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많은 명언들을 접한다.
'너 자신을 알라'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시작이 반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다'
...
...
근데 나는 30살이 되도록 어떤 문장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물론 나는 '1+1=2'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1=2'라는 문장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내가 말하는 '안다'는 것은 그 문장에 관한 '모든 것을 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많은 것을 알 수는 있다.
어째서 '노인과 바다'는 명작 소설로 남아 있는 것일까.
그것은 헤밍웨이가 '삶'이란 단어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딘가 예상치 못한 부분을 찌를 수 있다는 것이다.
안다는 것은 구슬을 보는 것과 같다.
우리가 움직일 수 없다면 구슬의 뒷면은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슬 앞면의 일부분만을 본다.
아주 가끔 뛰어난 사람들이 구슬 앞면의 더 넓은 부분을 본다.
그리고 -거의 없지만- 구슬의 뒷면을 보고 오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구슬'을 얘기할 때
당연히 그 대화는 어딘가 어긋나고 만다.
조금은 더 알고 있지만 머리가 아파서 이 정도만 쓰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