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독박 육아 일일 체험 -번외-
게시물ID : baby_226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rithmetic
추천 : 17
조회수 : 848회
댓글수 : 17개
등록시간 : 2017/11/24 15:14:40
옵션
  • 외부펌금지
몇일전 일찍 퇴근을 하였다.
가끔씩 가족이 많이 보고싶은 날이 있다.
아침에 헤어졌는데 오후가 넘어가니 보고싶어졌다. 그것도 많이.
그래서 일찍 퇴근을 하였다. 내맘이니깐. 편하다.

집에 오니 부인이랑 아기가 있다. 당연한거지만 기쁘다.
그런데 안방이 아닌 작은방에 있다. 작은방이 안방보다 작아 난방비 때문에 그런거란다.
맘이 아프다. 돈을 더 벌어야겠다. 그럼 퇴근하면 안된다. 딜레마다.
눈치가 보였다. 와이프는 암말도 안했다. 고마웠다.

아이가 핑크퐁을 보고 있었다. 부인이 같이 놀아주다 힘들어서 그런거라고 했다.
13개월인데 너무 빠른것 같다. 휴대폰을 빼앗으니 운다. 조금 울다 그치겠거니 했는데
심하게 운다. 마음이 아프다. 계속 운다. 서럽게 운다. 내 마음이 찢어진다.
다른걸로 놀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 그림그리기
 아이가 그림 그리는걸 좋아한다. 모르겠다. 그림 그리는걸 좋아하는건지 아니면 그냥 뭔가 행동을 했을 때
결과가 나오는 과정을 좋아하는건지.
 한참을 같이 그렸다. 내가 돼지를 그리고 아이는 그 그림에 줄을 직직 그어 알수 없는 형태로 만들고
내가 오리를 그리고 아이는 그 위에 낙서를 하고 사자를 그리고 낙서를 하고
서너장을 빼곡히 그렸다.
 서울 대공원에 있는 모든 동물을 다 그린것 같다. 호비책에 나온 동물들을 유심히 봐둔 보람이 있다.
호비책을 보기 전까지 사막여우라는 동물이 있다는것을 몰랐다. 인생은 배움의 연속인듯 하다.
 중간 중간 크래파스를 먹을려고 하는 아이를 말리느라 혼났다. 하나를 빼앗으면 다른 하나를 집어 입에 넣을려고 했다.
 할수 없이 입에 넣어보고 맛을 보게 하니 안먹는다. 너도 이제 맛을 아는구나.
아이 손톱 밑에 크래파스가 잔뜩 끼었다. 저녁에 잘때 몰래 잘라줘야겠다.

2. 연필꽂이 놓이
 그림 그리기가 지겨워질때 즈음 연필꽂이에 아이가 흥미를 보였다.
 가져다 주니 좋아한다. 너가 좋아하는건 뭐든지 가져다 줄게 라고 속으로 다짐했다.
 볼팬을 하나 빼서 옆으로 던진다. 난 주워다 담는다. 또 던진다. 난 또 담는다.
 누가 누가 잘 던지고 담는지 내기 하는것 같다. 중간에 아이가 화를 낸다. 담지 말란다. 그래 그럴게.
 10개 정도 빼더니 더 던질게 없어졌다. 내 눈을 바라본다. '왜 없어?' 라는 표정이다. 난 웃으면서 다시 담아줬다.
 넌 던지고 난 담고. 볼펜을 담으면서 내 사랑도 담아줬다.

3. 먹자.
 한참을 그렇게 놀다가 저녁 식사시간이 되었다.
 부인이 오늘 식판을 사왔다고 했다. 군대에서 지겹게 썼는데... 라고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아이 식판이었다.
식판은 이른것 아닌가? 속으로 생각했지만 그려려니 했다. 알아보고 샀겠지.
 아이 식판에 밥 두부 김 멸치 계란이 있다. 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요즘 부쩍 이유식을 먹여줄려고 하면 수저를 빼앗아가는 통에 너무 힘들어졌다. 자기가 스스로 먹고 싶어졌나보다.
 인생은 결국 혼자 사는것이지만 그걸 너무 빨리 알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숟가락을 들고 있지만 밥과 반찬을 푸지는 못한다. 그냥 찍어서 거기에 묻어있는 밥풀이나 반찬을 먹는 모양새다.
 웃음이 났지만 나도 처음엔 저렇게 어설펏겠지 생각하니 오히려 대견해 졌다.
나와 부인이 다 먹고도 아이는 20여분 정도를 더 먹었다. 중간 중간 잡지 못하는 반찬들을 먹여주었다.
 조미 안된 김을 제일 좋아하는것 같다. 내가 먹어보니 아무 맛도 없던데.
배가 부른지 수저를 던졌다. 마무리가 화끈한 아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4. 부인은 설겆이를 하고 난 아이가 흘린 음식을 바닦에서 치웠다.
 먹은것 반 흘린것 반 같았다. 어째 담은 음식의 양이 많은듯 했는데 흘린게 많아 먹은양은 적당할듯 하다.
아이 턱에 구멍이 뚫린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입 주위와 귀 옆에도 닦아줬다. 온 얼굴로 먹은듯한 모양이다.
 밥풀을 닦아주니 운다. 나중에 이런 얼굴을 사진 찍어 말 안들을때 보여줘야겠다. 당황하는 사춘기 아이의 
얼굴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난다. 난 야비한 아빠다.

