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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그 여자 이야기(8).
게시물ID : love_407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19
조회수 : 144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8/01/28 00:00:38
원래 주말 저녁에 총각놈들이랑 만나서 술을 마시던 당구를 치던 피씨방을 가던 뭔가를 하고 있을 시간에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자니, 
드.릅.게 심심했다. 

영화채널 틀어놓고 거실바닥에 드러누워, 자막도 안 읽히고 (당연히 외국말이라)귀에 들어오지도 않는걸, 그냥 멍하니 보고 있었다.

고독사하기 딱 좋게 이러고 있을땐 술이라도 한 잔 빨텐데, 오전 오후에는 촉촉하게 내리던 빗발이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져서 
이 애 데리러 가야겠다.싶어서 운전해야해서 술도 안마시고 있자니 참 드.릅.게 심심했다.



위이이잉~

핸드폰 진동이 울린건 새벽 1시가 넘어서였다.
"...통신보안. 통신보안? 아...ㅆㅂ 군대꿈...여보세요?"
"...저기 아저...아니 오빠. 전데요."
"어. 안잤어. 어디야? 비 많이 온다. 데리러 갈께."
"네...오늘은 좀 부탁 좀 드릴께요....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죄송은 무슨. 안 그래도 잠 안와서 방바닥이랑 몰아일체의 경지에 빠지고 있었어. 돈워리돈워리.

그 애가 알려준 곳은 동네에서 약간 떨어진 곳이었다. 어디까지나 자차로 이동했을때.
조느라 눌린 머리를 대충 빗에 물뭍혀서 빗고, 차키를 챙겨 옷에 넣으려다 큰방 침대에 두고 온 오늘 산 신발을...
만원에 몇개씩 팔길래 같이 사온 여자양말 중에서 하나 빼서 들고 내려갔다. 



"어. 여보세요? 어. 큰길쪽...은행있는데...아. 보인다. 인도 쪽에 서 있지마. 물튈라."

차를 얌전히 물 안튀게 세우자, 그 애는 우산을 접어서 물기를 팡팡 털고, 신발도 물기를 차 밖으로 다리를 빼서 탁탁 털고 타려다가...
자기가 앉아야 할 조수석에 놓인 신발파는 마트 봉지를 보고 움찔한다.

"신발사셨어요?"
"그렇게 비 다 맞고 서있을거면 우산 신발 뭐하러 털었어. 빨리타."
그 아이는 신발이 든 봉지를 안고 자리에 앉고, 안전벨트를 맨다. 
"어디까지 가세요?"
"...집까지 부탁드릴께요."
"오케이. 심야할증 붙습니다."




"안 풀어봐?"
"네?"
"그거."
"아...아니. 오빠껄 제가 왜 풀어봐요."
"보고 잘 샀나 품평 좀 해줘."
"네."
밤길에 와이퍼가 움직여대서 반응을 얼른 살피지 못했다.
좀 조마조마하긴 했지만, 사실 감동 좀 먹었음 했다.

아무 말도 없길래, 이거 감동 심하게 먹었나? 싶어서 신호대기 할 때 옆을 보았다.



분하다고 해야하나...민망하다고 해야하나...
그 눈물 많은 애가 그런 표정을 지으며 울지않으려고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어? D?"
"...저...저번 집에 보증금 다 잡히고도 월세 밀려있어요. 그거랑...다음 집 보증금 만들거나 다른 룸메이트 구할때까지만 신세질게요."
"어;;;; 그래;;;;"
"그래서 저 이거 받을 수 없어요."
"야. 그건;;;; 너 신발이;;;;"

으아아아아앙.

다음 신호에서 좌회전을 해야해서 2차로에 차를 대놓고 있던 나는 신호바뀌자마자 (평소처럼) 부아아아앙 밟고 나가 무려 5차로를 가로질러서 황급히 인도에 세웠다.
"저...저기...;;;;;;"

항상 조근조근 말하고, 벌써 몇번이지만 울어도 소리를 죽여서 울던 애였다. 
이 작은 애가 이렇게 크게 울수도 있구나. 
거짓말 조금 보태서 창 밖에 내리는 비만큼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엉엉 울어댔다. 
하필 블루투스로 나오고 있던 노래가 그 놈의 재생목록 "뽕빨댄스모음"이라 얼른 음소거로 돌려놓고, 
내가 안 우는 만큼이나 남들 우는거에 대처를 못하는 성격상, 뭐 어떡게 안아준다던지 달래준다던지를 못하고 운전대만 부서져라 잡고 앞만 보고 앉아있었다.
(차라리 우아아앙~울고, 오빠 품에 쏙 안기는 28살,24살 차이나는 사촌동생들이 더 편함. 안기면 달래주고 안 안기면 얼른 외숙모나 외할머니 엄마 이모들 부르면 되니까-_-)

거의 30분 쯤...수학못해 문과간 문돌이가 이 정도 울면 체내 수분의 3분지가 빠져나가 생명이 위험하지않나...하고 걱정하고 있을때,
어째 오른쪽 뺨이 간질간질해서 슬쩍 그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그 애는 퉁퉁부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살다살다 그렇게 슬픈 눈을 한 사람은 처음 보았다.

"...왜?"
"아저씨도예요?"

겨우 아저씨 → 아저ㅆ → 아젔...오빠 → 아ㅈ...오빠 로 호칭이 넘어가고 있었는데, 다시 빽도.

"뭐가?"
"아저씨도 제 몸이예요?"

