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단편] 물 반 미끼 반
게시물ID : readers_306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상연
추천 : 2
조회수 : 46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12/16 03:42:20
옵션
  • 창작글

물 반 미끼 반

이상연

 

갈대를 쓸며 불어온 바람이 무방비한 얼굴과 손등을 스쳤다. 얼굴과 손은

이미 마른 풀처럼 굳어 있었다. 종이가방을 쥔 오른손을 왼손으로 바꾸고 부어있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해봤는데 악력계를 쥔 것처럼 둔했다.

겨울은 모든 것이 움츠려드는 계절이다. 반사된 사물을 모조리 일그러뜨리는 강물도 그 표면이 얇게 얼어붙었다. 표면이 잠잠하니 내 표정도 잠잠하다. 싸한 바람이 불때마다 잔뜩 움츠리던 나는 징검다리 한 가운데에 서서 강물 속을 쳐다보고 있었다.

돌멩이와 이끼가 전부인 다가교 아래에서 나는 물고기를 찾았다. 한 손에는 낚시줄과 미끼를 담은 종이가방을 들고서. 비둘기 같은 눈으로 물고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냥 멍청하게 기다렸다.

물고기가 추워서 숨었군!’

드디어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미 다이소에서 2000원 짜리 낚시줄과 2000원 짜리 민물낚시 바늘을 샀다. 거금을 투자했다. 또 내일이면 어두문학회를 한다. 물고기를 잡은 글을 써야한다. 그래야 손익분기점을 넘었다고 말 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것뿐인가? 가방에는 미끼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짜파게티 한 봉지와 쌀밥, 김치, 고구마, 밀가루, 어묵, 게맛살이 뜻뜻한 식탁의 온기를 머금고 떡밥으로 대기중이다. 참고로 이건 내 점심이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안 먹고 가져온 것이다. 돌아가기엔 너무 많은 투자를 해버린 것이다.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주변을 살피다가 강 위에 떠다니는 오리 때를 봤다. 한 오리가 물속에 고개를 처박고 궁딩이를 들어올렸다. 세수하고 있는 건가? 라고 순진하게 생각 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세수는 무슨 세수인가! 딱 봐도 물고기를 잡고 있는 중이다.

나는 한 마리라도 잡자는 결심을 가지고는 짜파게티을 잘게 부시고 텄다. 그리고 잘게 부셔진 라면사리를 조금 씹고는 강물을 향해 후르륵 뱉어냈다. 물 위로 하얀 부유물이 둥둥 떠다녔다. 물고기 밥처럼 먹기 딱 좋은 크기였다. 그것을 사방에 뿌려대자, 강물은 순식간에 하얀 부유물 덩어리로 가득했다. , 내가 물고기라면 정말 먹어보고 싶은 떡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몇 분이 지나도 물고기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리 천장에 앉아있던 비둘기 몇 마리가 기웃거릴 뿐이었다. 설마 물고기가 전부 겨울잠을 자는 것인가? 물고기가 안 보이자 그 자리를 뜨고 다른 자리로 갔다.

남부시장 옆에 싸전다리로 갔다. 그곳에도 오리 때가 많았다. 오리들은 한 번씩 물속으로 고개를 처박았다. 그 모습을 보자는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물고기가 있는 것이다. 세수하는 거 아니다.

다시 라면사리를 씹고 후르륵 뱉어냈다. 물이 흘러오는 곳에 넓게 뱉어냈다. 다리 아래로 흐를 때 유속이 빨라지는데, 그 물줄기를 따라 하얀 부유물도 쏙 빨려갔다가 반대편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넓게 퍼졌다.

수십 조각으로 넓게 퍼진 부유물을 세밀하게 쳐다봤다. 표면위에 둥근 파문이 나타났다하면 그쪽을 향해 눈을 작게 뜨고 이마를 찌푸렸다. 그런데 물고기는 없었다. 라면사리를 씹고 뱉고 강물을 쳐다보는 것을 반복하다보니 슬슬 창피해지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이 신경 쓰였다. 오해하지마세요. 음식물 투기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나 혼자 쪽팔려서 자리를 옮겼다.

