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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을 박살낸 어느 평범한 소시민의 이야기
게시물ID : panic_974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99콘
추천 : 47
조회수 : 8077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7/12/28 18: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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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사건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결과적으로는 평범한 시민이 한 지역의 조폭을 박살내고
나아가 제2의 범죄와의 전쟁이라 불리우며 수사가 전국으로 확대되어
당시 전국의 조폭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사건입니다.
                                                                                   
시작합니다.
1990년 노태우의 범죄와의 전쟁으로 수많은 조폭들이 검거되고 6년 뒤
출소해 다시 사회에서 스멀스멀 활개를 치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사건은 전남 목포의 신안비치 호텔 나이트 클럽에서 발생합니다.

당시 목포에서 유통업을 하던 조 씨(당시 38세)는 그날 저녁 직원들과 회식후 2차로 나이트클럽을 가게 됩니다.
직원들과 나이트에서 즐겁게 술을 마신뒤 술값문제(바가지)로 나이트 직원과 시비가 붙게됩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나이트는 조폭들이 운영하고 직원들 대부분이 같은 조직원인 경우가 많을 때입니다)
돈이 많이 나왔다며 계산을 다시해달라는 조 씨의 일행과 무조건 계산해야 된다는 웨이터간의 시비였는데
이야기가 길어지자 다른 웨이터들과 조폭들이 몰려와 조 씨와 일행들에게 폭행을 가하는데
이때 같이 동석한 여직원 또한 심하게 맞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폭행당하고 돈까지 억지로 갈취당하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며 넘어갔을테지만
조 씨는 너무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사람들의 만류에도 다음날 그곳에 다시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조 씨는 자신과 직원들을 때린 사람들이 직접 자신에게 사과할것을 요구하지만
호텔 나이트의 사장이자 조폭 두목이었던 황 모씨는 자신의 수하들들 데리고와
직접나서 조 씨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가합니다.

그렇게 연이어 이틀 동안 폭행을 당한 조 씨는 주변에서 극구 만류했지만 
검찰에 자신을 폭행한 조폭 두목 황 씨와 그의 조직원들 상대로 검찰에 고소합니다.
검찰의 고소장이 접수되자 두목 황 씨는 조직원을 동원해 조 씨의 동생을 납치해 폭행과 협박을 하고
조 씨의 사업장에 찾아가 난동을 피우는 등 영업방해를 합니다.
(영업방해라 썼지만 사실상 문을 닫게 만들었습니다.)

이런식이면 백이면 백 전부 두손 두발 들고 백기투항을 하는게 대부분이겠지만
이번에는 조폭이 사람을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던 모양입니다.
때리고 가족을 인질로 협박을 해도 전혀 먹히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상상조차 못했으니까요

조 씨는 다음날 부터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검찰과 경찰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지역 일간 신문에 신문지면의 1면 1/3크기의 탄원서 성격의 광고문을 자비로 올립니다.
당시 광고비용만 몇백만원씩 큰 돈이 드는 광고였는데
대통령에게 드리는 탄원서로 시작하는 이 호소문이었습니다.
조폭의 보복으로 죽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조폭없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 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사건이 이슈화 되자 각종 메이저 신문사에서도 조 씨의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조 씨의 사연을 소개하고 범죄와의 전쟁 이후의 재건되고 있던 조폭문제에대해 다루기 시작했는데
당시 조 씨의 사건을 다룬 신문에서는 조폭에게 돈을 뜯기고 무자비한 폭행을 당한 조 씨가
해당 가해자에게 사과요구를 했지만 오히려 보복폭행을 당했고 수많은 증인과 증거가 있음에도
경찰의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 하고있고 수사는 지지부진이라며 경찰을 강도높게 비판했습니다.

지금도 신문의 위력은 상당하지만 인터넷이 없던 시절의 신문의 위력은 더 할때라
기사가 나간 후 당시 조폭소탕의 여론이 목포시민들을 넘어 전국민의 관심을 받게 됩니다.

당시 매일 신문을 꼼꼼히 살펴보던 김영삼 대통령도 이 호소문을 보게 되었고 
호소문으로 인해 조 씨와 관련된 사건의 기사를 직접 찾아보게 됩니다.
사건진상에 대해 알게된 김영삼 대통령은 관련부서 장관과 경찰청장을 불러 문책하고 
엄중 수사해 활개치는 조폭들을 발본색원 할 것을 지시합니다.