내가 그 애랑 신체접촉은 처음 처음 술먹을때 부축하고 업어준거, 그 다음에 만나 고기먹고 쐬주먹었을때 계단 내려갈때 부축해준거. 딱 이 정도였다.
그리고 드라마같은거 잘 안보지만, 한번씩 사랑과전쟁같은거였나...뭐 그런거 보면 남자건 여자건 뺨도 잘 때리던데...

나는 그대로 꿀밤을 때렸다. 쎄게. 
그리고...

"떽!!!!!! 어디서 그런 말을!!!!!!!"

나 그때, 그렇게 말해놓고 챙피해서 차에서 뛰어내릴뻔했다.
떽!!!!!!이라니...경로당에 할아버지할머니들 안 쓸 말을...

"뭐??? 몸??? 내가 너를??? 야!!! 너 나를 뭘로 보고!!! 우와아아아아!!!"
"그럼 뭔데요? 내가 아저씨한테 잘한게 뭐가 있어요? 처음 만났을때 나 처음보는 아저씨 죽이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런 나한테 술사줘 밥사줘 이제는 방까지 내줘. 아저씨 대체 뭔데요???
"XX사. 운영1팀 김과장!!! 우리엄마아빠 장남!!! 
...그리고 너가 나한테 잘해준게 왜 없어? 감자탕집에서는 말한대로 수제비 더 넣어주고...또...그래!!! 김치찌개!!! 맛있더라!!! 오늘 다 먹었다!!! 그거 다시 끓여줘!!!!"

미친...그 때 진짜 뛰어내렸어야했다...하...

"...대체 저한테 왜 이러세요? 왜 이렇게 잘해주시는데요?...우아아아아앙."

그 애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평소의 내 방만큼이나 산만하기 짝이 없는 차 안이라, 안 쓸때는 사방에서 나오더니 쓰려니 이놈의 주유소 휴지가 어디서도 안나와서 찾느라 좀 애를 먹었지만, 어찌어찌 뒷좌석에 떨어져있는거 찾아서. 닦아. 코도 좀 풀고. 라며 건네주었다. 나 손수건 안쓰는 남자임. (바지있잖아 바지.)




조용히 다시 차를 몰아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왔다. 
그 애의 훌쩍이는 소리와 창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참으로 씁슬하던 밤이었다.
일단 내리자. 라고 겨우 그 애를 내리게 해서 집으로 들어왔다.

앉혀놓고 할 말은 엄청나게 많았지만, 시간은 늦었고 또 새벽같이 알바나가야 하는 애 1분이라도 일찍 재워야 할것 같아서,
얼른 씻고 자라. 너가 한 말 때문에...지금 너무 어지럽다. 잘 자.
하고, 내 방으로 들어와서 벌러덩 누웠다.




그래. 나 도대체 이 애한테 뭐지? 내가 왜 이러는거지? 이러고 뒹굴거리다보니, 어제 새벽처럼 물소리가 들린다. 5시군.

혼자 지낼때 가끔 부모님 할머니 이모들 사촌동생들 와서 자고 갈때는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이 아파트 참 방음 안된다;;;
그리고 부스럭부스럭, 비닐봉지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종이상자를 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현관 쪽으로 살금살금 걷는 소리가 들려서, 얼른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현관으로 곧장 나갈 줄 알았는데, 조용히 내 방문을 연다.

그럴 애가 아닌건 잘 알지만, 그 신발 내던질줄 알았다. 그때는. 
그 애는 문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마워요. 잘 신을께요. 신발값 꼭 갚을께요...신기해요. 내 신발 하나 밖에 없는데, 사이즈는 어떡게 안거예요...잘자요. 김치찌개는 이따가 와서 끓여줄께요....잘자요...아젔...아니...오빠..."
그러고 그 애는 혹여 내가 깰까봐 정말 조용히 문을 닫고,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닫았다. 
현관 밖에서 신발 신는 콩콩 소리가 들리는걸 보니, 현관에서 신발 신으면 콩콩 소리에 나 깰까봐 맨발로 나가서 현관에서 신고 나가나보다.





그렇게 한 열시까지인가 잠을 자고, 비그친 서울시내를 한바퀴 휘 돌다올까...아직 EE집에서 뒹굴고 있을 친구들 찾아갈까...고민하다가...
걍 식빵 2장 꺼내서 고추장같이 푹 절어버린 딸기잼을 어찌어찌 숟가락으로 퍼내서 발라먹고 거실에 다시 와서 앉아있으니, 어째 내 집 같지가 않았다.

"우와...엄마 왔다간것도 아닌데, 집이 정리가 되어있네."
그랬다. 이건 오랑캐의 습성이다!!! 이게 어찌 문명시대에 나올법한 집구석이냐!!!며, 너 세상에 그런일이...이런데 나갈 생각없냐는 말을 친구들한테 들어왔던 집구석인데...진짜 깨끗해져 있었다.
남의 물건이라 버릴건 버리고 그러지도 않앗는데, 단지 치울건 치우고, 걸건 걸고, 서랍에 넣을건 넣는 정도로도 사람사는 집이 되었다.
집이 작아서가 아니라, 내가 공간활용을 못했구나. 내일 출근하면 내 책상도 좀 치워야지. 
그렇게 졸다깨다졸다깨다하다가...

삐리리릭.

현관문이 열렸다. 

그때 시간은 오후 5시였다. 비는 그쳐있었고.
출처 내 가슴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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