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그 여자 이야기(7).
게시물ID : love_407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18
조회수 : 1520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8/01/27 19:22:32
그 날 밤, 내 집인데 선뜻 들어가지를 못하고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씻고 있으면 어쩌나. 물론 큰 방 화장실을 쓸테니 큰 문제는 없겠지만.
혹시 모르고 속옷같은거 베란다나 거실에 빨래다이에 널었으면 큰일인데...
오만가지 생각을 다하고, 쓸떼없는 걱정은 덤으로 더 하고 나서, 깊게 심호흡을 하며

이리오너라 열려라참깨 얄리얄리얄라셩얄라리얄라 등등...그냥 우어어어어~하고 집에 들어갔다.




컴컴했다. 
아직 안 들어옴.




멋쩍게 내 작은 방에 들어가 (문잠그고)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거실과 부엌에 불을 켰다.

"음???"

데려와놓고 아차!!!했지만, 지난 며칠을 밀려놓은 빨래며 설거지가 말끔하게 되어있었다.
막 담글때 가져와 계속 냉장고에 방치해 묵은지와 쉰김치의 중간쯤 가려던 김치는 참치김치찌개로 탈바꿈되어있었고,
사놓고 계속 깜빡하는 계란들은 계란말이가 되어 식탁에 놓여있었다. 얼마전 엄마손에서 사들고와서 햄버거랑 프라이만 먹고 둔 케찹도 같이 있었다--
난장판이나 다름없던 냉장고 안은 버려야했던 반찬들은 어디론가 싹 사라지고 남겨야할 반찬들만 남아잇었고...심지어 간장흘려놓고 귀찮아서 냅뒀던 자리까지 싹 닦여있었다.

화장실도 아무렇게나 내팽겨쳐두던 샤워타올이며 면도기며 면도크림 샴푸 비누등이 
음...이렇게 놓기만해도 차분한 기분이 들다니...라고 감탄이 나올 정도로 정리가 되어있었고
요즘 귀차니즘이 발동해서 손을 안대서 슬슬 피어오르던 곰팡이님들도 싹 사라져있었다.

나는 그애가 쓸 큰 방 쪽은 들어가보지도 않고,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를 들고 한잔빨까...하다가, 그냥 얌전히 밥 한공기 퍼서...음??? 맛있어???
한공기 더 퍼서 터져라 먹고, 배 두들기며 앉아 축구를 보며 뒹굴거리다가 그대로 거실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철컥.하고 오토락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떳다. 
얼핏 눈을 뜨니, 그 애는 현관 옆 작은 방을 지날때 살금살금 지나다가 거실에 널부러져있는 나를 보고 흠칫 놀래더니, 
나 깰까봐 조용히 들어가려다가 아무리 보일러를 틀어놨어도 이불도 안 덮고 자는 나를 그냥 둘 수 없는지 내 방에 가서 이불을 들고와 덮어주고 큰 방으로 들어갔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몸에서 음식냄새가 진동하는걸 보니, 또 어딘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큰방 화장실에서 샤워소리가 들리고 나는 이불의 온기에 다시 잠이 들었다.



다음날은 토요일이었다. 
그래서 모처럼 5시 기상이 아니라 푹 자려다가, 몸뚱이가 새벽 5시에 반응해서 눈이 떠졌다.
"젠장...더 자도 되는데... ...?"
큰 방에서 들려오는 물소리.

내가 그때 소스라치게 놀랐던 건, 몇 시간 전에 들어와 씻다가 피곤에 쩔어서 쓰러진거 아닌가???? 였기 때문이었다.
"D!!!!...."
큰 방문을 박차고 들어가니 그 애는 겨우 2시간 남짓 자고 또 아르바이트 나가려고 세수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침운동 갈거라고. 가기 전에 모닝커피먹을거라고. 하필 헬스장이 그 맥날 근처라고. 딱히 너 태워주려고 그런건 아니라구!!!라며, 
기어이 걸어가겟다는 애 차에 태웠다. 

마침 봄비가 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애는 낡은 스니커에 물들어올까봐 결국 내 차에 탔다.(탔다고 한다.)

걸어가면 한 10분거리인데, 토요일 새벽 차없는 시간에 나가니 신호 한번 안걸리고 도착했다. 
"이따가 아메리카노 시키면 젓지말고 흔들어서."
"...내리는 그대로 드리는데요;;;;"
"그래도 들고 올때 흔들잖아. 좀 더 쉐이크해줘. 이따봐."