결국 물고기를 보진 못했지만, 어차피 다리 위에서 잡을 생각이 아니었다. 이미 생각해둔 자리가 있었다. 평소에 밤마다 사람들이 낚시를 하던 자리로 한국전통문화관 앞에 있는 작은 댐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수십이 깊고 물고기가 많았다.

겨울이라 물이 많이 빠졌지만 댐 옆으로 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강도 잠잠했다. 그런데 오리와 같은 새는 한 마리도 없었다. 자세히 보니 강물이 전부 얼어있었다. 그런데 표면이 깨끗한 것을 보니 얇게 언 것 같았다. 돌멩이를 던져 깨부시면 충분히 낚시줄을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돌멩이 하나를 찾아 빙판위로 가볍게 던져보았다. ! 하더니, 쭈르륵 미끄러졌다. ? 꽤 단단했다. 다른 돌멩이를 집었다. 힘을 줘서 빙판 위로 던졌다. ! 하더니 하얀 얼음 가루를 날리며 쭉 미끄러졌다. 빙판이 상당히 단단하다. 이번에는 주먹만큼 크고 날카로운 돌을 쥐고선 빙판을 향해 힘껏 집어던졌다. 돌멩이가 빙판위로 턱! 소리를 내며 하얀 기스만 내고는 수십미터를 쭈르륵 미끄러졌다. 결국 빙판은 안 깨졌다. 낚시포기!

거의 두 시간이 지났는데, 낚시줄 한 번도 내리지 못했다. 쓸 거리도 없었다. 굉장히 허탈하고 포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나! 여기서 물고기 한 마리라도 잡는다면 진짜 대단한 것이다. 말도 안 되게 대단한 것이라서 잡고 싶었다. 그래서 내 기억속에 굉장히 대단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그곳은 소방서와 생태박물관 사이에 있는 다리로써 1000번 버스가 지나가는 그런 이름 모를 다리였다. 그런데 내가 4~5월 즘에 그곳을 지나가다가, 다리 위에서 침을 뱉어본 적이 있었다. 침이 강물위로 떨어지자마자, 물고기 수 십 마리가 몰려들었다. 그것이 먹을 것으로 착각하고 달려든 것이다. 침만 뱉어도 물고기가 물려들고 낚시바늘 대신 클립을 끼워도 물고기가 무는 그런 곳! 나는 그곳으로 뛰었다.

다리는 굉장히 불안했다. 버스가 지나가면 다리가 흔들거린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낚시줄을 꺼냈다. 그러나 제일 먼저 라면사리를 아낌없이 투척했다. 그 다음 라면 스프를 뿌리고 건더기도 뿌렸다. 이곳저곳 바위틈 사이에 숨어있는 물고기를 유인할 전략이었다. 강물은 라면사리 범벅이 되었다. 이정도면 떡밥으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 다음 밀가루를 꺼냈다. 침을 묻혀서 둥글둥글하게 말았다. 그것을 바늘에 끼웠다. 줄을 길게 빼서 천천히 낚시 줄을 내렸다. 밀가루가 걸린 바늘이 물에 잠겼다. 그런데 미끼가 녹아부러. 물에 살살 녹아부러.

미끼가 녹아버려서 낚시줄을 다시 들어올렸다. 이건 예상을 못했다. 밀가루는 미끼로 쓰기 힘들었다. 그래서 떡밥으로 강물에 뿌렸다.

이번에는 고구마를 꺼냈다. 그리고 고구마를 달았다. 다시 낚시 줄을 내렸다. 그런데 줄을 반도 안 내렸는데 고구마가 떨어졌다. 떨어져서 강물에 풍덩 처박혔다.

