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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그 여자 이야기(11).
게시물ID : love_408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24
조회수 : 155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8/01/30 00:47:53
목요일과 일요일 저녁은 가급적 일찍 들어갔다.

남들은 오늘의 할 일은 내일의 내가 한다!!!며 가는데, 
당시 우리 팀은 오늘 할 일 어제 안 해놓으면 내일은 더 꼬이는 형편이라, 
다들 야근을 달고 살았다. 

하도 일이 많아서, 남들은 통상임금으로 퉁치고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면 야근수당 결제태우고 일했는데, 우리는 실시간으로 수당받았다.
주말은 결제 받아야했는데, 내가 주말에 일합니다. 하고 나까지만 결제태우면 됐다. 
그냥 내가 주말에 회사가서 놀다와도 수당나옴. 놀지를 못하니까 그렇지.

거기다 나는 어지간하면 남들 퇴근한 시간에 차분히 사원대리들이 올린 보고서 보고, 이걸 내일 뭐라고 위에 보고하나...고민하는걸 별 수 없이 즐기던 사람이라, 매일 밤에 순찰도는 캡스 분들이랑 하이파이브 하던 사이였다.

나도 이렇게 열심히 산다고 자부라도 해야 멘탈 안나갈것 같아서 그렇게 자기 위안하고 있었는데,
매일 아침같이 아르바이트 가거나 학교가서 공부하고, 새벽 1시 넘어서까지 알바하고 와서 또 공부하는 D를 보니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갔다.



D는 진짜 열심히 살았다.
나랑 처음 만날 그 날은 (당시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D의 멘탈이 처절히 나간 날이었다.
워낙에 꾹 참고 감정표현을 잘 안하려드는 아이였다.
하필 그날 안좋은 쪽으로 터질뻔한거, 그 구역의 진짜 미친X을 만나 그렇게 풀어진거겠지.



쉬는 날은 밥하지마라. 
우리 엄마도 아빠랑 그렇게 타협해서 주말엔 삼부자 알아서 밥먹고 살았다.라며, 우리는 목요일 일요일 저녁은 나가서 먹거나 시켜먹었다.
아님 간단히 라면이나 끓여먹던지.

왜냐면 아침밥 안 먹을테니 그 시간에 자라니까, 애가 저녁밥을 해놓더라.
나도 퇴근시간이 대중없고 내 근태봤을때 남들보다 늦게 나가는 날은 야근하는 날이고, 같이 나간 날은 술마시러 간 날인 사람이라 
집에서 저녁밥 잘 안먹었는데, 애는 항상 중간에 저녁밥상을 차려놓고 아르바이트를 갔다.
그걸 또 안 먹을 수가 없었고, 자연히 내 술자리 참석비율은 점점 줄어들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무소식이 희소식. 별일없음 서로 연락 일절 안하는 남동생을 둔지라
(애아빠가 된 후로는 연락 자주함. 형 조카님 옹알이함. 형 조카님 첫 걸음마함. 형 조카님 처음으로 아빠라고 부름. 하고 연락 예전보다는 자주 함ㅋ)
주민번호만 2로 시작하고 사실상 남동생 취급하는 사촌동생들만 두다가,
나이차 많이 나는 여동생같은 D랑 생활은 퍽 즐거웠다.

D도 처음에는 얹혀산다고 굉장히 긴장 많이하고 그랬는데,
점점 내 앞에서 웃는 모습도 자주 보이고, 투정도 부리면서 딱 그 나이대 평범한 여자애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때는 그게 너무 좋았다. 뭐 내가 살렸네 그런게 아니라. 그냥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게 퍽 좋았다.




여름이 되었다.
"..."
"...??? 왜요???"
"너 안덥냐?"
"네?"
"나 반팔 입은지 한달 넘었는데, 너 아직도 그 옷이잖아-_-;;;;"
"오빠. 저 진짜로 옷..."
"안사줘. 사준다고 니가 받을 애야? 영수증 숨겨놔도 가서 환불 받아올 애잖아."

D랑 체형 비슷한 여직원들에게 뭐 어찌어찌 안 입는 여름옷 팔라고 했다.
요즘 과장님 쫌 이상해요~라면서 꼬치꼬치 왜요왜요 하고 물어도, 뭐 그런 사정이 있어;;;; 언젠간 말할께. 라니깐,
여장하시는건 아니죠??? 하면서 안 입는 옷들 그냥 몇벌씩 가져다 줬다.
옷값 안받아요. 어차피 안 입는 옷이예요. 라길래, 미안하니까 밥사주고 술사주고 커피사줄께. 고마워.라고 받아왔다.

