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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석탑 17년만에 공개된다는 뉴스 보다가....
게시물ID : sisa_10087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웃기면오백원
추천 : 95
조회수 : 4293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8/01/01 00:5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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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v.media.daum.net/v/20171231074506530

일제강점기인 1915년 시멘트를 마구잡이로 부어 보수해 흉물스럽게 변했고, 문화재위원회는 1999년 해체·보수를 결정했다. 이어 2000년 정밀조사와 가설 덧집 설치를 거쳐 2001년 10월 고유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해체 작업에 돌입했다.

31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미륵사지 석탑은 지난 11월 석재를 6층까지 올리는 조립 공사가 마무리됐고, 노출된 석재 면의 강화 처리와 색맞춤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 문화재 색감에 놀라서 
흥미로운 뉴스 몇가지만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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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v.media.daum.net/v/20171201030244570

‘왕의 곤충’으로 불리는 비단벌레는 온몸에서 무지개 빛을 뿜어내는 희귀 곤충으로 신라와 고구려, 왜에서 최고급 공예장식으로 사용됐다. 특히 신라에서는 금동판 투조(透彫·재료를 도려내 무늬를 낸 것) 밑에 비단벌레 장식을 깔아 화려함을 더했다. 현재 국내에 서식하는 비단벌레 개체 수가 매우 적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실제로 박물관은 비단벌레 샘플을 채취하기 위해 문화재청 사전허가를 받은 뒤 곤충학자와 사흘간 답사한 끝에 전남 완도군 당인리에서 사체 한 마리를 가까스로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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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v.media.daum.net/v/20171204030219571

‘100여 년 만의 귀향.’

타향에 머물던 보물급 문화재 1점이 최소 한 세기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조선 후기 대표적 고승인 묵암 대사(1717∼1790)의 초상화 ‘묵암당 진영(默菴堂 眞影)’이 본가인 전남 순천시 송광사로 전격 환수됐다.

송광사 성보박물관(관장 고경 스님)은 3일 “일본 개인 소장자가 갖고 있던 묵암당 진영을 오랜 협의 끝에 송광사로 모셔오기로 결정했다”며 “묵암 스님이 입적하기 직전에 남긴 것으로 알려진 이 그림은 송광사는 물론이고 한국 불교 전체의 소중한 보물”이라고 밝혔다.

묵암 최눌(默菴 最訥)은 한국의 삼보(三寶) 사찰인 송광사에서도 손꼽히는 학승으로 화엄학의 대가로 이름을 떨쳤다. 임진왜란 때 서산 대사(1520∼1604)와 함께 송광사를 지켰던 부휴 대사(1543∼1615)의 적통으로 불교 해설서 ‘제경회요(諸經會要·동국대도서관 소장)’, 시문집 ‘묵암집(默庵集·규장각 소장)’ 등 다수의 문헌을 남겼다. 묵암을 기리는 비와 부도는 지금도 송광사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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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감 진짜 쥑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 탱화를 약탈 많이 했던데
하나같이 색감이 세련되고 멋지더라고요. 
이러한 훌륭한 문화재 불화가 미술학적으로 더 연구되길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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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v.media.daum.net/v/20171226193200537
조선시대 산수화는 영조 때 선비화가 겸재 정선(1676∼1759)에 와서야 비로소 우리나라 산천의 모습, 조선 복식의 사람이 화폭에 담겼다. 이전까지는 중국에서 건너온 화보 속의 산과 강, 인물을 그대로 그리는 관념 산수가 지배했다. 양대 전란 후 명·청 교체에 따라 ‘소중화(小中華)’ 사상이 싹트며 우리 땅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정선은 금강산과 한양 등을 직접 돌아보고 관찰하며 중국 남종화를 토대로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이를 그려 진경산수를 창안한 것이다.

정선이 여러 화첩으로 남긴 진경산수가 무더기로 보물이 됐다. 문화재청은 정선이 그려서 화첩으로 묶은 ‘해악전신첩’(보물 제1949호) 등 5건이 보물로 지정됐다고 26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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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v.media.daum.net/v/20170804094113315

농다리는 1984년부터 2007년까지 모두 19차례나 장마 때마다 유실돼 거의 매년 복구공사가 이뤄졌다.

2009년 7월에도 피해를 본 바 있다. 문제는 피해를 줄일 방법이 현재로썬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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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예연구사는 "축조 기록 등이 있다면 원형복원에 나설 수 있겠지만, 농다리는 자연 하천에 자연석을 쌓아 만든 것이어서 그렇게 할 수 없다"며 "그렇다고 농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인공적인 조처를 한다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손상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로써는 자연석을 쌓은 형태로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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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v.media.daum.net/v/20171021102956378

실제로 본 문화재중에서 
저를 가장 압도했던 것이 바로 석굴암이었습니다.
석굴암 보존에 대한 암울한 소식만 들려와서 안타깝습니다. 
박정희 나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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