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역에서 급하게 티켓을 끊고 급하게 올라탔던 기차였다.
하행이었고 천안이라는 글자가 보였고 으레 대전을 통과하겠거니 하고 탔던 기차였다.
약간의 울렁거림과 밤을 꼬박 샌 신체 곳곳의 이물감, 아침 기차 특유의 피로함이 섞인 객차 안에서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시집 몇 페이지를 읽다 말고 잡생각을 하다 말고 기차가 천안을 통과할 때,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낯선 지명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했다.
온양 온천. 예산.
그러니까 나는 경부선이 아니라 장항선을 탄 것이었다.
그대로 갈 수 없으니 내릴 수밖에 없었다.
예산역이었다.
황망함과 설명할 수 없는 설렘 같은 것이 마구 뒤섞인 상태로 플랫폼에 오래 서 있었다.
예산이구나.
충남내륙지방. 당진 대전 간 고속도로의 사이. 아버님이 목사로 계시는 대학 동창의 고향. 수덕사.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가는 이 얇은 정보가 내가 예산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에산역 광장을 빠져나와 역 근처를 느리게 배회했다. 황량함과 충청도 특유의 느린 리듬 같은 것이 섞여, 발걸음을 내내 따라왔다. 짧은 시가지를 걸으며 숙취 속에서, 낭패감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마침내 나는 나의 티켓으로부터도 이방인이 된 것이었다.
궤도에서 이탈했다는 묘한 흥분감, 의도하지 않은 여행(?)의 기분이 주는 설렘 같은 것이 낭패감과 모멸감의 자리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일요일의 장항선 철로를 따라 느리게 최대한 느리게 걸었다.
이렇게나 쉽게 나는 나 자신에게로부터 낯선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다시 기차는 타기 싫고 터미널 쪽으로 물어 물어 이동했다.
1시간 후에 도착한다는 버스를 기다리며 예산 터미널 의자에 앉아 있었다.
시집 몇 페이지를 읽다 말고 잡생각을 하다 말고 버스에 천천히 올라탔다.
대전행 버스는 아니었다. 좌석에 앉아 있는데 실없이 웃음이 났다. 그해 가을, 내가 내 자신에게 처음으로 선사해 준 웃음이었다.
2014. 9.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