일찍오셨네요. 이번 주는 또 얼마나 드셨어요. 옆구리에 살 찐거 봐. 여기 교회아니예요. 1주일 내내 먹고 하루이틀 운동한다고 안빠져요.
내가 니 놈 보기싫어서 끝나면 헬스장 옮긴다-.-+ 
싸우면 질것 같아서 그냥 들은체만체하고는 옷 갈아입고
런닝뛰고 쇳덩이 몇번 들었다놨다하고는 물통에 물을 받아, 창 밖의 비오는 풍경이 잘 보이는 런닝머신 건너편의 어째 오늘은 아무도 안쓰는 기구에 앉아서 물을 마시며 비오는 풍경을 바라봤다. 진짜로. 내가 원래 비오는 걸 좀 좋아하는 편이라, 아무 생각없이 비를 보고 있었는데,
어느 새 그 비어있던 런닝머신에 올라탄 어느 여성분이 내가 자기 엉덩이 계속 쳐다본다고 트레이너한테 기분나쁘다는 듯이 꼬질렀다--

아니, 니가 거기서 런닝뛰기 한 10분 전부터 내가 앉아있었다고ㅠ.ㅠ



다행히 경찰을 부르네 마네 할것도 없이 끝이 났다.
일단 내 뒤에서 흐읍!!!흐읍!!!하고 신음소리를 내며 운동하는 아저씨와 그 사모님이 가 내가 더 먼저 와서 앉아있었다는걸 증명해주어서 
끝까지 지가 잘했다는 그 여자에게 기어이 사과를 받아내고, 
나 기분나빠서 여기서 운동못함. 트레이너 니 처음부터 덮어놓고 여자편 들더라? 하고,
남은거 환불받고 짐싸서 나왔다.

주차장에 내려오는데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남은게 너무 많아서 울며겨자먹기로 주말이나마 나와서 운동하러가서 명상만 하고 오곤 했는데, 덕분에 몽땅 환불받고 나올수 있어서 말이다.

저녁은 치킨ㅋㅋㅋㅋㅋ하고 커피마시러 갔다.




주말 아침, 그 패스트푸드점은 평소보다 사람이 적었다. 
"아...어서오세요."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마시고 갑니다."
"젓지말고 흔들어서요?"
"??? 그냥 주세요."
내가 시치미 뚝 떼고 이 아가씨가 뭔 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웃는 모습 우는 모습 당황한 모습만 보여주던 그 애가 처음으로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왜 너무 귀여우면 더 괴롭히고 싶어지는...어릴때 좋아했던 애의 그 표정에 더 신나서 괴롭혔던 그런 기억이 있었던 것 같은데, 
순간 볼이 빵빵해지면서 부우!!!하는 그 표정이 너무 귀여웠다.
자리에 앉아 ㅋㅋㅋㅋㅋ거리며 앉아있다가 커피나왔습니다. 하는 소리에 가보니, 그 애는 들어가서 안나오고 웬 선머슴이 커피를 내주었다.

그렇게 멍하니 내리는 비를 보며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컵을 치우러 일어나자 마침 홀 정리를 하러 나온 그 애랑 눈이 딱 마주쳤다.
나보자 미간을 찌뿌리며 입을 삐죽이며 또 볼을 빵빵하게 하고는 흥!!!하고 고개를 돌린다.
그 표정이 너무 귀여웠다. 매일 학교에 아르바이트에 치여서 어른스러운 애인줄 알았는데, 아직도 애구나. 
속으로 ㅎㅎㅎ 웃으며 얼음을 버리고있자니, 실례합니다~하며 그 애는 내 옆에 서더니 어깨를 힘껏 부딫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임스 본드인줄 알았더니 아니셨네요."
"영어못함. 총 잘 못쏨. 싸움못함. 살찜. 안경씀. 뭣보다 여왕님께 충성할 생각없어. 살인면허결격자야. 본드라닠ㅋㅋㅋ"
"당황했잖아요."
"덕분에 좋은거 봤어."
"뭘 보셨는데요?"
"글쎄ㅋ. 몇 시에 끝나?"
"...이거 끝나고 잠깐 쉬었다가 또 아르바이트..."
"...잠은 자니?"
"네?"
"너 아까 2시에 들어왔잖아."
"안 자고 있었어요?"
"자다 깼지. 진격의 거인 들어온 줄 알았다."
그게 뭔데요? 하는 표정. 있어 그런게. 라며 손짓을 한다.
"점심은?"
"여기서 나오는거요."
"저녁은?"
"4시부터 일하면 저녁 아르바이트에서 밥 나와요."
"...그래. 알았어. 너무 무리하지말고. 비 심하면 연락해. 데려다줄께."
"...네...아젔...아니 오빠도 주말인데 쉬세요."
"너 걱정이나 좀 하세요. 간다. 무리하지마."

