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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 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기적
게시물ID : star_4337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길고양이
추천 : 10
조회수 : 513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8/01/05 01:4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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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1 부 >


나는 알람 소리를 들은 것처럼 

화들짝 놀라 눈이 번쩍 떠졌다.

잠이 덜 깨서 멍했던 머릿속은

사방이 그저 고요하다는걸 깨달으면서

조금씩 맑아지고 있었다.


나는 머리 위로 손을 뻗어 

머리맡을 더듬거리며

휴대폰을 찾아들고 화면을 켜봤더니

시간은 이제 겨우 

네시 삼십 칠분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나는 후웅.. 하고 한 숨을 내쉬었다.

알람은 언제나 여섯시 십분에 울린다.


몸을 바로 뉘우고 

나는 이불을 목 끝 까지 끌어올려 덮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적막함이 가득한 방 안에는

1초 단위로 째깍이는 시계침 소리와

건너편 침대에서 곯아 떨어져있는

세인이의 고른 숨소리만이

간간히 들려오고 있다.


세인이는 어제도 밤 늦게까지

안무를 연습하고 녹초가 되어 돌아왔다.

들리는 얘기로는 한 달 혹은 두 달 후에

정식으로 데뷔를 한단다.

그런 소문들을 떠올리며 나는 다시 한 번

크게 한 숨을 내쉬었다.


도데체 내가 언제 잠이 들었던거지.

하는 생각을 했다. 

편안하고 포근한 침대의 이불 속에서도

한 번 깬 잠은 다시 오지 않는다.


지난 저녁, 그룹 연습이 끝났을 때

댄스 코치에게 살이 많이 쪘다며

체중감량을 더 하라는 지적을 받은 후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 숙소로 돌아왔을때,

전화기에 부재중 통화 표시를 보았다.


아빠였다. 10분 쯤 전에 온 전화였다.

나에게 좀처럼 전화를 하지 않는 아빠가

웬일로 전화를 했던 것이다.

아빠에게 전화를 해볼까 말까 하며

내가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다시 한 번 아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랑은 다르게 

아빠와 길게 통화를 했다.

말하는쪽은 주로 아빠였고, 

나는 그저 묵묵히 듣고 있느라

응~ 응~ 하는 건조한 대답만 했다.


아빠와의 그런 통화가 유쾌하지는 않아서

전화를 끊고 나서는

그대로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가

이불을 머리 끝까지 쓰고 누워 있었다.


아빠와의 전화 통화는 끝났지만

머리 속에서는 아직도 아빠와 나눈

얘기들이 메아리가 되어서

머릿속을 어지럽게 떠다니고 있었다.


아마 그때 즈음에,

늦은 연습을 마치고 세인이가 돌아왔고

옷을 갈아입고, 씻고, 잠 잘 준비 하느라

부스럭 거리는 세인이의 인기척을

나는 잠든 척 하며 이불 속에 숨어서

가만히 듣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젯밤, 나는 세인이가 너무나 부러웠다.


이불 속에 숨어서 세인이를 부러워 하며.

그리고 아빠와 나누던 얘기를 되새기며.

갑자기 취소된 내 데뷔에 억울해 하면서

이제는 다 포기할거라고,

다 그만두고 때려 칠거라고

마음 속으로 악다구니를 쓰며 울다가

까무룩 잠이 든 모양이다.


나는 얌전히 침대를 빠져나와

잠옷처럼 입고 있던 아디다스 츄리닝위에

스웨터만 더 걸쳐 입고, 

아끼는 야구 모자를 대강 눌러쓴 후

조용히 숙소를 빠져 나왔다.


3월의 새벽공기는 아직 차가왔다.

게다가 이제야 조금씩 여명이 뜨는 

하늘은 아직도 어두운 느낌이어서

익숙한 동네의 골목을 걷는데도

살짝 무서움이 일어나기도 해서

괜히 나왔나 하는 후회가 조금 생겼다.


동네 주민들이 자주 올라가는

뒷동산 산책로에 올라가기 위해서

하늘이 환해질때까지 

나는 동네를 오랫동안 걸어다녀야 했다.


시간이 지나서 동이 텄고

뒷산 약수터로 가는 길을 따라

평소 좋아하던 산책로에 접어들었다.

아침 이슬이 내려앉은 산길은

풀냄새와 흙냄새를 진하게 풍겼지만

의외로 미끌거려서 걷기에는 불편했다.


나는 결국,

길가에 있던 돌맹이를 잘못 밟고

발을 헛디뎌, 발목을 접지르고 말았다.

뼈가 어긋나는 섬뜩한 고통이

날카롭게 파고든 발목 때문에

더 걷지 못하고, 밴치에 주저앉았다.


갑자기 짜증이 나고, 화가 치솟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서

주체할 수 없이 감정이 무너졌고

그 감정은 눈물이 되어서

울컥 거리며 울음이 나왔다.

나는 무릎을 끌어당겨 안아

얼굴을 파묻고 끅끅거리며 울게 되었다.

나만 정체된 채 멈추어 있고

나를 뺀 모든 것이 활기찬 느낌이다.

시간이 정말 느리게 흐르고 있다.





< 2 부 >


[ 다 울었냐. ]


등 뒤에서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때문에

나는 황급히 두 손으로 눈가를 문질러

눈물 자국을 닦아냈다.

그러면서 숨을 들이쉬며

우느라고 잠겼던 목을 가다듬었다.


이미 익숙한 목소리였기 때문에

나는 놀라지는 않았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공에게는

내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이기는 싫다.


