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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크리스마스 잔혹사.txt
게시물ID : love_395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러멘디
추천 : 3
조회수 : 54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2/13 22:38:14

나는 선천적으로 160대의 훤칠한 키에, 그에 못지않은 70대의 슬림한 체형과, 머리는 조금 큰 편으로 갭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로서

이곳에 대부분 상주하는 오징어와는 다르게 연애경험이 제법 있는 편이다.


그런 나에게도 12월은 이상하리만치 잔혹한 계절이다.

이유는 크리스마스 때문인데,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기 보다는 예상치 못한 일이 자주 일어나는 편이었다.


1.

대학교에 처음 와서 겪는 크리스마스는 그 누구보다도 설레던 계절이다.

젊은이들 사이에선 '썸'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던데, 그때의 내가 그랬다.

동기였던 여자아이와 매일 만나서 이야기하고, 술도 자주 마시고, 이런저런 에피소드로 당장 결혼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이였다.

그렇게 내가 손주 이름을 고민하고 있을 즈음 크리스마스가 점점 다가오고,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맞춰 이벤트를 준비했다.

하지만 다니던 알바에 차질이 생겨, 크리스마스 이브에 땜빵을 서야 했다. 나 역시 시간이 맞지 않다고 이야기했지만 당장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사장의 얼굴을 마주하고 나니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만나자던 약속을 크리스마스 당일로 미루고, 당장 내일 있을 이벤트에 대한 생각으로 뇌내망상을 풀가동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당일, 그녀는 어제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만날 수 없다고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내가 부담스러워 일부러 거짓말을 했던 것 같다.


2.

그 다음 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입대했다.




3.

1년 후 일병 시절. 100일휴가 이후 한번도 외출을 하지 못했던 터라 매우 신경을 날카로웠지만, 운이 좋게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휴가를 나갈 수 있었고, 입대 전까지 친하게 지내던 여자 선배와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도 남자친구와 헤어진지 얼마 안되었다는 이야기에 또 다시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 밤 10시에 홍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아놓고, 밤 8시부터 도착하여 심신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나는 다음 날 5시 40분 첫차가 올 때 까지 와우 신종족을 플레이했다.

소문에 의하면 남친과 재결합을 했다곤 하는데, 아마도 근거없는 헛소문이리라 생각한다.


4.

전역 후 알바를 하던 곳에서 우연치않게 만남이 찾아왔다. 매우 귀여운 알바 후임이 들어왔기 때문인데, 때마침 찾아온 크리스마스 시즌이기도 하고 나 역시 갓 전역한 민간인 신분이었기에 의욕이 샘솟았다.

그 동생은 표정연기를 매우 잘했는데,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최대한 피하려는지 나를 볼 때 마다 표정이 매우 좋지 않았다.

나 역시 그 표정에 깜빡 속아넘어갈 뻔 했으나, 명석한 두뇌로 그것이 연기라는 것을 파악하고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눈치챘다는 것을 모른척하기 위해 일부러 거리를 두었다.

대망의 크리스마스 이브. 기다린다는 메세지를 보내놓고 그녀가 올 때 까지 기다렸다.

나는 또다시 크리스마스 아침바람을 맞으며 집에 들어와야 했다.

그 다음 주, 출근했더니 그녀는 온데간데 없었다. 사장에게 물어보니 어제부로 못다니겠다고 했다고 한다.

연기를 잘했던 그녀는 그렇게 연기처럼 사라졌다.


5.

그 다다음 해, CC로 만나던 여자친구와 크게 싸움이 났다. 학비 따위 등으로 아르바이트로 정신이 없었기에 잘 챙겨주지 못했고, 나는 싸움에도 슬슬 지쳐갔다.

결국 크리스마스 당일 날도 만나서 크게 싸우고, 그대로 헤어졌다.

물론 그녀쪽에서 먼저 바람을 피웠던지라 크게 미련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를 험담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지라 그냥 조용히 묻어가려 했다.

그리고 한달 뒤, 나는 외로운 여자친구를 방치하여 다른 사람에게 눈이 돌아갈 수 밖에 없었으며 신경조차 쓰지 않는 쓰레기가 되어 아싸 딱지를 받고 동기 여자애들이 모두 졸업 할 때 까지 휴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학교생활과 알바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어보였던 것을 배려해준게 아닌가 싶다.

씨발....





지금에 와서 크리스마스에 드는 생각은,

그저 무사히 지나가길 기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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