지하주차장에 가서야, 아차. 주차증...하고는 그냥 돈 내자 오늘 헬스장 환불받았는데 뭐. 하고 올라갔더니, 
주차관리인아저씨가 "아까 저기 알바생이 주차증주고 갔어요."라며, 통과시켜주었다. 




그 날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보았다. 역시나 동생집에서 빌려온거.
3시가 다 넘어가도 집에 안 들어오길래, 어제 해준 김치찌개에 밥 비며먹고 책을 마저 읽었다.

"여보세요. 끊는다."
"쥐뢀을 멈추라. 야. 이따가 AA랑 BB랑 너네 집 갈께. 술가지고. 장소만 제공해라."
"오!!!!!...아니. 안돼. ㅆㅃ 깜빡했네. 나 지금 일하고 있어. 늦어."
"집아냐?"
"아냐. 그리고 집에 엄마와있어."
"그래? 그럼 너네 동네 근처인데, 엄마한테 인사드리고 갈께. 어머니 롤케잌 좋아하시지?"
"아니 나도 안하는 효도를 왜 니네가 하고 그래??? 됐어. 그냥 가. 니들 낯짝보면 엄마 또 장가가라 선봐라 그런단 말이다."
"우리가 엄마한테 엄마작품이지만 아드님은 얼굴이 하자.라고 말해줄께."
"너 제수씨한테 저번에 국밥집 60만원 나온거 해명됐냐? 됐든 안됐든 내가 오늘 너 처마 밑에서 빗소리 들으면서 자게 해줄께. 오늘 주말이라 신문지 구하기 힘들걸???"
"그냥 갈께. 야~이거 좋은 술인데..."
"밤에 운전해야할지도 몰라. 아. EE 오늘 집에 있을거다."
"아~거기가 잇네. 너보다도 서비스 좋은 EE군. 친구를 개똥으로 안보는 우리 EE군. 거기로 간다. 다시는 너 안 찾을거다."
"고맙다. 내 평생 소원이 오늘 이루어지는구나."
하여간 입만 살아서!!!라며, 친구는 그 카드값 입 다물어라. 진짜. 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보니, 큰 방 옷장에 내 옷이 있어서 그거 꺼내러 들어갔다.
가방. 몇 년을 쓴 듯 오래된 가방. 책이 가득들어서 군장인줄 알았던 그 가방.
그 중에 몇 개를 꺼내서 조금 읽어보았다.
역시나 전공책. 드럽게 재미없었다. 거기다 나랑 전공이 달라 내용도 얼른 안 들어왔다.
하지만, 같이 들어있는 대학노트에는 강의내용에 책에서 적은 내용까지 정말 빽빽하게 적혀있었다.
이제 보니, 이 애 대학생의 필수품인 컴퓨터가 없네.

나는 얼마 전에 회사에서 지급되서 지금은 쓰지 않는 예전 노트북을 꺼내서 
살색영상들(...이거 하나 컴터에 없는 자만 내게 돌을 던져랏!!!)을 차마 못지우고 외장하드에 옮기고, 포맷을 했다. 
게임을 돌리는게 아닌 이상 아직도 무리없이 도는 노트북이었다.




저녁 알바 언제끝나는지 물어볼걸. 
살짝 후회하며, 아직도 비가 오는 밤거리로 나섰다.

신발만 파는 마트를 지나려다, 새벽에 나올때 물에 철벅거리는 소리까지 나던 그 애의 스니커즈가 문득 생각났다.
진짜 엄청 고민했다.
나는 너 생각해서 사줬다고 해도, 이 애는 또 엄청 부담스러워할건데...이제 이틀이지만, 집에 얹혀사는것도 엄청 부담스러워할텐데...
그치만 그 신발...하...어쩐다...그리고 신발 사이즈도 모르는데...

그리고 이미 여자 사이즈로 230 운동화를 지르고 있었다.

허락받는것보다 용서받는게 더 쉬운 법이다. 

이건 그냥 좀 암말 안하고 받아줬으면 좋겠다. 
출처 내 가슴 속.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