마음을 추스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양 손에 캔커피를 들고, 다른 한 손에 쥔

캔커피를 나에게 내밀고 서있는

정연이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 언제 왔냐. ]

[ 조금 전에. ]

[ 그냥 지나가지 그랬냐. ]

[ 천하의 박지효가 혼자  울고 있는데

  이런 대박 사건을 놓칠 순 없지. 크크 ]


정연이는, 장난처럼 말했지만

그 애 역시 내 모습을 본 후

마음이 좋지는 않았던 듯,

얼굴빛이 살짝 어두워져 있다.

나는 정연이가 준 캔커피를

양 손을 감싸쥐었다.

커피의 온기가 느껴지면서

뒷목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어제 아빠가 전화했었어 하고

정연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 어제 아빠가 전화 했었어. ]

[ 으응... ]

[ 생전 안하시던 걱정을 다 하시더라구. ]

[ 으응... ]

[ 아빠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나봐. ]

[ 으응... ]

[ 넌, 으응.. 밖에 할 말이 없냐?? ]

[ 으응... ]

[ 참 내... 뭐 하러 온거야 그럼. ]

[ 으응..크크크크. ]


어제 저녁, 아빠와의 전화통화 처럼

나는 정연에게 아빠가 했던 말을 전했고

정연이는 마치 내가 된 것 처럼

으응. 하는 건조한 대답밖에 하지 않았다.


이 분위기에 나는 또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있던 말을

꺼낼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 나는 이제 그만 할까봐. ]

[ 뭐? 진심이야 그거? ]


진심인지 아닌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더 해 봤자, 의미 없을 것 같기도 하고.

 10년 해서 안됐는데, 1년 더 한다고

 뭐 뾰족한 수가 생기지도 않을거고. ]


죽기보다 더 싫었던 포기 라는 말을

막상 입 밖으로 꺼내 놓으니

정말 포기할 결심이라도 선 것 처럼

거침없이 말이 쏟아져 나왔다.

이 순간 나는 정말 모든 걸 다 내려놓은

자포자기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 이따가 팀장님 뵙고,

  그만두겠다고 말해야겠어.

  지긋지긋한 연습도 이젠 끝이네. ]


지긋지긋한 연습 이라는 말을 할 때

나도 모르게 다시 눈물이 솟아났다.

목구멍 깊은 곳부터 조여지듯 아파서

말 끝을 삼키여 울음을 참았다.


솔직히 나는 연습이 지겨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다시 무릎을 세워 , 얼굴을

다리 사이에 파묻으며 양팔로

다리를 감쌌다.

자꾸만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런 나의 팔을 가만히 다독이는

정연이도 아무 말 없었다.


[ 어짜피 그만 둘 거 한 번만 더 해보자. ]


한참만에 정연이가 말을 꺼냈다.

그 사이에 나도 마음이 진정되었고

눈물도 멎어서 더 이상 울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정연이는 내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그 말을 꺼냈는지 모르겠다.


[ 네 말대로, 10년 해서 안됐는데

  1년 더 한다고 뭐 달라질게 있겠어? 

  그런데 어짜피 그만 둘거라면,

  마지막 한 번 더 도전해 보자는 말이지.

  이제 다 그만두는 마당에 

  어짜피 손해볼 건 없잖아. ]


나는 정연이의 말이 잘 이해가 안갔다.

무엇을 도전한다는 거지?


[ 우연히 기획팀장님 얘기를 엿들었는데

  곧 오디션 프로그램을 할거라나봐.

  걸그룹 맴버를 몇 명 뽑는데,

  그게 서바이벌 방식이래.

  그래서 마지막까지 버티면

  걸그룹으로 데뷔를 시킬거라나봐. ]


이 말을 할 때 정연이는

살짝 신이 나서 흥분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왜인지 배신감 같은

알 수 없는 감정에 화가 났다.


[ 오디션을 본다고? 서바이벌?

  야, 너나 나나 진작 데뷔했어야 했는데

  이제와서 오디션을 다시 보라고?

  도데체 우리한테 왜 그러는거래? ]


[ 진정하고 내 말 들어봐.

  어짜피 우리 데뷔는 엎어져서

  또 언제 기회가 올 지 몰라.

  차라리 지금 오디션이라도 보는게

  훨씬 이득일거야.

  내 말 믿고, 한 번만 더 해보자 응? ]


이제와서 오디션 이라니. 치이..


[ 알겠지 박지효? 포기하는건 아직이야.

  내가 그랬잖아. 우리가 데뷔한다면

  리더는 꼭 네가 해주면 좋겠다고 말야. ]


나는 정연이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정연 역시, 긴 연습생 생활이 주는

막연한 불안함과 고민 때문에

마음이 망가져 있었지만

눈빛 만큼은 어느 때보다 더 맑았다.


나는 문득 마음이 씻기듯이 녹았다.


이 자리에서 정연이를 만나기 위해서,

그리고 이 아이에게 위로를 받기 위해서

나는 새벽잠을 설쳤고,

산책을 나왔고,

이 벤치에 앉아서 혼자 울었나보다.

포기하려는 마음을 지워버리고

새로운 다짐을 하기 위해서

운명은 나에게 이런 기회를 줬나보다.


나의 기적은 

나에게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끝>



지효.png


ㅋㅋㅋ

제가 이래도 되나 모르겠네요~ 

하트 셰이커를 들으면 울음이 나는 병은 아직 낫지 않았고

새벽 시간이 주는.. 뻘스런 느낌은, 뻘글을 쓰게 하네요.

이러고 나니깐, 아픈 손가락이 모모님에서 지효님으로 바뀌는 느낌~


뻘글에 오염되신 분들.. 지효님 사진으로 정화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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