5. 머리끈 놀이
 실컷 먹었으니 다시 힘이 솟구치는지 아이가 엄마에게 전력 질주로 기어갔다. 4족보행계의 우사인 볼트 같다.
부인 종아리를 잡고 쳐다볼때 까지 엄마 라고 부른다.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못 안아주는 부인을 대신해서
내가 아이를 잡아 부인 옆에 서줬다. 반짝이는 부인 머리끈에 흥미가 생겼는지 엄마 머리채를 잡아 당긴다.
부인의 고개가 획 졎혀졌다. 부인 입에서 컥 하는 소리가 나온다. 엄청 아플듯 하다. 그런데 웃음이 나는건 기분탓인가.
부인이 씩씩 대면서 역시 머리검은 짐승들은 키우는게 아니라고 혼잣말을 한다.
왜 단수가 아닌 복수로 표현을 하는지 궁금하지만 굳이 물어보지 않고 도망나왔다.
눈치 없이 아이는 깔깔 거린다. 눈치 없는건 날 닮은듯 하다. 그럼 세상 사는게 피곤해 질텐데. 걱정이다.

부인 머리끈을 몇개 가져와서 아이와 놀았다. 팔목에도 끼워주고 발목에도 끼워주고 손가락에도 걸어줬다.
스스로 손목에 끼워볼려고 낑낑 대는 모습이 귀엽다. 새끼 손가락에 걸려서 더 안들어간다.
내가 슬며시 끼워주니 손목에 걸린 반짝이는 머리끈이 신기한지 요리 조리 살펴본다.
발목에 걸린 머리끈을 빼낼려고 힘껏 당겼다가 손을 놓으니 머리끈이 발목을 때렸다.
깜짝 놀랜다. 나보고 안아달라고 한다. 원래 실수 하면 아픈거야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머리끈을 한손에 숨기고 어느손에 숨겼는지 맞춰보라고 했다.
10번을 하면 10번 모두 오른손 부터 찾는다. 왼손에 있는 머리끈을 보호 매번 놀라고 좋아 손뼉치는 모습이 웃기다.
아이가 도박에는 소질이 없는것 같아 다행이다. 

6. 걸음마 놀이
 아이가 이제 5걸음 정도는 걸을수 있다. 4족 보행 생물이 2복 보행 생물로 진화하는 모습을 매일 지켜보는게 신기하다.
침대에서도 혼자 내려가는 겁없는 아이가 엉덩방아 찢는게 무서워 다섯걸음 이상 안걷는게 아이러니 하다.
 혹시나 해서 양손을 잡고 같이 걸음마를 하였다.
10걸음을 걸었다. 더 잡고 더 걸었다. 20걸음을 걸었다. 잘못 걸렸다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총 30분 정도를 같이 걸었다. 양손으로, 한손으로 다양하게 걸었다. 20분 정도 하니 허리에 감각이 없어졌다.
허리를 다시 펼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거실에 누워 아빠는 이미 늦었어 날 버리고 너 혼자 가렴 하고 말해주니
 내 손을 잡아 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손가락을 잡아 당기니 안 일어날수가 없다.
자기도 계속 걸으니 신기한가 보다. 온 집안을 이곳저곳 다녔다.
 아직 한번도 안신은 아이 신발을 신기고 어서 빨리 동내 놀이터라도 나갔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한걸음 더 라고 계속 되뇌이며 아픔을 참고 걸었다.
 부인의 목과 내 허리 둘다 힘든 날이다.

7. 이제 잘 시간이다.
 자자. 도리도리. 자자. 도리도리.
재울려고 눕히면 기를쓰고 일어나 앉아 도리도리 고개를 흔든다. 그리고 방문을 가리키며 이거 이거 라고 한다.
 더 놀고 싶은가보다. 그래 더 놀자.
오늘 부인이 장난감도서관에서 빌려온 소리나는 블록을 가지고 같이 놀았다.
 같은 모양의 구멍으로 블록을 집어 넣으면 되는 장난감이다. 
 너무 연령대가 높은것 아닌가 싶었지만 이왕 빌려온거니 가지고 논다.
역시나 하나도 못한다. 안들어가니 짜증이 나나보다. 블록을 던진다.
 내가 넣는걸 보여주니 나한테 짜증을 낸다. 내가 우쭐하게 쳐다본걸 틀켰나보다.
얼른 블록을 치우고 책을 읽어줬다. 오늘도 호비, 달님, 숨박꼭질 이야기 순으로 읽어줬다.
오늘도 내가 감탄사를 내면 같이 감탄사를 낸다. 매일 읽어주지만 매일 새로운가 보다.
 사운드 북은 이제 호불호가 갈린다. 곰세마리 노래를 틀면 항상 꿀밤 나무 밑 노래를 틀어달라고 한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주면 꼭 고개를 앞뒤로 흔들면서 손벽을 치고 몸을 흔든다. 흥이 많은 아이다.
 이제 자기도 졸린지 하품을 한다. 이때다. 이때를 놓치면 한시간 더 고생이다.
 준비한 분유를 입에 쏙 물리고 태세전환을 한다. 조명은 최대한 어둡게 아이 몸은 내몸에 최대한 밀착.
4분의 4박자 리듬을 타면서 토닥이며 섬집아기 노래를 불러줬다.
 분유병을 잡고 있는 아이 손을 잡으니 따뜻하다. 내 손도 따뜻해진다.
 내 몸을 최대한 웅크려 아이 이마에 내 볼을 포갰다. 
내 볼을 타고 너의 이마로 내가 너를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전해졌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8. 그리고 그 후.
아이를 재우고 서로 목과 허리를 주물러 주었다.
자식놈 키워서 시집장가 보내면 의지할데는 마누라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매일 애 보느라 힘들지? 라고 물어보니 시큰둥하게 뭐 그럭저럭 이라고 대답한다.
우리 가족 모두 새로운 역활에 아직 적응중인것 같다.

출처 몇일전의 나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