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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인간 진드기
게시물ID : panic_978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깨동e
추천 : 36
조회수 : 250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8/01/25 08:38:59
"아버지! 하..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어머니 그렇게 고생.. 하... 됐습니다. 말을 ..."


병원 분리수거장 앞, 채 꺼지지않은 신문지 막대기를 손에 든 채 눈치만 보고있는 한 중년의 남자와, 그런 남자를 혐오스럽단듯 한참을 쏘아보다 그자리를 떠나버리는 한 젊은 남자가 있다.


*

사람 셋 누우면 움직이지도 못할 자그마한 단칸방에 초라하다 못해 궁핍한 몇 안되는 세간살이는 때에 쩔어있고, 코가 시리게 담배냄새와 술냄새가 찌들어 있는 그 곳.


눈두덩이가 퉁퉁 부어올라 뜨지도 못하고 줄줄 흘러 내리는 눈물을 한 손으로 연신 닦아내며 구석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여자에게 이제 막 초등학생쯤 되어보이는 한 남자아이가 안겨있다.


"괜찮아. 엄마 괜찮아."

"또 아빠 술 마셨어?"

"아냐, 아빠 술 안마셨어."

"근데 엄마눈 왜 그래. 엄마 왜 그래.."

"지환아, 오늘 할머니집 가서 자. 버스 타는거 알지? 지금 할머니 집에가."


김칫국물과 밥풀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바지주머니에서 500원을 꺼내 그 남자아이에게 들려주고는 떠밀다시피 그 방에서 쫓아 내보낸다.


"엄마도 같이 가자. 응? 엄마..."


아이는 연신, 터져 나오는 울음을 꼭꼭 씹어 삼키며 모른척 밥풀과 김치 그리고 깨진 그릇들을 훔쳐내기 바쁜 여자의 손을 잡아끈다.


"엄마. 제발. 응? 나랑 같이 가자. 아빠 또 술먹고 와서 엄마 때리면 어떡해. 그러니까 나랑 가자."

"엄마말 들으라니까!"


이내 그 아이의 성화가 귀찮다는듯 언성을 높여 미닫이문을 닫아 버리고선, 연신 걸레로 남은 밥풀들과 그리고 김치쪼가리들을 닦아내기 바쁘다.


*


"여편네가 말이지! 어?"


술에 취해 잔뜩 약이올라 보이는듯한 젊은 남자가, 다시 그 초라하다 못해 궁핍한 세간에 다시 들어와, 아무일 없단듯 걸레로 밥풀들을 닦아내던 그 여자의 멱살을 쥐고 연신 흔들어대며 서있다.


이젠 맞는것에도 이골이 났다는듯 반항할 여력없는 그 여자는 어서 그냥 이러다 잠들기만 기다린다는듯,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때리면 때리는대로 엎으면 엎는대로 가만히 서있다.


"돈 어딨냐고!"

"어딨냐고!"


멱살을 잡고 흔들다 여자를 구석에다 던지듯 확 밀쳐 내고선, 이내 허름한 플라스틱 서랍으로 다가가 서랍장을 다 꺼내 바닥에 쏟아 엎어버린다. 그때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누덕누덕하게 손때가 묻어있는 봉투하나가 툭 떨어지는데.


"있으면 진작 줬어야지!"

"지환아버지, 그거 지환이 중학교..."

"시끄럽다고 이년아!"


바짓가랑이를 붙잡아가며 방문을 나서려는 남자를 필사적으로 말리는 그 여자와 어떻게든 나가려고 가리지않고 발길질을 해대는 그 남자와의 몸싸움은 그리 길지 않았고, 탁하는 소리와 함께 미닫이 문이 닫히며 다시 또 그렇게 한바탕 전쟁은 마무리 되었다.


*

자욱한 담배연기가 가득차서 숨조차 쉴수 없는 모텔방안, 새파란 모포위엔 화투장 몇장이 착착 소리를 내며 소리없는 전쟁이 치열했다.


"거, 동수. 오늘 너무한거 아니야?"


비릿한 웃음이 맴도는 뱀상의 대머리남자와 그 앞에 마주앉은 그 남자는 만족스러운듯한 미소가 입가에 떠나지 않는 아까까지만 해도 밥상을 엎고 서랍을 엎던 그 남자였다.


"우리 아들래미 중학교 공납금이란다, 이게."


만족스럽다는듯 만원짜리 몇장을 안주머니에 대충 챙겨놓은 그 남자는  아쉽다는듯 다시 또 화투장을 섞어대며 패를 돌린다.


"개평좀 주리?"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만족스러운 웃음이 떠나지 않던 그 남자와 비릿한 웃음이 입가에 머물던 그 남자는 입장이 달라져 있었다.


"개평은 필요없고..."


담배만 뻑뻑 피우며 자리를 떠나지 못하던 그는 아쉽다는듯 안주머니에 있는 그 돈을 담요위에 꺼내 던진다.


*


"지환아, 미안해. 진짜 미안해. 엄마가, 꼭.. 우리 지환이 교복...."


얼굴에 멍자국이 떠날날이 없는 그 초라한 여자는 어디선가 가져온듯한 보따리에 쌓여진 교복을 주섬주섬 꺼내 그 작은 아이에게 대보고 입혀본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해 또래들보다 유난히 몸이 작은 아이에게 뒤집어 씌워진 그 허름한 그 교복은 마치 허수아비에게 입혀놓은 거적대기 마냥 초라하다.


"엄마! 아니야. 괜찮아! 나도 키 이만큼 크면 잘 맞을거야. 걱정하지마."