다시 미끼를 바꿨다. 이번에는 쌀밥이다. 가운데 낚시바늘을 넣고 동그랗게 꾹꾹 말았다. 제법 잘 달라붙었다. 이번엔 낚시줄을 조심조심히 내렸다. 쌀밥이 물에 닿자, 그러자 앉아부러. 그냥 가라앉아부러. 그러고 보니 낚시 바늘이 떠있게 해주는 뭔가가 있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 하여튼 이게 없어서 미끼를 넣어도 전부 가라앉아 버렸다.

시간이 지나자 쌀밥도 서서히 물에 불어나며 흩어졌다. 그 다음 김치를 달아서 시도해 보았는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

쌀밥도 김치도 떡밥으로 강물에 뿌리고 이번에는 어묵과 게맛살을 같이 달았다. 어묵과 게맛살은 엄마가 기름에 같이 볶은 것인데, 밥맛이 없을 때 이게 최고다. 아무래도 밥과 김치 고구마를 안 먹는 거 보니 진짜 물고기들이 밥맛이 없어 보이는데 밥맛이 없는 놈들 공략하기 딱 좋은 미끼였다.

어묵과 게맛살을 멘 낚시 줄이 물에 들어갔다. 물론 이번에도 가라앉았다. 미끼가 잠수했다. 물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역시나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고 실망을 하려는 찰나에, 미끼 주변으로 무언가가 일그러졌다. 나는 깜짝 놀라서 다리 밖으로 고개를 쭉 내밀었다. 진짜로 미끼 주변에 뭔가가 일렁이는 것이다. 뭔가 기포 같은 것이 보였다. 설마 쌀밥이나 반찬에 있던 공기 기포인가? 하고 생각이 들었지만 그 기포는 꾸준히 나왔다.

반짝이는 뭔가가 획! 지나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형태는 못 봤다. 형태를 못 볼정도로 뭔가 땅 속에 숨어있는 것 같았다. 뭔가 등비늘이 보라색인지 알록달록했는데 굉장히 날렵한 놈이었다.

나는 숨을 죽여서 관찰했다. 물고기라도 구경해보자. 아니 잡아보자. 진짜 잡아보자. 시계도 5시고 해도 지고 있었고 날씨도 추웠지만, 여기서 진짜 물고기만 잡는다면 대박이고.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물고기가 미끼를 물지 않았다. 나는 조급해져서 미끼를 흔들어 봤다. 또 보인다! 출러인다! 뭔가 알록달록한 색으로 출렁인다! 그런데도 물고기는 미끼를 물지 않았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미끼를 미구마구 흔들었다. 그러자 알록달록한 색이 더욱 강하게 일렁였다. ! 알았다! 알았어! 저건 기름이여. 그냥 기름이여. 기름에 볶은 음식이라서 물에 닿자 보랏빛으로 일렁인 것이었다. 2천냥짜리 낚시줄을 집어던졌다. 오뎅과 게맛살과 함께 모든 음식물을 강물에 투척했다. 아니, 이건 투척한게 아니다. 자연에 환원한 거다.

오후 5시를 조금 넘어서 나는 비둘기 같은 눈으로 다리밑을 내려다봤다. 다리 밑은 내가 뿌린 떡밥과 미끼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물 반 미끼 반이었다. 없는게 없다. 아니, 물고기 빼고 다 있었다.

지독한 추위와 공복에 온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나는 돌아올 때와 다르게 빈손이 되었다. 차라리 빈손이 낫다.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조금이나마 허벅지 온기가 느껴져 따뜻했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그곳을 벗어났다. 물고기가 안 잡혀 실망해서 그런 게 아니라 누가 음식물 투기했다고 할 까봐 무서워서 그런 거다. 그래도 뭐 하나 건 진 게 있다면 글 소재는 건졌다. 그거면 뭐 본전인거지. 따뜻한 밥이 기다리고 있는 우리 집으로 돌아갔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