관은 그만 가라고 하고, 중대장은 계속 공격하라고 하고.. 결국 공격하러 갔더니 9사단 아저씨들 벙 쩌가지고 밥먹고 있더라구요.. 그렇게 9사단 순식간에 제압했어요. 진짜 말도 안되게 K-4 유탄 발사기 메고 산을 넘던 우리 ㄷㅐ대 아저씨 퍼져가지고 우리가 대신 들어주기도 했고, 얼마나 빡시게 훈련시키고 긴장감 줬으면 이등병이 몰핀 주사를 고참한테 진짜로 꽂아서 의무차량으로 실려가기도 하고 그랬던 훈련이었네요.

왜 이게 군역사에 남을만 하냐면요. 워낙 압도적인 승리라 우리 연대장 기분이 너무 좋았나봐요. 잘했다고 연대 전원 포상휴가 줬어요. 말 그대로 연대원 전부다 4박5일 휴가 받았지요.



+ 에피소드

어느날 작업나가기 전에 행보관이 몇명을 부르더라구요. 보통 행보관이 차출하는 작업은 부대에 남아서 뭐 땜질하거나 만드는 일이 대부분이었던지라 좋아했었죠. 근데 왠걸 차에 타라고 하네요. 그리고 한참을 달려 어디 공장에 도착했어요.

벽돌공장이었죠. 그렇게 일일 인부로 벽돌공장에서 일했네요. 진짜 컨베이어벨트식 단순 노동의 괴로움을 맛본 하루였죠. 50분 일하고 10분 휴식. 한순간이라도 멍때리면 안되는 그런 노동...

그리고 며칠 뒤 왜 그곳에 갔었는지 의문이 풀렸어요. 우리 대대로 벽돌이 한가득 도착했고, 그 벽돌로 대대장 관사 증축 공사를 했지요. 당시에는 이게 부조리한건지도 모르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군대라는 곳이 그렇잖아요. 이성적 사고를 마비 시키고 그냥 까라면 까고, 말도 안되는 일들도 말이 되게 만들어야 되는.....


21세기에 군생활 했던 저도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황당했던 군대의 경험들로 넘쳐나는데, 우리 선배들은 정말 얼마나 힘들었을지....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