*

아들의 공납금까지 노름으로 날려먹고 들어오던 날, 다시 또 돈을 내놓으라면서 여자에게 행패를 부리던 그 남자와 그 남자의 고성을 문앞에서 듣고 있던 오백원을 손에 땀이 나도록 꼭 쥔 13살의 지환이 있었다.

뚝뚝 흘러내리는 눈물을 연신 때에 절은 소매로 훔쳐내던 지환은 무언가를 결심한듯 두손에 꼭 쥔 500원짜리를 소중히 품고 어디론가 나섯다.

경찰과 같이 찾은 그 집엔 다시 또 아무렇게나 세간이 나와 나뒹굴고 있었고, 그 남자가 휘두르던 발길질에 퉁퉁 부어있던 눈두덩이를 다시 또 맞은 그 여자는, 평생 그렇게 외눈으로 살아야만 했다.

그렇게 집을 나간 아비란 인물은 그 뒤로 다신 돌아오지 않았고, 다행히 동사무소의 지원으로, 조그만 방 한칸 그리고 얼마간의 지원금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상하이 스파이시버거 세트 하나 하고, 빅맥 세트 하나요."

"네, 주문 도와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미어터지는 패스트푸드점. 어느덧 고등학생쯤 되어보이는 지환은, 바쁘게 움직이며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 내고 있다.

"지환아! 퇴근해! 시간 됬어!"

"아, 이거만 하구요!"

연신 사람 좋은 웃음을 싱글싱글 웃어가며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지환. 부저음을 울리는 감자튀김 기계에 담겨진 바구니를 꺼내 올려 놓는다.

*

"엄마, 저 왔어요!"


없는 세간이라도 연신 쓸고 닦아가며 반짝하니 윤을 내고 있는 애꾸눈 여자를 보며 인사하는 지환.


"엄마 저 이거요! 엄마 선물. 원래 첫 월급때는, 부모님 내복 선물 해주는거라잖아요!"


핑크색 종이봉투안에는, 도톰한 겨울 내복 두상자가 들어가 있었다.


"지환아."

"아니. 엄마 그냥 제 용돈벌이에요. 걱정마세요."

지환은 걱정이 묻어나오는 그 애꾸눈 여자를 등뒤에 지고, 조그만 냉장고를 열어 김치와 계란을 꺼내 문 밖을 나선다.


"엄마가 해줄게."

"아니에요. 김지환표 특제 충김볶! 엄마도 한번 맛보실래요?"

술을 마시고와 행패를 부리는 남자가 그 초라하고 궁핍한 살림에서 사라진 그 이후, 잠깐이나마 그 들의 삶에 웃음이 찾아오는듯 했다.


대학 입학 졸업내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안되었었고, 군입대를 해야할땐 애꾸눈 엄마가 생활 할 생활비 걱정에 방학 내내 막노동판을 전전 해야했지만, 그거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렇게 고생끝에 낙이 온다며 번듯한 대기업에 취업해, 이제 호강 시켜 주겠다며 엄마에게 큰절하던 그 날이 얼마 지나지도 않아 걸려온 한통의 전화.

"김지환씨 되십니까."

"누구시지요?"

"여기 성진경찰서입니다. 김동수씨 아시지요?"

"그런 사람 모릅니다."


지환은 불쾌하다는듯, 전화를 끊어버린다. 그리고 몇일 지나지 않아 그들의 조그만 단칸방에 날아온 우편물 한장은 가난했지만 행복한 모자의 발목을 꼭 잡아 세운다.


*


"간암 4기 입니다. 이미 내부장기로도 전이가 다 되어 있는 상태라... 3개월도..."

"그래서 어쩌란 말입니까. 죽느니만 못한 사람 입니다."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의사를 마주보고 서있는 지환. 그런 지환을 말리지 못해 애가 탄다는 표정으로 그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지환의 엄마.


"저희는 모르겠으니, 그냥 맘대로 하십쇼. 소송을 걸던 뭘 하던 그럴 돈 없으니까 그냥 맘대로 하십쇼."

"지환아."


울상이 된 지환의 엄마가 지환이 나가려는 길을 막아섯다.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잠시 엄마를 노려보던 지환은, 이내 한숨을 쉬더니 그 엄마를 빗겨나 등 뒤에 두고 어디론가로 향했다.

복수가 차서 볼록하게 배가 부른 환자복을 입은 남자는, 노래지다 못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얼굴을 하고있다. 그는 매우 다급해 보이는듯 초조한 얼굴로 무언가를 찾아  분리수거장 바닥을 두리번 거렸다.

내내 무언가를 찾다 포기한듯 아쉬움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던 그는 무언가를 발견한듯, 신문지 뭉치앞에 서서 신문지를 길게 찢어 침을 발라가며 담배처럼 돌돌 말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가져온 실비집 라이터로 신문지에 불을 붙여 연기를 훅 빨아들인 그는, 매운 연기도 아랑곳 않는다는듯 잠깐 행복하고 즐거운 미소가 입가에 감돈다. 저 멀리 누군가가 자기를 보며 성난 얼굴로 걸어오고 있다는것도 모른채.
출처 가정폭력 피해자의 단면을 담아보고 싶었어요. 폭력피해자는, 처음엔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지만 그게 계속 될 수록 그 폭력에 순응해 버린다지요 그리고 평생 끌려다닌데요.

한번의 용기로 그 상황을 극복해 버릴수 있음에도 그럴 용기마저도 짓밟혀버린 피해자의 처참한 상황을 글로 풀어보고 싶었어요.

왜 그렇게 견디고 사느냐! 라고 말할수도 있지만, 도망갈 날개조차 꺾여버린 사람에게 그런말을 하는것에 조금 신중해야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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