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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와 술을 마셨다.
게시물ID : freeboard_16646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iar*
추천 : 3
조회수 : 15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1/19 15:58:36

어젯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셨다.
올해는 술을 줄이기로 다짐했던만큼 술 한 잔 한 잔이 쓰게 느껴졌다

여느 술자리와 마찬가지로 단 둘이 술잔을 기울일 때면
여럿이 모여있을 때와는 달리 분위기가 사뭇 무거워지는 때가 오기도 하는데
어제가 그러했다. 
무거운 분위기에 맞춰 친구의 하루하루 이야기들이 거칠게 풀어졌다. 
몇 년 있으면 30이 될 나이. 어떤 일이든 쉬운 일은 없지만, 어렵게 번 돈이 쉬이 빠져나가는게 일상이었다.

이 친구는 뚜렷한 목표도 없고, 공부에 큰 열정은 없었지만 수업시간엔 졸지 않아 중상위권을 유지했었고,
그렇게 나온 성적에 맞춰 대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냥 놀기 좋아하고 철없는 녀석은 아니었기에 
자신이 있는 학과에서 나아갈 수 있는 진로를 설계했고, 남들보단 조금 늦더라도 설계한대로 취직을 했지만
나와 술잔을 주고 받는 불쌍한 솔로였다.

하지만 뚜렷한 목적없이 흐름에 따라 흘러가기엔 사회라는 곳이 녹록치 않았던 탓에 내 친구는 힘들어했다.
근무환경, 불투명한 미래 등 흔하디 흔한 걱정이 있었지만, 가장 뻔한 말은 '이 일이 내게 맞지 않는 것 같다' 는 것이였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땐, 목적, 꿈도 없이 산 게 잘못이라고 지적할 도 있었겠지만, 난 하고 싶은 일, 꿈이 없었다는 말에 잘못을 씌우긴 싫었다.
나도, 내 주위의 많은 친구들, 형들, 동생들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얼마 없었으니까. 
게다가 이 친구가 정말 꿈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꿈과 돈을 버는 일은 다른 거니까.
단지, 친구의 꿈은 직업으로 엮이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위로를 겸해 대답을 해줬다.  
설령 하고 싶은 일을 하더라도 힘든 일이 될 수도 있고, 지금 일도 나중가면 지겨울지언정 덜힘들지 않겠냐고 했다.
친구도 동의를 했고, 술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말했다.  
'알아. 근데, 그래도 하기 싫다'  ㅋㅋㅋ

대답은 웃겼지만, 이후에 나온 말들은 씁쓸했다. 
누구나 일하기 힘들고, 자기한테 맞는 일을 하고 있진 않다는 건 알지만 
다들 그런다고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건 아니잖아. 계속 참고 사는게 답이냐
난 철없다는 소리를 들어도 내가 즐겁게 살고 싶어. 지금은 내가 어떤 이유로 일을 하는건지 모르겠어. 

지금 생각해보니 친구성향과 맞지 않는 일 자체도 문제였겠지만, 
친구가 충분히 쉴 수 없었던 근무환경의 문제가 더 힘들게 한 건 아니었나 싶다.
어젯밤엔 술 때문인지 이 생각까지 떠올리지 못했었다.
그래서 별다른 생각없이 물어봤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건데'

잠시동안 친구는 말을 잇지 않았다. 
아마 본인도 어떻게 결정할지 모르는 무수한 고민들을 해왔을테고,
그 고민들 끝에 간신히 도달한 대답마저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거라 생각한다. 
끝내 입을 연 친구는 그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고 했다. 
물론 자신도 이 일을 하게 되면 똑같이 힘들 수도 있다는 건 알지만,
이전처럼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살아오면서 깨달은게 있다고 했다.
후회도 후회지만, 장애물에 부딪쳤을 때, 그 책임을 비겁하게 다른 곳으로 돌리게 되더라는 것이다. 
처음엔 몰랐지만, 그렇게 탓만 하다보니 힘들면 힘들어 질수록 자신이 부정적으로 삐뚤어진 사람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어쩌면 새로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일 수도 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고 그렇게 멋진 일도 아니지만,
온전히 내 뜻대로, 내가 정해서 해보고 싶은 일을 하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 고민이라고 했다.

듣고난 후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조금 고민했다.
더 어렸더라면, 으쌰으쌰하며 치킨 하나 더 시키고 넘어갔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친구 말처럼 선뜻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라고 응원하기엔 망설여졌다. 
전체적으로 보면 20대 후반은 아직 젊은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만, 
왠만한 애들이라면 일을 하고 경력을 쌓고 있을 우리 또래에서 뒤쳐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하던 직종에서 이직을 하는게 아니라, 뭔가 처음부터 배워서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것은 왠지 선뜻 응원하기 어려웠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다는 초조함, 나이를 생각하니 준비기간이 주는 부담감, 가족, 지인들의 시선 등등 
마음을 옥죌 것들이 너무 많았고, 이렇게 앞으로 겪을 상처들을 생각하니 
친구의 고민이 몇몇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끈기'와 '인내'의 문제가 아닐까도 싶었다.

이렇게 내가 생각한 것들을 하나둘 이야기했고, 친구도 좋은 뜻에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기에 진지하게 내 말을 들어줬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전철 배차시간에 맞춰 술자리를 마무리할 즈음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본심은 그랬던건진 몰라도 친구에 대한 걱정으로 일관했던 그간의 말들과는 다르게

'그런데...진짜 어쩌면, 정말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해야 하는게 맞는 걸지도 몰라'  
라고 맥락에 맞지 않는 응원을 하고 말았다.
친구도 갑자기 나온 응원에 '읭?'이라는 반응이었지만, 
'그것 때문에 고민했던거임ㅋㅋ'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ㅋㅋㅋㅋㅋㅋㅋ 어제 있었던 일인데,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어서 
생각을 정리할 겸 써봤어요... 자게보니까 왠지 정리하고 싶어서 써봤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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