"우리 회사에...너한테는 언니들인데, 여름옷 안입는거 달라했어. 진짜 거저 받은거니까 옷 좀 갈아입어."
"...이러실 필요는..."
"너 그 옷 등에 땀뱄다. 그냥 쫌 받아라-_-"

그제야 D는 아차 한다.
가끔 D가 이렇게 뭐 안받는다 고집부릴땐 처음엔 달래다가 포기했는데, 이제는 그냥 몸쪽 꽉찬 직구를 던져버리곤 했다.

"난 옷종류는 상의 하의 발에 신는거. 머리에 쓰는거. 딱 이렇게 밖에 구분 못하는 사람이야. 뭐 애들이 원피스네 칠부바지네 나시네 면이네 하면서 줬는데, 잘 몰라. 그래도 멋들은 부리고 다니는 애들 옷이니까 후지고 그러진 않을거야.... 뭘 그렇게 보니. 그거 내가 입을려고 받은 것도 아닌데."

D는 그렇게 내가 들고옷 옷더미들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을 안 나왔다.
이거 또 우나??? 했는데, 옷들이 너무 예뻐서 이것저것 입어보고 있었다고 한다.

여자애는 여자애다.

"과친구가, 옷 너무 예쁘다고 칭찬해 줬어요."
또 그렇게 며칠 만에 본 D는 우리 회사 여직원들게 고맙다고 꼭 전해달라며 말했다.
"그래. 집에서 반팔입고 있으니 내가 다 시원하다. 옷들은 맞아?"
"네."
한창 꾸미고 싶은 나이일건데, 쪼들리는 생활비에 몇개 안되는 옷 돌려입는게 맘에 걸렸는데, 중고지만 그 옷들이 퍽 맘에 들었나보다. 
새옷사줬으면 또 한바탕 난리났을건데. 




"과장님. 이거요."
옷을 몇벌 협찬한 여직원이 뭘 준다.
"...??? 뭐야??? 생일선물??? 나 생일 진즉에 지났는데???...올게 왔군...도전장인가???"
"그 옷 누구 주셨죠? 이거 화장품이예요. 제 피부에 안맞는데 모르고 사버린건데...그 친구 주세요."
"어???"
"흠흠. 모른척 해드릴께요."
"뭘 알고 하는 소리세요. 뭐...주는건 사양않고 받는 사람이니까 잘 받았다가 오마니 드릴께. 내일 점심 시간되요? 밥사줄께."
"비싼거 먹을거예요."
"네네. 이거 꽤 비싸보이는데, 그 정도는 쳐드려야죠."

여자 촉이 무섭긴 하더라. 
당시에 여직원들 사이에서 어떤 소문이 퍼졌는지 예나지금이나 여직원들과 딱 업무적인 이야기만 해서 그들의 커뮤니케이션은 모르지만,
이런저런 여성용품들이 하나씩 내게 떨어졌다. 
나야 뭘 모르니, 아. 고마워요. 밥 같이 먹어요. 하고 넙죽넙죽 받아다가, 회사언니들이 준거야. 너 써.라며, D에게 줬고, 
D는 항상 너무 고마워하며 받았고,

그렇게 여성아이템들을 하나씩 장착하자, D도 꽤나 세련된 여대생이 되었다.

물론, 그 지옥같은 아르바이트들은 절대 손에 놓지 않았다.




D는 월 30만원씩 꼬박꼬박 방세로 지불했다.
더 주고 싶지만, 그 30만원이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맥시멈이었을거다.
나는 그 돈을 휴면계좌살려서 거기에 차곡차곡 쟁여놓았다.
밥해줘 빨래해줘 청소해줘 목요일 일요일에 독거노인이랑 놀아줘. 그 월급이다. 하고 언젠간 퇴직금 붙여줘야지.하고 20만원씩 붙여서 넣어두었다.




내가 아침밥 안먹는다고 근 한 달을 말하고서야 D는 새벽에 아르바이트 안나가면 그 시간에는 잤는데,
딱 한번 애가 문을 안 닫고 자서, 새벽에 씻으러 나오다가 자는 얼굴 본 적 있는데, 
이건 그냥 곤히 자는게 아니라 피곤에 절어서 자고 있는 얼굴 이었다.



슬슬 이 아이의 과거가 궁금해졌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꼰대아저씨 짓이었지만, 같이 산지 어언 반년이 되가는데 슬슬 물어봐도 되지않나 싶었다.




그런데, 그러기 전에 긴급사태가 벌어졌다.
출처 내 가슴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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