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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대구에서의 남존여비를 쓴 사람입니다.
게시물ID : freeboard_166990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채은이아빠
추천 : 0
조회수 : 27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1/29 17:29:33
밑에 글을 썼는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남존여비가 강한 대구'라고 써서 정확한 통계 자료가 있는지에 대해서,
또 글을 파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구 출신입니다.
친가는 몰라도 외가는 유서깊은 양반가문이며, 일년에 제사가 12번이상 있는 집입니다.
 
일반적으로 남자아이위주의 문화의 가장큰 핵심이 이 제사입니다.
 
임진란과 호란이후로 사람들은 사후세계에 대한 공포가 더 커졌습니다.
피란으로 인한 거주지가 불명해지고, 언제든 죽을수 있다는 공포심이 이런 남존여비사상을 굳게 해주었다고 보는데,
이런 생각들이 굳어져서, 외가쪽의 어르신들 중 후손이 없는경우(남자를 뜻합니다.) 이런 제사밥의 공포에 의해서
양자를 들이고, 양자에게 없는 돈이지만, 오로지 제사밥을 얻어 먹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재산을 물려주고,
결국은 재산이 없는 관계로 요양병원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시는분이 계셨습니다.
 
제가 가장 남존여지가 강한 대구라고 쓴 이유는 대학생활을 하면서, 어느 지방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제가 하는 말을 아에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엄청난 마치 종교같은 제사는 후손들에게 어마어마한 부담감을 안겨줍니다.
외가쪽은 구한말까지 성리학의 기본 이념대로, 완벽한 철학자가 되기 위한 성리학 경전공부만 했기 때문에,
일제시대에 그나마 가지고 있던 토지까지 싹 뜯기면서, 완벽한 하층민이 됩니다.
문제는 6식구가 단칸방을 살면서 제사는 선대의 염원대로 남부럽지 않게 떡 벌어지게 차려야 하기 때문에,
막노동과 같은 일을 해서 번돈을 모두 제사지내는데 사용을 하고, 이것을 계기로 빈곤이 나아질 수가 없는
악순환을 겪게 됩니다.
이 정도로 제사에 대한 집착은 남아선호사상, 남존여비 사상을 낳게 되었고, 여자들은 모조리 년간 12번이 넘는
제사에 등골의 휘게 됩니다.
 
제사음식 마련하는 과정을 본적이 있으신지요?
양반들의 음식은 보통은 자신의 경제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모조리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선호합니다.
이런건 자랑꺼리지요 나는 어헴 이렇게 노비가 많다..뭐 이런겁니다.
예를 들어서, 명태 보푸라기만 하더라도 그냥 명태 가져다 놓고 일일히 손으로 찢어서 거의 실같은 크기로 찢은 다음에
만듭니다. 거기다 떡도 양반스럽게 만들려면, 직접 찹쌀을 익혀서 절구에 찌어서 만듭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중노동을 년간 12번 넘게 하게 됩니다.
어머니가 제사상 차리는데 직계재사같은 경우는 거의 100만원이 넘게 들어갑니다.
 
물론 약 10년정도 전에 양반을 평생의 자랑으로 삼던 어르신들이 돌아 가시면서, 반향이 일어나서,
지금은 많이 간소화 되었지만, 저는 어릴때부터 도무지 이러한 제사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치킨 피자, 이런거 올려 놔도 되지 않을까? 사실 그게 더 맛있잖아?
 
그리고 한가지 충격적인 사실은 우리 외가쪽에 3남매가 있는데,
어느날 그집 어머니가 딸들을 불러서 50원씩 주면서 나가 놀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나가 놀다가 집에 와서 우연히 쓰레기통을 보니 바나나껍데기가 있더란 겁니다.
그렇습니다. 아들에게만 귀하디 귀한 바나나를 먹이기 위해서 딸들을 내 보낸것이죠.
 
나이가 들어서 학교 생활을 하기 위해서 다른 지방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나의 이런 이야기들을 도무지 이해를 못하더군요..
 
그런데, 대구 출신 유아인의 글을 보니, 제사 이야기도 나오고, 혹사 당하신 어머니 이야기도 나오고 해서,
과감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남존여비가 강한'이란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통계자료는 없습니다.
 
이문열같은 사람은 자신의 고향인 안동의 이 양반스러움을 엄청 자랑스러워 하지만,
저는 별로 자랑스럽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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