대통령에게 욕이란 욕은 다먹은 경찰청장은 목포경찰서장을 직접 호출에
직원들이 보는곳에서 쪼인트까지 까면서 개욕을 했다는 카더라가 있기도 합니다.
그렇게 경찰청장에게 서울까지 불려가 개박살이 난 목포경찰서장은 목포로 돌아와 
해당 부서장들과 형사들에게 어떻게 했을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그렇게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목포의 모든 조폭에 대해 조사가 시작되는데
경찰에서는  피해자 조 씨를 폭행했던 조폭 두목 황 씨와 조직원들을 제일 먼저 검거하는데 
이때 형사들이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조폭들을 검거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했으면 될 것을....)

그들을 검거해 개잡듯이 팼고 그렇게 개패듯 맞은 조폭들의 몰골을 조 씨에게 보여주면서 
이렇게라도 분을 풀라며 조 씨를 달랬다는 카더라도 있습니다.
이렇게 빨리 해결될 사건이 지지부진이던 이유가 뭘까요?
(역시 사람이 명줄 밥줄이 걸리면 필사적이 된다는 말이 틀린말은 아닌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찍어 눈여겨 보고있던 사건이라 경찰에서도 검찰에서도 위의 눈치를 보기 바빴는데 
경찰은 당시 황 씨의 조직원 중에서 조 씨 폭행에 관여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전부 검거했고
검찰에서도 때릴 수 있는 최고형으로 때려 최고형에 보호감호까지 더해져 
두목 황 씨의 경우는 조폭생활이 아니라 인생자체가 끝장이 나버립니다.

수사를 하다보니 고구마 캐듯 다른 조폭들까지 불법혐의가 드러나 그들 마져 하나 둘씩 검거 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인지 목포에서는 신안비치 호텔 애들 때문에 조직이 박살났다며 조폭들 사이에서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목포 지역의 조폭들이 씨가 말라 버리게되면서 시민들의 격한 지지를 받게되었고
전국으로 수사가 확대되 수많은 조폭들이 정리가 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조 씨의 얼굴을 한번 보겠다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중에는 조폭들도 몇몇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경찰들도 조 씨의 신변에 아주신경을 많이 썼는데 
(조 씨가 낸 탄원서 광고에는 실제로 광고 내용에는 자신이 죽으면 누군가는 자신의 뜻을 이어달라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조폭들 중 호기심에 찾아온 사람들도 혹은 똥물을 튀게한 조 씨의 면상이나 보자며 호기롭게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모두 잠복중이던 형사기동대에 역관광 당하고 봉고차에 실려신세가는 신세가 되어버립니다.
재수가 없는 경우 연줄에 연줄을 엮어 보복살인 미수 혐의까지 씌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만약 조 씨가 조폭에 의해 죽거나 폭행을 당하게 된다면 들끓는 여론의 압박을 견딜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래서인지 조폭들 사이에서는 노태우의 범죄와의 전쟁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치를 떨었고
차라리 전두환 시절의 삼청교육대와 노태우때가 범죄와의 전쟁때가 더 살기 좋았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일부는 일본으로 밀항하는 경우도 있고 되도록 사건을 만들지 않고 잠수를 타게 됩니다.

경찰이 이토록 강경하게 나선이유가 대통령의 특별지시도 있었지만
수사 당시 목포조직중 하나가 상대조직을 습격해 칼로 찔러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기에
사건을 담당하던 형사들은 더 엄격하게 수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목포에서 형사생활을 평생했다는 형사분의 입을 빌리자면 이때가 잠깐이긴 하지만
목포에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조폭이 없어진 시기라고 합니다...

검거 뒷이야기지만 조 씨가 법정에서 말하기를
단지 자신은 법과 정의가 똑바로 서는 세상을 보고 싶었을 뿐이고  
자신을 그렇게 만든 조폭 두목 황 씨와 그의 조직원들 모두를 자신은 용서했으니 
판사에게 선처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조 씨는 사건후 정부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하는데 
한사람의 용기있는 행동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준 의미있는 사건이 아닐까 합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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